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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날 구걸한다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다!

헬무트 콜 회고록을 읽다가 고르바초프의 경제 원조 요구에 대한 부분에 눈길이 갔습니다. 해당 부분이 꽤 재미있어서 한번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9 월 7일 오전 나는 고르바초프와 전화 통화를 했다. 코카서스 회담 이후 처음 갖는 대화였다. 고르바초프는 전화에서 나를 압박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인생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고 말문을 열고는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등산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 다음 고르바초프는 본래의 관심사로 화제를 옮겨 소련군의 동독 지역 주둔 비용 협상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전해왔다.

나는 소련군 철수 병력을 위해 대규모 지원을 하기로 양국간에 이미 합의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철수 때 까지의 주둔 비용과 거기다 철수 비용까지 요구하고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는 통일 조약이라는 역사적 합의가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이견으로 위기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소련은 그렇게 좀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의사를 전하기 위한 노골적인 암시였다.

나는 고르바초프에게 소련에 대한 서독의 호의를 강조하고는 80억 마르크 지원 계획을 되풀이해 전했다. 그러자 그는 그 같은 액수로는 협상이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면서 자기들 계산으로는 주택 건설과 그에 따른 사회 간접자본에만도 110억 마르크가 필요하다는 것 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아주 노골적으로 “독일 측의 제안은 이제 까지 이룩해 낸 공동 작업 결과를 허물어 뜨리게 될 것 입니다. 소련의 요구는 결코 구걸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솔직히 얘기하자고 하고는 장애물을 만들어 그동안 이룩해 놓은 것을 다 날려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운명을 결정하는 소련군 체류 및 철수 문제”를 자신이 요구하는 지원 액수와 직접 연계시키고 나왔다. 그는 곧 있을 2+4자 회담과 관련해 외무장관인 셰바르드나제에게 어떤 훈령을 내렸으면 좋겠냐고 나에게 물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지금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덫에 걸려 있는 느낌입니다.”

헬무트 콜/김주일 옮김, 『헬무트 콜 총리 회고록 :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해냄, 1998), 314~315쪽

요즘 생각하는 문제 때문에 독일 통일과 관련된 책들을 다시 조금씩 뒤적이고 있는데 진지한 생각보다는 장난스러운 생각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자잘한 일화들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망상이 피어나더군요. 여기서 인용한 고르바초프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거장 김화뷁님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바로 이거;;;

고르바초프 : 아까 전에 날 보고 구걸한다고 했었지? 난 그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콜 : !!!

고르바초프 :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날 구걸한다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다!!!

콜 : !

부시 : 무... 무슨 소리야!

고르바초프의 진짜 심정은 이런게 아니었을지... 망상은 그만두고 좀 진지한 생각을 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ㅋ

2010년 3월 13일 토요일

강대국 정치의 일면

다들 잘 아시는 내용이겠습니다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독일 통일 문제가 다시 떠오르면서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있던 소련은 판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해보자는 계산에서 독일 통일 문제에 소련과 미국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도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과 소련,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을 분할 점령하고 분단체제를 형성한 당사국이니 명분은 꽤 그럴싸 했던 셈입니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 통일에 부담을 가질 것이고 이 두나라가 문제를 제기한다면 소련으로서는 그만큼 좋은 일이 없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독일을 분할 점령했던 4개국이 주도적으로 독일 통일 문제를 다루는 것이 서독에게는 굴욕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내놓은 절충안은 독일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인 서독과 동독, 그리고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참여한 이른바 "2+4"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4대강국이 독일의 자주적 통일 문제에 끼어드는 모양이긴 했습니다만 소련이 제안한 4대강국 중심의 협의체 보다는 서독에게 훨씬 나은 방안이었을 겁니다.

한편, "2+4"를 통해 독일 통일문제를 협의한다는 방안은 1990년 2월 캐나다의 오타와에서 열린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다른 국가들에게도 알려집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다른 유럽 나라들도 판에 끼워달라고 들고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국무부장관이었던 제임스 베이커(James A. Baker III)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우리가 오타와 회의에서 당시 추진 중이던 "2+4" 방식의 협상에 대해 발표하기 전 까지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이 문제를 나토 회의에서 다룰 생각이었다. 그러자 사태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독일 문제에 끼고 싶었기 때문에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만약 발언권을 가진 15개, 또는 16개국 대표가 발언을 신청해 독일이 재통일 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면 상황을 어찌 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오타와에서 열린 나토 회의에서 미국측이 "독일의 재통일에 대한 우리의 계획안을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발표하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이탈리아 외무장관이었던 지아니 데 미첼리스(Gianni de Michelis)가 발언을 신청했다.

"독일 재통일 문제는 중요합니다. 그 문제는 이탈리아와 관계가 있는 문제이고 유럽의 미래와도 관계된 문제입니다. 우리도 협상에 참가해야 겠습니다."

그러자 겐셔(Hans-Dietrich Genscher)가 일어서서 말했다. "저도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겐셔는 거칠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이 게임에 끼어들 수 없어!(Sie sind nicht mit im Spiel)"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태도에 꽤 놀랐다. 서독과 동독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유럽국가들도 같은 요구를 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종결지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 독일과 서유럽의 15개국... 아니 14개국, 그리고 소련과 미국, 여기에 캐나다 까지 끼어들었다면 의사 소통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Alexander von Plato, Die Vereinigung Deutschlands - ein weltpolitisches Machtspiel(2. Aflg)(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 2003), ss.283~284

겐셔는 외교적으로 매우 무례한 발언을 했는데 사실 이건 강대국이 중심이 되는 국제정치의 찝찝한 일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독일이 보기엔 한 수 아래의 나라들인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통일문제에 끼어드는 것 만으로도 불쾌한데 그 보다 국력이 더 떨어지는 작은 나라들이 끼어들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짜증이 안 날 수 없었겠지요. 근대이후의 국제관계에서는 형식상 모든 나라가 동등한 위치에서 참여합니다만 실제로는 국력이 그대로 반영되지요.

그리고 유럽의 작은 나라들이 아웅다웅 거리는 것은 더 큰 나라들이 보기에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베이커가 미국의 "2+4" 방안을 제안하기 위해 소련을 방문했을 때 고르바초프는 미국과 소련, 그리고 유럽 각국의 입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고르바초프가 세바르드나제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베이커가 놀랄만한 일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역사적으로 위험한 문제였던 독일의 군국주의가 나타날 조짐은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고르바초프는 이렇게 말했다. "본인도 기본적으로 미국측의 제안에 동의하는 바 이오." 소련은 새로운 현실에 맞춰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일 독일의 장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오." 고르바초프는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는 유럽 내부의 주도권을 어느 나라가 쥐게 될 것인지 신경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것은 소련이나 미국이 신경쓸 문제는 아니었다.

"소련과 미국은 대국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세력 균형을 좌우할 능력이 있지요."**

Philip Zelikow and Condoleezza Rice, Germany Unified and Europe Transformed : A Study in Statecraft(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p.182.

독일의 통일 과정은 국제 관계에서 강대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가 관심을 가지지만 그 문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은 실력이 뒷받침 되는 소수일 수 밖에 없지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반도 주변에는 강대국 밖에 없어서 독일 통일 과정에서 처럼 딴지를 걸고 나설 자격미달(???)의 나라는 없습니다. 한반도 통일이 본격적으로 논의 될 때 몽골이나 베트남이 한 자리 요구할 리는 없겠지요^^;;;;

*위에서 인용한 겐셔의 발언은 꽤 유명해서 독일 통일과 관련된 많은 저작들에 실려있습니다. 젤리코와 라이스의 책에도 그 이야기가 있는데 미국 외교문서를 참고했기 때문에 베이커의 구술을 참고한 플라토의 서술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이 발언은 직역하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의역을 했습니다. 원문은 "We are big countries and have our own weight." 입니다.

2010년 2월 8일 월요일

대북정책에 대한 융통성 있는 접근에 대한 희망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한마디. 제가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보니 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분 중에서 저를 한나라당 지지자로 오인하시는 사례가 종종있습니다. 제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특히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와 노무현 정부 전기간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이긴 합니다만 한나라당 지지자는 아닙니다. 강인덕 같은 보수적인 인사를 통일부 수장에 임명하는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북정책을 시사했던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꽤 기대감이 크기도 했지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원래는 작년 연말에 쓰려고 했는데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다 보니 좀 많이 밀리게 됐군요.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인 갈등이 심화되면서 개별 정당은 물론 정당 지지자들 간에도 대립각이 극단적으로 날카로워진다는 느낌입니다. 상대 정당, 정파의 정책은 무조건 틀린 것이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 입니다. 저와 같은 당을 지지하시는 분들은 불쾌하시겠지만 김대중의 대북정책이 무조건 옳은 것이며 그것을 계승해 발전시킨 노무현도 당연히 옳은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명백해 졌으며 민주당-열린우리당이 집권한 10년 동안 북한은 남한의 유화적인 정책에 상응하는 대응을 사실상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제한적인 이산가족 방문이나 제한적인 정치사회단체들의 활동같은 통일쇼를 예로 들진 맙시다) 한계점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의 공세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느라 정책에 대한 반성을 거의 하지 못한 점은 부메랑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보수층의 파상적인 공세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화정책 만으로는 북한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개혁진영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는데 주력했지만 이것은 한나라당에 비해 훨씬 적은 개혁진영의 고정지지층을 결속시키는 역할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대북유화정책이 조건만 갖춰진다면 충분한 효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고려하고 있다면 북한과의 교류 필요성을 절대 부정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실시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는 마당에 그것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하는 식으로 어설픈 물타기를 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참으로 낯뜨거운 것은 노무현 정부당시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는 미국의 압박정책이 문제라고 합리화하기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들어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셀수 없이 많습니다. 2002년 북한과의 교전으로 한국 해군이 많은 사상자를 냈을 때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느라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금강산 관광객이 한명 살해당했을 때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지요. 북한이 유화정책을 해도 도발하고 강경정책, 또는 무시하는 정책을 해도 도발한다면 도데체 유화정책이 무슨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비극적인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대북정책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기 위해서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성적인 자기성찰이란 불가능해 지고 융통성마저 잃게 됩니다.

만약 북한이 개혁진영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준다면 대북유화정책을 굳건히 견지해 나간 것이 결과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개혁진영이 주도권을 쥐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할 것 입니다. 하지만 반대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경우 정치적으로 체력이 약한 개혁진영이 입게될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1989~1990년 동독이 붕괴될 당시 서독의 사민당(SPD)는 동독과의 점진적 통일을 주장했지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치닫자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기민-기사당 측은 동독의 혼란이 가속화 되자 동방정책의 틀을 깨고 적극적인 흡수통일로 노선을 전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민당은 동방정책의 연장선 상에서 온건한 정책을 고수한 까닭에 동독의 붕괴를 일관적으로 추진한 기민-기사당이 외교안보적인 승리를 거머쥐는 사태에 무기력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래는 불확실 한 것 입니다. 민주당 측이 원하는 것 처럼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연착륙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북한이 체제유지를 고수하다가 갑자기 붕괴하는 급변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개혁진영이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고수한 것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지기반이 한나라당에 비해 취약한 민주당과 그 밖의 진보정당들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흡수통일이라는 상황이 닥칠 경우 한나라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고 결과적으로 외교안보분야에서 장기적으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 입니다.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보수정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했으면 하는게 저의 작은 기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