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월 7일 오전 나는 고르바초프와 전화 통화를 했다. 코카서스 회담 이후 처음 갖는 대화였다. 고르바초프는 전화에서 나를 압박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인생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고 말문을 열고는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등산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 다음 고르바초프는 본래의 관심사로 화제를 옮겨 소련군의 동독 지역 주둔 비용 협상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전해왔다.
나는 소련군 철수 병력을 위해 대규모 지원을 하기로 양국간에 이미 합의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철수 때 까지의 주둔 비용과 거기다 철수 비용까지 요구하고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는 통일 조약이라는 역사적 합의가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이견으로 위기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소련은 그렇게 좀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의사를 전하기 위한 노골적인 암시였다.
나는 고르바초프에게 소련에 대한 서독의 호의를 강조하고는 80억 마르크 지원 계획을 되풀이해 전했다. 그러자 그는 그 같은 액수로는 협상이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면서 자기들 계산으로는 주택 건설과 그에 따른 사회 간접자본에만도 110억 마르크가 필요하다는 것 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아주 노골적으로 “독일 측의 제안은 이제 까지 이룩해 낸 공동 작업 결과를 허물어 뜨리게 될 것 입니다. 소련의 요구는 결코 구걸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솔직히 얘기하자고 하고는 장애물을 만들어 그동안 이룩해 놓은 것을 다 날려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운명을 결정하는 소련군 체류 및 철수 문제”를 자신이 요구하는 지원 액수와 직접 연계시키고 나왔다. 그는 곧 있을 2+4자 회담과 관련해 외무장관인 셰바르드나제에게 어떤 훈령을 내렸으면 좋겠냐고 나에게 물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지금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덫에 걸려 있는 느낌입니다.”
헬무트 콜/김주일 옮김, 『헬무트 콜 총리 회고록 :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해냄, 1998), 314~315쪽
요즘 생각하는 문제 때문에 독일 통일과 관련된 책들을 다시 조금씩 뒤적이고 있는데 진지한 생각보다는 장난스러운 생각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자잘한 일화들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망상이 피어나더군요. 여기서 인용한 고르바초프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거장 김화뷁님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바로 이거;;;
고르바초프 : 아까 전에 날 보고 구걸한다고 했었지? 난 그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콜 : !!!
고르바초프 :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날 구걸한다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다!!!
콜 : !
부시 : 무... 무슨 소리야!
고르바초프의 진짜 심정은 이런게 아니었을지... 망상은 그만두고 좀 진지한 생각을 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