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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8일 월요일

대북정책에 대한 융통성 있는 접근에 대한 희망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한마디. 제가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보니 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분 중에서 저를 한나라당 지지자로 오인하시는 사례가 종종있습니다. 제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특히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와 노무현 정부 전기간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이긴 합니다만 한나라당 지지자는 아닙니다. 강인덕 같은 보수적인 인사를 통일부 수장에 임명하는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북정책을 시사했던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꽤 기대감이 크기도 했지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원래는 작년 연말에 쓰려고 했는데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다 보니 좀 많이 밀리게 됐군요.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인 갈등이 심화되면서 개별 정당은 물론 정당 지지자들 간에도 대립각이 극단적으로 날카로워진다는 느낌입니다. 상대 정당, 정파의 정책은 무조건 틀린 것이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 입니다. 저와 같은 당을 지지하시는 분들은 불쾌하시겠지만 김대중의 대북정책이 무조건 옳은 것이며 그것을 계승해 발전시킨 노무현도 당연히 옳은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명백해 졌으며 민주당-열린우리당이 집권한 10년 동안 북한은 남한의 유화적인 정책에 상응하는 대응을 사실상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제한적인 이산가족 방문이나 제한적인 정치사회단체들의 활동같은 통일쇼를 예로 들진 맙시다) 한계점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의 공세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느라 정책에 대한 반성을 거의 하지 못한 점은 부메랑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보수층의 파상적인 공세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화정책 만으로는 북한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개혁진영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는데 주력했지만 이것은 한나라당에 비해 훨씬 적은 개혁진영의 고정지지층을 결속시키는 역할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대북유화정책이 조건만 갖춰진다면 충분한 효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고려하고 있다면 북한과의 교류 필요성을 절대 부정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실시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는 마당에 그것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하는 식으로 어설픈 물타기를 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참으로 낯뜨거운 것은 노무현 정부당시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는 미국의 압박정책이 문제라고 합리화하기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들어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셀수 없이 많습니다. 2002년 북한과의 교전으로 한국 해군이 많은 사상자를 냈을 때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옹호하느라 바쁘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금강산 관광객이 한명 살해당했을 때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지요. 북한이 유화정책을 해도 도발하고 강경정책, 또는 무시하는 정책을 해도 도발한다면 도데체 유화정책이 무슨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비극적인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대북정책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기 위해서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성적인 자기성찰이란 불가능해 지고 융통성마저 잃게 됩니다.

만약 북한이 개혁진영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준다면 대북유화정책을 굳건히 견지해 나간 것이 결과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외교안보정책에 있어 개혁진영이 주도권을 쥐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할 것 입니다. 하지만 반대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경우 정치적으로 체력이 약한 개혁진영이 입게될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1989~1990년 동독이 붕괴될 당시 서독의 사민당(SPD)는 동독과의 점진적 통일을 주장했지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치닫자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기민-기사당 측은 동독의 혼란이 가속화 되자 동방정책의 틀을 깨고 적극적인 흡수통일로 노선을 전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민당은 동방정책의 연장선 상에서 온건한 정책을 고수한 까닭에 동독의 붕괴를 일관적으로 추진한 기민-기사당이 외교안보적인 승리를 거머쥐는 사태에 무기력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래는 불확실 한 것 입니다. 민주당 측이 원하는 것 처럼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연착륙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북한이 체제유지를 고수하다가 갑자기 붕괴하는 급변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개혁진영이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고수한 것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지기반이 한나라당에 비해 취약한 민주당과 그 밖의 진보정당들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흡수통일이라는 상황이 닥칠 경우 한나라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고 결과적으로 외교안보분야에서 장기적으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 입니다.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보수정당에게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했으면 하는게 저의 작은 기대입니다.

2009년 2월 12일 목요일

손학규 전 대표에 대한 추억

문수훃의 화려한 개그

경기도지사는 정말 머리 좋은 사람 바보로 만드는 이상한 자리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추억이 하나 떠오르는군요.

이 양반이 아직 경기도지사로 있던 몇 년 전.

이 어린양의 아버지께서 표창을 받으러 가실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표창을 받으시니 아들로서 당연히 따라갔지요.

마침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는다고 해서 시청에서도 담당 공무원이 한 분 따라 나왔습니다. 대략 40대 중반 정도 된 분이었습니다.

이날 손학규 지사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연설하는 자리에서 횡설수설을 하다가 내려왔습니다. 듣는 입장에서 재미없고 지루해 죽을 지경이더군요.

마침내 상을 주고 악수하는 자리.

제 아버지의 차례가 왔습니다.

손학규 지사가 제 아버지와 악수를 한 뒤 옆에 있던 시청 공무원을 보고 말하길.


"선생님은 아드님을 참 잘 두셨군요."


순간 손학규 지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버~엉 쪘습니다.

손학규 지사의 옆에 있던 도청 공무원이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분 아드님은 이쪽입니다."

하고 해명했습니다. 그러자 손학규 지사는 멋쩍은 표정으로 "허허" 하더니 지나가더군요.

이 일이 있고 나니 손학규 지사의 앞날이 별로 밝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2008년 12월 13일 토요일

마누라의 실수랍니다.

미국의 1948년 대선은 여론조사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힙니다. 대부분 트루먼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상황을 낙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트루먼 대통령은 선거자금을 모금할 때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민주당은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둔 9월 1일에도 재정위원장이 공석인 상태였다. 트루먼은 9월 첫 째 주에 선거 자금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루이스 존슨(Louis Johnson)을 포함한 80여명의 부유층 당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초대 받은 당원 중 50명만이 참석한 이 모임에서 트루먼은 필요한 자금이 조달된다면 자신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리고 트루먼은 당 재정위원회의 위원장에 지원할 사람은 없는지 물었다. 당연하게도 어느 한 사람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한 민주당 당원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선거에 질 것이 거의 확실한 사람을 위해 앞장서서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받아내는 어려운 일을 누가 하려고 했겠는가?”

Keith D. McFarland and David L. Roll, Louis Johnson and the Arming of America : The Roosevelt and Truman Years, Indiana University Press, 2005, p.137

결국 트루먼의 절친한 친구인 루이스 존슨이 이 어려운 일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 시피 트루먼이 이겨 버렸습니다.

내가 이겼지롱!

그러자…

대선이 끝난 다음날부터 루이스 존슨에게 자신의 비서나 부인이 자신의 선거후원금을 ‘깜박하고’ 보내지 않은 것을 ‘이제 막’ 알았다고 하는 개인 기부자들이 대선 이전 날자로 서명한 수표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해리’에게 자신들이 ‘언제나’ 그를 후원하겠다는 성의를 보이려는 사람들이 뒷북으로 보낸 기부금은 수십만 달러에 달했다. 마가렛 트루먼(Margaret Truman)이 뒤에 회고했듯 트루먼이 선거가 끝난 뒤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 트루먼 선거캠프의 재정 담당자인 루이스 존슨은 승자의 편에 붙으려는 사람들이 보낸 ‘날자를 앞당겨 쓴’ 엄청난 양의 수표를 받았고 그 액수는 75만 달러에 달했다.

Ibid, p.144

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지요;;;;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마누라 탓을 하는 찌질한 남편들은 언제 어느 곳에나 있군요;;;;

2008년 11월 29일 토요일

게이츠 국방장관이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기용되는군요

요 며칠간 정신이 없다보니 뉴스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게이츠 국방부장관의 유임이 확실해 진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됐습니다.

Gates agrees to stay on under Obama

Obama puts faith in Bush's defence secretary

Defense Secretary Gates to Keep Job Under Obama


게이츠 장관이 차기 정권에서도 유임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가을부터 솔솔 흘러나온바 있습니다.

게이츠 장관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살아남을 것인가?


물론 오바마가 노선차이 때문에 게이츠 장관을 유임시키지 않을 것 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습니다만....

Defense Secretary Gates Doesn’t Belong in Obama Cabinet


결국은 유임되는군요.

게이츠 국방부장관은 오바마 측에서 보다 더 적합한 인물을 찾을 때 까지 유임될 모양이긴 합니다만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있어서는 오바마와 비슷한 입장에 있었던 만큼 단순한 땜빵용 장관은 아닐 듯 싶습니다. 물론 이라크나 미사일방어체제(MD) 문제에 있어서는 오바마 당선자와 게이츠 국방부장관의 입장이 반대되는 만큼 오바마의 임기초에 게이츠 장관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