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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4일 금요일

민간인 사살 사건에 대한 독일군의 조치

Bundeswehr entschädigt Familie des afghanischen Opfers,(2009. 07. 23) Spiegel

지난 번의 총격 사고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15세 소년 한명이 사망하고 소년의 아버지를 포함해 두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최초 보도에서는 세명 사망이다 두명 사망이다 등등 혼란스러웠는데 최종 확인된 바로는 사망자가 한명에 그쳤군요.

독일 연방군은 소년의 부족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할 것이며 구체적인 보상액수는 이번 작전이 끝나면 결정될 모양입니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민간인 사살 사건 당시 독일측은 여성 한 명과 그 자녀 두명의 사망에 대해 2만달러를 지급했는데 이번에는 15세의 소년이라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액수는 비슷할 것 같다는 전망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관습에서는 노동력이 있는 남성의 가치가 여성과 어린이 보다 높기 때문이라는군요.

민주주의와 미디어의 발전으로 비정규전은 매우 골치가 아파졌습니다. 2차대전 당시의 독일군이라면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민간인이 한 두명 사살된다 해도 신경을 안 썼을테니 말입니다.

2009년 7월 20일 월요일

독일군,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사살

아프가니스탄 주둔 독일군이 검문 중 민간인 두명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Bundeswehr tötet Zivilisten
-> 새 기사로 대체되어 링크가 깨졌습니다.

독일 연방군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여섯명의 민간인이 탄 차량이 독일군이 있는 곳으로 고속으로 접근해 왔기 때문에 경고사격을 했으나 멈추지 않아 차량을 직접 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당국에 따르면 사망자는 어린이 한 명을 포함해 세 명이라고 합니다.

독일 연방군의 공식 발표가 맞다면 사격을 가한 병사는 교전수칙에 충실했던 것이겠지만 어쨌든 어린이 까지 사살된 것이 사실이라면 여론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 좌파연합의 라퐁텐(Oskar Lafontaine)은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실패이며 즉시 철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ps 1. 새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어린아이가 사살된 게 확인됐다는군요. 첫번째 기사와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독일연방군도 꽤 곤혹스러운 모양입니다.

Deutsche Soldaten töten Jugendlichen

ps 2. 기사가 계속 편집되는군요;;;; 처음 기사는 민간인 사살이 중심이었는데;;;; 정신 없습니다.

2007년 8월 30일 목요일

이탈리아 공군의 지브롤터 폭격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의 주 전장은 “당연히” 지중해 지역이었습니다. 지중해 전역에서 치열한 공중전이 펼쳐진 곳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은 “몰타” 입니다. 몰타는 1943년까지 지중해 지역에서 이탈리아와 독일공군의 주요 공격 목표였지요. 그런데 몰타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공군의 공격 목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지중해의 영국해군 거점 중 하나인 “지브롤터”였습니다.

이탈리아 공군은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지브롤터에 대해 15회의 폭격을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한 두 차례도 아니고 무려 15회에 걸쳐 꾸준한 공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브롤터 같은 중요한 전략 목표에 대한 공격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래의 내용을 보시죠.

지브롤터에 대한 이탈리아 공군의 공격(1940~1943년)

1940년 7월 17/18일 : SM.82 3대 출격 : 민간인 3명 포함 4명 사망
1940년 7월 25/26일 : SM.82 3대 출격 : SM.82 1대 파손(대공포)
1940년 8월 20/21일 : SM.82 2대 출격 : SM.82 1대 격추(대공포)
1941년 6월 6일 : SM.82 2대 출격 : 1대는 이륙 후 다시 귀환, 1대는 지브롤터를 찾지 못하고 돌아옴
1941년 6월 13일 : SM.82 1대 출격 : 스페인의 La Linea 폭격, 스페인 민간인 4명 사망
1941년 7월 11일 : SM.82 1대 출격
1941년 7월 13일 : SM.82 1대 출격
1941년 7월 14일 : SM.82 1대 출격
1942년 4월 1일 : SM.82 3대 출격
1942년 6월 28/29일 : P.108B 5대 출격 : 4대가 지브롤터 도착, 3대는 연료 부족으로 스페인에 불시착
1942년 7월 3일 : P.108B 1대 출격 : 중간에 추락
1942년 9월 24일 : P.108B 2대 출격 : 아무 전과 없음
1942년 10월 20일 : P.108B 4대 출격 : P.108B 1대 비상착륙 중 대파
1942년 10월 21일 : P.108B 3대 출격 : P.108B 1대 비상착륙 중 대파
1943년 6월 19일 : SM.79 9대 출격 : SM.79 5대 엔진고장으로 귀환

Hans Werner Neulen, Am Himmel Europas : Luftstreitkräfte an deutscher Seiter 1939~1945, Universitas Verlag, 1998, s.31

최대 출격 기수는 9대이고 전과는 민간인 7명(이 중 4명은 중립국 민간인)을 포함해 8명 사망에 불과합니다. 손실은 완전손실 2기, 대파 3기로 전과에 비해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탈리아인들에겐 미안하지만 관심을 가져달라 하기가 난감한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후대에 알려지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