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기 못 밝혀 낸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학부형들의 부담은 얼마나 될는지 계산속에 넣지않고 보아도 우리 한국 교육을 겉모양으로만 외국인에게 소개할 때면 별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특히 대학 적령인구가 취학하는 비율을 보면 미국이 38.5%, 영국이 8.4%, 서독이 6.5%인데 우리는 서독 보다 높은 7.0%로 세계에서도 몇째로 가는 높은 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국민 소득면에서는 서독이 1774달러로 세계 제9위인데 반해 한국은 70위라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의무교육의 취학율은 95%, 의무교육에서 중학교의 진학율이 46%, 중학교의 졸업자 62%가 고등학교에, 인문고등학교 졸업생 45%가 대학에 각각 진학한다. 학교제도와 학교인구는 세계에서도 비교적 당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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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일반적으로 대학을 ‘국가안의 국가’라고 한다. 적어도 엘리트를 배출하는 기능을 포함하는 광의의 문화창조를 대학의 기능이라고 본다면 대학은 횡적인 지역사회와의 관련과 종적인 전통과의 관련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은 기형적인 붐을 일으켜, 맹목적인 대학교육에의 동경, 외국유학의 길, 대학설치령의 미비, 병역상의 특전, 대학의 기업화, 무직자의 도피처로서의 대학등등으로 비대해졌다는 것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李俊球, 「來日없는 文敎政策」, 『靑脈』17호(1965. 5), 105~106쪽
필자인 이준구가 지적한 몇몇 문제들은 사실 요즘도 해당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십년 전 부터 계속해서 지적된 문제들이지만 오늘날 까지도 해결을 하기는 커녕 더 악화됐다고 봐야 겠지요. 문제의 심각성은 다들 인지하고 있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좀 난감하기도 합니다. 사실 매 시기마다 한국 사회가 소화할 수 있는/필요로 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대학생이 육성된 것인데 그 원인이 된 높은 교육열은 사회문화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라 뾰족한 수가 없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