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편지들을 잘 선정해서 그런지 재미있는 내용이 많은데 오늘 읽은 것 중에서 하나를 골라 봤습니다.
몰로트슈타인(Молотштейн)*, 잘 지내고 있나?
도데체 거기서 뭘 하고 있길래 아무 소식도 없는겐가? 자네가 있는 곳의 사정은 어떤가? 잘 돌아가고 있나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뭔가 좀 써서 보내주게나.
이곳은 잘 돌아가고 있네.
1) 곡물 징발은 꾸준히 진행중이네. 오늘 우리는 비상시를 대비해 곡물 비축량을 1억2천만 푸드(пуд, 1푸드는 약16.38kg)로 높여잡았네.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하리코프와 같은 공업도시에 대한 배급량을 높였다네.
2) 집단농장 운동도 급속히 고조되고 있네. 물론 농업용 기계와 트랙터가 부족해서 달리 방법이 없다보니 보통 농기구를 긁어모아 사용해야 했는데 파종 면적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네.(어떤 지역은 50퍼센트나 증가했네!) 볼가강 하류 지방에서는 전체 농민 중 60퍼센트가 집단농장에 가입했네.(이미 가입했단 말이지!) 우리 당내의 우파 녀석들은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오려고 하고 있어.
3) 대외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중국 문제를 처리해야 하네. 우리 극동군의 동지들이 중국인들에게 충분한 경고를 주었을 거야. 얼마전에 장쉐량(張學良)이 차이(蔡)와 시마노프스키 동지가 만나서 합의한 사안에 동의하겠다는 전문을 보냈네.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개입에 대해서는 거칠게 대응하지 않고 그냥 거절만 했네. 우리는 이정도만 할 수 있었으니까. 볼셰비키가 뭘 원하는지 그들도 알게 해 줘야지! 중국의 지주들은 우리의 극동군이 가르쳐준 교훈을 잊지 않을 거야. 우리가 내건 조건들이 이행되기 전에는 우리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네. 리트비노프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했던 연설을 한 번 읽어보게. 꽤 괞찮은 연설이었어.
4) 아마 자네도 신문을 통해 이번 인사이동에 대해 알고 있을것 같네. 이번 인사이동에서 새롭게 바뀐 것은 톰스키(Михаил Павлович Томский)를 쿠이비셰프(Валериа́н Влади́мирович Ку́йбышев)의 보좌역으로 임명한 것(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쿠이비셰프는 이 조치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슈바르츠를 석탄협회 회장으로 임명한 걸세.(이 경우에는 더 나은 사람이 없었네)
5) (세명의) 우파들**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네만 별다른 진척을 거두지 못하고 있네. 릐코프(Алексе́й Ива́нович Ры́ков)는 야코블레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우리가 미리 손을 써 놓았지.
그래. 이제 때가 되었네.
1929 년 12월 5일
Lars T. Lih, Oleg V. Naumov, and Oleg V. Khlevniuk(ed.), Stalin's Letters to Molotov 1925-1936(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5), pp.183-184
*스탈린이 몰로토프를 부를때 쓴 애칭 중 하나로 몰로토프가 유태인이란 걸 농담삼아 비꼰 것 입니다.
** 세명의 우파는 편지에 언급된 릐코프와 톰스키, 그리고 부하린(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Буха́рин) 입니다.
이 편지에서 역시 후덜덜한 부분은 농업 집단화의 성과를 자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미 수없이 많은 농민들이 희생되었지만 강철의 대원수는 그런 사실에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오직 성과를 초과 달성한 것과 그의 정적들을 엿먹인 것에만 기뻐하고 있습니다. 타인에게는 눈꼽만큼도 관심없고 오직 자신의 생각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초딩마인드이지요.
그런데 이게 도통 남의 일 같지만 않은게, 높은 자리에 초딩 마인드의 소유자들이 들어앉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일이라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