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말 안해도 다들 잘 아시겠지만 성능이 좋은 신무기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높은데 계신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짱 황인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프랑스의 자아도취 지존 루이 14세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 뿐 아니라 군대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까지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런 간섭은 늘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진 않았는데 프랑스 군대가 수발총으로 무장을 교체하는 것이 다른 국가들 보다 뒤졌던 이유 중 하나가 루이 14세의 간섭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 군대는 9년 전쟁 이전까지도 각 연대의 척탄병 중대만이 완전히 수발총을 장비 했을 뿐 일반 보병의 수발총 장비는 네덜란드 보다도 뒤지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리슐리외 시기인 1640년대에 수발총을 도입한 것을 감안하면 지독하게 보급이 느렸다고 할 수 있다.
루이 14세가 수발총 보급에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때문이었다고 한다. 1680년대 중반 기준으로 프랑스에서는 수발총의 가격이 16리브르, 기존 머스켓은 9리브르였다. 여기에 루이 14세가 수발총의 신뢰도에 의문을 품고 있었던 점도 한 몫 했으며 전쟁상 루부아가 이런 국왕의 성향에 부채질을 했던 모양이다.
무엇 보다 대규모 육군을 유지하는데 인건비만도 장난이 아니게 들어갔기 때문에 비싼 무기를 대량으로 도입하는 것은 사치로 여겨졌다.
그 결과 일반 보병 중대의 수발총 장비율은 극도로 낮았는데 1670년 편제에 따르면 일반 보병 중대는 수발총 사수가 네 명에 불과했고 이들은 척탄병이었다.
그러다가 9년 전쟁에서 수발총을 대량으로 장비한 적들에게 여러 차례 쓴 맛을 본 뒤에야 뒤늦게 수발총 보급을 늘리라는 명령을 내리게 됐다.
흥미롭게도 프랑스의 골치거리인 영국 또한 수발총의 보급이 상대적으로 느렸는데 1690년대 까지도 영국군 보병의 약 40%는 화승식 머스켓을 장비했다고 한다.
꽤 재미있는 것은 루이 14세가 젊은 시절 무기 설계에 관심이 많아 몇 종류의 머스켓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부르봉 왕가의 왕들은 다들 손재주가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