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이상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없어서 소설을 잘 읽지 않고 장르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소설을 많이 읽지 않다 보니 소설을 돈 주고 사는 경우도 매우 드문 편 입니다.
며칠 전 저녁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조금 쌓인 포인트로 어떤 책을 사는게 좋을까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제가 탄 가장 앞의 칸이 텅 비었고 반사적으로 작년에 재미있게 봤던 ‘미드나이트 미트트레인’이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블로그에 미드나이트 미트트레인의 영화판 이야기를 했을 때 이준님이 원작 소설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 일도 있고 해서 번역판이라도 구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다가 그날이 되어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한국어판 피의 책을 샀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적었습니다.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 단편집은 분량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책의 표지 윗 부분에 Book of Blood ‘Best Collection’이라고 인쇄되어 있더군요. 단편 몇 개를 골라서 번역한 것이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중에서 피의 책(The Book of Blood), 미드나잇 미트트레인(The Midnight Meat Train), 피그 블러드 블루스(Pig Blood Blues),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Sex, Death and Starshine), 스케이프고트(Scape Goat)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좋은 번역의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소설의 경우는 재미있게 읽히도록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서 번역도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어판을 읽지 않았으니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만.
미드나이트 미트트레인을 읽으니 영화판과 다른 사소한 점이 몇 가지 있던데 원작의 주인공은 채식주의자가 아니더군요. 영화판에서는 주인공이 살인자를 추적하다가 점차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식성의 변화를 통해 나타냈는데 원작 소설의 주인공은 그냥 평범한(?) 식성의 소유자입니다. 단편 소설을 장편 영화로 각색하면서 늘어난 이야기를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서 세부적인 내용의 변화를 준 셈인데 꽤 훌륭한 각색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이준님이 예전에 설명해 주신 것들이라서 대략적으로 알기는 했지만 직접 읽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단편, 스케이프고트는 스코틀랜드 북부의 헤브리디스 제도(Hebrides) 어딘가의 무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단편이 풍기는 분위기는 클라이브 바커가 제작에 참여한 게임, 언다잉(Undying)의 마지막 부분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한국 작가가 제주도를 배경으로 공포 소설을 쓰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더군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단편들도 있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