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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5일 월요일

깊은밤 갑자기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좀 한가하게 영화를 볼 수 있으려나 해서 영상자료원에 갔습니다. 24일의 프로그램은 "목없는 여살인마"와 "깊은밤 갑자기"였습니다. 둘 다 몇 번 보긴 했는데 깊은밤 갑자기는 TV에서만 봤었지요. 사실 목각인형이 나오는 것 말고는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으니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일단 한마디로 요약하면 매우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다른 분들이 한국 공포영화의 걸작이라고 평가하시는데 전혀 허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긴장감도 잘 살아있고 영화 후반부 폭풍우 몰아치는 밤에 출몰하는 목각인형 장면은 어설픈 특수효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잘 만들었다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80년대 초반 작품이라지만 과연 90년대 중반 이후 부터 쏟아진 한국식 공포영화 중에서 이 작품을 능가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물건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잘 해봐야 여고괴담 정도.)

그리고 이 영화는 후반부에서 공포물로 진행되기 전 까지는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전개가 자연스럽고 긴장감도 잘 조절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남편의 라이터를 계속 켜 보다가 불이 켜지는 장면은 정말 섬뜩하더군요.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면서 미쳐가는 주인공을 연기한 김영애의 연기는 정말 발군입니다. 전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군요.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는가를 약간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래서 더욱 더 긴장감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남편의 불륜 문제를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면 이렇게 멋진 영화가 나오지는 못 했을 것 같습니다.

함께 본 목없는 여살인마는 약간 깨더군요. 같은 80년대 초반의 영화지만 무섭다기 보다는 좀 키치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를 보니 깊은밤 갑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영화인지 잘 알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