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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6일 금요일

굿우드 작전 당시 제503중전차대대 122호 티거2 격파에 관한 잡설

얼마전 Panzersaurs Kez님이 굿우드 작전 당시 격파된 독일 제503중전차대대 122호 티거2에 관한 글을 써 주셨습니다. 유명한 독일 기갑부대 연구자 볼프강 슈나이더의 Tiger in Combat에 소개된 독일과 영국 양측의 주장을 균형있게 소개하면서 분석하는 글 입니다. 자세하게 분석을 해 주셔서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영국쪽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입장이지만 꽤 복잡한 문제라서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Panzersaurs Kez님이 좋은 글을 써 주셨으니 저도 몇가지 이야기를 더 하는게 좋겠습니다.(타이젠과 고어맨의 증언은 Panzersaurs Kez님의 블로그에 있으니 이 글에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영국에서 나온 문헌들은 여전히 존 고어맨(John Gorman)의 주장을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비교적 최신 저작으로 2015년에 나온 Stephen NapierThe Armored Campaign in Normandy, June~August 1944도 존 고어맨의 증언을 신뢰하고 있습니다.1) 다만 고어맨의 증언만 인용할 뿐 참고문헌에 있는 슈나이더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반박하지는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네이피어가 어째서 볼프강 슈나이더의 주장을 기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굿우드 작전에 관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저작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이안 대글리시(Ian Daglish)Operation Goodwood에서는 기본적으로 고어맨의 주장에 힘을 실어 서술하면서 동시에 타이젠의 증언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글리시는 전투 현장에 독일군 대전차포도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타이젠의 증언도 어느정도는 근거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2) 
 
제가 잠정적으로 고어맨의 주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고어맨의 증언이 시기적으로 더 빠르다는 점 외에도 그가 원래 탑승한 셔먼을 잃고 갈아탄 파이어플라이 승무원들이 고어맨이 이날 전투로 전공십자훈장(Military Cross)을 수여받았을때 반박을 하지 않았다는 점 입니다. 고어맨의 전공십자훈장은 아일랜드 근위연대 제2전차대대가 노르망디 전역에서 처음 수여받은 것 입니다. 고어맨의 주장이 허위라면 수훈 심사과정에서 파이어플라이 승무원들이 충분히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영국군 측에서 해당 전차의 잔해를 조사할 기회가 있었으니 영국군은 고어맨의 주장을 검증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영국군의 전과 검증 체계는 독일군과 비슷한 신뢰도를 지닌다고 평가합니다. 미군의 경우는 이들보다 신뢰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보고, 소련군의 검증 체계는 가장 믿을 수 없다고 봅니다.) 
 
503중전차대대사가 영어로 출간되고 볼프강 슈나이더의 연구가 나온 이래 영어권에서도 고어맨의 주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고어맨에 대한 비판 중 주목해야 할 하나는 그가 말년에 한 주장이 약간 달라졌다는 점 입니다. 고어맨은 말년에 회고록을 냈는데 회고록에 실린 해당 전투의 정황은 다음과 같습니다.3) 
 
원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타이거 로얄(티거2)’ 같은 단어는 그대로 옮깁니다. 
 
이제 우리 중대는 상당한 거리를 진격했으며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해 보니 독일군은 이미 혼란상태를 극복한 듯 했다. 이윽고 우리 앞에 제11기갑사단의 전차 여러대가 나타났다. 대부분의 전차가 피격되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승무원들은 불타는 탱크에서 전우들을 구출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참담한 광경이었다. 그들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 이날 아침만 해도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던 궤도식 구급차가 많은 장병의 목숨을 구했다.

제임스 바론(James Baron)에게 최대 속도로 가속하라고 명령했다. 하빈슨(Harbinson) 하사의 전차는 200야드 정도 뒤에 따라오고 있었다. 송전탑을 표지판 삼아 따라가다가 우리 중대의 본대를 발견했다. 우리 중대는 카니(Cagny) 서쪽에서 돈좌되어 있었다. 토니 도먼(Tony Dorman: 중대장)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계속 전진하라고 격하게 손짓을 했다. 이번 작전의 전략은 샐리스버리 평원과 요크셔 고원에서 했던 기동훈련 처럼 신속하게 돌격해 카니의 동쪽으로 우회하는데 성패가 달려있었다. 도먼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해서 밀밭으로 전진했다. 밀밭 끝의 생울타리까지 간 뒤 방향을 전환해 생울타리를 따라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이동했다. 우리의 오른쪽에 또 다른 생울타리가 직각 방향으로 나 있었다. 
이 방향으로 들어서자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졌다. 300야드 전방에 한 대의 타이거 로얄이 있었고 그 뒤에는 타이거 세대가 이를 지원하고 있었다. 타이거 로얄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잠깐 설명하자. 독일은 전차 생산에서 양보다 질을 우선했다. 그들은 미국의 전차 생산량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꺼운 장갑과 포신이 20피트에 달하는 88mm 대공포를 단 전차를 설계했다. 그야말로 전쟁 중에 생산된 것 중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전차라 하겠다. 이런 괴물이 있다는 정보는 우리도 알고 있었다. 바론 상병과 나는 이럴때 어떻게 할 지 의논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만약 타이거 로얄을 마주친다면 해군의 충각 전술을 따라서 그냥 들이받아 버리자고 결정했다. 그는 타이거 로얄의 88mm 포탑이 선회속도가 느리니 셔먼의 속력을 이용해 대응하는게 좋다고 동의했다. 좀 미친것 같지만 75mm 포를 단 셔먼으로 대응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타이거 로얄의 포탑은 우리 쪽에서 90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방향은 제2대대 토니 도먼의 전차가 있던 쪽이었다. 우리 전차는 고폭탄을 장전하고 있었다. 내 사수 앨버트 숄리스(Alber Scholes)와 나는 철갑탄은 아무 효과가 없으니 차라리 고폭탄 쪽이 낫다는데 동의했다. 이건 꽤 괜찮은 판단이었다. 바론 상병이 타이거 로얄을 향해 돌진하는 동안 숄스는 50야드 거리에서 적 전차의 포탑에 고폭탄을 명중시켰다. 이 폭발은 좁은 포탑안의 승무원들에게 충격을 줬고 우리가 돌진하는 순간 적 전차장이 포탑 밖으로 머리를 드러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을 못하고 어리벙벙한 것 같았다. 다른 타이거 세대의 지원을 받고 있던 타이거 로얄의 전차장은 강력한 장갑의 보호를 받으며 우수한 88mm포로 아군 전차들을 공격하려 하던 중 근거리에 나타난 우리 전차를 쏘기 위해 포탑을 느리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우리 전차는 적 전차의 좌측 후방을 들이받았다. 독일 전차병들은 전차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다른 타이거 3대가 우리 전차를 조준하고 있었다나는 탈출하라고 명령했다. 독일군과 우리는 두대의 전차 사이의 좁은 공간에 갇혔다. 
이때 하빈슨 하사의 전차가 생울타리 귀퉁이에서 나타나 용감하게도 타이거 3대를 상대로 전투를 개시했다. 바론 상병이 외쳤다. “어서 피하십시오!” 나는 승무원들을 데리고 생울타리 쪽으로 도망쳤다. 우리는 무성하게 자란 밀밭으로 모망쳐 일단 숨었다. 하빈슨 하사의 전차는 근거리에서 타이거 전차의 명중탄을 맞았다. 우리는 승무원 다섯명이 모두 전사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의논하고 있는데 불쑥 한 사람이 은신처로 뛰어들었다. 전방 기관총 사수 애그뉴 일병이었다. 내가 탈출 명령을 내렸을때 애그뉴 일병은 해치를 열고 나오다가 적 전차의 사격을 받아 다시 전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는 포탑쪽의 해치를 열고 나오다가 몇 사람이 오른쪽 방향의 생울타리로 도망치는걸 언뜻 보았다. 그래서 그리로 따라가 그들이 숨어있던 도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타이거 전차의 승무원들이 아니던가. 애그뉴 일병은 독일군들에게 경례를 한 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줄행랑 쳤다. 운이 좋아 우리와 합류할 수 있었다.

서부전선에서 마주친 단 한대의 타이거 로얄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지만 승리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뭔가를 하다가 만 느낌이었다. 나는 승무원들에게 숨어서 기다리라고 명령한 뒤 밀밭을 가로질러 400야드 쯤 떨어진 아래쪽의 숲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한대의 파이어플라이를 발견했는데 승무원들이 버린 것 처럼 보였다. 포탑 위로 올라가 안을 들여다 보니 머리가 날아간 워크맨(Workman) 하사의 시체가 포미 위로 쓰러져 있었다. 사수와 장전수는 충격을 받아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내가 전차를 발견하기 전에 타이거 로얄에 명중탄을 맞아 워크맨의 머리가 날아간게 분명했다.

나는 승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워크맨 하사의 시체를 치운 뒤 조준경과 페리스코프를 닦았다. 조종수에게 타이거 로얄을 발견했던 밀밭 끄트머리의 생울타리 쪽의 좁은 길로 전진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그는 지체없이 전진했다. 그때는 다행히도 타이거의 포탑이 우리를 겨냥하고 있지 않았다. 생울타리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속도를 줄였다. 세대의 타이거가 아까 봤던 위치에 있었다. 타이거 로얄과 내가 원래 탔던 발리라게(Ballyraggett)’는 충돌한 채로 멈춰 있었다. 첫번째 목표는 타이거 로얄이었다. 초탄은 너무 높이 날아갔다. 포수가 떨고 있었다. 두 번째 탄이 타이거 로얄을 맞췄다. 그 다음에는 발리라게를 쏴서 적이 회수하거나 조종하지 못하게 했다. 다른 세대의 타이거가 내가 탄 파이어플라이쪽으로 포탑을 돌리고 있어서 생울타리를 따라 100피트 정도 이동한 뒤 다시 적 전차가 보이는 위치로 이동했다. 이때 적 전차의 포탑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네 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이 중 두발이 명중했다. 타이거 한대가 다시 우리쪽으로 포탑을 돌렸다. 사격 위치를 바꾸기 위해 길 쪽으로 후퇴했다.

불타는 셔먼 전차쪽으로 다가가자 구덩이에서 불 붙은 허수아비 처럼 보이는 세개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하빈슨 하사와 그의 사수, 장전수였다. 우리는 이들을 셔먼의 엔진 데크 위에 태우고 전속력으로 밀밭을 가로질러 후퇴했다. 연대 구호소를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군의관 립만(Ripman) 박사의 의료진이 있었다. 하빈슨과 다른 두명의 승무원은 치료를 받았다. 이날 밤 하빈슨 하사는 성형외과 전문의 매킨도(McIndoe)씨가 있는 링필드의 화상전문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하빈슨 하사는 그후 2주 정도 더 생존했으며 그의 어머니와 누나에게 말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신의 50%에 심한 화상을 입어서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셔먼 전차는 워낙 불에 잘 타다 보니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토미 쿠커라는 스토브로 요리를 하곤 했는데 독일군은 이걸 가지고 섬뜩한 농담을 했다. 셔먼 전차에 토미 쿠커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다.”  
 
고어맨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는 쪽에서는 고어맨이 말년에 한 증언이 초기의 증언과 조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미심쩍게 생각합니다. 고어맨의 회고록이 좀 부정확한 점도 비판을 받습니다. 그는 노년에 노르망디 전역 당시 제503중전차대대 3중대에서 소대장으로 있었던 로젠(Richard Freiherr von Rosen)을 만나 이때의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어맨의 회고록에는 부대명 부터 틀려있습니다. 503중전차대대를 제204중전차대대라고 쓰고 있는 것이죠.4) 노년에 기억력이 감퇴해서 이런 착오가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고어맨의 증언에 의문을 표하는 측에서는 이런 오류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물론 타이젠도 자신이 탔던 전차의 차량번호를 잘못 기억하는 등의 오류가 있습니다.5) 두 사람의 증언을 검증할 수 있는 자료가 좀 더 있으면 결론을 보다 확실히 내릴 수 있겠죠. 
 
대립하는 두가지의 주장이 있는데 고어맨 쪽은 최소 두대의 전차에 탄 승무원들이 증언을 해 주었고 훈장 수여 심사에서도 이것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유리합니다. 반면 타이젠의 증언도 논리적이고 무엇보다 독일군의 대전차포 배치현황 등 그의 증언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도 있습니다. 일단 저는 약간 유보적인 입장에서 고어맨의 주장을 지지하는 쪽인데 122호 전차의 피격 상태를 자세히 분석한 보고서만 하나 있어도 이렇게 헷갈리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1) Stephen Napier, The Armored Campaign in Normandy, June~August 1944, (Casemate, 2015), p.221.
2) Ian Daglish, Operation Goodwood(Pen and Sword, 2004), pp.163~166.
3) John Gorman, The Times of My Life(Pen and Sword, 2003), pp.38~40.
4) John Gorman, Ibid., p.51.
5) Franz-Wilhelm Lochmann(Hrsg.), Erinnerung an die Tiger-Abteilung 503 - Die schwere Panzerabteilung 503 an den Brennpunkten der Front in Ost und West(Verlaghaus Würzburg - Flechsig). p.426.
 
 

2016년 9월 16일 금요일

스티븐 잘로가의 2차대전 기갑전 저작에 관한 잡담

아마 스티븐 잘로가는 기갑전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저술가일 것 입니다. 기갑전에 대한 저술을 오랫동안 해 왔고 다루는 범위도 매우 광범위합니다. 최근 몇년간은 제2차대전 시기 유럽전선의 기갑전에 대한 저작을  집중적으로 간행하면서 ‘독일 기갑부대의 신화’를 깨트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로가의 주장은 큰 틀에서 매우 합리적입니다. 그는 기갑전에서 개별 전차의 성능 문제를 무시할 수 는 없으나 타 병과와의 협동, 전차 승무원의 숙련도 같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잘로가가 제시하는 대전제는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는 꽤 많은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미군 기갑부대의 작전을 설명하는데 있어 그렇습니다.


먼저 사료의 활용이 부적절합니다. 잘로가가 자주 사용하는 자료 중 하나는 ‘Ballistic Research Laboratories Memorandum Report 798’입니다. 잘로가는 Panther vs Sherman (Duel)의 결론 부분에서 이 자료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미육군의 탄도학연구소는 전차전에서 승리하는데 어떤 요소가 중요한지 파악하기 위해서 전차전에 대한 작전연구를 수행했다. 전쟁 중에는 어느 진영도 통계자료를 규칙적으로 취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탄도학연구소의 분석팀은 미 3기갑사단과 4기갑사단의 기록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이 두 기갑사단은 미군의 다른 기갑사단들과 비교했을때 평균, 혹은 그 이상의 전차전을 경험했다. 총 98건의 교전을 골라내 계량화 했으며 시기는 1944년 8월 부터 12월 말 까지였다. 이 중 33건이 아르덴느 전투 시기의 교전이었다.”1)


이 서술만 보면 98건 모두가 전차 대 전차의 교전을 분석한 것이라는 인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98건에는 전차 대 대전차포, 전차 대 보병 교전까지 포함되어 있어 순수한 전차전에 해당하는 사례는 훨씬 적습니다. 게다가 잘로가가 비판하고 싶어하는 셔먼 대 판터의 교전 결과로 한정하면 그 사례는 더 줄어들고 그것도 대부분 로렌 전역 시기의 사례로 한정됩니다. BRL798에 실려있는 아르덴느 전투 시기 셔먼 대 판터의 교전 사례는 제3기갑사단이 9건, 제4기갑사단이 6건에 불과합니다.


잘로가는 이 부족한 사례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냅니다.


“셔먼과 판터가 격돌한 29건의 전투를 보면 평균적으로 셔먼이 판터보다 1.2배 많았다. 이 자료를 보면 판터는 방어 전투시 셔먼에 비해 1.1배 효율적이었으나, 셔먼이 방어 전투시에는 판터에 비해 8.4배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셔먼은 전체적으로 판터에 비해 3.6배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 전쟁 기간 중 있었던 전형적인 셔먼 대 판터의 교전 양상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며, 그 원인은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셔먼과 판터의 교환비율이 5대 1이라는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소문은 역사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전차전의 결과는 기술적인 측면 보다는 전술적인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기술적으로 우수하더라도 전술적인 상황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경험이 풍부한 전차장이 적을 먼저 발견할 가능성이 높았고, 훈련이 잘 된 승무원들이 잘 협력해서 선제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높았고, 우수한 사수가 먼저 적을 명중 시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전차전에서는 전차병의 훈련 수준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우수한 승무원이 우수한 전차를 타고 전진해올 때 그저 그런 수준의 승무원이 그저 그런 수준의 전차에 타고 매복을 하고 있었다면 매복을 하고 있는 쪽이 우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2)


여기서 잘로가가 말한 29건 중 다수는 벌지 전투 이전, 특히 로렌 전역의 제4기갑사단의 교전 사례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BRL798에서 벌지전투 당시 제3기갑사단의 셔먼과 판터의 교전 결과만 놓고 분석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순수하게 셔먼과 판터가 교전한 전투에서는 판터 1대가 격파될 때 셔먼 13대가 격파되는 결과가 나옵니다.(셔먼 총 13대 파괴, 판터 총 1대 파괴). 제 3기갑사단의 교전결과에 M5까지 포함했을 때는 좀 낫습니다. 판터 1대가 격파될 때 미국 전차 11.3대가 격파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미국 전차 총 34대 파괴, 판터 3대 파괴) 그리고 구축전차까지 포함하면 판터 1대가 격파될 때 미국 기갑차량 7대가 격파되는 걸로 나옵니다.(미국 기갑차량 총 35대 파괴, 판터 5대 파괴) 이것이 교차검증은 전혀 거치지 않은, 미군 기록에만 의존한 결과임을 고려한다면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잘로가가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려고 노력하는 로렌 전역당시 4기갑사단의 경우, 전투 보고서가 심각하게 전과를 과장하고 있으며 이 점은 잘로가의 다른 저작인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3) 그러니 전투보고서들을 교차검증 없이 그대로 인용한 BRL798의 결론도 좀 회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잘로가는 같은 해에 나온 Armored Thunderbolt: The U.S. Army Sherman in World War II에서도 동일한 자료를 동일한 방식으로 인용해 동일한 주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4)


잘로가는 이상할 정도로 로렌 전역에 집착하고 있는데 얼마전에는 로렌 전역을 다룬 단행본을 한권 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그프리트 방어선 전역에서 있었던 기갑전들은 소규모 전투에 불과하다며 언급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미군이 고전한 사례로 꼽히는 푸펜도르프 전투 같은 것은 잘로가의 저작에서 거의 언급이 안된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참고로, 푸펜도르프 전투는 미육군의 제2차세계대전 공간사에서 퍼싱 전차의 개발사를 서술하기 전에 미군과 독일군의 기갑 장비의 성능 격차를 논하면서  중요하게 언급하는 전투입니다.5)  


※ BRL798의 로렌전역 데이터 분석에 관해서는 "미 제4기갑사단이 아라쿠르 전투에서 거둔 전과에 대한 잡설"에서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물론 잘로가는 BRL798에 있는 사례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로가의 다른 저작들을 보면 그가 의도적으로 미군에게 유리한 사례만을 뽑아내려고 한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그는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에서 벌지 전투 당시의 기갑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2주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아르덴느에 투입된 독일 전차연대들은 완전히 격파됐다. 최강의 부대였던 8개의 판터 대대들은 전투가 시작될 당시 415대의 판터를 가지고 있었으나 전투가 끝날 무렵에는 가동 가능한 숫자가 105대로 줄어들었다. 전체 손실 중 180대는 완전 손실이었고 나머지는 파손, 혹은 기계적 고장에 의한 손실이었다. 이 전투에서도 또다시 판터의 기계적 신뢰성 문제가 드러났는데 특히 최종 구동축이 심각했다. 부하가 많이 걸리는 판터의 변속기는 경험이 많은 조종수나 다룰수 있었지만, 아르덴느 전투에 투입된 신참 승무원들은 새로 생산된 전차를 늦게 수령했거나 훈련에 필요한 연료를 조달하기 힘들어서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없었다. 독일측 기록에 따르면 아르덴느 공세 당시 상실한 전차의 절반 이상은 기계 고장으로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아르덴느 전투에서 독일군 보다 더 많은 전차를 잃었지만 그 이유는 단지 미군이 더 많은 전차를 보유했기 때문이었다.(U.S. tank losses in the Ardennes were numerically greater than German losses simply because the U.S. Army had so many more tanks.) 아르덴느 전투의 대부분을 담당한 미 제1군은 12월 말 까지 약 320대의 셔먼을 잃었고 그 중 90대는 M4A1/ A3(76mm)였다. 이 손실은 미 제1군의 12월 중 일일 평균 전차보유대수의 1/4에 해당하는 것 이었다. 미 제1군은 지속적으로 장비를 보충받아서 1944년 12월 말에는 1,085대의 셔먼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980대가 가동가능한 상태였고 기계적 불량이나 전투 중 손상으로 수리 중인 것은 9퍼센트에 불과했다.”6)


전차가 많아서 미군의 손실이 더 많았다는 서술은 읽는 이를 벙찌게 만듭니다. 태평양 전선의 미군이 일본군 보다 더 많은 비행기를 보유했다고 더 많은 비행기를 잃은 건 아니잖습니까. 벌지전투 기갑전에 대한 잘로가의 서술은 꽤 일관적인데 미군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온 전투는 일절 언급을 회피한다는 점 입니다. 잘로가는 벌지 전투 초기에 투입된 미 1군 예하 기갑사단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점은 언급을 하지 않고 다만 “아르덴느 공세 초기에는 전차전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서술로 대충 넘어갑니다.7) 비슷한 서술은 노르트빈트 작전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나타납니다. 노르트빈트 작전에서도 미 12기갑사단이 큰 손실을 입고 많은 전차를 노획당했지만 잘로가는 그런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작전에 투입된 독일군의 손실이 컸다는 점만 언급하고 있을 뿐 입니다.8)


그리고 자료의 취사선택 만큼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논쟁이 될 만한 부분에서 근거를 밝히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경향입니다. 잘로가는 독일 군수산업계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면서 티거의 생산 가격에 대해서 이런 주장을 합니다.


“독일의 전차 생산 가격을 추산하는데 있어 또 한가지 문제점은 1943년의 ‘아돌프 히틀러 전차 생산계획’의 성과가 정치적으로 활용됐으며, 알베르트 슈페어의 군수생산부가 판터와 같은 신형 전차가 비용적으로 크게 효율적이라는 점을 선전하고, 전차 생산에 필요한 자본 투자의 규모를 감추거나 조작하려 했기 때문이다. 독일군에게 납품된 티거 I 한대의 가격은 300,000 마르크였으나 일본에 판매된 티거 I은 645,000천 마르크였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것이 기반 시설에 투자한 비용까지 반영한 실제 비용에 가까울 것이다.(It’s worth noting that the price for a Tiger I tank for the German army was about 300,000 RM, but the example sold to Japan was priced at 645,000 RM, an amount more likely to reflect the actual cost including industrial infrastructure investment.)9)


티거의 실제 가격이 알려진 것 보다 두 배는 축소됐다는 굉장한 주장인데 근거는 없습니다. 일본에 판매된 티거의 가격이 645,000마르크였던 이유는 전차 외에 각종 소모품, 설계 도면, 운송 비용 등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토마스 젠츠 같은 연구자들이 이미 언급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로가는 특별히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과격한 주장을 합니다. 잘로가의 저작들을 보다 보면 이렇게 주장의 근거가 필요한 부분에서 이렇다 할 출처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를 간혹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잘로가는 독일군의 전차 손실 기록은 완전 손실만 기록하고 격파되어 본국으로 수송되는 차량 등을 집계에서 누락하고 있어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반복합니다.10)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실제 완전 손실은 어느 정도 이고 완파되어 본국으로 수송된 전차는 어느 정도 인지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로가는 몇가지 정황 증거는 제시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측 기록의 문제점은 비판하지만 미군 기록의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계속되는 한 잘로가의 저작은 앞으로도 의구심을 가지고 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주석
1) Steven J. Zaloga, Panther vs Sherman (Duel), (2008, Osprey Publishing. Kindle Edition) Kindle Locations 1067-1071.
2) Panther vs Sherman (Duel), Kindle Locations 1086-1095.
3) 1944년 9월 독일군이 로렌 전역에서 상실한 기갑차량은 총 341대이며, 미국측은 같은기간 총 1,214대의 독일 기갑차량을 격파한 것으로 집계했다고 합니다. 미국이 주장한 독일 기갑차량 격파대수는 독일군이 공세 시작전 보유한 기갑차량의 2배에 달합니다.  Steven J. Zaloga,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2015, Stackpole Books. Kindle Edition)
4) Steven J. Zaloga, Armored Thunderbolt: The U.S. Army Sherman in World War II, (2008, Stackpole Books), p.231.
5) Lida Mayo, The Ordnance Department : On Beachhead and Battlefront, (1991, USGPO), pp.325~326; 참고로 David E. Johnson, Fast Tanks and Heavy Bombers: Innovation in the U.S. Army, (1998, Cornell University Press), p.195에서는 푸펜도르프 전투에서 미 2기갑사단이 57대의 전차를 상실한 반면 전차전에서 독일군의 손실은 판터 2대, 티거 II 2대에 불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독일쪽 기록과는 조금 차이를 보이는데 독일측 기록에 따르면 전차전에서 격파된 티거 II는 1대이고 세대가 미군의 중곡사포 포격에 격파됐다고 합니다. 판터 손실은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겠습니다.
6)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3841-3851.
7)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3807-3811. Armored Thunderbolt: The U.S. Army Sherman in World War II에서는 그나마 좀 더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만 미군 기갑사단들의 고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8)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3852-3858.
9)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651-655.
10)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Kindle Locations 3572-3577.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1944년 6월 6일 부터 8월 31일까지 독일 전차의 손실 원인에 대한 분석

이 보고서는 2차대전 당시 영국육군의 제2작전연구과No.2 ORS, Operation Research Section에서 작성한 보고서,  Report No.17 Analysis of German Tank Casualties in France 6 June to 31 August 1944를 번역한 것 입니다. 영국육군 제2작전연구과가 작성한 보고서들은 미국의 작전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예전에 소개했었던 미육군 작전연구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에서는 영국측의 조사가 미군보다 정확하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미육군의 몇몇 작전연구들은 보고서나 증언을 제대로 된 교차검증 없이 집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 보고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얻기 위해 아군의 증언에 대해 엄밀한 교차검증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들은 구더슨Ian Gooderson이 1944년 노르망디 전역에서 연합군 공군력이 기갑전력을 직접 타격하는데 큰 성과가 없었다는 연구를 하면서 주사료로 삼은 덕분에 크게 유명해졌습니다. 그 이야기는 과거 페리스코프에서 채승병님이 소개해서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지요.(페리스코프가 잠정 휴면이라 아쉽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이 보고서를 포함한 제2작전연구과의 서부전역 연구 보고서들은 쉽게 구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다운로드 링크로 연결됩니다.




다만 원문을 스캔한 것은 약간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있어서 저는 Terry Coppy가 편집하여 출판본으로 정리한 Montgomery’s Scientists: Operational Research in Northwest Europe: The Work of No.2 Operational Research Section with 21 Army Group June 1944 to July 1945, (Laurier Centre for Military Strategic and Disarmament Studies, 2000), 399~406쪽의 것을 번역본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예전에 올렸던 다음의 글들도 한번 참고하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


1944년 6월 6일 부터 8월 31일까지 독일 전차의 손실 원인에 대한 분석


머릿말


1. 조사 시기는 크게 두 개의 단계, 즉 1944년 6월 6일 부터 8월 7일까지의 교착단계, 1944년 8월 8일 부터 8월 31일까지의 돌파, 전과확대 및 추격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의 조사 범위는 카랑탕Carentan을 지나는 좌표86이남의 미군 작전지역을 제외한 영국군과 미군의 전체 작전지역을 포함했다. 두 번째 단계의 조사 범위는 팔레즈 포위망에서 세느강에 이르는 영국군 작전지역 만을 포함했다.


이 보고서에 사용한 데이터는 여러 조사팀으로 부터 획득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제2작전연구과와 제20야전병기기술부No.20 WTSFF  Weapons  Technical Staff, Field Force에서 수집한 것 들이다.


수집한 데이터


교착단계(1944년 6월 6일~1944년 8월 7일)


2. 독일군의 전차 손실 샘플은 오직 아군의 수중에 떨어진 차량만 조사 가능했으며 독일군이 회수한 차량의 경우는 확인할 수 없었다. 조사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3호전차는 단 한대도 조사하지 못했고 4호전차도 소수만 조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5호전차와 6호전차의 경우 잔해를 확보하는대로 모두 한명, 혹은 그 이상의 조사원들을 투입해 조사할 수 있었다.


3. 표1은 조사한 모든 차량을 해당되는 손실 원인과 함께 정리한 것이다.


표1. 1944년 6월 6일 부터 8월 7일까지 독일군이 상실한 전차
손실 원인
파괴된 전차(대)
총계(대)
비율(%)
6호전차
5호전차
4호전차
철갑탄
7
36
10
531)
48
성형작약탄

7
1
8
7
야포의 고폭탄

72)
2
9
8
지뢰


1
1
1
항공기 로켓탄

6
1
7
6
항공기 기총

2
1
3
3
폭 탄





자 폭

6
1
7
6
유 기

3
1
4
4
원인불명
1
133)
2
18
17
총 계
8
82
20
110
100
1)이중 일부는 포탄을 맞기 전에 이미 유기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다.
2)이중 네 대는 5.5인치 포의 일제사격에 격파되었다.
3)이중 다섯 대는 철갑탄과 성형작약탄에 의해 관통된 흔적이 있지만 실제 파괴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4. 여기에 제시된 표본이 완전한 상황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독일 전차가 격파된 원인 중에서는 철갑탄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9-23항에서는 철갑탄에 의해 격파된 전차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두번째 단계(1944년 8월 8일~8월 31일)


5. 두번째 단계에서 수집된 격파된 전차의 표본은 이 시기에 격파된 독일 전차의 손실을 거의 대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이 시기 독일군은 손상을 입은 전차를 거의 회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집된 표본은 총 손실의 절반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여기서는 3호전차와 4호전차가 발견되는 대로 모두 분석했다.


표2. 1944년 8월 8일 부터 8월 31일까지 독일군이 상실한 전차
손실 원인
파괴된 전차(대)
총계(대)
비율(%)
6호전차
5호전차
4호전차
3호전차
철갑탄
1
11
11

24
48
성형작약탄

1


1
0.4
야포의 고폭탄

1
3

4
2
지뢰






항공기 로켓탄

2
5

7
3
항공기 기총

1


1
0.4
폭 탄


2

2
1
자 폭
20
44
41
3
108
48
유 기
6
30
27

63
28
원인불명

6
7

13
6
총 계
28
96
96
3
223
100


6. 프랑스 전역 후반부(1944년 8월 8일~8월 31일)에는 독일전차의 주된 손실 원인이 독일측에 의한 자폭이나 유기였다. 이 문제는 ORS보고서 2호, “노르망디에서 세느강 까지 후퇴하는 과정에서 적이 상실한 차량 및 장비(Enemy Casualties in Vehicles and Equipment during the Retreat from Normandy to the Seine)”에서 다루고 있다.


각 단계별 대전차 병기의 효과 대한 비교평가


7. 각 단계에서 적 전차를 격파한 다양한 종류의 대전차 병기의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서 적이 방기하거나 자폭시킨 차량은 제외했으며 그에 따른 비율은 표3과 같다.


표3.
적 전차의 손실 원인
각 단계별 파괴된 적 전차의 비율
1단계(1944.6.7~8.7)
2단계(1944.8.8~8.31)
철갑탄
65%
63%
성형작약탄
10%
2%
야포 고폭탄
11%
10%
지뢰
1%

항공기 로켓탄
9%
18%
항공기 기관포
4%
2%
폭탄

5%
격파된 적 전차 총계
81대
39대


8. 모든 단계에서 적 전차를 가장 많이 격파한 수단은 철갑탄임을 알 수 있다. 신무기인 항공기 로켓탄으로 격파한 전차도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철갑탄에 의한 격파에 대한 분석


9. 아군이 격파된 적 전차를 표적으로 철갑탄 사격 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철갑탄에 맞은 전차에 대한 분석은 해당 전차를 격파한 포 반원, 또는 전차 승무원들의 증언이 가능한 경우로 한정했다. 증언과 다른 증거가 일치할 경우에만 철갑탄에 의한 격파로 인정했다. 이 기준을 적용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차 차종
명중한 포탄
4호전차
5
5호전차
22
6호전차
5


10. 표본은 모두 아군의 수중에 떨어진 전차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결과를 보면 적이 특정한 차종을 더 많이 회수하는 경향이 있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 적이 특정한 차종을 더 많이 회수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견인이나 수리의 용이함 때문인지, 아니면 두가지 다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론적인 추론 만으로는 이러한 경향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11. 각 탄종별 명중, 관통 여부, 관통 실패 여부는 다음의 표와 같다.


표4.
포탄의 종류
관통성공
관통실패
총  계
관통률
17파운드 APCBC
21
4
25
84%
M10의 3인치 철갑탄
171)
5
22
77%
75mm 철갑탄
5
8
13
38%
6파운드 DS
9
4
13
69%
6파운드 APCBC
9
1
10
90%
1)여기에는 4호전차를 상대로 한 5회의 교전결과가 포함되어 있다. 다른 포들 결과는 6호전차와 5호전차만을 상대로 한 것이다.


표4에 대한 설명
12.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무작위로 추출한 표본이 너무 적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통계 자료를 더 확보하기 전에는 표4로 부터 어떠한 결론도 이끌어 낼 수 없다.


13(a). 철갑탄의 관통 여부를 차종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표5
차종
관통성공
관통실패
총계
관통비율
6호전차
13
8
21
62%
5호전차
42
14
56
75%
4호전차
6

6
100%
총계
61
22
83
73%
아군 M4 셔먼



95%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의 관통비율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13(b). 차종별로 격파에 필요한 명중탄 숫자는 평균적으로 다음과 같다.


표6.
차종
격파에 필요한 명중탄 평균
격파에 필요한 관통탄 평균
6호전차
4.2
2.6
5호전차
2.55
1.9
4호전차
1.2
1.2
아군 M4 셔먼
1.63
1.55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표5와 6에 대한 설명
14(a). 이 표를 보면 6호전차와 5호전차는 4호전차나 아군의 셔먼에 비해 더 많은 명중탄을 견뎌낼 수 있는 특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6호전차와 5호전차의 진짜 장점은 관통을 당하더라도 내부에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는 다는 점이다. 전차의 내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상의 전차 내부구조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영국 본토에서 통제된 환경하에 실험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14(b). 전차를 격파하는데 어느 정도의 명중탄, 또는 관통탄이 필요한지 평가하는 것, 그리고  전차가 격파된 이후에 아군 전차포 사수나 대전차포 사수가 발사한 포탄이 몇발이었는지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표6은 오독될 가능성이 있다. 표6은 대략적인 지표로 보아야 할 것이다.


15. 전차 한대를 격파하는데 소요된 명중탄의 숫자는 다음과 같다.


표7.
전차를 격파하는데 소요된 명중탄
격파된 전차 대수
6호전차
5호전차
4호전차
M4 셔먼
1발

7
4
25
2발
2
6
1
11
3발
1
4

2
4발

2

1
5발

2


6발
1



7발

1


8발
1


1
총계
5
22
5
40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표7에 대한 설명
16. 판터가 셔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은 표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단 한발에 쉽게 격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7. 철갑탄에 격파된 뒤 화재가 발생한 전차에 대한 통계는 다음과 같다.


표8.
차종
화재발생
화재 미발생
화재가 발생한 전차의 비율
6호전차
4
1
80%
5호전차
14
8
63%
4호전차
4
1
80%
M4 셔먼
33
7
82%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표9.
차종
화재가 발생한 전차의 평균 명중탄
화재가 발생한 전차의 평균 관통탄
6호전차
5.25
3.25
5호전차
4.0
3.24
4호전차
1.5
1.5
M4 셔먼
1.97
1.891)
1)여기에 인용된 아군 M4 셔먼에 대한 통계는 1944년 8월 15일자 ORS보고서 2호 “1944년 6월 6일 부터 7월 10일까지의 셔먼 손실에 대한 분석(Analysis of Sherman Tank Casualties in Normandy, 6th June-10th July 44)”에서 인용한 것이다.


표8과 9에 대한 설명
18(a). 표8을 보면 판터(5호전차)의 경우 셔먼에 비해 화재가 발생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영국군과 독일군 사수의 사격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나타났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18(b). 표9에서 보여주는 경향을 볼때 전차의 화재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표에 나타난 것 처럼 분석 대상이 된 전차들은 차종별로 관통탄이 발생했을때 화재가 발생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으며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경향은 전차의 종류와 전차를 격파한 포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이며 전장에서 획득한 잔해를 분석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설명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연구조사가 필요하다.


19. 적 전차에 대한 철갑탄 관통에 대한 통계는 다음과 같다. 오직 5호전차의 경우만 충분한 분석에 필요한 표본을 획득할 수 있었다.


표10.
5호전차
차체상부
포방패/포탑정면
포탑측면
차체측면
포탑후부
차체후부
총계
관통성공
17파운드

1
4
9
1
3
28
3인치(M10)


1
5

1
7
75mm


1
4


5
6파운드 DS

1
1
3

1
6
6파운드 APCBC
11)

3
2


6
총계
1
2
10
23
1
5
42
관통실패
17파운드
2

1



3
3인치(M10)
1
1
1



3
75mm
1

1
1


3
6파운드 DS
3
1




4
6파운드 APCBC


1



1
총계
7
2
4
1


14
명중탄 총계
8
4
14
24
1
5
56
명중시 관통율
12.5%
50%
71.5%
96%
100%
100%

1)차체 기관총 마운트로 관통


표10에 대한 설명.
20(a). 아군의 철갑탄이 5호전차의 정면 경사장갑에 거의 효과가 없다는 점은 심각하다. 5호전차의 정면 장갑은 현대 전차에 있어 충분하며 그 성능과 장점은 장차 전차 설계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20(b). 5호전차 정면장갑의 상대적으로 강력한 방어력은 오직 아군의 수중에 들어온 제한된 숫자의 잔해만을 분석해서 확인한 것이다. 정면에만 명중탄을 맞은 5호전차는 대부분 전장을 이탈할 수 있었으며, 한편으로 많은 경우 판터와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는 사격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판터의 우수함은 표10에 나타난 것 이상이다.
20(c).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판터의 차체 측면 장갑은 매우 약하다. 이 사실은 현재 아군의 포 사수들에게 가능한 판터의 측면을 쏘라고 교육하는 것이 유효함을 보여준다.


21. 5호전차에 대한 철갑탄의 관통성공 및 실패 통계를 다른 방식으로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표11.

포탄의 숫자
5호전차의
전면
측면
후면
명중탄
12
38
6
관통탄
3
33
6
관통탄 비율
25%
87%
100%


표11에 대한 설명.
22(a). 이 통계를 보면 사수가 판터의 측면이나 후면에 사격을 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설사 정면에서 공격이 가능하더라도 사격해서 안된다고 교육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22(b). 이 통계만으로는 사수나 전차장이 정면 대신 측면을 공격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답은 다양한 조건 하에서 판터에 대한 명중 및 관통 비율을 감안해야 얻을 수 있는데 이 표에서는 그러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독일측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포병 부대에 아군 전차를 상대로 한 모든 교전 결과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여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하려 한다는 증거가 있다.


관통각


23. 다음의 표는 최대한 정확하게 측정한 장갑판의 각도에 따른 관통 비율을 보여준다.


표12.
관통한 장갑의 평균 각도
독일전차
M4 셔먼
관통횟수
관통율
관통횟수
관통율
0-5˚
20
53%
32
52%
5-30˚
15
39%
13
37%
30-90˚
3
8%
7
11%
총 계
38
100%
52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