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에 예정된 일이 일찍 끝나서 오후시간이 비게 됐습니다.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한겨레 신문사가 주최한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라는 학술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주최측의 이름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이 토론회는 '진보진영'이 어떻게 하면 박정희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가 주된 화두였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를 통틀어 박정희 신화를 잠재우는 것은 완전히 실패했고 오히려 그 신화 덕분에 이명박 같은 3류 짝퉁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재앙까지 겪고 있으니 '진보진영'이 박정희의 유산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있었던 토론회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토론회 자체를 급히 준비한 것인지 발표자들, 특히 정치분야 발표자들이 발표 당일까지도 발표문을 완성하지 못해 발표장에서 별도로 출력해 제공했다는 점 입니다. 특히 1부의 마지막 발표를 맡은 박명림 교수의 경우는 발표문이 부족하게 복사되어 발표문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한 책자로 배부된 발표문도 오탈자가 더러 있었는데 역시나 토론회를 급히 준비하느라 책자를 교정할 시간도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분야의 발표는 그런 대로 나쁘지 않았지만 정치분야의 발표는 신통치 않은 글이 있었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주최측(한국경제정책연구회, 한겨레신문사)이나 후원측(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의 성격상 박정희 정권기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이런 점은 사회자들의 발언에서 잘 드러났는데 특히 함세웅 신부의 발언은 지나치게 종교적이고 흑백논리로 점철되어 박정희를 좋아하지 않는 입장임에도 듣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저는 박정희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박정희=절대악'이라는 공식은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반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박정희와 그 유산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선악의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박정희를 극복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이런 단순한 논리는 반한나라당 진영을 결속시키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회색지대에 있는 다수의 대중을 끌어들이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말이지요. 현재와 같은 방식의 박정희에 대한 공격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영향력을 넓혀갈 경우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두겠지만 단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박근혜가 꼽히고 있는 만큼 반한나라당 진영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겠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이런식의 단순한 공격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60~70년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지는 만큼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 바뀔 것이고 그를 둘러싼 신화도 상당부분 불식될 것 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박정희가 남긴 유산, 특히 박근혜에게 계승된 정치적 자산이 단시일내에 쉽게 허물어질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반한나라당 진영은 박정희 때리기를 부차적인 일로 미뤄두고 중간지대를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박정희 문제가 4대강 사업과 같이 현실의 시급한 문제들을 덮어버리는 것은 별로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물론, 박정희 문제가 아주 먹음직스러운 떡밥이라는점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