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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7일 목요일

기갑총감부 보고서 "노르망디 전선에서의 대전차전 경험"

독일육군 기갑총감부 문서 중에서 1944년 6월 25일에 작성된 “노르망디 전선에서의 대전차전 경험Erfahrungen der Panzer-Bekämpfung an der Invasionfront Normandie”라는 문건은 1944년 6월 6일 부터 6월 24일까지 독일군이 미영연합군의 기갑부대를 상대하면서 얻은 경험에 대해 담고 있습니다.1) 독일군의 정보분석에 대한 문제점과 미영연합군의 기갑전력에 대한 평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7월 5일에 작성된 다른 문서의 부록인데 해당 폴더에 원문서는 없어서 이 문서만 인용합니다.

이 보고서의 서두에서는 노르망디 전역 초기에 독일군의 야전 부대들이 연합군 기갑장비들을 식별하고 정보를 수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된 이유는 노르망디에 배치되었거나 증원된 부대들이 전차식별에 필요한 정보자료를 제대로 보유하지 못했거나 오래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정보 때문에 연합군의 기갑장비에 대해 과장되거나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되어 전차공포증Panzerschreck에 걸릴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로 연합군 포로로 부터 획득하는 정보가 늘어나면서 이것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합니다.2)

이 보고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연합군의 기갑장비 및 대전차화기에 대한 평가

이 보고서는 6월의 교전을 통해 새롭게 파악한 연합군의 전차가 크롬웰 순항전차와 M4A4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셔먼에 대해서는 “서방의 T-34(T-34 des Westen)”라고 칭하고 있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 M4A4에 대해서는 기존의 셔먼과 달리 58구경 76.2mm포가 주무장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M4A4 중에 많은 수가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었다 보니 모든 M4A4가 17파운드포를 탑재한 것으로 혼동한 모양입니다. 또한 신형 셔먼의 장갑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75mm포의 경우는 원거리에서 격파할 수 있으며 50mm포도 근거리에서 관통이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3)
크롬웰 순항전차에 대해서는 포탑은 처칠 보병전차와 유사하고 차체 및 전반적 형태는 크루세이더 전차와 유사한 혼종Kreuzung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크루세이더 전차 보다는 장갑이 강화되었지만 처칠 보다는 약하다고 지적합니다. 크롬웰은 50mm급 이상의 화기라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처칠 보병전차에 비해 공격이 쉽다고 평가합니다.4)

M4A4와 크롬웰 순항전차를 제외한 차종은 이미 정보가 있기 때문인지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M5 경전차에 대해서는 별칭이 코만도Commando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칠 보병전차의 경우는 공병전차AVRE, Armoured Vehicle Royal Engineers로 개조된 차량에 대해 특기하고 있습니다. 테트라크 공수전차는 장갑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20mm 대공포로 상대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군이 M6 중전차를 노르망디에 투입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면서 추후에 전장에 투입할 것인지, 아니면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투입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M6 중전차에 대해서는 드레드노트라는 별칭을 붙이고 있는데 정보 출처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영연합군이 M3 그랜트나 발렌타인 같은 구식 전차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특기하고 있습니다.5) 구식전차를 투입하지 않았다는 점은 전쟁 말기까지 온갖 잡다한 차종을 사용하던 독일군의 입장에서 특이하게 생각됐을 수도 있겠습니다.

대전차포 중에서는 영국군의 6파운드 대전차포(독일군은 5,7cm Pak L/70으로 호칭)와 3인치 대전차포(독일군은 7.62mm Pak Mk.I L/52로 호칭) 두 종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6파운드 대전차포의 성능은 독일군의 중전차를 격파하기에 부족하지만 교전거리가 짧은 노르망디 지역의 특성상 상대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3인치 대전차포에 대해서는 Pak40과 관통력이 비슷하지만 포 자체의 무게가 무거워서 전술적인 기동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한편 연합군에 92mm 대전차포가 있다는 정보에 대해서는 대공포를 대전차포로 오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6)


2. 연합군의 전술에 대한 평가

연합군의 기갑전술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습니다. 독일군은 미영연합군이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서 실행한 상륙작전과는 다르게 초기에 보병과 함께 전차를 상륙시킨 것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상륙 제1진으로 투입된 영국군 전차들이 상륙하자 마자 곧바로 공격으로 전환해 보병의 지원도 받지 않고 독일군의 화점이나 저항거점을 공격한 것을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화점과 저항거점을 대전차지뢰와 대전차호 같은 거부수단으로 보강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7)

연합군의 기갑전술에 관한 부분에서 꽤 재미있는 내용은 미군과 영국군 전차 승무원들의 사격이 독일군 만큼이나 신속하고 정확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점 입니다.8)

또한 미영연합군이 기갑수색부대를 활발하게 활용하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전차가 대규모로 투입되고 있으며, 여기에 장갑차와 기계화보병이 함께 편제되어 정찰을 수행하는 점을 특기하고 있습니다. 연합군이 정찰임무에 경전차를 대량으로 투입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각 부대에 전차가 나타난다 해도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교전할 것을 숙지시키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가지에서는 소화기로도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이 없는 지역이라 하더라도 경전차를 동반한 연합군의 기습적인 정찰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숙지시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9)

Caen 일대에서 영국군이 보여준 기갑 전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독일군은 영국군이 캉 일대의 개활지에서는 보통 50대 내외의 소규모 전차부대를 투입하고 있으며 보병의 직접지원이 부족해서 상황이 유리한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면 보카쥬 지형에서는 기갑 부대들이 보병의 지원을 잘 받으면서 작전을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차를 호위하는 보병들이 독일군 보병의 근접공격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10) 포병과 기갑부대의 협동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포병 관측이 곤란한 지역에서도 매우 모범적인mustergültig운용을 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11)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연합군 공군의 강력한 전술지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 독일군의 대응에 대한 평가

독일군의 대응에 대한 평가 중에서는 대전차자주포와 돌격포의 운용에 대한 평가가 재미있습니다. 대전차자주포나 돌격포는 전차부대에 비해 단차 단위나 소대 단위의 전투 훈련을 많이 받은 편이기 때문에 보카쥬 지형에서 유리했다는 점 입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회전포탑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견인식 대전차포에 대해서는 혹평이 중심입니다. 자체적인 기동력이 없기 때문에 교전거리가 짧은 보카쥬 지형에서는 운용하기가 어렵고 적의 포격이나 폭격에 쉽게 무력화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역에 투입된 제21기갑사단 소속의 견인식 88mm 대전차포 대대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88mm 대전차포는 유효사정거리가 매우 길기 때문에 넓은 간격을 두고 배치해도 화력의 집중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12)

독일군의 대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병의 육박공격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 입니다. 독일측의 기록에 따르면 6월 6일 부터 6월 24일까지 총 108대의 미영연합군 전차를 보병 육박공격으로 격파했다고 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6개의 독일군 사단이 격파한 미영연합군의 전차 숫자와 격파 수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르망디 전선 독일군의 연합군 전차 격파 대수 및 격파 수단

전차
돌격포
대전차
자주포
견인식
대전차포
견인식
88mm
대공포
야포
보병공격
17SS

7

5



5
352보병


21


21
25
30
2기갑



15


4
5
교도기갑
85

16
7


4
40
12SS
105


16



23
21기갑
37


15
43

3
5
[표출처 :  “Anl 5 zu Gen .Insp.d.Pz.Tr, Chefgruppe Nr.1839/44 g.k.v, ‘Panzerabschuss-Liste’”(1944. 7. 3), H16/201 Pz Offz b Chef Gen St d H, RG242 T-78 R620 Folder 3, NARA, pp.1~2.]

노르망디 전역 초기 3주간에 해당하는 보고서이기 때문에 이후 미영연합군의 전술적인 개선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없지만 독일군의 초기 대응과 시행착오에 관해서는 흥미로운 점을 보여주는 보고서입니다.


주석
1) “Erfahrungen der Panzer-Bekämpfung an der Invasionfront Normandie”(1944. 6. 25), H16/201 Pz Offz b Chef Gen St d H, RG242 T-78 R620 Folder 3, NARA
2) ibid., pp.1~2.
3) ibid., pp.2~3.
4) ibid., p.3.
5) ibid., pp.3~4.
6) ibid., pp.5~6.
7) ibid., p.7.
8) ibid., p.8.
9) ibid., p.8.
10) ibid., p.10.
11) ibid., p.11.
12) ibid., pp.12~13.

2013년 7월 24일 수요일

2차대전기 미영 연합군의 전차 손실에 대한 통계 :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 - (2)-1

통계로 때우는 땜빵 포스팅 하나 나갑니다.




이번에 올리는 내용은 2차대전기 미영 연합군의 전차 손실에 대한 통계 :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 - (2)에서 빼먹고 넘어간 통계입니다. 내용은 1944년 8월 28일부터 9월 7일까지 프랑스 전선에서 영국군이 추격전을 펼칠 때 발생한 전차 손실에 대한 것 입니다. 전투가 격렬하게 전개되는 상황이 아닌 추격전 상황하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한 내용이어서 흥미가 반감되지만 기계적 요인이 손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연합군의 전차 손실에 관한 전체적인 경향은 위에 링크한 지난 글들을 참고하십시오.


이 통계에 실려있는 6개의 부대 중 크롬웰을 장비한 영국군 제7기갑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부대는 셔먼을 주력으로 장비하고 있었습니다.(폴란드 제1기갑사단은 셔먼과 크롬웰의 혼성편제이지만 셔먼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1)


표. 프랑스전선에서 영국군 기갑부대의 전차 손실(1944. 8. 28~9. 7)

기계고장
(대수)
기계고장
(%)
전투손실
(대수)
총 손실
(대수)
영국 근위기갑사단
59
92.2
5
64
영국 제8기갑여단
57
74.0
20
77
영국 제11기갑사단
44
88.0
6
50
영국 제7기갑사단
38
76.0
12
50
폴란드 제1기갑사단
50
62.5
30
80
캐나다 제4기갑사단
57
91.9
5
62
총 계
305
-
78
383
일일평균손실
5.4
79.4
1.4
6.8
100마일당 평균손실
16
79.6
4.1
20.1
[출처 :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table 3, p.12]


이  통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100마일당 평균손실을 계산한 내용입니다. 100마일은 160km가 되니 10km를 달릴때 마다 셔먼이나 크롬웰 한대가 고장으로 낙오되었다는 이야기이죠.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영국 제7기갑사단의 손실에 관한 내용입니다. 크롬웰을 장비한 영국 제7기갑사단은 셔먼을 장비한 부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손실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7기갑사단장 버니Gerald L. Verney 소장이 벨기에 방면으로 추격전을 펼치는 동안 크롬웰은 기계적 고장으로 인한 손실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고 보고한 것과는 조금 상충되는 내용입니다.2) 제7기갑사단이 노르망디 전선에 투입될 당시 다른 영국군 기갑사단들과 마찬가지로 343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전투손실을 고려하면 8월 말에는 그보다 적은 숫자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10일 동안 38대를 기계적 고장으로 잃었다는 것은 그리 작은 손실이 아니지요.  크롬웰은 영국이 제2차 대전중에 생산한 전차 중에서는 기계적 신뢰성이 가장 뛰어난 차종으로 꼽히기에 더욱 궁금합니다. ORO-T-117에 좀 더 상세한 내역이 없는게 아쉽군요.


이 보고서에는 추격전 기간 중에 기계고장으로 인한 손실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원인으로 유동적인 전장 상황으로 인해 정비부대가 차량을 회수해 정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3) 이 점은 퇴각하는 독일군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지만 그래도 후방에 남는 전차는 어떻게든 아군이 확보할 수 있으니 완전손실은 아니지요.



1) Brian A. Reid, No Holding Back : Opertaion Totalize, Normandy, August 1944, (Robin Brass Studio, 2005), p.443에 실린 내용을 보면 폴란드 제1기갑사단은 1944년 8월 7일에 129대의 셔먼V(M4A4), 25대의 셔먼VC(파이어플라이), 33대의 스튜어트, 59대의 크롬웰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2) John Buckley, British Armour in the Normandy Campaign 1944, (Frank Cass, 2004), p.112.
3) Technical Memorandum ORO-T-117, Survey of Allied Tank Casualities in World War II(1951. 3. 31), p.12.

2010년 8월 20일 금요일

이게 다 셔먼 때문이다

어제 패튼과 셔먼 이야기가 나온 김에...

패튼은 별종이라 치고 셔먼을 대표로 하는 미영 연합군의 전차들이 한심하다는 것은 많은 장군들이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브래들리의 경험담도 그렇고 전후 회고록을 쓴 연합군측 장군들은 한두마디라도 이 문제를 언급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쟁 중 영국군 30군단을 지휘한 호럭스(Brian Horrocks)의 회고록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아래 인용문이 포함된 장은 호럭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집필했는데 호럭스의 검토를 거쳤으니 호럭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폴란드 기갑사단장 마첵(Stanisław  Maczek) 장군은 작전에 차질을 초래한 다양한 원인들을 지적했는데 이것들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었다. 마첵 장군은 기갑부대가 좁은 회랑으로 쇄도해 들어가면서 융통성 없는 정면 공격만을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가장 위험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마첵 장군은 이 핵심적인 지구에서 독일군의 방어 체계는 계속해서 강화되었으며 애초에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종심이 깊었다고 지적했다. 나는 작전 지역 전체에 걸쳐 ‘매우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완벽하게 구축된 독일군의 참호를 찾아낼 수 있었으며 이중 많은 수가 길가에 위치해 있었으며 또한 통나무로 보강되었다’고 적었다. 폭격은 이곳과 다른 대부분의 독일군 거점에 대해 효과가 미미했다. 독일군의 진지들은 상대적으로 장애물이 적은 이 일대에 널려있는 숲, 과수원, 생울타리(보카쥬), 그리고 석조 건물들 사이에 잘 은폐되어 있었으며 독일군의 전차병과 대전차포 사수들에게 양호한 사격진지가 되었다.

마첵 장군은 연합군에게는 가벼운 크롬웰과 셔먼 전차 밖에 없다는 것이 약점이라고 지목했다.(두 전차는 각각 27톤과 30톤이었다) 이 전차들은 보다 무거운 독일군의 판터나 티거(이것들은 각각 45톤과 54~68톤 이었다) 를 격파하기 위해서는 500미터 이내로 접근해야 했는데 그 반면 티거에 탑재되었거나 야포로 쓰인 88mm는 2킬로미터 밖에서 연합군 전차들을 해치울 수 있었다. 판터의 주포와 무장도 크롬웰과 셔먼 보다 월등히 우월했으며 4호전차 정도가 비슷한 성능이었다. 그래서 연합군 전차는 독일군의 전차를 숫적으로 압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상 우세하다는 기동성 조차 형편없는 성능 때문에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토 탈라이즈(Totalize) 작전 중 폴란드군은 65대의 전차를 잃었으며 캐나다군은 그보다 더 많은 전차를 잃었다. 시몬즈(Guy Simonds, 캐나다군 2군단장) 장군은 토탈라이즈 작전이 실패한 원인이 두 기갑사단(캐나다 4기갑, 폴란드 1기갑)의 전투 경험 부족에 있다고 탓했지만, 영국에 망명해 폴란드 1기갑사단을 편성하고 훈련시키기 전에 폴란드에서 실전을 경험한 바 있는 49세의 마첵 장군은 두 기갑사단이 그들의 여건에 비해 너무나 과도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Sir Brian Horrocks, Corps Commander, (Charles Scribner’s Sons, 1977), p.43

한줄요약 - 셔먼은 숫자가 많아도 신통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