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군 사령부는 하노버 수비대의 항복에 따라 제 5군 사령부에 도시 기능의 회복을 위한 지원을 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우리 폴란드군은 제 5군 사령부의 계획에 따라서 다음의 인력을 배속받는다.
1. 국가인민군(Nationale Volksarmee, 동독군) 헌병 1개 중대
2.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군 방첩부대 1개 중대
3.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당원 (20명)
4. 독일민주공화국의 방송 언론인 (8명)
5. 타자 및 통신 담당 (12명)
6. 특별 선전대 (장교 및 부사관 24명)
이상의 인력은 오늘 오후 6시를 기해 제 5군 사령부의 통제를 받는다. 다음날부터 독일민주공화국의 행정 요원이 하노버에 투입될 예정이다. 독일민주공화국의 행정요원이 하노버에 도착하는 것은 사전에 통보될 것이다.
제 5군 사령부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a. 하노버 주둔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제 6전차사단의 선임장교를 주둔군 사령관으로 둔다.
b. 위에서 언급한 인력과 필요한 장비는 하노버 주둔군 사령부의 통제하에 둔다. 국가인민군의 지원을 받아 새로 정규 경찰을 편성한다.
c. 인민들에게 최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언론 보도를 한다.
d. 항복한 적군을 수용할 포로수용소를 건설한다.
e. 병기고 및 물류시설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한다.
f. 상수도, 발전시설, 난방시설을 정상화 한다.
g. 식량 및 필수품 배급을 위한 조직을 만든다.
h. 독일연방공화국의 독일공산당(DKP)과 사회민주당(SPD)으로 합작 지방 정부를 만든다.
i. 파괴된 공장을 복구해 최대한 빨리 생산을 재개 할 수 있도록 한다.
(중 략)
하노버 시의 민간인과 포로에게 공급할 식량 비축량 및 의약품 재고량을 확인한 뒤 1971년 4월 29일 오전 11시까지 전선군 참모부에 보고할 것.
실롱스크 군관구 정치국 문서 152448/74/42
Vojtech Mastby and Malcome Byrne, A cardboard castle? : an inside history of the Warsaw Pact 1955-1991, CEU Press, 2005, pp.380-381
1971년 4월 21일부터 4월 28일까지 실시된 들소작전에 포함된 시나리오라고 합니다. 폴란드군이 하노버를 점령한 후 취해야 할 행동 이라는군요. 이 시기의 바르샤바 조약군은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가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점령지역에 새로운 정부 수립까지 생각했던 것을 보면. 그리고 합작 대상으로는 서독에서 진보적이라고 할 만한 사회민주당과 독일공산당이 언급 돼 있고 우익 정당은 언급이 없습니다. 독일공산당은 서독에서 불법화 된 이래 아주 세력이 죽었고 이 시점에서는 이렇다 할 세력이 없었습니다.
이걸 읽다 보니 60~70년대 북한애들은 서울을 확보한 뒤 어떤 조치를 취할 생각이었는지 궁금해 집니다. 남쪽에는 합작할 만한 진보적 정당이 없었으니 합작의 형태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뭐, 그것은 통일이 되면 알 수 있겠지요. 통일이 될 때 까지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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