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중 독일 본토방공전에서 독일군 대공포의 형편없는 명중률은 무기의 효율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소재입니다. 미 제 8공군은 유럽전역에서 약 3,000대의 B-17과 약 1,000대의 B-24를 상실했는데 이 중 대략 30% 정도가 대공포에 의한 것 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 엄청난 양의 포탄이 사용되었고 그 덕분에 다들 잘 아시는 대공포의 낮은 명중률에 대한 이런 농담도 생겼다지요.
사형수를 교회 첨탑에 묶어 놓고 대공포를 쏘아댔다. 그리고 일주일 뒤 사형수는 굶어 죽었다.
대공포가 쏘아대는 포탄에 비해 떨어뜨리는 비행기가 얼마나 적었으면 저런 농담도 나왔겠습니까만 모든 것을 단순히 계량화된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는 것이죠. 단순한 숫자의 나열만으로는 그 뒤에 숨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법 입니다. 당연히 이런 대공포 폄하론(?)에 대한 반박이 없을 수가 없지요. 웨스터맨(Edward B. Westermann)은 독일군 대공포의 효율에 대해서 좀 색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전쟁 이후의 문헌들은 대개 대공포 부대를 유지하는데 소요된 경제적, 물질적 비용에 대해 대공포는 엄청난 자원을 소모한 반면 그 성과는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었다고 주장한다. 대공포의 비효율성에 대한 주장 중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사례는 1944년에 88mm FLAK 36/37이 평균 포탄 16,000발을 발사해서 비행기 한대를 격추시켰다는 것이다. 포탄 한발이 80마르크였기 대문에 이것은 비행기 한 대를 격추시키는데 1,280,000마르크, 또는 512,000달러가 들었다는 이야기다. 기술적으로 정확하다는 조건하에 대공포의 효율성을 1920년대의 주식시장의 성과와 비교한다면 1944년의 수치는 악명 높은 주가폭락이 일어난 다음날인 1920년 10월 25일의 다우존스 지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요소들을 상세하게 분석해 보면 1944년에 비행기 한 대를 격추시키기 위해서 16,000발의 88mm 포탄을 사용했다는 통계는 여러 점에서 통계적으로 간과된 부분이 있다.
1944년도에 비행기 한 대를 격추시키기 위해서 16,000발의 88mm 포탄을 소모한 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 가장 먼저 독일군의 대공포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 것은 88mm FLAK 36/37 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포는 유효 고도가 26,000피트로 B-24의 평균 폭격 고도는 넘지만 평균 24,000피트에서 27,000피트의 폭격 고도를 가지는 B-17의 경우에는 폭격고도의 하한선을 살짝 초과하는 수준이다. 그렇기 대문에 1944년도에 제 8공군이 독일의 목표를 타격하는데 압도적으로 많은 B-17을 사용한 것은 대부분의 독일공군 대공포대는 그들의 유효 교전거리의 최대 한계 또는 그 이상의 적을 상대해야 했다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로 많은 포대는 평균 포신 수명 이상으로 포를 사용해 효율성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포신의 마모로 인한 명중률 저하와 포신 폭발로 인한 포 사수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었다. 1944년 전 기간 동안 대공포대는 한달 평균 380문의 88mm포를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포신 마모로 상실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1943년의 두 배, 1942년의 아홉 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유효 교전거리의 미달과 과도한 포신 마모라는 문제점에 더해서 1944년도에 독일 본토에 262개의 중대공포대가 있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 부대들은 정교한 사격 통제 장비 없이 88mm FLAK 36/37 이나 개조한 75mm 대공포를 사용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포대들은 대량으로 탄막을 치는 방식을 써야만 했다. 대공포대의 숫자가 많았다는 점은 이들 부대가 장비한 대공포가 구식이었다는 점과 함께 왜 1944년에 그토록 많은 포탄이 사용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특수한 살포 장비를 장착한 폭격기로 채프를 살포해 독일군이 레이더로 목표를 추적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과 같이 연합군의 전자전 수단이 개선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구식 대공포와 장비에 더해 1943년과 1944년에 대공포 부대에 많은 수의 보조원이 투입된 것도 88mm 포대의 성과를 저하시키고 이로 인해 비행기 한대 격추에 필요한 포탄이 크게 늘어나게 한 요인이다.
아마도 128mm 대공포와 88mm 포의 성과를 비교하는 것은 대공포의 효율성 문제를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1944년 전 기간 동안 128mm 대공포는 포탄 3,000발 당 비행기 한대를 격추시켰는데 이것은 88mm 포가 소모하는 포탄양의 5분의 1에 불과한 것 이었다. 이 두 종류의 대공포의 성과가 이토록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두가지 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128mm 포는 연합군의 모든 폭격기의 작전 고도보다 높은 35,000 피트의 유효 교전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로 가장 중요한 요인은 128mm 포대는 모두 독일공군 대공포 부대의 정예라 할 수 있는 독일 공군의 정규 대공포병이 배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128mm 포의 우수한 성과는 잘 훈련된 포병과 우수한 장비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공군은 불행히도 1944년에 전체 중대공포의 5%에 불과한 128mm 2연장 대공포 31문과 525문의 128mm 대공포를 보유했을 뿐이었다.
1944년의 비행기 한대 격추당 소비한 포탄량과는 달리 개전 이후 첫 20개월 동안 비행기 한대 격추당 소비한 포탄의 양은 중대공포의 경우 2,805발, 경대공포의 경우 5,354발 이었다. 연합군의 전자전 시도와 악천후가 이어진 1943년 11월과 12월 사이에 대공포부대는 적 비행기 한대를 격추시키는데 중대공포는 4,000발, 경대공포는 6,500발의 포탄을 소비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전 기간 동안 대공포 부대는 적 항공기 한 대를 격추시키는데 경대공포의 경우 4,940발, 중대공포의 경우 3,343발의 포탄을 소비한 것으로 나타난다. 통계 중 후자의 통계를 사용하면 적 항공기 한대를 격추시키는데 들어간 비용은 중대공포의 경우 267,440마르크/106,976달러, 경대공포의 경우 37,050마르크/14,820달러다. 명백히 비행기 한대를 격추하는데 사용된 대공포 탄약의 양은 (대공포가) 항공기 격추에서 기여한 몫에 대한 대략적인 추정에 불과하다. 이런 추정은 무기와 그에 관련된 장비를 생산하는데 소요된 자원의 가치와 대공포 사수를 훈련시키는데 들어간 비용을 간과한 것이다. 그렇기 대문에 전투기에 의한 적기 격추와 대공포에 의한 적기 격추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전투기의 설계, 생산, 운용하는데 들어가는 숨겨진 비용 때문에 성립되기 어렵다. 전투기의 경우 비행장의 건설과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 전투기의 유지와 정비, 연료비용, 여러 특수한 훈련과 수백시간의 비행 등 전투기 조종사의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등 여러 기반 비용을 포함해서 평가해야 한다.
대공포 부대가 상대한 적 항공기의 생산가격을 살펴보는 방법도 대공포 1문의 경제적 효용을 계산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42년도에 장비를 완전히 갖춘 B-17 한대의 가격은 292,000달러였고 역시 같은 조건의 B-24는 327,000달러였다. 중폭격기와 더불어 노스 아메리칸 B-25의 1942년도 가격은 대당 153,396달러, 마틴 B-26은 대당 239,655달러였다. 중형폭격기의 대당 가격에는 유지, 정비, 연료, 그리고 폭격기 조종사의 교육에 들어간 비용은 제외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서든 중대공포가 적 항공기 한 대를 격추시키는데 107,000달러를 소비하고 경대공포가 15,000달러를 소비하는 것은 폭격기의 생산 비용을 생각할 때 결코 낭비가 심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방대한 경제적 자원과 대규모의 생산 잠재력을 가진 미국이 참전한 것은 연합군이 추축국에 대해 재정적 소모전을 강요할 수 있게 한 요인이었고 독일 공군은 이에 대해 전혀 대응할 수 없었다.
Edward B. Westermann , FLAK : German Anti-Aircraft Defenses, 1914~1945,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1, pp.292~294
위의 글에서는 비용을 가지고 이야기 했는데 전투기 부대의 격추율도 1944년에 들어오면 비참할 정도로 떨어집니다. 1944년 하반기에 가면 폭격기 1대당 전투기 4~5대가 격추되는 전투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요. 대공포의 전과는 감소 추세를 보이긴 하더라도 비교적 완만합니다. 즉 대공포가 아주 낭비적인 무기는 아니었던 셈 입니다. 그리고 위의 글 에서도 언급했지만 전쟁 중반까지는 대공포의 명중률이 꽤 양호했습니다. 미국 육군항공대의 폭격기 조종사들의 회고를 보더라도 1943년까지는 독일군 대공포 사격이 꽤 정확했다는 언급이 더러 있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놓고 볼 때는 알기 어렵지만 실제 참전자들은 대공포의 위력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Brian D. O’neil의 Half a Wing Three Engines and a Prayer를 읽었을 때 개인적으로 꽤 인상 깊었던게 독일군의 대공포 탄막의 위력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1944년도에 독일공군 전투기 조종사의 소모율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대공포의 경제적 가치는 꽤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을 훈련시키는 것 보다는 대공포 사수 한 명을 교육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싸겠지요. 게다가 포탄 장전 같은 비교적 단순한 임무는 훈련이 덜 된 인력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1944년에 독일공군 대공포 부대의 인력 중 40% 가량이 잡다한 보조 인력이었다고 하지요. 반면 전투기는 아무리 급해도 최소한의 조종 교육은 시켜야 하니 격추 대비 효율로 치면 별로 경제적이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