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은 꽤 재미있습니다. 당시 대화의 녹취록이 남아있는 덕분에 후대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을 대부분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던 만큼 이 자리에서도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특히 이승만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사령관 하지와 미군정 정치고문 제이콥스는 이승만을 맹렬히 비난합니다.
드레이퍼 : 이승만도 과도입법위원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제이콥스(Joseph E. Jacobs, 미군정 정치고문) : 아닙니다. 이승만은 어떠한 공식적인 직함도 없습니다. 이승만은 여전히 조선인들에게 자신이 미국 정치인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 처럼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승만은 민족대표자대회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작은 집단에 웨드마이어(Albert C. Wedemeyer)가 그들을 방문해 회견을 할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물론 웨드마이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승만은 사기를 쳐 볼까 하다가 이 일로 체면만 구긴 셈입니다. 물론 이것이 문제의 근원은 아닙니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입니다.
드레이퍼 : 이승만에게 과도입법위원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거나 또는 참여하지 말 것을 권유한 일은 있습니까?
하지 : 만약 이승만이 과도입법위원에 참여한다면 그의 권위는 크게 실추될 것 입니다. 이승만은 스스로를 조선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드레이퍼 : 알겠습니다. 이승만은 그런 사람인가 보군요. (이하 이승만의 미국인 로비스트 관련 내용은 생략)
(중략)
하지 : (앞부분 생략) 물론 공산주의자들이 남조선을 장악할 위험성이 꾸준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 위험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조선 우익집단들이 벌이는 짓은 우리가 이곳에서 조선인들의 지원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선인들의 저항을 받으며 동시에 러시아인들을 상대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승만을 추종하는 집단은 지난해 12월 이승만이 출국했을 때 남조선에서 봉기를 일으켜 이승만을 정부 수반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이러한 봉기가 일어나기 전에 조선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김구는 이승만의 계획에 따라 우익의 정부를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려 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인을 죽이는 것을 포함해 무슨 짓이든지 할 생각이었습니다. 심지어 우익들은 미국인을 몇 명 살해해 미국 본토에서 미군정이 인기가 없으며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주한미군을 철군시키도록 하려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승만은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승만의 추종세력은 때가 적당하다는 판단만 있으면 언제든 그런 짓을 하려 들 것입니다. 저는 우익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그들만의 단독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익들이 원하는 것은 독재정권입니다.
드레이퍼 : 물론,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된다면 이승만도 오래 버티지는 못 할 것 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 : 이승만은 단 15분도 버티지 못 할 것입니다. 이승만도 그 사실은 알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점점 (정권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승만의 아내는 이승만에게 이 점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승만의 아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고약한 여자입니다. 우리는 이승만의 아내가 소련놈들로 부터 돈을 받아먹는건 아닌가 의심할 정도입니다. 이승만의 집단은 정권을 잡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이승만은 워싱턴을 방문했을때 국무부의 힐드링(John R. Hilldring, 국무부 민정담당 차관보)을 만난 것을 통해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귀국할 체면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의 미국인 로비스트들은 이승만이 전쟁부장관과 만날 수 있도록 하려고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승만은 이 모임에 참석했지만 우리가 이 소식을 전했을 때 전쟁부 장관께서는 너무 바빠서 이승만에게 내 줄 시간이 없었습니다. 국무부는 이승만이 조선으로 귀국할 때 군용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드레이퍼 : 먼슨(Munson) 대령이 이 항공편이 준비된 것을 알고 그것을 취소했지요.
하지 : 이승만은 중국을 방문할 허가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장개석은 여전히 임시정부의 늙은이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웨드마이어는 중국을 방문하고 있을 무렵 장개석이 김구 일당에게 미국돈 2십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20만 달러는 장개석이 2년 전에 김구에게 제공한 것 입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이유는 이승만이 이 돈에 손을 대려 했었기 때문입니다. 이 돈은 김구에게 주어진 것이었지만 이승만 일파는 김구의 돈을 먹으려 했습니다.
드레이퍼 : 하지 장군, 이승만과 김구는 잘 협력하지 않았습니까?
하지 : (두 사람의 협력 문제는) 그들이 무엇을 하려느냐에 좌우됩니다. 현재 이승만과 김구는 결별한 상태입니다. 작년 겨울 이승만이 출국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들은 한 패였습니다. 우리는 이승만과 김구가 과거 중국의 군벌들이 하던 식으로 봉기를 일으키려 했다는 자료를 잔뜩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이승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승만이 중국을 방문할 허가를 얻었을 때 저는 이승만에게 선박편으로 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 무렵 조선을 오가는 항공편은 모두 미육군의 항공기였기 때문에 만약 이승만이 항공편으로 가게 된다면 조선인들은 그것이 미육군이 제공한 항공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됐다면 이승만은 "미국 정부는 내가 미국을 떠날 때 비행기를 마련해 주었소. 국무부와 전쟁부가 나에게 이 비행기를 마련해 준 것이오"라고 떠들었을 것 입니다. 조선인들은 이승만이 무슨 비행기를 타고 오건, 그게 L-5건 C-54건 상관없이 그것을 이승만의 전용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승만도 조선인들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을 것이며 사람들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는 이승만이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습니다. 어쨌든 이승만은 국무부의 도움으로 비행기를 얻어 중국을 방문했고 장개석은 이승만에게 전용기를 내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지나친 대접이었으며 이승만은 장개석으로 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귀국해 조선인들에게 저를 당장 쫒아내겠다고 떠들었습니다. (이승만은) 내가 당장 떠나야 한다, 남조선에 지금 당장 단독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힐드링 장군이 단독정부 수립을 약속했다, 나를 제외한 미국 정부의 모든 사람들이 단독정부 수립을 약속했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이승만이 미국 방문중에 저를 지독하게 공격했기 때문에 저는 2월에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고위층에 계신 분들에게 제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변론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몇몇 국회의원들과 제가 접촉한 많은 인사들, 그리고 언론은 제가 공산주의자는 아니더라도 친공적인 인물이라고 보고 있었고 저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소문을 재빨리 잠재웠지만 뉴욕을 방문했을 때 이승만도 뉴욕을 방문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뉴욕의 헨리 루스(Henry Luce)는 이승만의 패거리들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며 록펠러 빌딩의 사무실 한 칸, 그리고 다른 사무실 한 곳과 행정적인 지원을 공짜로 제공했습니다. 이승만의 패거리들은 자신들을 공산주의자들의 적이라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적이긴 합니다만 조선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적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 입니다. 우리는 매년 우리를 방해하는 이 자들과 일을 함께 하기 위해 고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차관님께 말씀드리는 이유는 조선의 우익들이 싫어하지 않을 만한 인물을 이곳으로 보내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야 그 놈들에게 쫒겨난다는게 불쾌하겠지만 한 번쯤은 고려해 봐야 할 것 입니다.
'Orientation for Undersecretary of the Army Draper and Party, by Lt. Gen Hodge at 0900 23 September 1947', RG 338, Records of the United States Army Force in Korea, Lt. Gen John R. Hodge Official File, 1944~48, Entry 11070, Box 103, AG File, 340.
이승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많이 나타나지만 꽤 흥미로운 평가입니다. 특히 이승만의 권력욕에 대해서는 꽤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프란체스카에 대한 평가인데 이승만 대통령 당시 비서실에 계시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프란체스카 여사의 정치 개입문제도 다시 한번 검토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뒷부분은 나중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