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enijoa님이 트라헨베르크(Trachtenberg)계획에 대한 글을 써 주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 나폴레옹 필살전법 - 트라헨베르크 플랜
약간 아쉬운 점 이라면 나폴레옹 전쟁 후기의 전투들이 1807년 이전의 전투들과 성격 면에서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설명해 주셨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 입니다. 1813년 뤼첸(Lützen)과 바우첸(Bautzen)에서 프랑스군은 수적으로 열세한 동맹군에 대해 거의 비슷하거나 더 많은 인명손실을 입으면서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1805년과 1806년에 오스트리아-러시아와 프로이센을 상대로 거둔 눈부신 승리들은 나폴레옹의 전성기 실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나폴레옹은 저 두 전역에서 동맹군을 상대로 적의 주력을 섬멸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서 외교적으로 크게 유리한 강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807년의 아일라우(Eylau)전투를 시작으로 해서 프랑스군이 전장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우위는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809년의 바그람(Wagram)전투는 나폴레옹의 승리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제 프랑스군이 언제나 전술적으로 동맹군을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1805년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동맹군이 전장에서 프랑스군과 거의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일까요?
오늘 이야기 하고 자 하는 엡스타인(Robert M. Epstein)의 ‘Napoleon's Last Victory and the Emergence of Modern War’는 바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저작입니다. 저자인 엡스타인은 1809년의 바그람(Wagram)전투를 분석해 이 전역을 기점으로 나폴레옹 전쟁은 물론 근대전쟁의 성격도 변화했다고 주장합니다.
엡스타인이 주목하는 점은 이 전역에서 나폴레옹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결정적인 승리는 거두지 못했다는 점 입니다. 나폴레옹은 1805년과 1806년의 전역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일방적인 대승리를 거두면서 외교적으로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두 전역에서 동맹군은 항상 결전장에서 프랑스군에게 주력이 격멸되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1809년 전역에서는 나폴레옹이 똑 같은 승리를 달성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엡스타인은 그 원인으로 1805년 이후 동맹군도 프랑스와 동일한 군제개혁에 성공한 점을 사례로 들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이 전역 이후로 프랑스를 모방한 군-군단-사단-여단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를 완성합니다. 러시아군은 1807년의 아일라우 전투 당시 불완전한 군단-사단체제로 전투에 참여했지만 1809년까지 전쟁을 준비할 기회가 있었던 오스트리아는 군단-사단체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을 실험할 기회가 1809년에 찾아옵니다.
※ 초기 프랑스군의 사단편제에 대해서는 예전에 글을 한 편 썼습니다.
-> 프랑스군의 사단편제 : 1763~1804
1809년 전역은 나폴레옹에게 있어서 자신의 적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바그람 전역의 초반인 아스페른-에슬링(Aspern-Essling)전투에서는 나폴레옹이 직접지휘하고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결전인 바그람 전투에서도 프랑스군은 오스트리아군을 후퇴시키긴 하지만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고도 적의 주력을 격멸하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저자인 엡스타인은 1809년 전역이 본격적인 근대전쟁의 막을 열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전의 전역에서 나폴레옹은 한 차례의 전역에서 결전을 이끌어내 적을 무너뜨렸지만 1809년 전역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도 군단-사단 체제로 개편되면서 프랑스군이 과거에 누리던 전략적 기동의 우위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나폴레옹은 과거 한 개 군으로 편성되어 느리게 이동하던 적을 상대로 군단단위로 분산된 부대를 신속하게 전개해 전략적으로 포위, 결전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폴레옹의 적들도 군단단위로 기동하게 됨으로서 프랑스군의 이러한 기동성의 우위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군단단위로 넓은 전장에 산개해 이동함으로서 군단단위의 산발적인 교전의 가능성이 늘어나고 중앙의 사령부에서 전장을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 졌습니다. 모든 장군들이 나폴레옹과 같은 천재일 수는 없었습니다. 1813년의 독일전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시작된 근대적 전쟁의 여러 측면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프랑스군과 동맹군은 단 한차례의 결전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 졌습니다. 나폴레옹은 여전히 뤼첸, 바우첸, 그리고 드레스덴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어느 것도 결정적인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결전을 기대하면서 라이프치히에서 동맹군과 싸웠지만 이 전투는 양측 모두에 끔찍한 인명손실을 입힌 소모전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1813~14년의 전역에서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전술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프랑스군은 점진적으로 소모되어 갔으며 이것은 나폴레옹의 전략적 패배로 이어집니다.
저자인 엡스타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창조했지만 이해할 수 는 없었던 전쟁의 역동성에 의해 타도된 것이다.”
분량도 많지 않고 재미있게 쓰여져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근대 이후의 전쟁사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은 한번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