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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1일 수요일

2012년 상반기에 출간될 캔자스대학 출판부의 책 중에서

간만에 캔자스 주립대 출판부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2012년 상반기에 출간될 서적 몇권에 대한 정보가 올라왔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신간이 두 권 있더군요.

첫 번째는 로버트 시티노Robert M. CitinoThe Wehrmacht Retreats : Fighting a Lost War, 1943입니다. 이 책은 Death of the Wehrmacht : The German Campaigns of 1942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티노는 Death of the Wehrmacht에서 군사적인 전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작전술 차원의 승리로 전략적인 승리를 거두려 했던 독일 국방군이 결국 산업화된 현대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잘 그려냈습니다. 이 후속작에서는 전세가 반전되는 과정에서 독일 국방군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시티노의 이론 틀을 통해 보여줄 것으로 보이는데 매우 기대가 되는 군요.

두 번째는 글렌 토리Glenn E. TorreyThe Romanian Battlefront in World War I입니다. 영어권에서는 서부전선에 비해 잘 다루어지지 않은 1차대전기 동부전선에 관한 내용이라 기대가 됩니다. 같은 대학 출판부에서 낸 Blood on the Snow : The Carpathian Winter War of 1915도 개설서에서 간략하게 다루어지는 전역을 심도 깊게 서술해서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기에 더욱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읽지 못한 책이 자꾸 쌓이고 있어서 요즘은 책 사는 것을 줄여보려고 하는데 신간 목록을 볼 때 마다 질러야 겠다는 의지가 다시 불타오르니 영 고역입니다.

2010년 3월 18일 목요일

책 몇 권

지난주에 주문한 책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유로화가 비싸서 독일 책은 많이 사지 못하는 터라 책 상자를 받아 드니 즐겁더군요.


 그런데 한가지 문제라면 포장이 부실했다는 겁니다. 아마존에 책을 주문했을 때 완충제 대신 종이를 구겨넣은 것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이것도 제대로 집어 넣은 게 아니라서 상자 아랫 부분은 모두 젖어 있었습니다. 책들은 비닐로 밀봉포장 해 놓아 전혀 상하지 않았지만 영수증이 젖어서 너덜너덜해 졌더군요.


그런데 영수증이 걸레가된 와중에도 포도주 광고가 실린 전단지는 아주 멀쩡했습니다. 신기하여라...


 이번에 받은 책 중 군사사와 관계된 것들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의 두 녀석 중 오른쪽에 있는 Österreich-Ungarns Kraftfahrformationen im Weltkrieg 1914-1918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마음에 드는 책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1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차량부대의 편성과 장비, 운용을 다루고 있는데 방대한 1차사료를 바탕으로 충실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책의 뒷부분에서 장갑차 부대에 대해 짤막하게 다루고 있는데 단순히 오스트리아군의 장갑차 부대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적국이었던 이탈리아군과 동맹군이었던 독일군의 장갑차 운용에 대해서도 비교해서 서술해 놓고 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산업화 시대의 전쟁, 특히 1차대전 시기의 기계화이다 보니 아주 좋은 물건을 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왼쪽에 있는 Österreicher in der Deutschen Wehrmacht: Soldatenalltag im Zweiten Weltkrieg는 2차대전 중 독일군에 복무한 오스트리아 인들의 군사 경험에 대한 내용인데 예상했던 것 보다는 살짝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독일군들의 군사경험, 전쟁범죄, 나치 체제에 대한 순응 문제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긴 한데 서술하고 있는 범위가 광범위해서 그런지 서술의 밀도는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번 통독을 해 보면 평가가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음으로 오른쪽에 있는 Pflicht zum Untergang: Die deutsche Kriegsführung im Westen des Reiches 1944/45은 Schönigh 출판사가 내고 있는 Zeitalter der Weltkriege 시리즈의 네번째 책 입니다. 2차대전 말기 독일군의 서부전선에서의 전쟁수행을 분석하고 있는데 특히 전쟁 말기 부대편성과 병력수급, 장비문제를 다룬 3장 1절과 전쟁 말기 서부전선의 경험이 전후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는 마지막 부분이 흥미로워 보입니다.

왼쪽에 있는 Der Schlieffenplan: Analysen und Dokumente은 역시 Zeitalter der Weltkriege 시리즈의 두 번째 책입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작년에 '테렌스 주버(Terence Zuber)와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쟁'이란 글에서 슐리펜 계획에 대한 서구 군사학계의 논쟁에 대해쓴 일이 있지요. 제가 글재주가 없어서 다소 산만한 글이 되었는지라 독일쪽 견해도 참고해서 다시 쓰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바로 이책을 그 이유에서 사게 됐습니다. 이책은 슐리펜 계획에 대한 논문과 슐리펜 계획에 대한 사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테렌스 주버의 슐리펜 계획 논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논문은 주버의 논문과 주버를 반박하는 논문을 합쳐 네편이 실려있고 나머지 논문들은 슐리펜 계획에 관련된 다른 주제의 논문들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꽤 근사한 부록이 더 있었습니다.


바로 슐리펜의 1905년 비망록에서 언급된 작전안의 지도입니다. 슐리펜 계획 논쟁에 대한 글을 쓰려면 자주 봐야 할 테니 같은 크기로 복사를 할 생각입니다.

2009년 1월 5일 월요일

Napoleon's Last Victory and the Emergence of Modern War - by Robert M. Epstein

Ladenijoa님이 트라헨베르크(Trachtenberg)계획에 대한 글을 써 주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 나폴레옹 필살전법 - 트라헨베르크 플랜

약간 아쉬운 점 이라면 나폴레옹 전쟁 후기의 전투들이 1807년 이전의 전투들과 성격 면에서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설명해 주셨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 입니다. 1813년 뤼첸(Lützen)바우첸(Bautzen)에서 프랑스군은 수적으로 열세한 동맹군에 대해 거의 비슷하거나 더 많은 인명손실을 입으면서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1805년과 1806년에 오스트리아-러시아와 프로이센을 상대로 거둔 눈부신 승리들은 나폴레옹의 전성기 실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나폴레옹은 저 두 전역에서 동맹군을 상대로 적의 주력을 섬멸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서 외교적으로 크게 유리한 강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807년의 아일라우(Eylau)전투를 시작으로 해서 프랑스군이 전장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우위는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809년의 바그람(Wagram)전투는 나폴레옹의 승리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제 프랑스군이 언제나 전술적으로 동맹군을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1805년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동맹군이 전장에서 프랑스군과 거의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일까요?

오늘 이야기 하고 자 하는 엡스타인(Robert M. Epstein)의 ‘Napoleon's Last Victory and the Emergence of Modern War’는 바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저작입니다. 저자인 엡스타인은 1809년의 바그람(Wagram)전투를 분석해 이 전역을 기점으로 나폴레옹 전쟁은 물론 근대전쟁의 성격도 변화했다고 주장합니다.
엡스타인이 주목하는 점은 이 전역에서 나폴레옹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결정적인 승리는 거두지 못했다는 점 입니다. 나폴레옹은 1805년과 1806년의 전역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일방적인 대승리를 거두면서 외교적으로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두 전역에서 동맹군은 항상 결전장에서 프랑스군에게 주력이 격멸되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1809년 전역에서는 나폴레옹이 똑 같은 승리를 달성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엡스타인은 그 원인으로 1805년 이후 동맹군도 프랑스와 동일한 군제개혁에 성공한 점을 사례로 들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이 전역 이후로 프랑스를 모방한 군-군단-사단-여단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를 완성합니다. 러시아군은 1807년의 아일라우 전투 당시 불완전한 군단-사단체제로 전투에 참여했지만 1809년까지 전쟁을 준비할 기회가 있었던 오스트리아는 군단-사단체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을 실험할 기회가 1809년에 찾아옵니다.

※ 초기 프랑스군의 사단편제에 대해서는 예전에 글을 한 편 썼습니다.
-> 프랑스군의 사단편제 : 1763~1804

1809년 전역은 나폴레옹에게 있어서 자신의 적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바그람 전역의 초반인 아스페른-에슬링(Aspern-Essling)전투에서는 나폴레옹이 직접지휘하고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결전인 바그람 전투에서도 프랑스군은 오스트리아군을 후퇴시키긴 하지만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고도 적의 주력을 격멸하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저자인 엡스타인은 1809년 전역이 본격적인 근대전쟁의 막을 열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전의 전역에서 나폴레옹은 한 차례의 전역에서 결전을 이끌어내 적을 무너뜨렸지만 1809년 전역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도 군단-사단 체제로 개편되면서 프랑스군이 과거에 누리던 전략적 기동의 우위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나폴레옹은 과거 한 개 군으로 편성되어 느리게 이동하던 적을 상대로 군단단위로 분산된 부대를 신속하게 전개해 전략적으로 포위, 결전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폴레옹의 적들도 군단단위로 기동하게 됨으로서 프랑스군의 이러한 기동성의 우위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군단단위로 넓은 전장에 산개해 이동함으로서 군단단위의 산발적인 교전의 가능성이 늘어나고 중앙의 사령부에서 전장을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 졌습니다. 모든 장군들이 나폴레옹과 같은 천재일 수는 없었습니다. 1813년의 독일전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시작된 근대적 전쟁의 여러 측면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프랑스군과 동맹군은 단 한차례의 결전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 졌습니다. 나폴레옹은 여전히 뤼첸, 바우첸, 그리고 드레스덴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어느 것도 결정적인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결전을 기대하면서 라이프치히에서 동맹군과 싸웠지만 이 전투는 양측 모두에 끔찍한 인명손실을 입힌 소모전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1813~14년의 전역에서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전술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프랑스군은 점진적으로 소모되어 갔으며 이것은 나폴레옹의 전략적 패배로 이어집니다.

저자인 엡스타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창조했지만 이해할 수 는 없었던 전쟁의 역동성에 의해 타도된 것이다.”

분량도 많지 않고 재미있게 쓰여져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근대 이후의 전쟁사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은 한번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2008년 8월 25일 월요일

빈 - 둘째날 : Naschmarkt, 오스트리아 육군박물관

빈에서의 둘째날이 밝았습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여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둘째날은 토요일이어서 오전에는 Naschmarkt로 헌책을 사러 나갔습니다. 물론 시장을 돌아다니며 군것질 하는 것도 포함해서...



사실 책을 산다고 나왔으나 막상 시장에 들어오니 먹는 것에 더 정신이 팔립니다. 싱싱한 치즈를 한덩어리 사서 아침으로 먹었습니다.

아흥~♪

동양상회는 여전하더군요. 이 가게는 아는 분이 많으 실 것 같습니다.


Naschmarkt는 말 그대로 '먹자시장(?)' 정도 되겠습니다만 이것 저것 다 팝니다. 동대문에 가깝죠.



헌 책을 몇 권 산 뒤 다시 군것질을 조금 한 뒤 바로 오스트리아 육군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5년 전에도 갔었는데 그때 일부 구역이 공사중이어서 모두 관람하지를 못 했거든요.

오스트리아 육군박물관은 빈 남부역 근처에 있어서 찾기가 쉽지요.


그런데 빈 남부역에 유로라인 버스가 들어오는걸 처음 알았습니다. 5년 전에도 그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드디어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제국군의 병영으로 쓰이던 건물이라 남다른 포스(?)를 풍깁니다.


건물 외곽의 회랑과 박물관 정문 바로 앞에는 오스트리아군이 18~19세기에 사용했던 화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00파운드 구포(1751년형)

6파운드 포(1764년형)

6파운드 포(1838년형)

그리고 의외의 물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니가 왜 여기 있는거야!

이제 표를 사서 본격적으로 박물관 관람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물품보관소의 보관표가 좀 허접합니다.


당연히 1층 부터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주 전시실로 들어가기 전에 작은 기획전시가 하나 있더군요. 2차대전 당시 공습을 테마로 한 전시였습니다.


먼저 본토방공전에서 독일 정규군을 지원한 다양한 보조인력들의 복장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공군여성보조원 전화교환수와 피난민을 재현한 마네킹이 가장 인상깊더군요.



기획전시실을 지나 1층 주전시실로 들어갑니다. 1층에는 1866년 부터 1차대전 종전까지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래의 야포는 1차대전 중 사용된 10cm Kanone M99 같은데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의외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포병에 대한 사진자료를 찾기가 어렵더군요.



다음은 오스트리아 산악부대의 동계 장비입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프란츠 요셉 1세(Franz Joseph I)의 군복입니다.



이외에도 영국군 등 외국군대의 명예연대장 복장이 몇 벌 더 있었는데 사진이 잘못나와서 올리지는 못 합니다.

1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군의 주력 중기관총. M1907

1층 전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870~189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요란한 군복들입니다. 일부분만 올리는게 아쉽군요.


Leibgarde-Reiter의 행사용 제복

제28보병연대 사병

제6울란연대 사병

향토연대(Landesschützenregimet)의 엽병

제5용기병연대의 중위

그리고 1차대전 시기의 전시물로 넘어갑니다.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사라예보에서 저격당할 때 탄 승용차


1차대전 관련 전시물 중에서 다양한 선전포스터가 눈에 띄었는데 특히 아래의 전시공채 포스터는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기가 좋군요.


그리고 다시 1차대전 시기의 군복들이 이어집니다.

제8용기병연대의 상병(1914/15)

울란연대의 사병(1914/15)

후사르연대의 사병(1914/15)

대전 초기 독일군

대전 초기 세르비아군

대전 초기 이탈리아군 알피니연대원

그리고 대전 후반기 전시실로 넘어가는 중간에 중화기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38cm Haubitze M1916

7.5cm Gebirigskanone M1915

15cm Feldhaubitze M1914

그리고 대전 후반기의 전시물이 이어집니다. 대전 후반기의 군복들은 대전 초기의 군복에 비해 화려함이 줄어들었고 오히려 2차대전 초기의 군복들과 비슷한 느낌을 풍깁니다.

대전 후기 오스트리아군 보병

오스트리아군 조종사

대전 후기의 보병대위(67보병연대)

대전 후기 오스트리아군의 3톤트럭, A-XII-930

이렇게 대략 1층 관람을 마치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원래 2층 관람에 중점을 두려고 했는데 1차대전기 전시물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깜빡 했습니다.

건물 곳곳의 기둥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배출한 명장들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프란츠 요셉 1세의 흉상...


2층에는 16세기 말 부터 19세기 초 까지의 전시물들이 있습니다.

일단 30년 전쟁부터 시작하게 되는 군요. 아직까지 갑옷이 그럭 저럭 효용이 있던 시절의 물건들입니다. 갑옷제작 기술이 완성에 달한 시기의 물건들이라 제법 멋있죠. 드레스덴에서 봤던 갑옷들에 비해서는 덜 화려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습니다.




1620년경의 머스킷티어

1632년경의 보병 부사관

1620년경의 창병

1620년경의 중기병(Kürassier)

1620년경의 Arquebusier

1610년경의 Lanzierer

30년 전쟁기의 전시물 다음에는 17~18세기 터키와의 전쟁에 대한 전시물들이 있습니다. 터키와의 전쟁에서 노획한 무기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개머리판이 화려하게 장식된 오스만 투르크군의 수발총은 하나 가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다음으로는 18세기 전시실로 넘어갔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여기서 부터는 시간도 부족하고 메모리카드 용량도 문제가 있어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오니까 박물관이 문 닫을 시간이 되어 관람도 다 마치지 못 했습니다.

전시물의 구성은 다른 전시실과 비슷했는데 한 가지 멋진 점이 더 있었습니다. 전시실을 가득 메운 대형 기록화들이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도록을 구매하려 했는데 관람시간이 종료되어 기념품점이 문을 닫는 바람이 실패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돈이 없어 도록을 사지 못 했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는 시간이 없어 실패하네요.;;;; 뭐, 다음에 세번째로 갈 때는 사와야 겠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1759년 11월 21일 막센(Maxen)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의 항복을 받는 모습을 묘사한 기록화 입니다. 일반적으로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에서는 프로이센의 승률이 높은 편이라 이런 그림을 구경하는 것은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관람에서도 방대한 전시물 덕분에 전체를 다 관람하는데 실패하고 또 기념품 점에서 책을 사는데도 실패했습니다. 결국 다음에 빈을 세번째 방문할 때는 꼭 전체를 관람해야 겠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 남역 근처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식당 주인장이 전직 권투선수였습니다. 잠깐이지만 세계 챔피언도 했더군요. 이 양반의 이야기는 빈의 세번째 날에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