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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만헤이 전투 당시 격파된 다스 라이히 사단의 판터

지난 글에서 만헤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만헤이 옆동네 그랑므닐에 전시되어 있는 판터 사진을 몇장 올려볼까 합니다. 2008년에 벨기에에 놀러갔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귀국한 뒤 블로그에 몇 장을 올렸었는데 지난번에 올리지 않았던 사진까지 더해서 크기도 조금 더 키워서 올려볼까 합니다. 사진을 올려놓고 보니 여행이 가고 싶군요. ㅋ













2011년 11월 26일 토요일

만헤이 전투, 그리고 구술자료에 대한 잡상 하나

갑자기 잡상이 떠올라서;;;;

1944년 겨울, 독일군의 아르덴느 지구 반격당시 전개된 만헤이Manhay 전투는 우연적인 요소로 인해 영화와 같은 활극이 펼쳐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전투에서 무장친위대 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의 전차 에이스 에른스트 바르크만Ernst Barkmann이 지휘하는 한대의 판터가 야간의 혼란속에 우연히 미군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혼란을 일으키며 승리를 이끌어 내지요. 전략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작은 전투였지만 전술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는 요소가 있는 전투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2008년에 벨기에에 갔을 때 만헤이와 그랑므닐Grandmenil을 잠깐 답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투의 실상은 독일어권 밖에서는 한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아르덴느 공세가 워낙에 대규모 전투였으니 양측에서 대대급 내외의 전력이 격돌한 만헤이 전투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게다가 바스토뉴와 같이 미군의 선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혼란속에 패주한 전투이기도 하군요.

미국의 입장에서 아르덴느 전역을 충실하게 정리한 미육군 공간사 The Ardennes :  Battle of the Buldge(1965)에서는 독일군이 선두에 노획한 셔먼을 앞장세워 미군을 기만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1) 이 서술에서 지칭하고 있는 위장 셔먼은 아무리 봐도 바르크만의 판터에 대한 서술입니다. 미국 공간사는 노획한 독일자료, 전 독일군 출신자들에 대한 방대한 구술자료를 참고하여 독일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조금씩의 문제점을 보이고 있는 것 입니다. 미육군 공간사는 지금 시각에서 보더라도 매우 훌륭한 작전사 연구이고 후대의 연구에서도 계속 인용되고 있습니다. 미육군 공간사의 영향인지 1990년대의 저작에서도 독일군이 만헤이 전투에서 노획한 셔먼을 선두에 세운 기만공격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2) 제가 2007년에 번역했던 「Das Reich 기갑연대 4중대의 만헤이(Manhay) 전투」에 인용된 미군들의 증언을 보면 이들은 바르크만의 전차를 분명히 독일 전차로 파악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노획한 셔먼이 공격의 선봉에 섰다고 미육군의 공간사에 기록된 건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만헤이 전투당시 바르크만의 일대 활극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무장친위대 장교 출신인 오토 바이딩어Otto Weidinger가 집필한 다스 라이히 사단사 Division Das Reich(1982) 5권을 통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저작에서 바이딩어는 바르크만의 회고에 크게 의존하여 만헤이 전투 부분을 서술했습니다.3) 그리고 다스 라이히 사단사에 실린 바르크만의 회고가  J. P. Pallud의 The Battle of the Bulge: Then and Now(1986)에 번역, 수록되어 영어권에 소개되었습니다. 영어로 번역된 내용은 채승병님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이것은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 겁니다. 어쨌든 Division Das Reich가 1982년, The Battle of the Bulge: Then and Now가 1986년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영어권에서 1990년대에 출간된 벌지전투에 대한 몇몇 저작에서도 만헤이 전투에 대한 서술이 1960년대의 미국 공간사를 답습한 것을 보면 만헤이 전투는 정말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2차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만헤이 전투는 정말 작은 일화에 불과합니다. 1960년대의 미국 공간사의 사소한 오류가 계속해서 반복된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만약 활극의 주인공이었던 바르크만이 1945년 그의 전차가 피탄 당했을 때 전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그래도 많은 생존자들이 있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만헤이 전투에 대한 독일측 이야기는 완성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활극의 주인공이 빠진 어딘가 빈 것 같은 방식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바르크만이 생존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이 작은 전투의 독일측 이야기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어 구술자료는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바르크만과 같이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의 구술은 문서로 된 사료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좋은 자료입니다.


1) Hugh M. Cole, The Ardennes :  Battle of the Buldge(Center of Military History U.S. Army, 1993), p.589
2) Trevor N. Dupuy, David L. Bongard and Richard C. Anderson. Jr, Hitler’s last gamble : The battle of the bulge, December 1944-January 1945, (Harper Perennial, 1994/1995), p.257에서도 그와 같은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3) Otto Weidinger, Division Das Reich : Der Weg der 2.SS Panzer-division “Das Reich” Bd.5, (Nation Europa, 1999), pp.370~380

2008년 5월 6일 화요일

아르덴느 - 바스토뉴, 만헤이, 우팔리즈

아른헴 일대를 벼락치기로 구경한 뒤 암스테르담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까지 리에쥬로 가기 위해서 암스테르담도 역 근처(.....) 벼락치기로 구경하고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실수로 카메라를 배낭과 함께 사물함에 집어 넣어서 이날 암스테르담 사진을 찍지 못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기차를 타고 브뤼셀로 향했습니다.


브뤼셀 역

리에쥬로 가려면 그냥 암스테르담에서 마스트리히트를 거쳐 들어가는게 더 빠른데 왜 시간을 더 들여 브뤼셀로 돌아갔냐고요? 동네 하나라도 더 구경하려고 욕심을 부렸거든요. 물론 브뤼셀에 도착하자 마자 다시 리에쥬행 열차가 도착해 브뤼셀은 역만 구경했습니다.;;;;;

비교적 여유있었던 리에쥬행 열차

리에쥬에 도착하자 마자 여관에 들어가 바로 잤습니다. 그런데 벨기에 사람들의 프랑스어 억양의 영어는 정말 알아듣기 어렵더군요. 여관 아저씨가 여권좀 보여달라고 하는데 t발음은 거의 들리지 않게 '빠스뽀~트'라고 하니 처음에는 여권 달라는 이야기인지 몰랐습니다. 버스는 '뷰~스'라고 하더군요.;;;;;;;

빠스뽀~트!

제가 묵은 방의 구조는 아주 기묘했습니다. 폭이 좁고 2층으로 된 구조였는데 텔레비젼은 1층과 2층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애매한 위치에 달린데다가 리모컨이 안보이더군요.;;;;

이걸 어떻게 보란 말입니까!

어쨌건 피곤해서 샤워만 하고 바로 잤습니다.(실은 리모컨이 없으니 TV를 볼수가 없었지요^^)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었습니다. 이것 저것 푸짐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와 달리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는 아침식사도 프랑스 식이더군요. 갓 구워낸 바게뜨에 치즈 정도. 그래도 너무 맛있었습니다. 커피 맛도 아주 좋더군요.


그런데 바게뜨를 다 먹고 식당(호텔에서 식당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아줌마에게 이게 다냐고 손짓으로 물어보니 이 아주머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바게뜨를 한바구니 더 주십니다. 땡잡았습니다!

전날 묵은 여관

식사를 마친 뒤 버스정류장으로 갔습니다. 바스토뉴는 기차가 들어가지 않거든요. 정류장은 기차역 바로 옆에 있어서 찾기가 쉬웠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리에쥬역

리에쥬를 출발해 바스토뉴로 가는 길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아르덴느 지역의 도로들은 하나같이 구불구불한게 마치 한국의 경상북도 어느 시골같은 느낌이더군요.


바스토뉴로 향하던 버스는 중간에 우팔리즈(Houffalize)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화장실을 가는 모양이더군요. 그런데 버스 밖을 내다보니 아주 낮익은 물건이 하나 있는게 아닙니까.

우팔리즈의 판터

잽싸게 내려 사진 한장을 찍었습니다.

버스는 다시 바스토뉴를 향했습니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니 책에서 설명한 아르덴느 지역의 지형이 이해가 되더군요. 역시 百聞不如一見이라더니!


그리고 드디어 바스토뉴에 도착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매컬리프 장군을 기리는 광장이 있더군요. 매컬리프 장군의 동상 옆에는 셔먼 한대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장군님의 존안

승리의 셔먼! 인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바스토뉴 시내는 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시간 여유만 있으면 하루 정도 묵으면서 근처 구경을 하고 싶더군요. 바스토뉴 시가지를 벗어나서 바스토뉴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2차대전 당시 전사한 벨기에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이 기념비를 지나 언덕을 올라가니 드디어 바스토뉴 박물관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문 닫았습니다;;;;;

박물관 구경은 못 해도 야외 전시물은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M10이 아닌 아킬레스를 가져다 놓은 건지?

당신은 번지수가 틀렸어요!

심심해서 올라가 봤습니다.


야외 전시물 구경을 마친 뒤 박물관 옆에 있는 미군참전을 기리는 구조물을 구경했습니다.


각 기둥에는 벌지전투에 참전한 미군 부대들의 부대명을 기록해 놓았더군요.











이 구조물 위로 올라가 보니...


각 방향별로 당시 전투가 어떻게 전개됐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물관(건물) 구경을 마친 뒤 다시 바스토뉴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아까 보지 못한 셔먼 전차의 잔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스토뉴 시내로 돌아와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특히 와플이 맛있었습니다. 벨기에 만세!


식사를 마친 뒤 다음에는 만헤이로 향했습니다.


만헤이로 가는 길은 날씨가 좋다 보니 아주 즐거웠습니다.

만헤이로 간 이유는 1944년 12월에 만헤이에서 벌어진 아주 흥미로운 전투 때문입니다.

Das Reich 기갑연대 4중대의 만헤이(Manhay) 전투

에른스트 바르크만의 만헤이 활극 - 채승병님의 글

바르크만이 진입한 방향에서 바라본 만헤이

만헤이에 도착해 보니 한국의 작은 면소재지 정도의 마을이었습니다. 한가하고 조용하더군요. 아마 바르크만이 쳐들어갔을 때와 비교해도 크게 변한것은 없을것 같았습니다.


바르크만은 저 멀리 보이는 숲 어딘가에 숨었었습니다.

익숙한 지명이 많이 보입니다.

만헤이는 생각 보다 훨씬 작은 동네더군요. 바로 그랑므닐로 갔습니다. 그랑므닐은 만헤이에서 대략 500미터정도 떨어진 더 작은 동네입니다. 그랑므닐은 폴 대위의 주력 부대가 향한 방향입니다.

만헤이에서 바라본 그랑므닐

그랑므닐로 가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길이 주변 초지들 보다 높더군요. 크노케의 전차가 왜 도로에서 벗어나다가 처박혔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어슬렁 어슬렁 걸어서 그랑므닐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동네에 들어서자 마자 또 익숙한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습니다.

나무 사이를 잘 보세요

바로 만헤이 전투당시 지뢰를 밟고 격파된 2소대 소속의 판터였습니다.



그랑므닐을 구경한 뒤 다시 만헤이로 돌아왔습니다. 에레제 까지 갈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더군요. 만헤이의 어느 카페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리에쥬까지 가도 독일로 가는 기차를 탈 시간이 남을 것 같아 다시 우팔리즈로 돌아갔습니다. 아침에 잠깐 본 판터를 구경하려고요.


이 전술기호는 대충 그려넣은건지 아니면 원래 있던대로 그려넣은건지 궁금하더군요


우팔리즈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리에쥬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 보다 더 빠르더군요. 벨기에 버스 기사들도 해 떨어지면 속도를 높이는 건지 궁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