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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0일 일요일

제정 러시아의 병역과 유태인 문제

Reforming the Tsar’s Army를 조금씩 읽는 중 입니다.

중간에 Mark von Hagen이 쓴 19세기말~20세기 초 제정 러시아 군대의 민족문제에 대한 글이 한 편 있는데 유태인과 관련된 부분이 꽤 재미있습니다. 해당 부분을 발췌해 봅니다.

유태인은 군 복무에 있어 다른 민족들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면서도 더 많은 제약을 받았다. 일반적인 징병에 있어서도 다른 민족 집단이 누리던 보다 자유주의적인 병역 면제의 대상이 되지 못 했다. 러시아는 제국 내의 유태인 집단에 별도의 징병 할당 인원을 배정했다. 만약 유태인의 징병 인원이 할당 인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무조건 면제”로 분류될 젊은이들이 병역의 책임을 짊어 져야 했다. 이 정책은 많은 수의 유태인들이 종종 징병을 회피하려 한다는 이유로 옹호되었다. 개종하지 않은 유태인은 장교가 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군사 의학 대학’에 입학할 수 도 없었다. 러시아 군인들은 유태인이 전사로서 형편없다고 믿었다. 유태인들이 군 입대를 꺼려했다는 점 때문에 이러한 편견은 더욱 강화되었다. 1911년에 전쟁성은 두마에 유태인에게 군 복무 의무를 부과하는 대신 방위세를 내도록 하자는 법안을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Mark von Hagen, ‘The Limit of Reform : The Multiethnic Imperial Army Confronts Nationalism, 1874~1917’, Reforming the Tsar’s Army : Military Innovation in Imperial Russia from Peter the Great to the Revolu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p.46

유태인이 겁쟁이라는 인식은 유럽 국가들에 꽤 널리 퍼진 편견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군 장군들이 중동전쟁을 봤다면 생각이 달라졌겠지요.

2007년 2월 21일 수요일

징병제와 미국 스포츠계

징병제가 실시될 무렵 미국 스포츠계의 이야기랍니다.

(전략)

언론과 대중은 운동선수와 영화배우들의 군 입대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징병제가 실시된 초기에 야구 구단주들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애국심을 과시했다. 신시내티의 워렌 가일스(Warren Giles)는 스타들의 군 입대는 “배트 보이들이 (경기장에서 하듯) 최대한 신속해야”하며 야구계는 징병 문제에 있어 특별 대우를 바라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화이트 삭스의 해리 그라비너(Harry Grabiner)는 전쟁중이긴 하지만 대중들에겐 오락거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레드삭스의 톰 야키(Tom Yawkey)는 야구계가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으나 돔 디마지오(Dom DiMaggio)와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가 팀에서 차출되는 것은 걱정하고 있었다. 구단주들은 12월 11일 회의를 열어 군대에 입대하는 선수들은 군복무 리스트에 넣고 군대에 입대한 선수들의 방출이나 영입에 관심을 가진 구단이 참고하도록 하자는데 합의했다. 그리고 군복무 리스트에 오른 선수들은 각 구단의 선수 보유 제한에 해당되지 않도록 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밥 펠러(Bob Feller)와 양키스의 필 리주토(Phil Rizzuto)는 1-A(현역)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디트로이트 슬러거의 행크 그린버그(Hank Greenberg) 만큼 많은 관심을 끈 선수는 없었다. 그린버그는 군 입대와 관련된 첫번째 인터뷰에서는 결코 군 입대 유예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한 기자에 의해 그린버그가 징병당국에 생계에 따른 징병유예 또는 한 시즌 더 뛸 수 있도록 징병을 늦춰 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밝혀냈다. 징병당국은 언론 보도를 전면 부인했으며 연봉 55,000달러를 받을 예정이었던 그린버그는 30세의 나이에 징집됐다. 권투선수인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Joe Louis)는 아내와 이혼 수속을 밟는 바람에 “부양자 징집유예” 대상에서 제외됐다. 루이스는 그의 팬 중 한명에게 “난 언제든지 군대에 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어떤 대우라도 받을 겁니다”라고 밝혔다. 이보다 좀 웃기는 일 중에는 미네소타주 오스틴의 스타 고등학교 축구팀의 풀백이 실제로는 23세로 가명을 쓰고 고등학교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지역에서 추방됐다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스타들이 징집되자 야구 구단주들은 초기에 징병제도에 열렬히 찬성했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브루클린 다저스의 래리 맥페일(Larry MacPhail)은 징병제도는 소득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야구 선수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언론에 불평을 늘어놓았다. 맥페일은 야구선수들도 과학자나 의사들 처럼 특별 대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Washington Senators의 구단주인 클라크 그리피스(Clark Griffith)는 루즈벨트의 군사보좌관인 왓슨(Edwin M. Watson) 장군에게 서한을 보내 각 구단마다 훈련을 담당할 교관을 보내 선수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대신 야구 경기를 계속하게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것을 제안했다. 그리피스는 서한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야구 구단은 준 공공기관(semi-public institution) 입니다.”

(후략)

George Q.Flynn, The Draft 1940-1973, Universtiy Press of Kansas, 1993, pp.27-28

그리피스 선생. 왜 군대에 야구팀을 만들자는 생각은 안하셨습니까!

역시 대한민국의 "상무"는 훌륭한 제도입니다. 대한민국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