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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3일 월요일

악마를 보았다

얼마전 CGV 포인트가 조금 있어서 포인트를 쓸 겸 악마를 보았다를 봤습니다. 한 번 보고 나니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남은 포인트로 한 번 더 봤습니다.

역시 이 영화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최민식이 연기한 연쇄살인범 장경철입니다. 열등감에 찌들어 그 불만을 약자에게 쏟아넣는 전형적인 살인마를 재미있게 연기했더군요. 장경철이라는 인물은 큰소리는 뻥뻥치지만 실제로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역겨운 인물입니다. 영화에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별 볼일 없는 인물인데다 가족과도 사이가 나빠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 중간 중간 묘사되는 모습에서 나타나듯 자기 자신에 제법 대단한 인물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고 허세도 쩔죠. 실제로는 아닙니다만. 자신은 잘났지만 세상이 문제가 있어서 꼬였다고 착각하는 인물 같으니 그 불만을 엉뚱한 약자들에게 쏟아 넣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여태까지 세상에 알려진 한국의 연쇄살인범들과 비슷한 캐릭터입니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꽤 그럴싸 합니다. 한국 영화에 한니발 렉터같은 고상하고 “강한” 연쇄살인범을 등장시키면 정말 어색하고 병신같았겠죠. 개인적으로는 이 찌질한 살인마의 살인행각을 더 많이 보여줬더라면 좋았겠습니다만 영화의 핵심은 이병헌이 연기한 김수현의 복수에 있으니 어쩔 수 없겠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 중반에 나오는 장경철의 친구도 재미있었습니다. 세븐데이즈에서는 강간살인범을 연기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더군요. 특이한 식성에다가 특이한 동거녀(정황상 살인은 같이 하는 모양이더군요)를 달고 다니는데 이 커플을 가지고 스핀오프를 하나 만들어도 좋을 듯 싶었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뭐 대충 넘어가 줄 만 합니다. 한국에서 만드는 스릴러 치고 이야기 구조가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만들어진 물건이 별로 없잖습니까. 이미 세븐데이즈나 용서는 없다 같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스릴러들이 많았던지라 이 영화는 충분히 봐줄 만 합니다.

이곳 저곳의 영화평을 보니 좀 더 세게 나갔어야 했다는 의견이 꽤 많던데 대한민국의 주류 영화계에서 이 정도 물건을 내놓은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 같습니다. 앞으로 좀 더 유능하고 막나가는 감독이 나타나 한 술 더 뜨는 물건을 내놓았으면 싶군요. 뭐, 사실 제 개인적으로도 감독이 막 나가려다 못 나간듯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 무삭제판을 내놓는다던데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보러가고 싶군요. 대한민국의 제멋대로 심의기준을 생각하면 DVD판도 무사히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2010년 3월 3일 수요일

전장의 미식가들

언제나 그렇듯 땜빵용 불법 날림 번역입니다.

인류학과 관련된 글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관찰자들이 자신들이 보기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특이한 관습에 관심을 가지고 쓰는 글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류학 자체가 제국주의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학문인 만큼 관찰자인 '우리'와는 다른 뭔가 특이한 것을 잡아내는게 특출나죠. 그리고 후진적인(?) 지역을 대상으로 한 초창기의 인류학자들은 그런 경향이 아주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올리는 불법 날림 번역글도 특이한 대상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인데 이 글에서는 피지, 그리고 볼리비아의 카우카 계곡(Valle del Cauca) 지역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특이한 식성을 가진 전쟁터의 미식가들에 관한 이야기 이지요.

이 절에서 살펴보게 될 피지와 카쿠아 계곡 지역에서 일어나는 관행은 아마 전쟁 중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일 중에서 가장 충격적일 것이다. 바로 식인 풍습이다.

식인행위는 전쟁에서 부터 다른 생활 양상에 이르기 까지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윌리엄스(Thomas Williams)는 피지인들을 관찰한 뒤 이런 결론을 내렸다. "식인 풍습은 피지인들의 관습 중 하나이다. 식인 풍습은 사회의 여러 요소들과 조화롭게 존재하고 있다. 식인은 피지인들이 추구하는 일 중 하나이며 그들 대부분은 식인 풍습이 고상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피지와 카우카 계곡 지대의 식인 풍습은 이미 유럽인들이 이 지역에 처음 도착했을 무렵 오래된 관습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이 지역에서 식인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답을 할 수 가 없다. 그렇지만 잡아먹는 대상이 주로 증오하는 적이라는 점을 보면 식인 풍습이 처음에는 적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시작됐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윌리엄스는 이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피지인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주된 이유는 의심할 여지 없이 복수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시체를 먹음으로써 살아있는 자들에게 겁을 주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적을 잡아 먹는 것 행동 보다 더 증오와 경멸감을 보여줄 수 있는 행동도 없을 것이다. 이제 두 사회에서 일어나는 식인 풍습의 양상을 살펴보자.

카우카 계곡 지대의 남자들은 전쟁에 나갈 때 포로들을 묶기 위해 특별히 밧줄을 준비해 간다. 물론 사로잡혀 꽁꽁 묶인 포로들이 목숨이 붙은 채로 그들을 잡은 자들의 마을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전사들은 포로를 묶을 밧줄과 함께 목을 벨 돌칼을 함께 가지고 나가며 종종 전장에서 곧바로 적을 요리해 먹었다.
반면 피지인들은 거의 대부분 전쟁 포로들을 마을로 데려와서 잡아먹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전사들은 바콜로(bakolo - 잡아먹을 사람)가 있을 경우 마을에 들어서기 전 북을 쳐서 포로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북소리를 듣는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주로 여자들)은 북 소리에 한껏 부푼 마음으로 즐거움에 겨워 광란의 춤을 추었다고 한다.

카우카 계곡 지역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머리를 숙이고 정신을 잃을 때 까지 곤봉으로 얻어 맞은 뒤 목이 잘렸다. 그 다음에는 요리를 위해 잘게 토막이 났다. 피지에서 포로를 도살할 때는 칼질에 숙달된 남자가 희생자를 '관절 별로 여러 토막을 냈다.'

피지와 카우카 계곡 지대에서는 종종 더 끔찍한 방법도 사용됐는데 희생자가 살아있는 상태로 토막을 내고 희생자가 보는 상태에서 갈비살을 베어 먹었다. 이것을 직접 목격한 윌리엄스는 이렇게 적었다. "이런 고통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가장 악랄하고 잔혹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지독한 것은 희생자가 아직 살아있는데 그의 몸 일부, 특히 갈비뼈를 잘라내서 희생자가 보는 앞에서 요리를 해 먹어치우거나 때로는 희생자에게 자신의 고기를 먹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두 지역 모두 희생자의 피를 받아 마셨다. 카우카 계곡 지방의 어떤 군장국가에서는 시체의 지방을 녹여 광산용 램프를 켤 때 쓰는 연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피지인들은 바콜로를 요리하기 위해 주로 특수한 화덕을 만들었으나 동시에 삶아 먹는 경우도 많았다. 카우카 계곡 지대에서는 시체를 굽거나 삶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사람 고기를 날 것으로 먹기도 했다. 피지인들은 사람 고기를 날로 먹는 경우가 없었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시체를 통째로 화덕에 넣어 요리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피지와 카우카 계곡 지대 모두 시체를 토막 내서 요리했다.

두 지역 모두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사로 잡은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성인 남성과 마찬가지로 먹어치웠다. 카우카 계곡 지역의 여자들은 종종 남자들과 함께 식인 축제에 참여했으나 윌리엄스에 따르면 피지에서는 "여자들은 바콜로를 잘 먹지 않았다."

시체는 대부분 식용으로 사용되었다. 카우카 계곡 지역에서는 사람의 갈비살을 가장 즐겨 먹었지만 내장, 예를 들어 심장, 간, 창자도 먹었다. 내장을 발라낸 몸통은 그냥 버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피지인들은 "심장, 허벅지, 팔꿈치 윗 부분의 팔을 진미로 여겼다." 피지인들은 사람을 먹을 때 그 유명한 '식인용 포크'를 사용했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피지의 한 추장은 적의 해골로 그릇이나 컵을 만들고 정강이 뼈는 바늘로 쓰게 했다. 그렇지만 피지에서는 카우카 계곡 지역의 뛰어난 전사들이 잘라낸 적의 시체를 전리품으로 잔뜩 쌓아둔 것과 달리 시체를 전리품으로 만드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 추장들은 적의 해골이나 말린 머리를 대나무 장대에 꽂아 자신의 집 밖에 세워두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장식품은 가까운 방문객들이 그 추장의 위대한 힘을 느끼고 공포와 존경심을 가지도록 했다.

최소한 카우카 계곡의 한 군장국가에서는 적의 시체를 통째로 훈제해서 장기간 보관했다. 이 집단의 가장 강한 추장은 시체를 훈제하기 위해 아주 큰 건물을 만들었는데 스페인 인들이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이 건물에는 약 400명의 적 전사들의 시체가 무기를 손에 쥐고 다양한 자세로 훈제된 채 빽빽하게 차 있었다.

이 두 지역에서는 식인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 졌을까? 그 규모가 상당했음은 확실하다. 윌리엄스는 1860년대에 피지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전사자는 1,500명에서 2,000명 정도라고 추산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솥이나 화덕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피지보다 인구가 더 많았던 카우카 계곡에서는 잡아먹힌 사람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정복 초기 스페인 연대기 작가 중 가장 신뢰할 만한 인물인 치에자 데 레온(Cieza de Leon)에 따르면 1538년의 대기근 당시 포파야얀의 주민 중 상당수는 "죽은 사람을 자신의 위장에 장사지냈다"고 하며 그 해에 약 5만 명이 살해되어 먹혔다고 한다. 트림본(Hermann Trimborn)은 이 추정치가 과장되었으며 기근으로 인한 특수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이 식인 행위인 것은 사실이다.

헤레라 (Herrera)에 의하면 카우카 계곡의 집단 중 하나인 아르마(Arma) 에서는 1년 동안 8천명이 잡아먹혔다. 트림본은 역시 이 추정치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으나 설사 희생자의 숫자를 줄여 잡는다 하더라도 대규모 식인 행위임은 분명하다.

보다 구체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다 정확할 가능성이 높은 치에자의 기록에 따르면 카라파(Carrapa)와 피카라(Picara) 두 부족은 그들의 숙적인 포조(Pozo) 족을 무찌른 뒤 300명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뒤에 전세가 역전되어 포조족이 카라파, 피카라, 그리고 파우쿠라(Paucura) 족을 무찔렀을 때는 페레키타(Perequita)라는 포조족의 추장과 그의 수하들은 단 하룻동안 100명의 적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사람을 잡아먹는 잔치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주로 참여한 것은 바로 추장들이었다. 피지의 추장들은 그들이 먹어치운 사람 고기의 무게로 유명했다. 이 중에서 라 운드로인데(Ra Undreundre)라는 추장은 다른 추장들 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 추장은 자신의 집 뒤에 먹어치운 사람의 숫자 만큼 돌을 쌓았는데 돌 한개 당 사람 한 명을 먹은 것 이었다. 당대의 한 목격자에 따르면 라 운드로이네의 집 뒷 마당은 쌓인 돌이 232 걸음에 돌의 숫자는 872개에 달했다고 한다. 게다가 많은 돌이 중간에 없어졌다고 하니 이것들 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그가 먹은 사람의 수는 900명은 되었을 것이다.

Robert Carneir, 'Warfare in Fiji and the Cauca Valley', Jonathan Hass(ed), The Anthropology of War(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pp.202~205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미식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