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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고객의 목소리

우리가 막 M-60 전차를 수령했을 무렵 에일즈(Stephen Ailes) (육군부) 장관이 유럽을 방문했던 일은 항상  기억하고 있네. 에일즈 장관은 천막 덮개 아래에 앉아 병사들과 점심식사를 했지. 그리고 에일즈 장관은 그 중 장관의 건너편 자리에 있던 한 병사, 그 친구는 대략 25년간 복무한 병장으로 경험많은 전차병이었는데, 그 병사에게 M-60 전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지. 그런데 그 친구는 그냥 자기 식판에서 햄을 한 조각 집어 들고는 흔들었네. 그 친구는 장관과 겨우 2-3피트 정도 떨어져 있었네.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지.

장관님. 저는 여지껏 탱크만 탔습니다. 그런데 기술자들이 이 빌어먹을 물건을 설계하면서 전차병들의 말을 들어 먹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자네들도 알겠지만 이 정도의 호평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장비를 다루는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찬사를 받기란 매우 어렵네. 내 생각엔 적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걸.

말이 나온 김에 더 이야기 하자면 59식 전차가 노획되어 후에(Hue)로 이송중인건 알고 있나? 베트남측은 59식이 매우 조종하기 어려운 전차라고 하더군. 그건 베트남군이 미제 전차를 조종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일세. (59식은) 파워스티어링도 없고 동기물림식 변속기(synchromesh transmission)도 없고 없는 것 투성이지. 그래서 변속이 어렵고 방향 전환도 어렵네. 한번 그걸 조종해 보라구.

에이브럼스 대장, 1972 5 27, 주간 정보 동향(Weekly Intelligence Estimate Updates)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Lewis Sorley(ed), Vietnam Chronicles : The Abrams Tapes 1968-1972(Texas Tech University Press, 2004), p.859

2008년 2월 10일 일요일

동맹군에 대한 에이브럼스 대장의 평가

이제 연휴도 다 끝났으니 내일 부터는 정상적인 일정이 시작되겠군요. 이곳에 들러주시는 모든 분들이 지난 5일간 별 탈 없이 잘 들 쉬셨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베트남전과 관련된 글을 하나 올립니다.

앞으로 한참 동안 여행기로 때우자니 그래도 이곳을 방문해 주시는 분들에 대해 무성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떡밥 중 하나인 외국인이 본 ‘국군’에 대한 글을 하나 (날림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냥 외국인이 아닌 상국의 대장군 에이브럼스 공의 평가인데 상당히 후한 편이더군요.

에이브럼스 :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은 정말 최고입니다.(The Australians and the New Zealanders are really first-class people.) 우리는 미군 부대를 호주군의 지휘하에 넣기도 합니다. 호주군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건 어떤 일을 하건 큰 걱정 할 필요 없이 그냥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군은 전투에 있어서 뛰어난 프로들입니다.(The Koreans, of course, are very professional in the fighting that they do) 그렇지만 그들은 계획을 세우는데 지나치게 몰두하는 성향이 있어 작전을 한 번 하려면 몇 달은 계획을 세우는데 허비합니다. 한국군은 모든 작전을 이곳 사이공의 사령부에서 세부적인 사안까지 승인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요구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굉장히 낭비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군은 운용하는데 있어서 융통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한국군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습니다. 한국군이 작전 수립을 완료하고 작전 준비까지 마친 다음에는 모든 것이 멋지게 진행됩니다. 한국군은 최고의 전사들입니다.(They’re excellent fighters.) 한국군 부대는 최상의 상태입니다. 일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군은 매우 잘 지휘 받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군의 중대 단위 장교들과 부사관은 매우 뛰어납니다. 육사출신들이 중대 단위 부대를 지휘하는데 배치되고 있습니다. 한국군은 동기 부여가 잘 되어 있으며 다른 모든 점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어떤 지역에 병력이 필요할 때 – 대사님 께서도 아시겠지만 상황은 유동적입니다 – 한국군을 제때 활용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다음으로, 태국군은 베트남에 투입되었을 때 한동안은 이들이 문제가 있으며 전투에 부적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태국군은 매우 훌륭한 전투부대 입니다. 즉, 제 말은 방어전투에 있어서 매우 훌륭하다는 것 입니다. 태국군은 방어전투에서 매우 훌륭한 성과를 보여줬습니다. 태국군의 전투 능력에 대해서 저는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태국군의 포병은 일반적인 화력지원에 있어 다른 나라의 포병들 만큼이나 훌륭합니다. 수 주전에 저는 근처에 있는 태국군의 화력지원거점(fire support base)을 방문했었는데 저는 그곳에서 그 기지는 여태까지 제가 방문한 남베트남에 있는 화력지원거점 중 가장 우수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들리(George M. Godley : 주 라오스 미국대사) : 그곳이 우리 미군의 화력지원거점 보다도 나았다는 말씀입니까?

에이브럼스 : 예, 그렇습니다. 그 곳의 수준은 매우 높았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사격 연습을 참관했는데 정말 엄청났습니다(god)! 만약 태국군이 제가 방문하기 이틀 전에 사격 연습을 했다면 저는 태국군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들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하지만 제가 참관하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태국군의 사격 시범은 정말 엄청났을 것 입니다. 태국군의 포격은 매우 정확하고 신속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여러 시설들 – 위생시설, 야전병원, 기타 다른 시설과 방화설비 등은 부족한 점을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성(聖) 바바라의 이름에 걸고 대사님께 말씀드리는데 태국군은 흔히 알려진 것 이상으로 포병 교리에 통달해 있습니다.

1969년 8월 5일, 에이브럼스 대장이 주 라오스 미국 대사 가들리(George M. Godley : 1969~1973)에게 한 브리핑의 녹취록 중에서

Lewis Sorley(transcribed), Vietnam Chronicles : The Abrams Tapes, Texas Tech University Press, 2004, pp.241-242

2006년 11월 21일 화요일

뭔가 궁색한 강대국

닉슨은 브랙퍼스트(Breakfast) 작전 실시 3일전인 3월 13일에 국방장관 레어드(Melvin R. Laird)와 만나 레어드의 남베트남 철군안에 대해 논의했다. 레어드는 휠러(Earl G. Wheeler) 대장과 함께 사이공에서 에이브럼스(Creighton W. Abrams, Jr) 대장 및 MACV 참모진을 만나 철군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막 워싱턴에 도착한 참이었다. 베트남의 미군 지휘관들은 이미 1년 전부터 철군에 대해서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워싱턴으로부터 명확한 지침은 받지 못했고 그에 대한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있었다. 베트남에 파견된 장성들은 철군은 북베트남과 상호 철수를 위한 협상의 일환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이브럼스 대장은 신속한 철군안에 찬성하는 대신 평정작전의 진도, 남베트남군의 강화, 적의 공격 완화 등 세가지 점이 개선돼야 철군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레어드는 이 의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했지만 닉슨 행정부의 집권 초기 내에 철군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레어드는 에이브럼스에게 “새 행정부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하기 전에(재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 3개월, 6개월, 9개월, 기왕이면 3-4개월 안에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레어드는 온건파가 아니었고 존슨 행정부 보다 더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선호했지만 그는 무엇보다 미국내의 정치적 동향에 민감했고 워싱턴이나 사이공에서 논의되고 있는 강경책은 실제로 실행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레어드는 남베트남에서 군사적 승리를 거두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닉슨의 베트남 정책은 잘해봐야 전쟁의 베트남화를 통해 남베트남군이 미국의 철수에 따른 공백을 메꿀 수 있도록 육성하고 북베트남과 미국의 상호 철군을 이끌어 내는데 그칠 것이었다. 그러나 레어드는 남베트남 군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것 보다 지속적으로 작전을 펼치는 MACV의 기본적인 방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또 북베트남과의 협상이 신속히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레어드는 이 점을 고려해 키신저의 협상 진행이나 에이브럼스의 견해와 상관없이 철군 계획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레어드는 1968년 까지만 해도 워싱턴의 그 누구도 고려하지 않고 있던 점진적인 일방적 철군을 기본 방침으로 결정했다. (후략)

Jeffrey Kimball, Nixson's Vietnam War, p.137~138


천자국의 굴욕.

럼즈펠드가 이라크를 쳐들어 갈 때 자신이 저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 했을까?

미국의 베트남화는 결국 돈만 잡아먹은 실패작이 됐다. 오늘 워싱턴포스트에는 이라크군 재건이 뭔가 꼬여가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가 하나 떴다. 이라크는 정치상황도 복잡하게 꼬여버렸으나 베트남보다 더 지독한 진창이라고 해야 하나?

사족 하나 더

위의 기사에서 이 부분은 정말 웃겼다.

Some of the American officers even faulted their own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task.

"If I had to do it again, I know I'd do it completely different,"

reported Maj. Mike Sullivan, who advised an Iraqi army battalion in 2004.

"I went there with the wrong attitude and I thought I understood Iraq and the history because I had seen PowerPoint slides, but I really did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