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독일은 점령지역에서 징발이라는 이름의 약탈을 통해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으라면 "군마"를 들 수 있을 것 입니다. 독일군은 전쟁 초기 부터 대량의 마필을 사용했으며 전쟁이 지속될 수록 그 양은 늘어만 갔습니다. 1939년에 독일군은 59만 마리의 군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1945년 1월에 이르면 1,198,724마리로 늘어납니다. 전쟁이 지속될 수록 병력이 증가했고 동시에 차량의 보충이 손실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수단에 의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이지요. 그런데 독일은 자체적으로 군마의 대량 소모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고 전쟁 초기부터 점령지에서의 군마 징발에 크게 의존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점령지역에서의 마필 감소를 가져왔는데 이것은 아직 기계화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아 축력에 의존했던 유럽의 농업 방식에 큰 피해를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독일군의 마필 징발이 유럽의 농업에 끼친 영향에 관심을 연구자로는 디나도(Richard L. DiNardo)가 있습니다. 디나도는 1988년에 발표한 Horse-Drawn Transport in the German Army라는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독일이 전쟁 기간 중 점령지에서 막대한 마필을 징발한 것이 전쟁 기간 중 유럽의 농업생산을 감소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전쟁 초기에 점령된 폴란드는 독일의 주된 군마 공급처가 되었고 1940년 서부전역에 동원된 보충용 군마의 대부분을 충당했습니다. 폴란드의 농업생산량 감소는 매우 놀라운데 1939년에 227만톤이었던 밀 수확량이 1940년에는 177만8천톤으로 급감했고 이것이 1942년에는 133만2천톤 까지 떨어집니다.1) 서부전역이 독일의 대 승리로 끝난 뒤에는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가 독일의 새로운 약탈 대상이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경우는 폴란드 만큼 약탈이 심하지는 않았으나 농업용 마필의 감소는 뚜렸습니다.(네덜란드의 경우 전쟁 중 마필의 숫자는 증가했는데 농업용 마필만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시 독일에게 가장 혹독하게 당한 것은 소련일 것 입니다.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1941년 6월 22일 부터 1942년 1월 20일까지 335,588마리(169,172마리 폐사+166,416마리 질병)의 말을 상실하는 끔찍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여기에 같은 기간 동안 보충된 마필은 불과 47,801마리에 불과했기 때문에 독일군은 어쩔 수 없이 폴란드나 서유럽산의 말 보다 체구가 작고 힘도 약한 러시아산 말을 보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89,725마리의 러시아 말이 노획되었습니다.2) 1942년 이후 러시아산 말이 대량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산의 약한 말을 지칭하는 Panjepferde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였다고 하지요.3)
사실 소련은 집단화를 추진하면서 대량의 농기계를 생산했기 때문에 축력으로 부터 해방된 것 처럼 보였습니다만 1930년대 부터 군수산업으로 전환이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축력에 계속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전쟁이 터지면서 농기계 생산이 사실상 중단되자 기존에 생산된 농기계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4) 여기에 마필도 대량으로 동원되거나 독일군에게 빼앗기게 되었으니 사람이 쟁기를 끄는 참담한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쟁 발발직전 소련에는 2100만 마리의 말이 있었는데 이것은 780만 마리로 감소했습니다. 소련측의 추정에 따르면 전쟁 기간 중 700만 마리의 말이 죽거나 독일군에게 약탈당했다고 합니다.5)
디나도의 연구는 개괄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매우 흥미로운 점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독일의 마필 징발은 유럽의 농업 생산구조에서 매우 취약한 부분을 타격했습니다. 독일은 전쟁 중 자체적인 자원의 부족으로 지속적으로 점령지역의 자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점령지역의 경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주된 원인이 되었고 오랫동안 상처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주
1) Richard L. DiNardo, 'Horse-Drawn Transport in the German Army',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Vol. 23, No. 1. (Jan., 1988), p.139
2) Hartmut Schustereit, Vabanque : Hitlers Angriff auf die Sowjetunion 1941 als Versuch, durch den Sieg im Osten den Westen zu bezwingen(Herford, Mittler und Sohn, 1988), s.97
3) Katherina Filips, 'Typical Russian Words in German War-Memoir Literature', The Slavic and East European Journal, Vol. 8, No. 4. (Winter, 1964), p.409
4) John Barber and Mark Harrison, The Soviet Home Front 1941~1945 : A Social and Economic History of the USSR in World War II(London, Longman, 1991), p.187
5) DiNardo, ibid.,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