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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일 목요일

[번역글] 독일의 약점- 유럽의 지도국은 정보 개혁 부터 해야 한다

며칠 전 번역했던 Merkel and Whose Army?와 관련 있는 글을 한 편 더 번역했습니다. 이글은 1월에 포린 어페어즈 인터넷 판에 실렸던 칼럼인데 안보적 위기 상황에서 무능력함을 드러낸 독일 정보기관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안보적 위기는 난민 유입으로 인한 테러리즘의 창궐이지만, 여기서 지적하는 독일 정보기구의 무능함은 다른 안보위기에서도 마찬가지 일듯 싶습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독일이 안보적으로 무능해 진 것이 가장 큰 문제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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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슈타인베르크Guido Steinberg


2016년 12월 19일 독일은 최초로 이슬람주의자의 대규모 테러 공격을 받았다. 튀지지 출신의 ISIS 지지자 아니스 아므리는 트럭을 몰고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광장을 공격해 12명을 죽이고 53명에 부상을 입혔다. 과거 서베를린 중심가에서 벌어진 이 공격으로 독일에서는 어떻게 테러에 대응해야 하는지 격렬하고 신경질적인 논쟁이 일었다. 이 논쟁의 결과는 아마 2017년 9월에 있을 독일 총선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수많은 독일인들이 독일 사법집행기관이 테러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제 독일에서는 국내 안보조직을 신속하고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현 체제에 만족하는 베를린과 대부분의 지역 정치인들은 독일이 극우 포퓰리즘과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두개의 위협으로 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국내 안보조직을 완전히 개편해야 한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예외는 바이에른 정도 이다. 만약 독일 중앙정부가 현재의 방향을 유지한다면 조만간 총선에서 현 집권당이 패배할 것이며 아마도 더 많은 테러 공격이 발생할 것이다.


독일은 위기에 처해서도 허세를 부리고 있다
독일은 이미 2007년 부터 지하디스트의 테러 위협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때 미국 NSA가 제공한 정보 덕분에 독일 정부는 알 카에다의 영향을 받은 세명의 조직원으로 이루어진 지하드 그룹인  ‘자우어란트 집단’의 테러 음모를 저지할 수 있었다. 자우어란트 집단은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 등 독일내에 있는 목표를 공격하려고 했다. 당시 독일은 이웃의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훨씬 작은 테러 위협을 받고 있었다.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 훨씬 오래 전 부터 북아프리카나 남아시아의 옛 식민지로 부터 유입된 지하디스트 조직들이 준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의 무슬림 집단은 대부분 터키 출신이어서 아랍 출신들에 비해 지하디스트가 되는 경우가 훨씬 적었고, 시기도 늦었다.

하지만 이런 유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남아시아나 중동으로 성전을 치르러 가는 독일 무슬림의 숫자는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2010년에 이르자 파키스탄에서 준동하는 서방 출신 지하디스트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 것은 독일인 무슬림이었다. 알 카에다에 가입한 몇몇 독일인 무슬림은 독일에서 테러를 저지르기 위해 귀국했다. 하지만 CIA와 NSA의 노력으로 이런 시도는 대부분 사전에 적발됐다. 이 중 하나가 2011년에 일망타진된 뒤셀도르프 테러단이다. 2010년 초 지하디스트의 위협은 잠시 가라앉았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고 ISIS가 준동하면서 젊은 독일 무슬림들이 선동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초기에 시리아로 향한 독일 무슬림들은 대개 바샤르 알 아사드에 맞서 싸우는 수니파 무슬림 동포들을 돕겠다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곧 샤리아에 따른 통치를 내세운 이슬람 국가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동기를 제공했다. 2017년 초 현재 약 900명의 독일 무슬림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물론 독일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시리아에서 돌아온 지하디스트들이 국내 정치에 심각한 위협이 되리라는 예측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와 벨기에의 테러 공격처럼 독일에서 2016년에 테러를 저질렀거나 테러 음모를 꾸민 무슬림은 대부분 2014~2015년에 걸쳐 유럽에 유입된 아랍이나 북아프리카 출신이었다. 이 테러리스트들은 2014년 시작된 난민의 물결에 섞여들어왔으며, 2015년 9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발칸반도를 통해 유입된 난민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서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ISIS는 메르켈이 제공한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 경험이 풍부한 테러리스트들을 보냈다. 그 중 하나가 2015년 11월에 프랑스에 발생한 테러였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은 벨기에와 독일에서도 테러를 준비했다. 또 ISIS는 독일에서도 새로운 테러리스트들을 충원하려 했다. ISIS는 난민들이 자신들을 받아준 나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난민사태로 인해 ISIS 추종자들은 수많은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지난 12월 베를린 테러 직전까지 벌어진 일이다.


신속하고도 촘촘한 감시망이 필요하다
독일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보 수집을 거의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해 왔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독일이 전통적으로 정보기관을 불신해온데 있다. 20세기 나치의 게슈타포나 동독의 슈타지와 같은 조직이 남긴 잔재였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테러 이후에도 독일 정부는 자체적인 정보 조직을 강화하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자국의 안보를 동맹에 의존했다. 미국이 독일내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적발하려고 했을때 독일 정부가 한 일은 기껏해야 이미 잠재적인 위협으로 인식된 인물에 대한 감시를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중동과 남아시아에서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위협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2016년에 적발한 테러 위협들을 살펴보면 독일이 얼마나 정보를 외국에 의존하는지 알 수 있다. CIA와 NSA가 독일 정부에 테러 첩보를 알려서 독일은 테러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도 미처 정보를 파악 못한 경우에 독일 정부는 그저 운에 모든 것을 맡겨야 했으며 테러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예를들어 미국 정부가 독일 정부에 시리아 ISIS 소속의 야베르 알 바크르가 베를린-테겔 공항을 공격할 것이란 정보를 제공한 덕분에 독일은 2016년 10월 라이프치히에서 그를 체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측이 외부로 부터 정보를 받지 못한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알레포에서 온 시리아 ISIS 소속 무함마드 달렐이 2016년 7월 안스바흐 음악축제에서 테러에 실패한 이유는 그가 설치한 폭탄의 기폭장치가 고장났기 때문이었다.

현재와 2015년 이전의 상황을 비교했을때 가장 큰 차이는 미국과 유럽 모두 난민 사태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로 이 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파리 테러 가담자들은 지속적으로 상호 교류를 하면서 시리아와 이라크를 오가던 ISIS 지휘관과 접촉했지만 유럽의 정보당국은 물론 NSA 조차 이들이 나눈 메시지를 감시할 수 없었다. 현재 사용되는 통신의 암호화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NSA의 감시망을 피해 파리 테러와 같은 공격을 계획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 유럽에는 지하디스트가 급증했고 ISIS의 테러 계획 수립도 훨씬 정교해졌다. 게다가 싸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널려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크게 유리한 상태다.

아니스 아므리가 저지른 테러 처럼 독일의 정보 및 안보 기구가 실패한 것은 문제다. 그는 2016년 2월 이래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그는 튀니지로 송환되지도 않았고 난민 신청이 기각된 뒤 체포되지도 않았다. 이런 심각한 안보적 참사가 있을 수 있는가. 아니스 아므리는 독일의 ISIS 지지자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고 그가 테러를 준비한다는 첩보까지 있었지만 2016년 9월 이래 그에 대한 사찰은 중단된 상태였다.


법치국가를 재건하자
베를린 테러 이후 독일 정부는 여러가지 후속조치를 취했다. 그 중에는 정부당국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에 전자 팔찌를 채워 감시하고,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 중 안보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자는 체포한다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것은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이지만 너무 늦었다. 이보다는 독일의 국내 안보 체계를 총체적으로 개혁해 앞으로 닥칠 테러를 막아내는게 필요하다.

독일 내에서 지하디스트들의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중구난방인 조직들을 중앙집권화 해야 한다. 각 주정부는 자체적인 정보 기구와 수사조직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는 바이에른 주정부 처럼 강력한 조직을 갖춘 곳도 있고 베를린 처럼 형편없는 수준인 곳도 있다. 각 기관들의 협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고 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아므리의 테러 사태때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모든 정보기관과 경찰 조직은 업무 효율화를 위해 연방정부 산하의 헌법수호청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과 연방범죄수사청Bundeskriminalamt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또한 연방정부의 정보조직도 강화해야 한다. 독일 내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고 해외의 테러리스트들과 자유롭게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은 심각한 사태다. 특히 최근 수년간 유럽에서 일어난 테러가 중동에 있는 상부조직과 수개월간에 걸쳐 연락을 주고 받은 뒤 일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독일 정보기관은 수년 내에 역량을 강화하고 연방정부는 정보기관의 활동 강화를 위한 법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미국 NSA의 광범위한 활동 범위와 역량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하지만 2016년에 실패한 것을 교훈 삼아 발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에는 난민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2016년에는 280,000명에 그쳤다. 하지만 이것은 발칸 반도의 국가들이 국경을 통제했고 터키가 에게해를 통해 난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유입된 뒤 북상하는 난민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으며 언제든지 폭증할 수 있다. 게다가 솅겐 조약 가맹국간의 정보 교류가 부실하고 독일 당국은 현재 다른 유럽연합 국가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위에서 언급한 개혁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낮다. 왜냐하면 정보 조직을 중앙집권화하자고 제안하면 강력한 저항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방 내무장관 토마스 드 메지에르가 2017년 1월 위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제한적인 개혁을제안했지만 각 주정부가 반발해 물거품이 됐다. 또한 독일의 안보 체계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개혁하려면 정치 체계 부터 바뀌어야 한다. 즉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거나 더 많은 테러 공격이 있기 전엔 어렵다는 뜻이다. 유감스럽게도 독일의 엘리트들은 이런 충격이 없는 이상 현상유지에 만족할 것이다.

2011년 7월 28일 목요일

모범답안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미국의 안보 관련 기관들은 왜 한반도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는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미육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50년 7월 21일, 미육군은 한국전에 대한 육군 참모총장 콜린스(J. Lawton Collins) 대장의 의회 특별 보고에 대한 문건을 작성합니다. 이 중 정보 실패에 대한 해명은 육군부 정보국장 어윈(S. LeRoy Irwin) 소장이 직접 작성했습니다. 이 문건은 총 3쪽으로 되어있는데 꽤 재미있습니다.

한반도 사태에 대한 우리 정보기관의 성과에 대해 많은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본인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태는 우리가 수집한 정보에 비추어 볼 때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는 점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정보기관들은 우방국들의 국경에 소련과 그 위성국의 군대가 언제든지 공세에 나설 수 있을 만큼의 병력과 물자를 배치했음을 보고해 왔습니다. 이중 일부 지역에서는 공격 행동이 임박했다는 충분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지만 현실화 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소련이 어떤 국경에 이미 배차한 전력으로 공격 행위를 취하려 했다면 어떠한 사전 경고도 없이 공격이 가능했을 것 입니다.

한반도의 경우에는 언제든지 남한에 대해 공세를 취할 수 있는 강력한 북한군이 38선 인근에 배치되었다는 점이 모든 정보기관들을 통해 보고되었습니다. 실제로 북한군은 남한에 대해 여러차례에 걸쳐 심한 경우에는 대대급 전력으로 제한적인 공세를 감행해 왔으나 매번 교전을 계속하지 않고 철수했습니다. 이와 같은 공격(전면공격)에 대한 경보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습이 완벽하게 가능했던 것 입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모든 활동을 통제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한미국대사 무초의 관할이었다는 점을 반드시 유념하셔야 합니다. 무초 대사의 군사 참모진은 한 개의 부서, 육군 무관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주한미군사고문단(KMAG)으로 알려진 한 집단의 육군 장교들로 구성된 사절단은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한 국제연합의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대한민국의 국내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한군을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주한미군사고문단은 이러한 각종 훈련 임무외에 정보 업무를 직접적으로 담당하지 않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북한의 활동과 그 의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나 수단이 없었습니다. 중앙정보국(CIA)이 모든 비밀 정보활동을 담당한 이래 군사고문단은 모든 형태의 첩보활동에서 배제되었으며 사실상 군사고문단원이 정보활동에 투입될 경우 고문단의 외교적 지위를 위태롭게 함으로써 정책에 위배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극동군사령관은 군수지원과 주한미국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거류민들을 철수시키는 임무 외에는 한반도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없었으나 그가 관할하는 구역의 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허가는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가 극동군사령관의 지휘하에 있지 않았으므로 그가 한반도의 상황을 주시할 수 있는 자체적인 수단을 확보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제한되었습니다.

5월 24일에 육군 정보참모부로 부터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이 방첩 활동을 강화했기 때문에 정보의 양과 질이 심각하게 감소했으며, 많은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정보 인력을 감축한 것과 미국의 경제 위축의  여파로 각 지역의 정보 인력이 감소한 점을 보고 받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도 적절할 것 입니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국외 정보 수집하는 것과 국내에서 정보를 분석하는 것이  심각하게 약화되었습니다. 사실 정보참모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국방 정보 기구들이 러시아의 공격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우리의 정보력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인은 이러한 보고를 받은 뒤 미국과 동맹국의 군대가 충분한 대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경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몇몇 문제점은 바로잡을 수 있었으며 그 밖의 것들은 본인의 책임 범위내에 넣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의 공격에 대한 경보를 때맞춰 받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정보 수집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모든 정보기관들은 세계 정세로 인해 그들의 앞에 놓여진 막대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부분 동원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정보기관들이 항상 적 지휘관들의 마음을 읽어내서 적군이 이미 전개되어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적의 지휘관들이 언제쯤 공격을 결심할지 알아내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점을 여러분께 설명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매우 빨리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들은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Tab D, Special Presentation to Congress”(1950. 7. 21), pp.1~3, RG 319, 319.12 Records of the Office of the Assistant Chief of Staff, G-2, Intelligence, 1918~78, Top Secret Correspondence, 1941~62, Entry 47, Top Secret Decimal File, 1942~52 Italy 1950 to 350.066 1950, Box 12

제목그대로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문건을 작성한 인물이 육군 정보국장인 어윈 소장인 만큼 자기 부서의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려는 것이 잘 드러나있지요.

여기서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1. 정보 실패의 근본적인 책임을 국무부와 CIA에 돌리는 점.
2. 육군은 책임을 질 위치가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
3. 예산 문제를 강조하는 점.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

물론 정보 실패의 책임이 국무부와 CIA에 있다는 주장은 문제가 많습니다. 극동군사령부는 물론 주한미군사고문단도 자체적으로 대북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지요. 문제라면 북한의 전력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 못했다는 점인데;;;;

이 문건은 좀 궁색하긴 하지만 조직을 방어하는데 있어서는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 콜린스 장군의 의회 특별보고에 대한 기록을 찾아서 비교해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군요.

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What I Found in North Korea

며칠 전 언급했던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을 번역해 봤습니다. 이미 언론에도 많이 언급이 되어 뒷북인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 일단 저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헤커 박사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실들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별도로 붉은 색 표시를 했습니다.

지난 11월 12일, 내가 마지막으로 영변 핵 시설을 방문했을 때 북한 과학자들은 나와 나의 동료, 루이스(John W. Lewis)와 칼린(Robert Carlin)에게 작은규모의, 최근에 완성된 산업수준의 우라늄 농축시설과 건설중인 실험용 경수로를 보여줬다.

나는 두 곳의 케스케이드(cascade) 실에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설치된 것과 최신의 통제실이 갖춰진 것에 놀랐다. 그리고 먼길을 거쳐 평양으로 귀환한 뒤 이 발견의 정치적 의미가 파장을 일으켰다. 북한의 핵 개발을 제한하는 것과 한반도의 조용한 긴장상태가 지금보다 중요한 적은 없었다. 특히 지난달 하순 남북한이 서해에서 충돌한 사건을 고려한다면 특히 더 그러하다.

비록 나와 다른 비확산 전문가들은 오래전 부터 북한이 우라늄 농축 계획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한 근거에 의거해 확신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규모와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는 십수개의 1세대 원심분리기가 아니라 완전한 가동상태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는 최신형 원심분리기들이 셀수 없이 줄지어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북한측은 우리에게 원심분리기 시설은 2009년 4월 부터 건설을 시작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특수한 원자재와 부속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원활하게 가동되는 원심분리실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주장은 신뢰할 수가 없다. 북한이 이러한 물자들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었는가는 국제적인 핵 비확산 체제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북한이 자체적으로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이나 강철합금, 고리자석, 베어링, 진공밸브 등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능력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이러한 설비들이 오래 전 부터 다른 장소에서 건설되어 가동에 들어갔으며 새로운 시설로 옮겨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는 것이다. 원심분리기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품목들은 파키스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조달 체계를 통해서 조달된 것으로 생각된다. 파키스탄의 전직 대통령 무샤라프(Pervez Musharraf)는 그의 회고에서  파키스탄 과학자 칸(A. Q. Khan)이 2000년 즈음에 원심분리기 24대 분에 해당하는 농축 시작용 부품(enrichment starter kit)을 조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칸이 2004년 체포되기 전에도 북한 과학자들이 칸의 연구소와 밀접하게 협력했으며 칸의 연구소는 원심분리설비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실시했다. 또 2001년 말에는 CIA가 의회 보고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 계획을 위해서 러시아와 독일로 부터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물자들을 획득하려 한다는 정보를 밝혔다. 그리고 최소한 몇몇 부품은 북한이 독자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북한과 이란이 미사일 기술에 대해 밀접한 교류를 시작한 이래로 두 국가의 협력을 통제할 수 없었다. 북한의 원심분리 시설은 이란이 국제 사찰단에 공개한 것 보다 훨씬 정교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란이 차세대 원심분리시설을 건설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북한은 우라늄 처리와 원자로 기술에 있어 이란 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것을 이란에 제공하는 것도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우라늄 원심분리 계획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설에 대한 사소한 흔적과 징후들은 평가를 골치 아프게 한다. 북한이 현재 어느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징표는 북한이 다른 나라, 이 경우에는 파키스탄으로 부터 물자를 조달하려는 활동과 기술협력을 살펴보는 것이다. 2002년, CIA는 이러한 징후들을 가지고 북한이 2000년대 중반 부터는 연간 두 개의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린바 있다. 2002년 10월,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 증거를 가지고 북한과 대립했고 이로써 비핵화를 조건으로 궁극적인 관계 정상화로 나가려 했던 1994년의 합의 체제는 끝을 보게 되었다. 합의가 파탄나자 북한은 이를 구실로 핵비확산조약을 탈퇴하고 폐연료봉으로 폭탄을 생산하기 위한 플루토늄을 재처리해 첫 번째 핵폭탄을 만들었다.

이 때를 되돌아 보면 2002년 10월의 대립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 원인은 정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합의 체제를 무너뜨린 부시 행정부의 잘못된 정치적 결단에 있다. 영변에서 북한측은 우리에게 나중에는 보다 큰 원자로를 만들 것이며 원자로 기술과 연료 문제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성공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우리를 안내한 북한 외무성 관리는 북한이 과거 경수로를 만들고 자체적인 농축시설을 만들겠다고 위협했지만 “헤커 박사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우리를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북한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미국의 행동이 그들을 이 길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북한에 경수로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1985년 소련과 두 개의 경수로를 제공받는 협정을 체결한 이래로 진지하게 경수로를 추진했다. 합의체제는 핵무기 제조에 유리하지만 원자력 발전에는 불리한 흑연감속로를 대체하려는 것 이었다. 반면 경수로는 폭탄 제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전력 생산에는 매우 좋다. 2009년 4월 5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고 예상대로 UN의 규탄이 나오자 북한 정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우리는 주체적인 원료와 기술에 기반해 100퍼센트 작동하는 경수로를 개발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제 북한은 호언했던대로 25~3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소형의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나는 북한이 진짜로 원자력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경수로가 폭탄 제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는데도 쓰일 수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경수로에서 만들어낸 플루토늄은 기존의 흑연감속로에서 생산한 플루토늄 처럼 폭탄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사실 북한이 플루토늄 폭탄에 필요한 연료를 더 필요로 한다면 경수로를 만드는 대신 기존의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면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원자로의 건설은 몇 가지의 정책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경수로는 농축 우라늄을 필요로 하는데 만약 원자로 연료로 사용할 농축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북한은 이것을 쉽게 고농축우라늄 폭탄의 원료로 전환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이란의 핵 계획에 대해 우려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 시설들을 공개하면서 미국의 정책 입안가들에게 진지하게 고려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경우 시설 공개는 핵 계획이 외교 정세에서 북한에 유리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미국의 대선 일정에 맞춰 사전에 조율된 계획의 일부일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국제 사회가 2009년 4월의 로켓 발사를 비난한 뒤 공식적으로 6자 회담에서 탈퇴하고 국내 정치용으로, 그리고 국제 사회에 북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핵 기폭장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게 위해 2차 핵실험을 실행했다.

동시에 북한은 소형 경수로를 설계하고 영변의 연료봉생산시설의 일부를 전환하고 원심분리기를 설치하여 농축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우리의 방문 일정을 그들이 계획을 완료한 시점에 맞추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오랫동안 품어왔던 전력 생산용 경수로에 대한 야심에 한발짝 다가서면서 우라늄 농축 계획의 필요성을 정당화 하려 했다.

진실은 북한이 처음 부터 핵무기와 전력 생산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플루토늄과 우라늄 계획을 함께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핵무기와 전력 생산 때문에 플루토늄 계획을 선호했었으나 동시에 1994년 합의 체제의 일환으로 미국이 전력 생산을 위한 경수로를 제공한다면 플루토늄 폭탄 계획은 맞바꿀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북한은 칸 박사와 접촉하고 합의 체제가 매우 느리게 이행되면서 1990년대 후반 폭탄 생산을 위해 우라늄 계획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무렵에는 많은 정보 보고서가 보여주었 듯 북한은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을 본격적으로 조달하고 있었다. 2002년 10월의 외교적 대립은 북한이 2003년 플루토늄 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만들었고 그 뒤의 핵실험을 통해 폭탄 개발에 성공했음을 보여주려 했다.

북한이 이번에 우리게에 보여준 현대화된 원심분리시설은 북한이 결코 폭탄 생산을 위한 우라늄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북한은 충분한 원자재와 부품을 획득하였고 이것들을 가공하고 조립해서 작동되는 원심분리기를 만들었고 그 다음에는 은폐된 시설에 설치해 가동에 들어간 뒤 다시 영변으로 그것들을 재빨리 옮겨서 설치했다. 우리가 목격한 원심 분리 시설은 핵폭탄이 아니라 원자로의 연료를 생산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핵무기 생산시설을) 과거 한 차례 사찰을 받았던 장소에 설치해 놓고 외국인들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위한 시설도 현재 북한의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이것이 동북아시아의 안보문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이다. 우리가 추정하기로는 북한은 이미 네개에서 여덟개의 초보적인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양의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한다고 해도 북한의 위협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고농축 우라늄으로 폭탄을 만드는 것은 더 쉽지만 보다 복잡하고 소형의 폭탄을 만드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북한이 현재의 폭탄 보유량을 유지하거나 폭탄을 조금 더 생산할 생각이라면 지금 가지고 있는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재가동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핵무기 보유량을 본격적으로 늘릴 생각이라면 현재의 농축시설의 생산능력을 확대하거나 별도의 비밀 시설을 건설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당장 원심분리기를 늘릴 수는 없을 것이다. 원심분리기를 늘리는 것은 중요한 재료와 부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의 광범위한 불법 조달 경로를 봉쇄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늘리는 것 보다 더 골치아픈 것은 북한이 핵물질이나 핵물질 생산 시설, 특히 원심분리기 기술과 같은 것을 수출할 가능성이다. 게다가 북한은 경수로와 농축 시설을 공개함으로써 사실상 비핵화의 개념을 재정립했고 외교적 방식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가까운 시일 내에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을뿐만 아니라 경수로 계획과 원심분리시설도 계속해서 추진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플루토늄 계획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거의 성공할 수 있었지만 우라늄 계획은 그와 같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라늄 계획은 플로토늄 만큼이나 골치 아프지만 플루토늄 계획 보다 훨씬 그럴싸하게 평화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우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외무성의 관료는 북한이 2005년 6자 회담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계속해서 지지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시발점으로 미국이 2000년 10월의 북미 공동 성명을 재확인 해 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장기간의 외교적 과정의 최고점이었던 이 문서는 양국 정부가 상대국에 대해 적대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과거의 적대 관계에서 자유로운 새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함께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확인하는 것 이었다.

이제 미국은 동북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핵 문제에 국한시키지 말고 전반적으로 재검토 해야 할 시점에 왔다. 근본적이고 항속적인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미국 정부는 내가 “세가지 No”에 대한 답으로 하나의 Yes 라고 부른 것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 (세 가지 No는) 더 이상의 핵폭탄 생산을 하지 않을 것, 핵폭탄의 개량을 하지 않을 것, 그리고 핵 물질의 수출을 하지 않을 것이다.(no more bombs, no better bombs, and no exports) (한 가지 Yes는) 미국이 북한의 근본적인 안보적 불안을 공동 성명의 취지 내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다. 우리가 외무성의 안내인에게 북한이 세가지 No와 하나의 Yes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명확하게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우리도 이에 대답할 것 입니다.”

북한이 원심분리시설을 공개한 것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그 어느 때 보다도 어려우면서 시급하게 하고 있다.

엉성한 날림 번역 이긴 합니다만 전반적인 요지를 전달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듯 싶습니다;;;;

일단 저는 북한이 핵 무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헤커 박사의 제안에 대해서는 약간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특히 제 마음에 가장 걸리는 헤커 박사의 제안 입니다. 더 이상의 핵폭탄 생산을 하지 않을 것, 핵폭탄의 개량을 하지 않을 것, 그리고 핵 물질의 수출을 하지 않을 것(no more bombs, no better bombs, and no exports)은 전체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긴 합니다만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지 의문입니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 핵확산 방지를 위해 북한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핵 무기를 묵인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앞이 깜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