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21일 목요일

1958년 북한 군대의 숙청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 하나

개인적으로 북한군의 1958년 대규모 숙청은 상당히 흥미있는 사건이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문제는 (물론 정확히 파악하는게 불가능 하겠지만) 이 숙청으로 군을 완전히 장악한 만주파 지휘관들의 능력이다.

이야기를 잠깐 돌려 소련의 경우를 보면 1937년-38년의 육군에 대한 숙청은 흐루쇼프 시기에 스탈린 격하와 함께 선전한 것 처럼 군의 유능한 간부단을 완전히 쓸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스탈린 반대파의 주장대로 정말 유능한 간부들이 숙청으로 전멸했다면 주코프와 샤포쉬니코프는 하늘에서 떨어진 인간이 틀림없고 그외에 전쟁 초-중기에 군의 중추를 담당한 사단장 이상급의 장교들은 무었이겠는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숙청이 소련군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영미권 소련학계에서 많은 재평가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우리의 북조선은?

북조선의 군대 숙청은 전쟁이 끝나고 5년이나 지나 이뤄졌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소련은 숙청 직후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장교단의 자질을 검증할 기회가 있었지만 북한의 경우 군대 숙청을 통해 한국전쟁에서 자질을 검증 받은 연안계와 소련계가 사실상 전멸했다. 물론 만주파의 군사적 자질을 폄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궁금함이 더 하다.

일단 연안계의 경우 민족보위부상 김웅, 총참모장 리권무, 부참모장 최인, 총정치국부국장 김을규, 공군사령관 왕련, 해군참모장 김칠성 등 1958년까지 남아있던 고위간부단이 완전히 전멸당하고 소련계는 소련으로 망명, 또는 귀국해 버렸다.

결국 그 자리를 메운 것은 만주계였는데 과연 이들의 지휘능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가 궁금한 점이다.(물론 소련측은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려면 이들 만주계가 한국 전쟁 기간 중 어느 정도의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자료가 있어야 될텐데 현재 내 수준에서 그런 자료를 입수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고 북한쪽의 선전용 찌라시들을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북한쪽 일차 사료들이 공개된다면야 좋겠지만 그게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할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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