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18일 일요일

아무리 다급해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만드는 독일인들

아래의 이야기는 1944년 겨울 부다페스트에 포위된 독일군이 부다페스트 근교의 한 독일계 마을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부다페스트가 포위된 뒤 독일군이 Solymar에 주둔하게 됐다. 하지만 독일군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전쟁으로 남성들이 징집됐던 터라 독일 병사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독일 병사들은 장작을 패거나 추수를 도왔고 마을 사람들은 독일 병사들을 매우 좋아했다. – 물론 이들은 아기가 아니라서 같은 침대에서 재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독일군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마을 사람들을 위해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줬다. 병사들 중 한명은 Erzsebet에게 자신의 가족 사진을 보여주고 이름을 적어줬다고 한다. 그 병사가 적은 것은 아돌프 헤르만 라인플루스라고 돼 있는데 Erzsebet은 라인플루스가 병사의 이름인지 아니면 그 병사의 고향 마을 이름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병사 한명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가했는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크리스마스만 되면 포위망 안에 갇히네요.”

소련군은 Solymar를 점령하자 독일 부상병들을 학살했다. 소련군은 마을 광장에 카츄샤를 배치하고 Varhegy(부다에 있는 성채언덕, 독일군의 마지막 거점 중 하나)를 포격했다. 나중에 포위된 독일 무장친위대 병력이 포위망을 탈출하려 했을 때 이들 중 일부가 Solymar로 들어왔고 소련군은 일시적으로 후퇴했다. 마을사람들은 독일군들에게 식량을 주고 도망치는데 도움이 되도록 옷을 빌려줬다. 하지만 도망치던 독일군 대부분은 소련군에게 잡혀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 그리고 소련군이 Solymar를 다시 점령한 뒤 남은 패잔병들도 사로잡혀 죽었다. 마을사람들은 독일군을 좋아했기 때문에 학살된 독일군들을 마을 묘지에 매장했다. Erzsebet도 일년에 한번 라인플루스의 무덤에 꽃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Cecil D. Eby, Hungary at War : Civilian and Soldiers in World War II, The Pennsylvan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8, p201

포위망에 갇혀 오늘 내일 하는 중에도 크리스마스는 잘 챙기는 걸 보면 역시 독일인들은 크리스마스를 아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댓글 7개:

  1. "크리스마스만 되면 포위망 안에 갇히네요"... 안구가 촉촉해지는군요.

    그나저나 저 마을 사람들은 무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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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독일군들이 저곳은 열등인종마을로 보지 않았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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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텐보로//헝가리는 독일의 동맹국이죠. 이탈리아나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처럼 독일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준 유일한 동맹국입니다(전적으로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독일도 그런 헝가리인들을 열등인종으로 취급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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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행인님 // 바로 저 뒷부분에는 소련군의 점령이후 자행된 약탈과 강간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아텐보로님 // 저기는 독일계 주민이 거주하는 마을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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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런면에서 핀란드는 독일동맹국 치고는 정말 운과 여건이 좋았던것 같습니다. 전후 영토를 꽤 빼앗기긴 했지만 서구와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었고, '부르주아 동네'라고 모스크바가 욕을 해대도 공격이나 제재를 당하진 않았으니[..]

    (슈타인호프님// 독일이 헝가리를 어떻게 취급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후 헝가리의 독일계주민들의 꼴은 그리 좋진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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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독일계 주민들인줄은 몰랐군요. 그렇다면 확실히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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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라피에사쥬님 // 독일계 주민들은 곳곳에서 된서리를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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