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5일 화요일

전쟁은 물량만으로 하는게 아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을 넘긴 1942년 12월 12일, 전황이 일본에게 불리하게 꼬여가던 이 시점에 식민지 조선의 경성에서는 皇國臣民 함상훈(咸尙勳), 홍익범(洪翼範), 류광렬(柳光烈), 이정섭(李晶燮) 등이 모여 제국의 앞날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류광렬과 이정섭이라는 양반들의 대화가 참 감명 깊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몇몇 표현은 현대어에 맞게 고쳤습니다.)

류광렬 : 지금 미국의 생산력 확장이라는 것은 금년 1월 6일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교서에 의하면 천문학적 숫자를 열거하고 있는데 설사 그 숫자에 가깝게 생산이 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생산된 군수품의 전부가 태평양전에 쓰이는게 아니고 세계 각국에 수송되어 영국, 소련, 또는 중경으로 가는 것이 있으니까 실제로 태평양에 오는 것은 그 중의 몇 분의 일 밖에 아니 될 겝니다.

그렇지만 어떻든 그들의 유일의 위안은 생산력에 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대동아전(大東亞戰) 전에 처칠이 일본은 강철의 생산이 빈약한데 어떻게 이기겠느냐고 한 것을 보아도 그런 것을 알 수 있지만 전쟁은 무기다소(武器多小)에 좌우되는 것 만은 아닙니다. 군사전문가가 아닌 ‘시로도(素人)’가 돼서 잘 알지 못합니다만 정부나 군 당국자의 말을 들어보아도 그렇고 전번에 한 스즈끼(鈴木)총재의 말에도 전쟁은 天地人을 갖추어야 하나 결국은 사람에 있다 했고 해군 당국자도 적의 생산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되나 과소평가해서도 아니 된다는 말을 했고 도고(東鄕)원수도 백발일중(百發一中)의 포 백문을 가지는 것 보다 백발백중(百發百中)의 포 일문을 가지는 것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적이 백발일중의 포 백문을 만드는 동안에 여기서는 백발백중의 포 일문만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수준을 확보해 가야만 하겠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도 무제한으로 군수품을 확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1944년도까지 보아 확장계획이 완성되면 반격해보겠다는 것이지 언제까지나 군기확장만은 못할 겝니다. 한도가 있을 게니까요. 군기확장과 같은 비밀에 속하는 것을 신문에 공개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도 다분히 선전의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은 군확(軍擴)이란 것도 그것이 무한량이 아닌 한 년한(年限)이 있을 때 까지 튼튼히 대비만하고 있으면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적의 심중과 계획을 잘 토도(討度)하여 여기에 대비할만한 생산력 확충에 주력하여 만전을 기할 것 뿐입니다.

투혼에 불타는 황군의 百發百中의 포 일문

VS

정신박약 양키들의 百發一中의 포들


이정섭 : 적국측의 곤란은 물질보다 인적자원에 있겠는데 제아무리 저희들 말대로 1944년까지 400만 兵을 확충한다 치더라도 남는 것은 병의 기술문제이지요. 가령 비행기를 완전히 조종하려면은 적어도 2년 동안 맹훈련을 받지않고는 쓸만한 것이 못되고 함선도 240만톤이나 만들어 내겠다 장담하지만 완전한 선상생활을 하려면 적어도 20년은 지나야 한답디다. 사관학교를 나와 20년 지나서 함장격이 될 수 있으니 전쟁 나기 전에 얼마나한 인원을 길러뒀는지는 모르지만 도저히 많은 기술자가 없을 줄 알어요. 설혹 기술이 있다쳐도 가장 요긴한 투혼이 아군에게 따르지 못하고 정(신)력이 박약해놔서 아까 류광렬씨 말씀같이 기계력이 충실해 진다 쳐도 일본 반공은 못할 것입니다.

조광 1943년 1월호, '世界政局의 前望', 31-32쪽

과연 이 양반들이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한 건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황국신민으로서 습득한 정신력(?) 중시의 전통은 한국전쟁을 거쳐 오늘날에도 조금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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