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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2일 목요일

"Armor In Battle" Special Edition for the Armored Force- 75th Anniversary


미 육군 기갑학교가 2016년에 간행한 "Armor In Battle" Special Edition for the Armored Force- 75th Anniversary을 읽어봤습니다. 군대에 계신 분들이 읽어보시고 추천하는 평을 먼저 접한 뒤 읽었는데, 역시 군대에서 교육적인 목적으로 집필한 책이다 보니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갑 병과 창설까지의 약사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 점령기의 기갑부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파나마 침공
-걸프전쟁
-발칸반도의 평화유지작전
-테러와의 전쟁

군대의 교육용 서적이어서 그런지 최근의 전쟁인 걸프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시 기갑부대 운용에 관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양만 따지면 제2차 세계대전기에 대한 서술 보다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부분이 조금 더 많을 정도입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기의 실전 사례도 교육적인 효과는 있겠습니다만 현재와는 기술적 환경과 전장의 환경이 많이 다르니 최근의 교전 경험 보다는 효과가 적겠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대한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기서는 북아프리카 전선과 이탈리아 전선의 제1기갑사단, 1944년 아라쿠르 전투의 제4기갑사단, 뉴기니아 전역의 제41보병사단, 이오지마 전투의 제4해병사단의 전투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기 미군의 기갑작전 하면 자주 언급되는 노르망디와 아르덴느 전역의 사례가 제외된 점이 특기할 만 합니다. 아마 이 두 전역은 지나치게 많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제외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전쟁 부분에서는 서울 탈환작전 당시 시가전에서의 전차 운용 경험,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의 전차 운용 경험을 다룬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발칸반도의 평화유지 작전과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기갑부대 운용은 현대의 군인들에게 매우 유용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작전의 특성상 대규모 기갑부대 운용 보다는 소규모의 전술적 운용과 시가전 및 대게릴라전 같은 상황이 대부분입니다만.

2013년 3월 24일 일요일

BB-64 위스콘신

노퍽에서 맥아더 기념관을 구경한 뒤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BB-64 위스콘신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위스콘신은 미국에서 건조되어 완성된 최후의 전함이죠. 이날 다른 일정 때문에 관람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바깥에서만 구경한 것이 아쉽더군요. 이런 곳은 좀 여유있게 방문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BB-64 위스콘신은 미국에서 첫번째로 구경한 전함이었습니다. "전함"의 실물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지라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유감스럽게도 내부는 구경하지 못했으니 바깥에서 잠시 구경하며 찍은 사진을 몇장 올려봅니다.




위스콘신의 함수는 사고로 파손되어 같은 급의 켄터키의 함수를 이식했다죠

이 위치에서 보면 정말 그 거대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한국전쟁 관련 기장이 둘이나 있네요

2번 포탑을 찍어 봤습니다.



5인치 부포용 Mk.37 사격통제체계의 Director


그리고 위스콘신의 좌현쪽에는 수병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이것도 나름 유명한 물건이더군요. 시큰둥해 보이는 표정이 자대 복귀를 앞둔 듯 싶습니다...



블루엔젤스 마킹을 한A-4

늘 그렇듯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오겠다는 생각만 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커서 그런지 더 근사해 보이더군요.


2012년 10월 8일 월요일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2

2012년은 미해병대 항공대가 창설된지 100주년이 된다고 해서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에서도 특별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미해병항공대를 주제로 한 미술전이었는데  꽤 유명한 그림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전시품의 사진을 찍었는데 제가 사진찍는 재주가 없어서 몇몇 그림은 제 모습이 아주 또렷하게 비치더군요. 그나마 사진이 잘 찍힌 작품 중심으로 올려봅니다. 전시품은 해병대 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것이 많은데 일부는 스미스소니언 소장품 입니다.

"Raid on Thielt", James Butcher, 1985
1918년 10월 14일, 미해병항공대가 최초로 단독 전투임무를 수행한 Thielt 공습을 주제로 한 그림입니다. 


"Aerial Resupply", Charles Lock, 1980
이 그림은 미해병항공대가 최초로 공중보급 임무를 수행한 1918년 10월 초의 작전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독일군에 의해 고립된 프랑스군에 대해 영국공군과 함께 공중보급을 실시했다고 하는군요.


"Bombing Mission in de Havilland 9s", John T. McCoy Jr., c.1950s

"USMC Vought Corsair", Merv Corning
이 그림은 1928년 미해병대가 니카라과에 파견되었을 당시의 작전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당시 해병대의 OS2-U 커세어는 물자수송, 부상병 후송등의 임무에서 활약했다고 하는군요. 사실 이 작전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게 없지만 이 그림만큼은 다른 책에서 본 기억이 있어 올려봅니다.


"P-40B", Stanley Stokes
아마 이 그림을 모르는 분은 별로 없을 듯 싶습니다. 2차대전 당시 미해병대의 에이스였던 그레고리 "페피" 보잉턴이 플라잉 타이거즈에 있을 당시의 전투를 묘사한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입니다. 원본을 스미스소니언이 소장하고 있었더군요.


"Cram's Blue Goose", Albert Michael Leahy, c1974
이 그림도 꽤 유명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요. 과달카날에 주둔한 캑터스 항공단의 단장 로이 가이거(Roy S. Geiger) 준장의 조종사였던 잭 크램(Jack R. Cram)소령이 가이거 준장의 전용기인 카탈리나 비행정으로 단독 출격해 일본군 선단에 어뢰 공격을 가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Grumman F4F-4", R. G. Smith, 1974

"Aviator's Debriefing", Alex Raymond, 1945
호위항공모함 길버트 아일랜즈의 조종사들이 임무를 마친 뒤 정보장교로 부터 설명을 받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도 꽤 유명해서 책에서 가끔씩 볼 수 있지요.


"Vought F4U Corsair", John Young, c1970s


"Marine Helldivers", Paul Arlt, 1945
2차대전 당시 해병대의 항공정비 부사관이 만화풍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헬다이버 정비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Vought F4U-4 Corsairs", R. G. Smith, 1978
이 그림을 여기 올린 이유는 제가 반공청년(?) 이라서 그렇습니다. ㅋ.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Yak-9를 격추시키는 미해병항공대의 커세어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Landing Zone", Horace Avery Chenoweth, 1978
역시 한국전쟁을 다룬 그림입니다. 미해병대 제161헬리콥터수송대대의 HRS-1 헬리콥터가 병력을 수송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Opal 2", Albert Michael Leahy, 1961
이 그림도 꽤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1957년 미국 대통령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게 된 해병대의 제1실험항공대대(Marine Experimental Helicopter Squadron 1)가 핵전쟁 등 긴급사태 발생시 중요 요인을 수송하는 임무를 훈련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앨버트 리히가 바로 이 대대에서 조종사로 3년간 복무했다고 하는군요. 그림에 나온 기체는 UH-34D입니다.


이제 베트남 전쟁 시기를 다룬 작품들입니다. 당시에 그려진 작품이 꽤 많습니다.


"Peasants Observing Landing", Wayne W. Shaw, 1966
베트남전쟁을 이야기 하면 흔히 떠올릴법한 모습입니다. UH-1 대신 CH-46이 그려진 것을 빼면요.


"Whisked to Helicopter", John Gorth, 1967
2차대전 당시 부터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존 고스(John Gorth)의 작품입니다. 2차대전 당시와 비교했을때 눈에 띄는 변화였던 신속한 부상병 후송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Wrechked Pilot's Chair", Richard L. Yaco, 1968
베트남전의 양상 하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피격되어 파손된 헬리콥터 조종사의 좌석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Vertical Envelopment", Edward M. Condra III, 1968
역시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1964년 처음 도입된 CH-46이 상륙강습함 복서에서 운용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CH-46과 현대적 상륙강습함의 등장으로 미해병대는 이른바 "Vertical Envelopment" 개념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지요,.


'
"Carrier Bound", Peter Michael Gish, 1969
이 그림을 그린 피터 마이클 기쉬는 해병대 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전한 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기쉬의 작품이 다수 전시되었습니다.


"A-4 Skyhawk, Chu Lai", Nicholas Solovioff, 1967

"A-4 Driver", Peter Michael Gish, 1969
베트남 전쟁 당시 500회의 전투출격을 기록해 "Mad Bomber"라는 별명을 얻은 밥 틸슨(Bob Tielsen) 예비역 대위의 초상화입니다. 위의 "Carrier Bound"를 그린 피터 마이클 기쉬의 작품입니다.


"Harriers, A pair", Leonard H. Dermott, 1971
미해병대는 영국군이 해리어를 처음 도입했을 당시 부터 이 기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미군이 해리어를 처음 도입한 1971년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미해병대는 AV-8A가 도입되고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해리어를 잘 개량해 가면서 써먹습니다. CH-46 만큼이나 장수만세를 누린 기종이죠.


베트남전쟁 이후를 다룬 작품들은 멀쩡히 찍힌게 별로 없어서 여기에는 조금만 올립니다.


"Breathe Easier", Keith Ferris, 1981
이 작품은 전시된 작품들 중에서 좀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인 케이트 페리스가 해리어의 산소공급장치를 만든 회사를 위해 그린 광고용 일러스트레이션 이라는군요.


"Helo Pilot", Donna J. Neary, 1991


"Helo Relief", Peter Michael Gish, 1993
이 그림은 걸프전 직후 미군이 쿠르드족에 대한 구호작전을 실시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미군 공간전사에 따르면 이당시 쿠르드족은 구호품으로 지급된 MRE를 매우 싫어했다고 하죠.


"Viper Inbound", Alex Durr, 2006
이라크전 당시 부상병을 후송하는 CH-46을 호위중인 AH-1W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전시품의 대부분은 회화작품이었지만 그외의 전시물도 일부 있었습니다. 해병대 조종사의 제복도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첫번째 사진은 1차대전 당시 미해병항공대 조종사의 정복이고 두 번째 사진은 이라크전 당시 미해병항공대 여성 조종사의 조종복입니다.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어떤 정치인의 기록정신


언제나 그렇듯 밀린 RSS피드를 확인하다 보면 며칠 지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접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즈 1월 19일자에서는 2003년 이라크에서 노획한 이라크 정부 자료 몇 건을 공개했는데 이게 꽤 재미있습니다.

관련기사 : Hussein Wanted Soviets to Head Off U.S. in 1991

이 기사와 함께 영어로 번역된 노획자료도 함께 실렸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고르바초프에게 중재를 요청했다가 강대국 정치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는 후세인의 모습을 보니 안구에 습기가 차는 동시에 만약 우리가 저 꼴이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 집니다;;;;

뉴욕타임즈가 공개한 번역문을 읽다 보니 재미있는 구절도 눈에 띄는데 특히 사담 후세인의 투철한 기록 정신이 재미있군요. 걸프전쟁 당시 후세인과 이라크 공보장관 하마디(Hamid Yusuf Hammadi) 간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고 합니다.(이 문서의 10쪽을 보십시오)

후세인 : 전쟁 중인 만큼, 중요한 문서들은 두 개의 사본을 만들어서 각기 다른 두 군데의 장소에 보관해야 하네. 만약 여기가 폭격을 받거나 불에 타버리면 어쩌겠는가.

하마디 : 각하. 저는 서류보관함과 금고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후세인 : 하지만 아직 한 군데에 있지 않은가. 두 개의 사본을 각기 다른 두 군데의 장소에 보관하도록 하게.

하마디 : 알겠습니다. 각하.

후세인 : 이런 자료들은 반드시 최소 두 개의 사본이 있어야 하네. 하나는 대통령궁으로 보내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보관하도록 하게.

하마디 : 알겠습니다. 각하.

히틀러도 그랬지만 이런 자료들을 남겨주는 독재자들은 호사가들에게 고마운 존재입니다. 만약 후세인이 스탈린 처럼 기록을 남기는 걸 싫어하는 인간이었다면;;;;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

클린턴이 대선 출마를 고려하던 무렵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클린턴과 그의 측근들은 대체로 대선의 가능성에 대해 약간 긍정적이거나 최소한 분위기를 살펴보자는 쪽이었다. 대선에 출마한다는 구상은 4년 전 부터 주지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측근들이 고려하던 것 이었다. 클린턴은 1988년 대선을 얼마 앞두고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했으나 그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철회해야만 했다. 그러나 대선 출마에 대한 구상을 결코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1990년, 클린턴은 재선 운동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와 그의 참모들은 적절한 시점에 성공적인 전략을 사용했으며 그는 다시 낙승을 거둘 수 있었다. 클린턴과 그의 아내 힐러리, 그의 선거참모인 프랭크 그리어(Frank Greer), 여론조사가인 스탠 그린버그(Stan Greenberg), 그리고 소수의 가까운 측근들은 주지사직을 확보하자 즉시 1992년 대선에 대해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모두 클린턴이야 말로 민주당을 통털아 가장 유능한 중도적 인물이라고 믿었다. 이들의 모임은 1990년 12월 초 부터 시작되었으며 1991년 초에는 더욱 더 심각하게 진전되었다. 그러나 그때 걸프전쟁이 터졌으며 부시의 인기도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별반 잃을 것이 없던 클린턴 조차도 대선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클린턴은 그리어에게 이렇게 물었다.

"미국인들이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대통령을 내쳤다는 이야길 들어 봤나?"

그리어는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 했다고 대답했지만 또한 매우 유동적인 시대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적 대중매체의 위력 때문에 과거의 규칙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다는 것 이었다. 그리어는 정치적 흐름은 훨씬 빨리 변화하고 예측하기 어려워 졌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었는데."

그리어가 대답했다.

"저도 군대에 가지 않았고 베트남전에 반대했습니다."

그리어는 한 반전단체의 활동을 도운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리어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리고 국민 대부분이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클린턴은 마침내 대선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David Halberstam, War in a Time of Peace : Bush, Clinton, and the Generals, (Scribner, 2001), p.19

지원병제를 실시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병역이 한 번 정도는 고려해 봐야 할 문제였다는 점에서 꽤 재미있게 읽은 부분입니다.

최근의 사건들을 보면 군복무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 참으로 뜨거운 감자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회창 같은 거물도 자녀의 병역문제로 격침당했고 최근에는 정운찬 총리가 비슷한 문제로 고역을 치렀지요. 그리고 한 편에서는 또다시 식지않는 떡밥인 군가산점 문제가 다시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만약 대한민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지원병제로 전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집니다. 최소한 요즘 처럼 병역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정치인들은 없겠지요. 클린턴은 걸프전 때문에 병역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다지만 특별히 전쟁할 일이 없는 대한민국이라면 의무 병역이 폐지될 경우 정치에 뛰어들려는 엘리트들은 한가지 부담은 덜게 될 것 입니다.

시민의 상당수가 군대와 무관한 상황이 오게 된다면 병역문제는 어떤 존재가 될까요? 의무 병역제는 인권 침해라는 측면에서 아주 고약한 제도이긴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그나마 엘리트들이 적어도 선거철에는 시민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장치라는 점에서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고 봅니다. 물론 병역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치인들이 시민의 눈치를 봐야할 것이 많긴 합니다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병역 만큼 효과적인 것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MRE에 대한 유명한 일화

C 레이션에 대한 아래의 글에서 MRE(Meal Ready-to-Eat) 이야기가 나왔군요. MRE 이야기가 나온 김에 MRE에 대한 유명한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1991년 초, 걸프전 직후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구호활동 당시의 이야기 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서 많은 분들이 잘 아실 것 같네요.

병사들은 피난민들에게 MRE를 공급했는데 대부분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쿠르드족들 또한 이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쿠르드 피난민들은 MRE의 내용물을 낯설어 했으며 또한 그 맛에 대해서도 신통치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아사의 위험을 피한 뒤에는 더 이상 그것을 먹기를 거부했다. 그 무렵 위생과 건강상태가 개선되었고 병사들은 감자, 밀가루, 설탕, 쌀, 그리고 식용유와 같은 식재료들을 보급받아 배급했다. 피난민들은 그 뒤로 자신들의 요리를 만들어 먹을수 있게 되었다.

Robert H. Scales. Jr, Certain Victory : The U.S. Army in the Gulf War, Brassey, 1994/1997, pp.345-347

과연 Meal Rejected by Ethiopians, Meal Rejected by Everyone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일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