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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6일 화요일

『진흙속의 호랑이』 완역판, 길찾기, 2023, 진중근ㆍ김진호 역

 군사사 서적을 꾸준히 간행하는 길찾기 출판사에서 독일 국방군의 유명한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 『진흙속의 호랑이』 완역판을 냈습니다. 몇 년 전 영어 중역판이 오역을 비롯한 몇가지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상업성을 고려해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 처음 부터 새로 번역을 하는 일은 힘들었을 텐데 대단합니다. 『전격전의 전설』, 『독일 국방군의 신화와 진실』 등 다수의 군사서적을 번역한 육군대학의 진중근 중령님이 번역을 담당하셨습니다. 오토 카리우스는 매우 유명한 '전차 에이스'여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이름을 들어 봤을 겁니다. 카리우스의 회고록은 일찌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한국어판이 간행되기 전에도 카리우스의 회고록을 원서나 다른 언어의 번역판으로 접한 분이 많았지요.

 카리우스의 회고록은 서독 사회가 패전의 상처를 어느 정도 수습하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던 시점에 집필되었습니다. 이 점은 카리우스가 회고록의 서문에서 독일 국방군을 비판하는 서독 사회 일각의 기류를 불편해 하면서 비난하는 내용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참전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은 물론 전우들의 '명예'를 옹호하기 위해서 회고록을 집필했습니다. 카리우스가 독일 국방군을 옹호하는 태도는 현재 시점에서 제3국의 입장으로 볼 때 다소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회고록은 자신에 대한 방어를 위해 쓰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점을 차치하고 보면 이 회고록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료입니다.

 카리우스의 회고록은 대부분의 내용이 1943~1944년 제502중전차대대에서 활동하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카리우스가 군인으로서 정점에 있었던 시기입니다. 아마 저자에게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때 일 겁니다. 카리우스는 유능한 전술 지휘관 답게 자신이 전장에서 겪은 여러 경험을 설명하면서 여기서 전술적 교훈을 도출하려 합니다. 저자는 회고록의 곳곳에서 '당시'의 독일연방군 장병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교훈을 주려고 합니다. 특히 1944년 7월 소련군의 전략적 대공세를 맞아 혼란에 빠져 있을 당시 제227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대표적입니다. 저자는 제227보병사단의 어떤 연대장과 함께 사단장 빌헬름 베를린 장군을 설득해서 문제가 있는 작전을 철회시킨 일화를 소개합니다. 카리우스는 이 일화를 통해 '독일 국방군'의 임무형 전술이 실전에서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이런 장점을 '독일 연방군'의 '후배'들이 계승하기를 희망합니다. 이 회고록은 독일 국방군을 옹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집필되었지만 적군이었던 소련군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전후에 간행된 독일 국방군 고급장교 출신자들의 회고록이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소련군을 폄하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것과 비교하면 제법 '공정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당시 전쟁영웅으로 주목을 받던 인물이다 보니 전투 이외에도 흥미로운 일화가 많습니다.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휴양을 하던 중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를 만나 대화를 나눈 일화가 대표적입니다. 카리우스가 힘러를 만났을 당시 힘러는 친위대 외에도 정규군의 보충군 사령관을 겸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1944년 7월 20일 쿠데타 이후 친위대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정규군에 대해 정치적으로 우위에 선 시점입니다. 카리우스와 힘러의 대화는 정규군이 정치 싸움에서 친위대에 밀리는 상황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입니다. 이 외에도 나르바 전투 당시 유명한 기갑부대 지휘관인 슈트라흐비츠 '백작'이 지휘하는 전투단에 배속되었을 당시의 일화도 흥미롭습니다. 슈트라흐비츠 '백작'은 쿠르스크 전투 당시 지휘로 많은 비판을 받은바 있는데 카리우스는 나르바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슈트라흐비츠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독일어 원판을 번역한 만큼 번역은 전체적으로 좋다고 생각됩니다. 역자가 독일어 원판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독일 국방군'식의 군사용어 표기를 잘 살린 부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독일이 전후 나토에 가입하면서 많은 군사용어가 미국-나토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예를들어 미터법을 사용하더라도 독일 국방군에서는 화포의 구경을 cm로 표기하지만 독일 연방군에서는 mm로 표기합니다. 카리우스는 독일 국방군 경험만 있고 전후에는 연방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회고록은 전쟁 당시의 용례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역자는 이 점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영어 번역판은 원서에서 화포 구경을 cm로 표기한 것을 mm로 바꾸고 있고 영어 중역판은 이걸 그대로 따라갔지요. 또한 역자는 불가피한 예가 아니라면 최대한 많은 용어를 현대 한국군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맞춰 한국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카리우스가 잘못 회고한 내용에 대해서는 역자주를 통해 내용을 보강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서적을 번역할 때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역자가 필요한 이유를 잘 보여주는 번역입니다. 인공지능 번역의 품질이 급속히 향상되고 있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것 처럼 아직은 전문적인 번역가가 필요합니다.

 

2019년 4월 20일 토요일

길찾기 출판사의 신간, 『무장친위대 전사록』


길찾기 출판사에서 흥미로운 책이 한 권 나옵니다. 재미있게도 한국인 저자의 연구서로군요. 1943년 하리코프-쿠르스크 전역 당시 무장친위대의 작전을 분석한 저작입니다. 저자 소개문의 약력을 보니 허진이라는 분은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활동하셨군요.




인터넷 서점에 샘플이 뜬걸 보니 독일측 1차사료를 활용한 점이 눈에 띄입니다. 실물을 직접 읽어봐야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책의 분량도 700쪽이 넘는 상당한 분량인 것으로 봐서는 정리가 잘 된 저작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다만 목차를 보니 좀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있는데, 1장의 '전격전 교리의 원칙과 수정'은 왜 이런 제목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죠.




2018년 12월 6일 목요일

데이비드 글랜츠 저, 유승현 옮김, 『8월의 폭풍』 길찾기, 2018

길찾기 출판사의 신간 『8월의 폭풍: 1945년 8월 9~16일, 소련의 만주전역 전략 공세』를 읽었습니다. 길찾기 출판사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군사서적을 꾸준히 간행하면서 군사분야에 관한 대중의 관심을 확대하는데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독일군의 신화와 진실』을 시작으로 대중서를 넘어 전문적인 군사사 연구로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8월의 폭풍』은 길찾기 출판사가 내놓은 군사사 연구의 두번째 저작입니다.

1945년 8월에 있었던 소련의 대일전 참전은 외교사의 범주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제2차대전 종전후 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결정한 사건이기에 많은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군사작전'에 관해 주목하는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2차대전 종전 직전의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된 군사작전이라는 점, 자료가 러시아어와 일본어 등 영어권 연구자가 접근하기에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점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 입니다. 영어권에서 손꼽히는 소련-러시아 군사사의 대가 데이비드 글랜츠의 이 연구는 글자 그대로 선구적인 저작이라 하겠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연구자의 저작이기 때문에 내용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소련군의 만주지역 전략 공세를 다루고 있지만 제2차대전 중 소련군의 발전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줍니다. 소련은 1941년 부터 시작된 독일과의 전쟁을 계기로 전략, 작전술, 전술적인 측면에서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전쟁 종결 직전에 있었던 만주지역 전략 공세는 소련군이 그동안 유럽 전역에서 쌓아온 역량이 총체적으로 발휘된 무대였습니다. 4장 부터 9장에 이르는 소련군의 공세 준비와 실행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실제 작전 시행과정을 다루는 장에서는 1939년 이후로 큰 발전이 없이 교리와 장비면에서 정체되어 있던 일본군을 상대로 신속한 전략적 승리를 달성하는 과정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본군의 전술적인 분전도 빠트리지 않고 언급하면서도 이것이 전략-작전술의 차원에서는 별 영향이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개념적인 측면에서 전략-작전-전술의 차원을 명쾌하게 분리해 설명하면서 일본군의 전략-작전 차원의 패배 원인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데이비드 글랜츠의 초기 연구에 속하지만 작전연구라는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측 시각을 보여주는 자료 대부분이 1950년대 미육군에서 수행한 작전연구들에 제한되어 있지만 소련에 편향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전략~작전술 차원의 연구이기 때문에 일본군에 대한 서술도 이 범주에 국한하고 있습니다.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의 질적 수준과 전략-작전 단위 방어 계획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오히려 1990년대 이후에 나온 글랜츠의 일부 연구가 소련 자료에 대한 과도한 편향성으로 작전연구 차원에서 아쉬운 면이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1980년대에 나온 『8월의 폭풍』에서 보여주는 공정한 시각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길찾기 출판사 편집부의 실력은 기존에 간행된 『독일군의 신화와 진실』등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8월의 폭풍』에서도 그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습니다. 만주 전역의 특성상 고유명사를 번역하는데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길찾기 출판사에서는 이 어려운 작업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내용 외적인 부분에서도 장점이 많습니다. 특히 큰 판형을 채택해서 본문에 지도와 도판이 많이 포함된 장점을 살리고 있습니다. 편집부가 지도 편집에 많은 공을 들여서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지도의 가독성도 높습니다. 게다가 초판 한정 부록에 포함된 대형 작전도는 즐거운 깜짝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후 상업출판사에서 출간된 증보개정판이 아니라 미육군에서 간행한 초판이라는 점 입니다. 물론 초판으로도 만주 전략 공세를 전략-작전술적으로 이해하는데는 충분합니다. 증보개정판은 내용면에서도 보완이 있었고 부록으로 1차사료의 영역본을 제공하고 있어 만주 전략 공세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역자인 유승현님을 비롯해 감수를 맡으신 주은식 장군님, 그리고 길찾기 출판사 편집진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노력이 들어간 책인 만큼 군사사에 관심 가지신 분들이 많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2016년 9월 19일 월요일

A World At Arms의 한국어판이 나온다고 합니다




드디어 A World At Arms의 한국어판이 나온다고 합니다.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최고의 2차대전사 개설서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영어로 씌여진 개설서 중에서는 여전히 가장 뛰어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력히 추천합니다.



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Mythos und Wirklichkeit 한국어판 출간 예정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이미 소식을 전해들은 분도 계실겁니다. 『전격전의 전설』을 번역하신 진중근 소령님께서 19세기 중엽에서 독일연방군 초기에 이르는 독일군의 작전사상의 변천을 다룬 Mythos und Wirklichkeit: Geschichte des operativen Denkens im deutschen Heer von Moltke d.Ä. bis Heusinger를 번역해서 출간하실 예정입니다. 『전격전의 전설』을 이어 독일의 최신 군사사 연구가 또다시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 입니다. 출판사는 최근 수년간 군사서적을 활발히 간행하고 있는 '길찾기'출판사 입니다. 이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최초의 학술서적이 되겠네요. 아직 영어판도 나오지 않은 책을 한국어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 입니다. 2016년 1월 말 출간 예정이라고 하는데 한국어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원서는 대충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 저작은 독일군 장교단에서 작전(Operation)이라는 개념이 발생한 배경과 그 발전과정, 그리고 한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전 단계를 넘어서는 전략개념의 부재를 지적하는 점은 미국의 로버트 시티노(Robert Citino)와 비슷합니다. 전략적 차원의 고찰을 결여하고 있는 독일의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한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티노의 최근 저작들이 군사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반면 이 책의 저자인 그로스는 독일 군부의 정치적인 입장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점에서 탁월하다 하겠습니다. 독일 군부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공세적인 작전개념을 유지해 발전시킨 배경에 독일 사회에서 군부가 누리고 있던 정치적인 지위, 그리고 민족주의에 기반한 패권적 세계관이 깔려있었다고 비판하는 점은 경청할 만 합니다. 또한 독일의 민군관계에 대한 고찰도 흥미로운데 특히 제2차세계대전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은 이 책에서 제기하는 제3제국의 민군관계와 히틀러의 군 지휘에 대한 비판을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것 입니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독일군부의 전략적 식견의 부족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독일 장교단이 자신들의 작전적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한 나머지 전략적인 열세를 무시하고 침략전쟁에 나서면서 몰락해 가는 과정은 여러가지로 생각할 점이 많습니다.

이 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한국어판이 간행되면 서평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군사사 애호가들에게 즐거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이 글을 읽으시면 주변의 밀덕(!)들에게 광고 부탁드립니다. 길찾기가 전문적인 군사 학술서를 출간하는건 처음이고 이 책 자체도 국내에 소개되기 어려운 책입니다. 이 책이 성공을 거두면 앞으로 길찾기에서 군사학술서적을 추가로 발행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