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북한인민들이 (전후복구에) 엄청난 노력을 쏳아 넣었다지만 "사회주의형제국가"들의 원조가 없었다면 신속한 전후복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미 1952년 11월 경부터 북한의 전후 복구를 위한 다국적 원조계획의 윤곽은 잡혀있었다. 1953년 9월 1일부터 29일까지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대표단은 경제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소련을 방문했다. 소련은 북한의 부채 중 절반을 탕감했으며 나머지 절반의 지불도 연기시켰다. 또한 소련은 북한에게 10억루블에 달하는 무상원조를 제공하기로 했다. 총 60만 루블에 달하는 원조가 물자와 설비의 형태로 제공되었으며 나머지는 공장의 재건과 시설설비에 투입되었다. 특히 후자에는 청진, 성진, 남포의 주물공장과 흥남의 화학공장, 수풍의 수력발전소, 마동의 시멘트공장, 평양의 섬유공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소련은 양덕-청성간의 철도를 전력화 하는 것과 남포항의 복구, 평양 중앙 라디오 방송국을 건설하는 것을 지원했으며 평양에 병원 하나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어선, 버스, 농업기계, 화학비료, 과학서적, 그밖의 소비재를 원조 받았다.
소련 기술자들은 북한에서 그들의 조선인 동료들이 받는 것과 동일한 월급을 받으며 근무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노동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것이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소련 대사관이 지급했다. 전체적으로 소련 기술자들은 북한인 기술자에 비해 네 배의 월급을 받았다. 또한 소련 기술자들은 북한의 외국인 상점을 이용하기 위해서 위안화를 별도로 지급받았다.
김일성은 (1953년) 11월 12일에서 27일에 걸쳐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 소련정부와 체결했던 것과 같은 조약을 체결했다. 베이징 정부는 한국전쟁 이래 누적된 북한의 채무를 모두 탕감하고 8조 위안에 달하는 경제원조를 제공하기로 했다. 1954년에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3조 위안의 원조를 받았으며 이 중 76.14퍼센트는 물자지원, 그리고 23.86%는 재정지원이었다. 중국은 남포의 유리 공장과 한 개의 철물 공장을 포함해 몇 개의 공장을 재건하는 것을 도왔다.
또한 북한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해방군 부대는 북한의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인민해방군 병사들은 전쟁 기간 중 파괴된 북한의 외무성 건물과 중앙은행건물을 다시 건설하는데 투입되었으며 철도와 교량, 도로의 보수공사에도 참여했다. 1954년에 총 295명에 달하는 중국인 기술자들이 북한의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서 북한에 체류했으며 동시에 2,963명의 북한 기술자들이 실무경험을 쌓기 위해 중국으로 1년 기간의 연수를 떠났다. 중국은 북한에 여러 가지의 기계와 어선, 기관차, 화차, 건축 자재, 그리고 면화를 제공했다. 1950년대 중반에 중국은 북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소비재 공급처였다. 조선인민군 병사들은 중국제 군복을 입었으며 북한의 상점과 백화점에서는 중국제 의류, 방한복, 셔츠, 양말, 속옷, 운동화, 식기, 세면도구등을 판매했다.
1953년 말에 북한정부는 동유럽국가들, 그리고 몽골을 상대로 중국과 맺었던 것과 비슷한 조약을 체결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휘천과 운산에 기계 생산공장을, 덕천에 자동차 공장을 한 개 건설하기로 했다. 그리고 동독은 인쇄소, 디젤엔진공장, 제철소를 건설하기로 했다. 또 폴란드 정부는 원산과 평양에 기관차 및 화차 수리 공장을 건설하는 것과 북한의 광산 세 곳을 기계화 하는데 지원하기로 했다. 헝가리는 구성, 평양, 봉궁에 기계 공장, 저울공장, 페인트 공장을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루마니아는 북한에게 시멘트공장, 제약공장, 어선, 기계류 등 6500만 루블에 해당하는 원조를 제공하기로 했다. 불가리아는 1954년에서 1955년에 걸쳐 2000만 루블의 원조를 했다. 불가리아는 북한에 섬유와 판유리를 보내는 한편 벽돌공장과 제제소에 한 곳에 장비를 제공하기로 했다. 1954년부터 1956년에 걸쳐 동유럽 국가들은 북한에 총 11억3400만 루블에 해당하는 원조를 했다.
게다가 몽골정부도 스스로가 해외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조선의 재건을 위해 기여를 하기로 결정했다. 몽골은 특별히 북한에 보낼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1만마리의 말을 보내기로 했다.
Balázs Szalontai, Kim Il Sung in the Khrushchev Era : Soviet-DPRK Relations and the Roots of North Korean Despotism 1953-1964(Woodrow Wilson Center Press/Stanford University Press, 2005), pp.45-47
몽골정부의 원조 내역을 보니 뭔가 안습이란 생각이 듭니다. 과연 북조선 인민들은 몽골정부가 어떤 원조를 해 줬는지 알긴 했을까 궁금하군요.
추가 - 아래의 사진은 1957년에 북한에 파견된 동독 기술자 에리히 레셀(Erich Robert Ressel)이 촬영한 사진입니다. 말을 탄 인민군 병사들인데 왠지 이 말들이 몽골에서 보낸 그 놈들이 아닐까 싶군요.
Erich Robert Ressel,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 50년대의 북녘, 북녘사람들』, (효형출판, 2000), 24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