妄想大百科事典 -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
대한민국 종교업 기독교 부문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초대형 종교 체인점. 대한민국의 주요 서비스업 중 유일하게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종교업 중에서도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현재 순복음교회 가입자는 75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그 규모에서 부동의 세계 1위를 자랑한다. 창업주인 조용기 회장이 지난 2008년 2월 3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옮기면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순복음교회의 성공 요인은 사원들의 발로 뛰는 영업력 외에도 조용기 명예회장의 탁월한 경영능력에 있다. 순복음교회는 지난 1958년 5월 18일 은평구(당시 서대문구)에서 작은 좌판으로 출발하여 창립 60년 만에 세계 제일의 종교업 체인으로 거듭났다. 조용기 회장은 1961년 서대문 로터리에 1호점을 개업한 후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500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이후 순복음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 마침내 1973년에 여의도로 본점을 옮기고 이후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본토로 진출해 대 성공을 거둔 문선명 회장의 통일그룹에 비견할 바는 아니며 조용기 명예회장은 한국의 다른 교회업 종사자들과 함께 통일그룹에 대한 공격에 앞장선 바 있다. 또한 다른 교회업과 함께 세금탈루 혐의로 도덕성이 도마위에 올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순복음교회는 해외시장 개척에 일찍부터 적극적이었다. 순복음교회는 1976년에는 미주 지사를 시작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한 이래 독일, 일본 등에 진출,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종교업에 제약이 있었던 구 사회주의권 국가에도 진출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순복음교회는 지난 1991년 러시아에 성공적으로 진출함으로서 그 동안 해외 교민을 상대로 제한적인 영업을 했던 다른 교회들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현재 순복음 교회는 세계 각국에 31개의 지점을 내고 활발한 영업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조용기 회장의 은퇴로 경영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잠시 있었으나 후임 회장으로 임명된 이영훈 회장 체제가 정상궤도에 오르면서 다시 높은 신용등급을 회복했다.
2008년 3월 2일 일요일
2006년 12월 3일 일요일
[美利堅史] - 韓國傳 허경영 列傳
한국은 본시 외방의 궁벽한 나라이나 간혹 기인이 나타나 이름을 떨치니 평화왕 문선명은 일찌기 천조에 입조하여 많은 작위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간혹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자도 많으니 허경영(許京寧)이 그러하다.
허경영은 한국의 서울 사람으로 트루먼 6년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경영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허다하게 많으나 하나같이 허황되어 기록할 바가 못 된다. 경영은 스스로 한국 제일의 거상인 이병철의 양자요, 국왕 박정희의 적통이라 하였으나 종로를 지나가는 비둘기와 고양이조차 비웃었다.
조지 H. W. 부시 5년, 허경영이 패망한 이씨의 중조(重祚)를 외치며 진리평화당(眞理平和黨)의 깃발을 걸고 무리를 모았으나 뭇 백성들의 조롱거리만 되었다.
빌 클린턴 5년, 허경영이 다시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의 깃발을 내걸고 무리를 모았다. 때마침 백성들의 삶이 곤궁하고 온갖 사교가 기승을 부려 허경영도 다소나마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이때 허경영은 자신이 박정희의 적통이라 참칭하고 소위 혁명공약 10조를 내거니 많은 백성들이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허경영은 이후 무리들과 함께 검은 수레에 황소의 상(像)을 싣고 저자를 누비고 다녔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3년, 허경영은 재차 청와궁에 들겠노라 외치며 무리를 모았으나 저자의 무뢰배들 조차 외면하였다.
허경영은 그 하는 말과 행동이 허황되고 참람된 점이 없지 않았으나 기이한 행동으로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니 결코 그 공이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허경영 전(傳)을 지어 후대에 알리려 한다.
허경영은 한국의 서울 사람으로 트루먼 6년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경영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허다하게 많으나 하나같이 허황되어 기록할 바가 못 된다. 경영은 스스로 한국 제일의 거상인 이병철의 양자요, 국왕 박정희의 적통이라 하였으나 종로를 지나가는 비둘기와 고양이조차 비웃었다.
조지 H. W. 부시 5년, 허경영이 패망한 이씨의 중조(重祚)를 외치며 진리평화당(眞理平和黨)의 깃발을 걸고 무리를 모았으나 뭇 백성들의 조롱거리만 되었다.
빌 클린턴 5년, 허경영이 다시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의 깃발을 내걸고 무리를 모았다. 때마침 백성들의 삶이 곤궁하고 온갖 사교가 기승을 부려 허경영도 다소나마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이때 허경영은 자신이 박정희의 적통이라 참칭하고 소위 혁명공약 10조를 내거니 많은 백성들이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허경영은 이후 무리들과 함께 검은 수레에 황소의 상(像)을 싣고 저자를 누비고 다녔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3년, 허경영은 재차 청와궁에 들겠노라 외치며 무리를 모았으나 저자의 무뢰배들 조차 외면하였다.
허경영은 그 하는 말과 행동이 허황되고 참람된 점이 없지 않았으나 기이한 행동으로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니 결코 그 공이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허경영 전(傳)을 지어 후대에 알리려 한다.
2006년 4월 29일 토요일
[美理堅史] - 平和王 문선명 世家
문선명은 본시 한국 사람으로 우드로 윌슨 8년 태어났다.
문선명은 어려서부터 천주를 섬겨 그 믿음이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트루먼 원년 8월, 노서아(露西亞)왕 스탈린이 천자의 명을 받들어 왜국을 토벌했다. 이에 천자가 스탈린의 노고를 위로하며 한국의 절반을 봉읍으로 하사했다.
노서아는 사교가 성행한 나라로 그 왕 스탈린도 본시 홍건적의 무리에 속해있었다. 노서아 군사와 함께 홍건적이 들어왔는데 홍건적의 수령 김일성은 노서아 왕의 위세를 빌어 천주를 섬기는 백성들을 핍박했다.
이때 문선명도 도적들에 잡혀 노역을 하게 됐는데 도적들이 핍박할 때 마다 천주의 은혜를 입어 터럭하나 다치지 아니하였다고 전한다.
도적들이 문선명을 핍박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해를 입히지 못하니 크게 두려워 하며 말하였다.
"이자는 범상한 인물이 아니로다!"
트루먼 6년, 한국의 홍건적이 난을 일으켰다. 이때 문선명은 천병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트루먼 7년, 문선명이 천주를 영접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 문선명은 반공(反共)의 큰이치를 깨달아 도를 닦는 근본으로 삼았다.
아이젠하워 2년, 문선명이 서울에서 통일교회를 만들고 전도하매 소인배들의 핍박을 받았다. 한국에서 천주를 섬긴다 자처하는 자들은 많았으나 하나같이 어리석어 그 도의 심오함을 열에 하나도 깨치지 못하였다.
문선명은 어리석은 자들을 깨쳐 반공의 이치를 깨닫게 하려 힘썼으나 마침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크게 한탄하였다.
"하늘아래 내 뜻이 받아질 곳이 어디인가!"
마침내 한국같은 번방에서는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천자국에 나아가기를 소망하였다.
존슨 3년, 문선명이 식솔을 이끌고 미리견에 도착했다.
이때 미리견은 백성들의 믿음이 박하여 천주를 섬기는 아름다운 기풍이 사라져가고 음란한 풍속이 성행하고 있었다. 마침내 어리석은 백성가운데 사교에 빠져 마르크스, 레닌 등 잡스런 귀신을 섬기는 자도 나타났다.
문선명이 이를 보고 크게 한탄하며 땅에 떨어진 믿음을 일으켜 세우기로 결심했다.
문선명이 힘을 다하여 반공의 이치를 강론하고 미풍양속을 일으킬 것을 권하니 갈수록 그를 따르는 무리가 늘어났다.
닉슨 황제가 문선명의 선행을 듣고 백악궁으로 불러 반공의 이치와 인의예지에 대해 물었는데 선명이 대답함에 막히는 것이 없었다. 황제가 문선명의 고상함에 탄복하였다.
"아. 짐이 어리석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없었는데 이제 선생을 만나 반공의 이치를 깨치니 답답한 가슴이 후련하오!"
이에 문선명이 여러 제후와 대소신료들에게 도를 강론하게 되었다. 많은 제후들이 문선명에게 감복하여 마음으로 우러르게 되었다. 천자가 문선명을 "평화왕(King of the Peace)"에 봉하니 마침내 문선명이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닉슨 이후 여러 천자들이 문선명의 지혜를 마음속으로 흠모하니 레이건, 상황(上皇) 부시 시니어 등이 그러하였다.
문선명은 어려서부터 천주를 섬겨 그 믿음이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트루먼 원년 8월, 노서아(露西亞)왕 스탈린이 천자의 명을 받들어 왜국을 토벌했다. 이에 천자가 스탈린의 노고를 위로하며 한국의 절반을 봉읍으로 하사했다.
노서아는 사교가 성행한 나라로 그 왕 스탈린도 본시 홍건적의 무리에 속해있었다. 노서아 군사와 함께 홍건적이 들어왔는데 홍건적의 수령 김일성은 노서아 왕의 위세를 빌어 천주를 섬기는 백성들을 핍박했다.
이때 문선명도 도적들에 잡혀 노역을 하게 됐는데 도적들이 핍박할 때 마다 천주의 은혜를 입어 터럭하나 다치지 아니하였다고 전한다.
도적들이 문선명을 핍박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해를 입히지 못하니 크게 두려워 하며 말하였다.
"이자는 범상한 인물이 아니로다!"
트루먼 6년, 한국의 홍건적이 난을 일으켰다. 이때 문선명은 천병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트루먼 7년, 문선명이 천주를 영접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 문선명은 반공(反共)의 큰이치를 깨달아 도를 닦는 근본으로 삼았다.
아이젠하워 2년, 문선명이 서울에서 통일교회를 만들고 전도하매 소인배들의 핍박을 받았다. 한국에서 천주를 섬긴다 자처하는 자들은 많았으나 하나같이 어리석어 그 도의 심오함을 열에 하나도 깨치지 못하였다.
문선명은 어리석은 자들을 깨쳐 반공의 이치를 깨닫게 하려 힘썼으나 마침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크게 한탄하였다.
"하늘아래 내 뜻이 받아질 곳이 어디인가!"
마침내 한국같은 번방에서는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천자국에 나아가기를 소망하였다.
존슨 3년, 문선명이 식솔을 이끌고 미리견에 도착했다.
이때 미리견은 백성들의 믿음이 박하여 천주를 섬기는 아름다운 기풍이 사라져가고 음란한 풍속이 성행하고 있었다. 마침내 어리석은 백성가운데 사교에 빠져 마르크스, 레닌 등 잡스런 귀신을 섬기는 자도 나타났다.
문선명이 이를 보고 크게 한탄하며 땅에 떨어진 믿음을 일으켜 세우기로 결심했다.
문선명이 힘을 다하여 반공의 이치를 강론하고 미풍양속을 일으킬 것을 권하니 갈수록 그를 따르는 무리가 늘어났다.
닉슨 황제가 문선명의 선행을 듣고 백악궁으로 불러 반공의 이치와 인의예지에 대해 물었는데 선명이 대답함에 막히는 것이 없었다. 황제가 문선명의 고상함에 탄복하였다.
"아. 짐이 어리석어 세상을 보는 안목이 없었는데 이제 선생을 만나 반공의 이치를 깨치니 답답한 가슴이 후련하오!"
이에 문선명이 여러 제후와 대소신료들에게 도를 강론하게 되었다. 많은 제후들이 문선명에게 감복하여 마음으로 우러르게 되었다. 천자가 문선명을 "평화왕(King of the Peace)"에 봉하니 마침내 문선명이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닉슨 이후 여러 천자들이 문선명의 지혜를 마음속으로 흠모하니 레이건, 상황(上皇) 부시 시니어 등이 그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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