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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7일 월요일

후발주자가 누리는 이점

요즘 읽는 어떤 책의 서문에 꽤 마음에 드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현대 정치사에 대해 역사학적 접근이 가지는 이점에 대한 글인데 핵심을 잘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볼까합니다.

동방정책(Ostpolitik)에 대한 연구는 넘쳐나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서 새로운 접근을 할 여지가 있는지(나의 연구는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동방정책에 대한 연구에 기여할 여지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매우 간단하다. 이 연구는 1차사료에 근거하여 신동방정책(新東方政策)이 공식화되고 구체화되어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최초의 연구이다. 베르너 링크(Werner Link)가 옳게 지적한 것 처럼 최근 공개된 문헌 자료들에 의거해 신동방정책을 총괄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역사가들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최근 공개된 문헌 자료들은 과거 동방정책에 대한 연구들이 구술자료, 신문, 또는 개인이 소장한 부분적인 문서를 활용했던 것과는 달리 외교문서와 그밖의 문헌자료들을 통해 '총괄적인 역사상'을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동방정책이라는) 잘 알려진 주제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새로운 연구를 촉진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von Dannenberg, Julia. The Foundations of Ostpolitik : The Making of the Moscow Treaty between West Germany and the USSR,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p.11

현대사에 대해 역사학적 접근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을 잘 보여줬다는 생각입니다. 현대 정치 문제는 자료의 문제 때문에 정치학 등 다른 학문이 먼저 다루게 됩니다. 현대 정치문제는 1차사료라고 할 수 있는 정부문서가 공개되어야 본격적인 역사학적 접근이 가능해 집니다. 그러나 정부의 공문서, 특히 외교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문서들은 공개가 수십년간 제한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역사학은 현대 정치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대부분 정치학에 대해 후발주자일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러니 역사학적인 접근이 시작될 때 쯤 되면 해당 주제는 이미 수십년 동안 정치학 등 다른 학문 분야에서 많은 연구성과를 내놓은 이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연구들이 활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료의 활용은 (뒷북을 치는) 역사학적 접근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후발주자가 누리는 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07년 11월 29일 목요일

The Red Army 1918~1941 : From Vanguard of World Revolution to US Ally - Earl F. Ziemke

현재는 비참할 정도로 쪼그라들어 과거의 위용이라곤 찾아 보기 힘든 러시아군이지만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이 군대는 소련군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었습니다. 요즘도 가끔씩 텔레비전 뉴스에서 방송되던 소련군의 붉은광장 퍼레이드를 지켜보며 전율을 느끼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특히 소련군대는 역사상 최대의 전쟁인 독소전쟁을 통해 세계 최고의 군대였던 독일군을 실력으로 격파한 사실상 유일한 군대였기 때문에 그 명칭이 가지는 압도감이란 단순한 통계 이상의 것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냉전시기 소련군대는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었고 특히 그 군대의 기원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러일전쟁과 1차대전에 연달아 패배했던 군대가 불과 20년 만에 세계 최강의 군대로 일어섰다는 점은 대단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냉전시기 창군 초기의 소련군에 대한 서방측의 최고의 연구는 에릭슨(John Erickson)의 The Soviet High Command : A Military-Political History, 1918-1941이었습니다. 이 책은 분량이나 서술의 치밀함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물건이었고 걸작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는 저작이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도 이 책은 현재로서도 비교할 만한 대상을 찾기 힘든 걸작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출간된 시기가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측면에서 부족한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고르바초프의 집권 이후 공개된 수많은 1차 사료들은 몇몇 사건들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재평가를 불러오기도 했으니 이런 점들을 수용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해 진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2004년에 출간된 짐케(Earl F. Ziemke)의 The Red Army 1918~1941 : From Vanguard of World Revolution to US Ally는 그간의 새로운 연구성과를 대폭 반영해 쓰여진 창군부터 독소전 초기까지의 소련군의 역사를 다룬 저작입니다. 이 책은 짐케가 구상한 독소전 3부작의 가장 앞 부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저작입니다.
특이하게도 짐케의 3부작은 그 마지막인 Stalingrad to Berlin이 먼저 나왔으며 그 다음으로 2부인 Moscow to Stalingrad가 나왔습니다. 짐케는 원래 1부에 해당하는 독소전 계획부터 모스크바 전투까지를 다룬 저작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독일측의 시각에서 서술할 계획이었는데 소련의 붕괴로 대량의 소련측 1차 사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결과 계획을 변경했다고 합니다. 즉 기존의 저작들과 달리 소련의 시각에서 독소전 초기까지를 다루는 책이 나오게 된 것 입니다.

결국 원래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짐케의 이 책은 소련군의 초기 역사를 다루는 저작이 되어 버렸는데 그 덕분에 에릭슨의 연구와 직접적으로 비교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에릭슨의 저작 또한 창군부터 모스크바 전투까지를 다루고 있어서 두 저작이 다루는 시기 또한 겹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평가하면 짐케의 저작도 매우 훌륭하지만 에릭슨의 저작과 비교하면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짐케의 입장에서 수십년 먼저 나온 에릭슨의 저작을 당연히 의식하고 썼을 텐데 결과는 약간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입니다. 일단 짐케의 저작은 분량이 에릭슨의 저작보다 적은데다가 내용의 배분에 있어 균형이 다소 안 맞는 느낌입니다. 특히 붉은군대의 창군과 적백내전에 대한 서술이 풍부한데 비해 20~30년대의 발전과정은 다소 부족한 느낌입니다. 이 책은 총 21개 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부터 8장까지가 1917~1921년 시기를 다루고 있는 반면 1922~1939년까지의 시기는 9장부터 14장까지에 불과합니다. 물론 1917~21년은 붉은군대의 기본 골격이 형성되었고 또한 붉은군대의 군사교리의 골간을 이루는 중요한 경험이 축적된 시기이니 만큼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서술에 있어 균형이 다소 안맞는 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2004년에 출간된 만큼 이 저작은 시기적인 이점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출간된 시기가 늦은 만큼 최신의 연구성과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지요. 특히 독소전 발발 직전 소련의 준비태세와 동원에 대한 설명은 에릭슨의 저작보다 뛰어납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다뤄지는 독소전 초기의 전황에 대한 기술도 간결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공황상태에 빠진 스탈린의 반응은 다른 저작에서도 많이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에릭슨의 저작에 있는 풍부한 통계가 이 책에는 없다는 점 입니다. 물론 이 시기의 통계자료야 글랜츠나 다른 연구자들의 저작들에 많이 들어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아쉽긴 하더군요. 통계와 도표가 없다보니 꽤 복잡한 소련군의 편제개편을 글로만 이해해야 하는 불편이 있습니다.
책의 뒷 부분에는 전쟁 이후 소련의 독소전쟁에 대한 시각 변화에 대해 정리를 해 놓았는데 이게 참 재미있습니다. 특히 흐루쇼프 시기 스탈린의 격하운동과 맞물린 새로운 역사해석에 대한 부분이 좋습니다. 전반적으로 부록이 매우 부실한데 이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전체적으로 2004년까지의 새로운 연구성과가 대폭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그리고 분량도 에릭슨의 저작 보다 적은 편이니 읽는데도 부담이 적은 편 입니다. 에릭슨의 저작은 너무 방대하다 보니 베게로 쓰기에도 불편하지요.

2007년 9월 16일 일요일

1970년대 남북한의 2차대전사 인식 - 아주 단적인 예 하나

꽤 많은 분들이 김일성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이나 폐쇄적, 권위주의적 체제였다는 점에서는 동급이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개방성 측면에서 박정희 정권이 김일성 정권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오십 보 백보를 엄격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지요.

사소한 예 하나.

노르망디 작전

제2차세계대전 시기인 1944년 프랑스의 서북쪽 노르망디에서 진행한 미영제국주의 련합군의 상륙작전.

6월 6일부터 7월 21일까지 진행되었다. 미영제국주의자들은 쏘련과의 국제협약에 의하여 1942년에 구라파에서 제2전선을 형성하기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미영제국주의자들은 제2전선의 형성을 2년동안 태공함으로써 전쟁을 지연시키며 쏘련의 약화를 기도하였다.

쏘련군대가 능히 단독으로 파쏘독일을 쳐부시고 구라파인민들을 파쑈독일의 기반으로부터 해방시킬수 있게 된 1944년에 이르러 미영제국주의자들은 전후 구라파에서의 제놈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 작전을 조직하였다. 당시 파쑈독일은 쏘독전선에 기본력량을 투입한 관계로 프랑스 북부 연안지대방어에는 한 개 집단군만이 동원되였고 상륙지대에는 다만 3개 보병사단만이 배치되어 있었다. 쏘독전선에서 쏘련군대의 결정적인 진출과 프랑스에서의 항쟁운동의 강화, 독일무력의 상대적인 약화는 미영제국주의군대로 하여금 이 작전을 비교적 쉽게 수행할 수 있게 하였으며 그것은 구라파에서의 반파쑈전쟁행정에서 그 어떤 본질적인 영향도 주지 못하였다.

력사사전, 1971년판, 상권 433쪽

왜곡으로 가득찬 헛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력사사전 1971년 판에는 독소전쟁 관련 전투로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만이 기재되어있습니다. 반면 김일성의 빨치산 전쟁은 전투라고 할 수 없는 보천보전투를 포함해 셀 수 없이 많이 있더군요.

그렇다면 박정희 정권은?

북조선과 비교하면 게임 오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북한이 고작 이 정도의 저급한 역사 인식만 가지고 있던 반면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는 비록 미국을 거쳐 들어온 것일 망정 소련의 역사 인식을 반영한 서적들이 합법적으로 유통이 되고 있었거든요.

1973년에 출간된 발렌타인 2차대전사 시리즈, 즉 승리와 패배의 6권 스탈린그라드와 11권 쿠르스크는 미국인 저자인 제프리 쥬크스가 썼지만 기본적인 서술은 소련의 공식 역사서술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쿠르스크는 거의 전적으로 소련 공간사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지요.

박정희가 독재자인 것은 맞지만 김일성 정권과 비교한다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낫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소한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생각하고 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도 있었지만 북조선에서는 지금까지도 그런게 없지 않습니까.

정부가 모든 출판물을 통제하는 국가와 제약은 있을 망정 출판의 자유가 있는 나라를 어떻게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