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군사사가 데이빗 글랜츠David Glantz가 1987년에 발표한 「2차대전기 동부전선에서 전개된 작전에 대한 미국의 시각American Perspectives on Eastern Front Operations in World War II」이라는 글은 발표 당시 냉전으로 인한 사료적 한계, 반공적 시각이 결합된 영어권의 2차대전 인식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이 글이 발표된 시점은 마침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이 진행되던 시기와 맞물리기도 합니다. 발표된 시점 때문인지 몰라도 이 글은 몇년 뒤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될 독소전쟁사 연구의 신경향을 알리는 나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글랜츠의 글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비판하는 것이기에 이 글이 냉전기 서방의 독소전쟁사 연구를 총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적인 틀에서 25년전 글랜츠가 비판한 내용은 핵심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습니다. 존 에릭슨John Erickson과 같은 걸출한 연구자가 소련의 목소리를 담은 몇 권의 대작을 내기도 했습니다만 냉전기 영어권의 독자들이 접할 수 있던 독소전쟁 관계 서적은 독일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 다수였고 소련의 시각을 반영한 것은 소련의 공식출판물을 영어로 번역한 것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따져보면 미국의 독일 편향을 비판한 글랜츠도 몇몇 저작에서 지나친 러시아 편향이라는 문제를 드러냈지요. 더 들어가면 냉전기 소련의 시각을 반영한 저작들도 정치적인 이유로 왜곡이 극심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냉전기 영어권에서는 오히려 소련 편향으로 인한 역사인식의 왜곡도 제법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명한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해석이지요. 오늘날에는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만 냉전시기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서술은 존 에릭슨의 The Road to Berlin나 쥬크스Geoffrey Jukes의 Kursk는 거의 전적으로 소련의 공식서술에 따라 쿠르스크 전투를 재구성했으며 1990년대 까지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의 틀을 만들었지요.
재미있는 점은 냉전기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서술은 독일자료를 활용한 쪽이 더 정확하다는 점 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Stalingrad to Berlin은 글랜츠가 1987년에 쓴 글에서 상당히 높게 평가한 역작입니다. 이 책은 1966년에 출간됐는데 제한적으로 소련 자료들을 활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료는 미국이 노획한 독일 문서들이죠. 작전단위에서 서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술이 세밀하지는 않지만 출간된 시점을 고려하면 걸작이라 칭할만 합니다. Stalingrad to Berlin에서는 쿠르스크 전투의 클라이맥스(???)라 할만한 프로호로프가 방면의 전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편 남부집단군의 상황은 호전되고 있었다. 7월 11일 친위대 제2기갑군단은 쁘숄Псёл강 북안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소련군은 아직 독일 제48기갑군단의 작전지역에서는 프숄강 남쪽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제4기갑군은 프숄강 남안의 소련군이 버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호트Herman Hoth는 프숄강 북쪽으로 진출하는 것은 쉬울 것 같다고 보고했다.바투틴Никола́й Фёдорович Вату́ти은 가용가능한 예비대가 고갈되기 직전이었다. 반면 만슈타인은 아직 쓸수 있는 패가 남아있었다. 만슈타인은 쿠르스크로 향하는 최후의 일격에 무게를 실을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제24기갑군단(제23기갑사단과 친위대 비킹사단으로 편성)을 제1기갑군 후방의 예비대에서 빼내 벨고로드 지구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켐프 분견군Armee-abteilung Kempf은 도네츠강 동안에서 공세를 시작한 뒤 6일 동안 진격에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7월 11일에 필사적으로 공세를 가해 제3기갑군단이 북쪽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다음날 바투틴은 스텝전선군에 소속되어 있던 제5근위군과 예비대로 있던 제5근위전차군을 반격에 투입했다. 그러나 제3전차군단은 진격을 계속했으며 13일 밤에는 상당한 규모의 소련군을 제3기갑군단의 측익과 친위대 제2기갑군단의 우익으로 포위할 수 있었다.
Earl A. Ziemke, Stalingrad to Berlin : The German Defeat in the East, (USGPO, 1966), p.137.
1996년에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던 나이페George Nipe의 Decision in the Ukraine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바로 아시겠지만 사실상 나이페의 저작은 친위대 제2기갑군단에 중점을 두고 전술단위로 자세한 분석을 했라는 점을 제외하면 짐케가 30년 전에 했던 서술의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냉전기 소련의 공식서술 보다는 객관적인 서술이었던 셈 입니다.
짐케는 그 뒤에 쓴 Moscow to Stalingrad : Decision in the East에서도 마찬가지로 독일측 사료를 중심으로 독소전쟁의 작전사를 서술했는데 여기서도 냉전기 소련의 연구가 외면하거나 놓친 부분들을 독일 사료를 활용해 잘 잡아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코프가 1942년 겨울 중부집단군을 상대로 감행한 “마르스” 작전에 대해 서술한 것 입니다. 서방측 문헌에서 이 작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대부분 독일자료에 의존한 짐케가 처음이었던 것 입니다. 이렇게 냉전기의 “독일편향”적인 저술들은 소련측이 외면하거나 왜곡한 사실들에 균형을 맞춰주는 기능을 어느정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냉전기 독소전쟁 서술에서 “독일편향”을 비판하는 것이 때로는 너무 야박한건 아닐까 하는 잡생각도 들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