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9일 목요일

The Red Army 1918~1941 : From Vanguard of World Revolution to US Ally - Earl F. Ziemke

현재는 비참할 정도로 쪼그라들어 과거의 위용이라곤 찾아 보기 힘든 러시아군이지만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이 군대는 소련군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었습니다. 요즘도 가끔씩 텔레비전 뉴스에서 방송되던 소련군의 붉은광장 퍼레이드를 지켜보며 전율을 느끼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특히 소련군대는 역사상 최대의 전쟁인 독소전쟁을 통해 세계 최고의 군대였던 독일군을 실력으로 격파한 사실상 유일한 군대였기 때문에 그 명칭이 가지는 압도감이란 단순한 통계 이상의 것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냉전시기 소련군대는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었고 특히 그 군대의 기원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러일전쟁과 1차대전에 연달아 패배했던 군대가 불과 20년 만에 세계 최강의 군대로 일어섰다는 점은 대단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냉전시기 창군 초기의 소련군에 대한 서방측의 최고의 연구는 에릭슨(John Erickson)의 The Soviet High Command : A Military-Political History, 1918-1941이었습니다. 이 책은 분량이나 서술의 치밀함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물건이었고 걸작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는 저작이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도 이 책은 현재로서도 비교할 만한 대상을 찾기 힘든 걸작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출간된 시기가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측면에서 부족한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고르바초프의 집권 이후 공개된 수많은 1차 사료들은 몇몇 사건들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재평가를 불러오기도 했으니 이런 점들을 수용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해 진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2004년에 출간된 짐케(Earl F. Ziemke)의 The Red Army 1918~1941 : From Vanguard of World Revolution to US Ally는 그간의 새로운 연구성과를 대폭 반영해 쓰여진 창군부터 독소전 초기까지의 소련군의 역사를 다룬 저작입니다. 이 책은 짐케가 구상한 독소전 3부작의 가장 앞 부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저작입니다.
특이하게도 짐케의 3부작은 그 마지막인 Stalingrad to Berlin이 먼저 나왔으며 그 다음으로 2부인 Moscow to Stalingrad가 나왔습니다. 짐케는 원래 1부에 해당하는 독소전 계획부터 모스크바 전투까지를 다룬 저작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독일측의 시각에서 서술할 계획이었는데 소련의 붕괴로 대량의 소련측 1차 사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결과 계획을 변경했다고 합니다. 즉 기존의 저작들과 달리 소련의 시각에서 독소전 초기까지를 다루는 책이 나오게 된 것 입니다.

결국 원래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짐케의 이 책은 소련군의 초기 역사를 다루는 저작이 되어 버렸는데 그 덕분에 에릭슨의 연구와 직접적으로 비교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에릭슨의 저작 또한 창군부터 모스크바 전투까지를 다루고 있어서 두 저작이 다루는 시기 또한 겹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평가하면 짐케의 저작도 매우 훌륭하지만 에릭슨의 저작과 비교하면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짐케의 입장에서 수십년 먼저 나온 에릭슨의 저작을 당연히 의식하고 썼을 텐데 결과는 약간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입니다. 일단 짐케의 저작은 분량이 에릭슨의 저작보다 적은데다가 내용의 배분에 있어 균형이 다소 안 맞는 느낌입니다. 특히 붉은군대의 창군과 적백내전에 대한 서술이 풍부한데 비해 20~30년대의 발전과정은 다소 부족한 느낌입니다. 이 책은 총 21개 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부터 8장까지가 1917~1921년 시기를 다루고 있는 반면 1922~1939년까지의 시기는 9장부터 14장까지에 불과합니다. 물론 1917~21년은 붉은군대의 기본 골격이 형성되었고 또한 붉은군대의 군사교리의 골간을 이루는 중요한 경험이 축적된 시기이니 만큼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서술에 있어 균형이 다소 안맞는 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2004년에 출간된 만큼 이 저작은 시기적인 이점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출간된 시기가 늦은 만큼 최신의 연구성과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지요. 특히 독소전 발발 직전 소련의 준비태세와 동원에 대한 설명은 에릭슨의 저작보다 뛰어납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다뤄지는 독소전 초기의 전황에 대한 기술도 간결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공황상태에 빠진 스탈린의 반응은 다른 저작에서도 많이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에릭슨의 저작에 있는 풍부한 통계가 이 책에는 없다는 점 입니다. 물론 이 시기의 통계자료야 글랜츠나 다른 연구자들의 저작들에 많이 들어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아쉽긴 하더군요. 통계와 도표가 없다보니 꽤 복잡한 소련군의 편제개편을 글로만 이해해야 하는 불편이 있습니다.
책의 뒷 부분에는 전쟁 이후 소련의 독소전쟁에 대한 시각 변화에 대해 정리를 해 놓았는데 이게 참 재미있습니다. 특히 흐루쇼프 시기 스탈린의 격하운동과 맞물린 새로운 역사해석에 대한 부분이 좋습니다. 전반적으로 부록이 매우 부실한데 이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전체적으로 2004년까지의 새로운 연구성과가 대폭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그리고 분량도 에릭슨의 저작 보다 적은 편이니 읽는데도 부담이 적은 편 입니다. 에릭슨의 저작은 너무 방대하다 보니 베게로 쓰기에도 불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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