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역사왜곡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역사왜곡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8년 10월 7일 일요일

러시아의 국가 범죄 은폐 의혹?


Dig Near Stalin-Era Mass Grave Looks To Some Like Kremlin Dirty Work

Russian digs accused of covering up Stalinist crimes

9월에 있었던 AFP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유해 발굴작업을 명분으로 소련의 학살 범죄를 은폐하는 공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제2차대전 중 핀란드군이 학살한 소련군 포로 유해를 발굴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 핀란드군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소련군 포로들을 대량 학살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발굴을 주도하고 있는 군사사학회(РОССИЙСКОЕ ВОЕННО-ИСТОРИЧЕСКОЕ ОБЩЕСТВО [РВИО])는 문화부장관 블라디미르 레딘스키와 우익 정치인 드미트리 로고진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용단체'입니다. 실제로 이 단체의 활동에 대해서는 러시아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지요.

러시아 인권운동단체들은 이 발굴이 스탈린 시절 소련 정부가 자행한 정치범 학살을 은폐하려는 공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푸틴 집권 이후 퇴행적이고 쇼비니즘 적인 분위기에서 소련 시기를 미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주도 하에 적극적으로 역사 왜곡에 나서는 분위기는 매우 우려스럽군요. 카틴 학살 같이 소련의 전쟁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다른 국가의 범죄라고 날조공작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니 만큼 러시아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찝찝함이 느껴지는군요.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역사서술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관점을 보여주는 언론기사 하나

오늘 흥미로운 언론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중국 법원이 설사 '학문적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역사적 영웅'들을 모독하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입니다. '국가적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 자체를 뿌리뽑으려는 아주 졸렬한 태도인데,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군요.




특히 이 기사에서 다음 부분이 의미심장합니다.


청신원(程新文) 최고인민법원 민사1부 재판장은 "학술연구, 상업적 판촉 등을 명분으로, 인터넷 매체들을 주수단으로 삼아 영웅적 인물을 비방, 모욕하거나 그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하고 타인의 정신적 가치를 약화하는 데서 나아가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해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각 법원이 판결을 통해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의 정신을 명백히 밝혀 사회의 영웅 숭상, 수호, 학습, 관심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의 집권을 합리화하는 신화 중 다수가 심각한 수준의 역사왜곡에 기반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발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경직된 분위기가 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학자들이나, 중국 학자들이 외국에 발표하는 저술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 걱정이 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리샤오빙(李小兵)의 China's Battle for Korea: The 1951 Spring Offensive를 읽고 인민해방군 출신의 연구자도 해외에서는 자국 군대의 한계를 비판하는 등 꽤 자유롭게 발언을 한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이런 연구자들이 중국 본토의 이런 퇴행적 기류에 휩쓸리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사족 하나- 위에서 언급한 리샤오빙의 China's Battle for Korea: The 1951 Spring Offensive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1951년 5차 공세 패배 당시 인민해방군 내의 심각한 군기이완(장교 살해, 집단 탈영 등), 미군이나 영국군과의 교전에서 발생한 심각한 손실을 지적하는 점 등 솔직한 서술이 인상적입니다.



2012년 7월 2일 월요일

알렉산드르 칼렌티예프 : 바실리 자이체프 영웅화의 희생자

마이클 존스Michael K. JonesStalingrad : How the Red Army Survived the German Onslaught(Casemate, 2007)는 스탈린그라드를 방어한 제62군에 초점을 맞추어 소련군이 초기의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두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거시적인 전황을 서술하는 대신 일선 전투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의 집단 심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추적합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저작이라 하겠습니다.

동시에 이 책은 꽤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유명한 바실리 자이체프의 영웅화를 비판하는 것 입니다. 저자는 전쟁 중 바실리 자이체프가 영웅화되면서 왜곡된 진실들을 조명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실리 자이체프와 같이 제284소총병사단의 저격수였던 알렉산드르 칼렌티예프Александр Калентьев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저자는 바실리 자이체프의 소속 부대였던 제284소총병사단 1047소총병연대의 참모중 한명이었던 니콜라이 악쇼노프Николай Аксёнов의 회고록에 주목합니다. 악쇼노프는 자신의 저서에서 바실리 자이체프에 대한 널리 알려진 사실 중 상당수가 소련의 선전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알렉산드르 칼렌티예프입니다. 알렉산드르 칼렌티예프는 바실리 자이체프 보다 먼저 저격수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0월 중순이 되면 이미 제284소총병사단의 진중 신문에 그의 이야기가 기사화될 정도였다고 하는군요. 재미있는 점은 칼렌티예프가 시베리아의 오지 출신으로 문맹이었다는 점 입니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묘사하는 바실리 자이체프의 모습과 가까운 인물이었던 것 입니다.

칼렌티예프가 저격수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많은 병사들에게 저격기술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리고 칼렌티예프에게서 저격을 배운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바실리 자이체프였다고 합니다. 바실리 자이체프는 1942년 12월에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칼렌티예프에게서 저격기술을 전수받았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련 정부는 자이체프의 이야기를 좀 더 각색하면서 자이체프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저격술의 선구자였던 것 처럼 만들었습니다. 전후에 자이체프가 회고록을 저술했을때 소련 정부는 검열을 통해 몇몇 내용을 왜곡했고 이를 통해 자이체프가 스탈린그라드의 저격수들을 육성한 선구자로 둔갑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검열을 당한 자이체프의 회고록에서는 칼렌티예프와 자이체프의 관계가 뒤집혀버립니다. 그리고 칼렌티예프라는 인물도 시베리아의 문맹 농부에서 모스크바 저격학교를 수료한 저격수로 둔갑해버립니다. 소련의 선전매체가 쾨니히라는 가공의 독일 저격수를 만들어 낸 것 처럼말입니다.

실제 인물인 알렉산드르 칼렌티예프는 1942년 11월 18일 전사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가 살아있었다 하더라도 소련 정부의 검열과 왜곡을 막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살아남았다면 그의 이야기가 다른 이를 거치지 않고 조금 더 일찍 알려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2006년 10월 18일 수요일

북조선 인민들은 없는 배도 만들어 격침시킨다!

박군님 블로그를 보니 아주 재미있는 글이 하나 실려 있다. 출처가 된 책의 정확한 서지 사항이 어떻게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웃기다 못해 짜증이 난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찌하다 북조선의 군사 백과사전에서 읽은 ‘미제의 중순양함 발찌모르’ 이야기가 생각난다.

원문이 있는 사이트들은 ‘유해 사이트’로 접속이 차단돼 있으니 인터넷 정신병동 자주민보에 실린 글로 대체한다.

(전략)
사실 그보다 4년 전에 조선인민군의 어뢰정은 그보다 더 큰 전과를 거둔 바 있었다. 1950년 7월 2일 4시경, 4척의 어뢰정으로 편성된 제2어뢰정대는 4시간 항행 끝에 주문진 앞바다에서 미군 함선집단을 발견했다. 포화를 무릅쓰고 1000미터 거리까지 접근해 21, 22, 23호 어뢰정이 연속 발사한 3발의 어뢰는 전부 중순양함 “발티모르”호를 명중. 뒤이어 600미터 거리까지 접근해 발사한 어뢰로 경순양함을 명중. 연속 강타를 받은 “발티모르”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침몰되었다.

당시 정대장 김군옥은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은 첫 해군으로 되었고 뒷날 군사교육을 거쳐 기지장이 되었다. 그는 <인민들 속에서 60>(조선노동당 출판사, 2000년 9월 출판)에 “세계해전사에 빛나는 기적은 이렇게 마련되였다”는 제목의 글을 발표해 싸움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김일성 주석은 당시 미 함선집단은 “우리 해군함대가 저들과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방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적 함선들이 부두나 연해에 정박해 있을 때 불의에 타격하면 능히 적함선집단을 소멸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한다. 김군옥은 그 말에 따라 과감하게 행동해 성공했다는데, 사실 어뢰정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노릇이었다. 어느 서방군사평론가가 “황소와 땅벌(북에서는 ‘따벌’이라 표기)의 싸움”이라고 평했다는데 아주 근사한 비유이다.


참고로, 북한쪽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는 막는데 이런 정신나간 헛소리가 실리는 사이트는 내버려 두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에서 ‘발찌모르’ 또는‘볼티모어급’순양함이 격침된 사례가 있을까?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은 다음과 같다.

Baltimore (CA-68) : 1956년 퇴역
Boston (CA-69) : 1970년 퇴역
Canberra (CA-70) : 1970년 퇴역
Quincy (CA-71) : 1946년 퇴역, 재취역후 한국전쟁 참가, 1954년 퇴역
Pittsburgh (CA-72) : 1947년 퇴역, 1951년 재취역, 1956년 퇴역
St. Paul (CA-73) : 한국전쟁 참가, 1971년 퇴역
Columbus (CA-74) : 1975년 퇴역
Helena (CA-75) : 한국전쟁 참가, 1963년 퇴역
Oregon City (CA-122) = 오레곤 급 : 1947년 퇴역
Albany (CA-123) = 오레곤 급 : 1967년 퇴역
Rochester (CA-124) = 오레곤 급 : 한국전쟁 참가, 1961년 퇴역
Bremerton (CA-130) : 한국전쟁 참가, 1960년 퇴역
Fall River (CA-131) : 1947년 퇴역
Macon (CA-132) : 1950년 퇴역, 1950년 재취역, 1961년 퇴역
Toledo (CA-133) : 한국전쟁 참가, 1960년 퇴역
Los Angeles (CA-135) : 한국전쟁 참가, 1963년 퇴역
Chicago (CA-136) : 1947년 퇴역, 1964년 재취역, 1980년 퇴역

그런데 북한의 어뢰정에 격침된 볼티모어급은 단 한척도 없다.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중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다소나마 피해를 입은 것은 CA-135 로스앤젤레스 정도인데 이 녀석에 피해를 입힌 것은 해안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네임쉽인 이른바 ‘발찌모르’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아예 지중해 함대에 배속돼 있었다고 한다. 즉 북조선 인민들은 지중해에 있는 배도 동해바다로 워프시켜서 격침시킬 정도의 능력을 갖춘 것이다.

어떨 때는 이런식으로 망상을 만들어 나가는 북조선 동포들을 보면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연 통일이 된다고 치면 북한인들은 그동안 살고 있던 곳이 참 조악한 매트릭스에 불과하다는걸 깨달을 텐데 현실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2006년 9월 19일 화요일

[불펌]작금의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

동북공정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쓴 글인데 꽤 재미있어서 퍼 왔습니다.

출처는 이곳

요즘 중국의 역사왜곡으로 부쩍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이런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사실 모르겠다 정부수립부터 살았던건 아니니)

언론들이 떠들어대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주장하여 향후 북한 붕괴시 북한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한다.

그러나 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중에 역사학이란 것에 대하여 10분이상 고민해 본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있다면 죄송하다)

역사학에는 소유가 없다. 학문자체를 한국사니 중국사니 구분하는것은 연구 편의를 위한 분류이지 특정 국가가 소유권을 가져라 라는 의미가 아니다. 일종의 학문적 분류일뿐이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한다한들 그게 그날부터 중국사가 되는가? 반대로 금, 청을 한국사라고 우리가 주장한다고 한들 그게 한국사가 될까?
첫 번째 대답을 그렇다 라고 대답했다면 두번째 대답도 그렇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둘 다 같은 대답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듯 하다.

학문은 상품이 아니다. 상품에 대한 인식은 홍보로 바뀌겠지만 홍보로 학문의 카테고리가 바뀌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만약에 바뀐다면 사학에 대한 새로운 학계의 합의에 의하여 가능해질 것이지(물론 모든 학계가 동의하리라는 낙관론을 가진건 아니다)특정국가의 생떼로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령 그 경우에도 그것은 새로운 연구론에 의한 것이겠지 특정국가에게 역사의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것은 아니다. 넘겨준다면 정치의 시녀가된 곡학일뿐이다.

설령 특정 언론들이 주장하는대로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된다고 해도 이것은 북한 영유권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역사학에는 소유권이 없다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다. 설령 소유권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것은 영토주장의 명분조차 되지 않는다. 가장 원론적인 역사역토주의란 가장 비난받는 행위라는 것을 제외하고도 몇 가지 이유에서 힘들다.

우선 현실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어렵다. 북한을 ‘접수’하면서 명분으로 고구려사를 든다고 해보자. 아마도 이 명분은 국제사회에서 가장영향력이 큰 행위자들을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명분 이란게 그런 것이므로)국제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행위자들은 미주나 유럽쪽일 것인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들은 ‘민족사’를 이미 탈피해서 지역사로 가고 있거나 갔다. 특정왕조를 자기 국가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은 민족사적 발상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민족사’적인 명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대폭 양보에서 이 모든 것이 그렇다 라고 해보자. 역사영토주의도 인정하고 배타적인 소유권도 인정한다 했을때, 고구려사가 북한지역을 갖는데 명분이 될 수 있는가? 역시 아니다. 고구려는 1천도 넘은 옛날에 있던 나라다. 그 이후로 한국지역과 중국지역에 아무일도 없었는가? 어떤대상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가장 이른 근거를 대야한다. 한국과 중국의 근대이전의 가장 가까운 국경획정은 조선과 청의 백두산 정계비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천년도 전의 고구려를 갖고 주장하겠다? 이게 명분이 될 수 있을까?

그 외 다른 국제정치적인 문제는 생략하자.

명분으로 보나 민족사라는 관점에서보나 고구려사 문제는 북한지역을 접수하는데 쓰일 명분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부족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그 돈을 들인단 말인가? 중국 지도자들이 머리에 뭔가 들었다면 그 돈으로 북한 지역에 진주하기 위한 전차나 한 대 더 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걸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염려하는 것’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염려를 통해 그들 자신이 역사에 의한 배타적인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것에 근거한 역사 영토주의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이 염려하는 바는 그들도 나중에 같은 상황이라면 그들 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중국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저렇게 염려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난 오히려 학문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중국보다, 이것을 갖고 요란떠는 사람들이 두렵다.

2006년 9월 13일 수요일

이래서 한국일보를 본다

오늘자 한국일보에 아주 멋진 기사가 나왔다.

일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도 중국이 역사를 빼앗고, '민족혼'을 빼앗는다고 온 나라가 소란하다. 처음에 '민족혼'을 위협한다더니, 이제는 '영토 야욕'을 성토한다. 반발의 방향도 혼란스럽다. 중국이 고구려 유적을 홀대해도 난리고, 치장해도 시끄럽다. 언제는 북한이 국경획정 협상에서 득을 봤다더니, 이제는 중국이 성산(聖山)인 백두산을 독차지하려 한다고 법석이다.

그런 와중에 얄궂은 민족주의만 기승을 부린다. 중국의 역사 왜곡을 국수주의적 시각이라고 비난하면서 그 근거로 한국 민족주의를 내세운다. 단언하건대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설 수 없다.

역사 서술의 잣대로 지역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민족 중심의 역사 서술을 내세워 봐야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허깨비를 좇고 있는 중국의 몸짓에 덩달아 춤을 추는 격이다. 그런 허망한 몸짓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가끔 역사를 편의점 간판 정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답답했는데 그런 양반들이 이 글을 한번 읽어 주셨으면 한다.

이래서 한국일보를 본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