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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31일 금요일

To Defeat the Few: The Luftwaffe’s Campaign to Destroy RAF Fighter Command, August-September 1940

Osprey 출판사에서 낸 Douglas C. Dildy Paul F. Crickmore To Defeat the Few: The Luftwaffe’s Campaign to Destroy RAF Fighter Command, August-September 1940를 읽었습니다. 영국본토방공전을 독일 공군을 중심으로 분석한 저작입니다. 필자들은 히틀러와 독일공군 수뇌부의 전략적 목표와 작전 단위의 결단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작전 단위 이상의 전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전술 차원의 공중전 교환비나 격추 전과 검증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고급 지휘관들의 결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경우에 한해서 독일공군과 영국공군이 자군의 전과와 손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언급합니다.

 

이 책은 총 14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1장부터 3장을 영국본토방공전의 전사인 서부전역 항공전과 됭케르크 항공전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4장부터 6장까지는 서부전역 이후 독일 수뇌부의 전쟁지도 방침, 독일공군과 영국공군의 조직과 편성, 교리, 전술을 비교분석 하는 내용입니다. 7장부터 13장까지는 영국본토방공전을 단계별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습니다. 7장은 영국해협의 해운 봉쇄를 위한 해협항공전(Kanalkampf), 8장은 제뢰베 작전의 입안, 9장부터 12장까지는 812일부터 917일까지의 영국본토방공전을 단계별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13장은 9월 공세에서 패배한 독일 공군이 10월까지 진행한 공세작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14장은 결론입니다.

 

저자들은 독일공군의 입장에서 서술을 하기 위해 영국본토방공전의 각 단계를 독일측의 기준에 맞춰 분류하고 있습니다. 각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우전단계, 프랑스전역 종결 직후부터 194087일까지: 영국해협 해운 봉쇄를 위한 해협항공전이 진행된 시기.

11단계, 88~823: 바다사자작전 준비 차원에서 영국 남부의 비행장과 해군 기지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이 진행된 시기.

12단계, 824~96: 영국 남부의 제공권 장악을 위해 영국공군 제11비행단(No.11 Group)의 기지에 공격을 집중한 시기.

21단계 , 97~919: 런던과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공격을 집중한 시기

22단계, 920~1113: 런던을 중심으로 전투폭격기(Jabo)의 주간 공격과 폭격기부대의 야간 폭격을 병행한 시기.

23단계, 1114~1941521: 영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폭격의 최종 단계. 영국에서 통칭 야간 전격전(Night Blitz)로 칭하는 시기.

 

작전사를 다루는 연구들이 모두 그렇듯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독일 공군이 왜 영국본토방공전에서 패했는가?”입니다.

 

저자들은 독일 공군의 전술적 우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작전~전략단위의 능력입니다. 결국 영국본토방공전이라는 전략 단위의 항공전에서 독일공군이 패배한 원인은 작전~전략 단위의 역량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이 책에서는 먼저 독일공군본부의 조직적 문제를 지적합니다. 독일공군은 신생 병종이었고 이 때문에 공군본부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을 만큼의 고급장교를 육성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독일공군의 고급장교들은 대부분 육군 출신으로 항공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인물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1940년 시점에서 독일공군본부에는 공군이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전략단위의 작전을 기획할 조직이 없었다는 점 입니다. 저자들은 19406월 시점에서 독일공군본부의 참모조직은 독일육군본부나 독일해군본부의 전문적인 참모조직과 달리 공군사령관 헤르만 괴링의 개인 참모조직에 불과한 수준이었다고 비판합니다.

오토 호프만 폰 발다우(Otto Hoffmann von Waldau) 소장이 이끄는 독일공군본부의 작전참모국은 작전과, 훈련과, 정보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공군본부의 작전참모국은 부대의 이동과 작전 목표 선정 및 우선순위 부여, 목표 목록 및 정보 하달 등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실제 작전 수립은 항공군(Luftflotten) 사령부와 항공군단 사령부 단위에서 담당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작전-전술 단위에 불과했으며, 이때까지 지상군의 작전과 연계된 작전만을 수행해 왔습니다. 공군본부의 작전참모국이 각 항공군사령부에 작전 목표 목록을 하달하면 항공군사령부는 지원하는 육군의 집단군 사령부와 협의해 목록 중에서 목표를 선정하고 실제 작전을 입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9406월 시점에서 독일공군본부는 단독으로 영국공군을 제압하는 전략 단위의 항공 작전을 수립해야 했습니다. 독일공군본부가 여지껏 단 한번도 수행해 보지 못한 과제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정보 문제를 지적합니다. 사실 정보 수집 및 분석능력 부족은 독일 공군은 물론 육군본부의 참모조직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영국본토방공전 기간 중 독일공군본부 작전참모국의 정보과장은 요세프 슈미트(Josef Schmid) 중령이었습니다. 정보과의 정보 수집능력은 상당히 빈약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전쟁 이전에는 각국 주재 공군무관부와 국방군 방첩국(Abwehr)의 정보수집에 의존했습니다. 그리고 친위대 보안국(SD, Sicherheitsdienst)의 해외자료 수집에도 크게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친위대 보안국은 군사정보 수집을 주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안국을 통한 군사정보 획득은 불규칙했습니다. 이런 빈약한 정보수집능력 조차 전쟁이 발발하면서 무너지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인적자산을 통한 정보수집은 마비되었고 항공정찰 및 감청이 주된 정보수집 수단이 됩니다. 정보과장 슈미트 중령의 분석 능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지만 수집되는 첩보가 감소하니 분석력을 발휘할 여지도 줄어든 셈 입니다. 그리고 슈미트의 분석력 또한 점차 감퇴해 결국에는 객관적인 분석력을 상실하고 상관들이 원하는 정보를 가공해서 바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평가합니다.

 

저자들은 슈미트가 8월의 공세 결과를 잘못 평가한 점을 예시로 듭니다. 1940819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공군 수뇌부 회의에서 슈미트가 보고한 정보분석은 완전히 잘못된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슈미트는 1940 71일부터 영국공군이 561대의 전투기를 전투 손실로 잃었으며 추가로 196대의 전투기가 전투외의 원인으로 파괴되었다고 추산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보충된 전투기(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270~300대라고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는 영국공군이 본토 남부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주간전투기가 330대 가량일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슈미트는 이후에도 괴링에게 계속해서 부정확하고 과장된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그는 824일부터 92일까지 제2항공군의 전투기부대가 공중전에서 영국공군의 전투기 572대를 격추했다고 보고했고 괴링은 이것을 토대로 영국 공군의 잔여 전력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비행장을 폭격하는 것 보다 공중전으로 끌어내는게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8월 내내 영국공군의 전투기 부대는 완강하게 저항했으나 슈미트는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독일공군의 전투기부대가 압도적인교환비로 공중전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91일 기준으로 영국공군의 전투기 전력은 총 600대이고 이중 420대가 영국 동남부에 배치되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괴링과 제2항공군 사령관 케셀링(Albert Kesselring)은 비행장을 계속 폭격하면 영국 전투기부대가 후방의 기지로 철수해 Bf109의 작전반경 안으로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서 런던 폭격을 미끼로 영국공군의 남은 전투기를 끌어내 섬멸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독일공군의 고급 지휘관 중에서 제3항공군 사령관 후고 슈페를레(Hugo Sperrle)는 슈미트의 정보평가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국공군의 가용 전투기 전력이 1,000대 이내일 것이라고 슈미트 보다는 정확한 평가를 했습니다. 또한 독일공군 전투기부대의 전과 보고가 매우 과장되어 있다고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슈페를레는 영국공군의 전투기 전력이 상당한 규모이기 때문에 제뢰베 작전을 수행하려면 영국 남부의 비행장을 계속 타격해서 영국 공군의 전투기 부대를 북쪽의 기지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괴링은 슈미트의 정보평가를 신뢰해서 런던을 타격한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괴링은 915일 런던 상공의 공중전에서 참패한 뒤에도 여전히 영국 전투기부대를 단기간 내에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일 공군은 927일의 런던 공습에서 참패하고서야 영국 전투기부대를 단기간에 제압하는게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독일공군은 이미 8월의 전투에서 영국 전투기부대의 완강한 저항으로 고전을 하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이 공중전에서 압승하고 있다는 잘못된 정보평가를 맹신했습니다. 독일 공군 전투기 부대가 영국본토방공전 기간 중 1.77:1로 우세한 교환비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괴링이나 케셀링이 생각한 압도적 승리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영국공군 전투기 부대는 지속적으로 증강되고 있었고 전투가 소모전으로 접어들자 독일공군 전투기 부대 보다 훨씬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저자들은 괴링이 잘못된 정보분석을 맹신해 비행장에 대한 타격을 중단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라고 평가합니다.

 

각 단계의 작전에 대한 저자들의 평가도 꽤 재미있습니다. 됭케르크 항공전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 저자들은 됭케르크 항공전 당시 영국공군 전투기부대의 역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비판적입니다. 숫적 열세 때문에 독일 공군이 됭케르크에서 철수하는 연합군 선단을 공격할 때 충분한 공중 엄호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다이나모 작전 당시 독일 공군의 피해는 폭격기 51대와 전투기 36대인 반면 철수작전을 엄호한 제11비행단은 작전에 투입한 전투기 106대를 잃었고 이중84대를 독일 전투기와 폭격기의 방어사격에 상실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독일공군이 다이나모 작전을 저지하는데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공격을 됭케르크에 집중하지 못한데 있다고 봅니다. 독일공군은 다이나모 작전이 진행된 9일 중 겨우 3일만 됭케르크에 공격을 집중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저자들은 영국공군이 수송함대를 엄호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다이나모 작전 기간 중 됭케르크 공격에 집중했다면 독일공군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영국 해협 봉쇄를 위한 항공작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영국의 해운을 단기간에 마비시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독일공군은 이 기간에 급강하 폭격기와 중형폭격기의 폭격만으로 34척의 민간선박과 13척의 군함을 격침시켰으나 이것은 영국의 해운력과 해군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이 책은 꽤 장점이 많습니다. 독일공군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영국공군의 조직과 전술에 대한 설명도 풍부합니다. 오스프리 출판사의 저작 답게 독일공군과 영국공군의 전술을 그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진을 비롯한 도판도 풍부하고요.

저자들은 현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국본토방공전을 현대 나토의 군사용어와 개념에 맞춰서 설명합니다. 예를들어 영국공군의 위성 비행장(satellite airfields)와 독일공군의 야전비행장(Feldflugplätze)을 나토의 개념인 전방작전기지(Forward Operating Location)로 분류하고 다우딩 시스템을 현대의 통합방공체계(Integrated Air Defence System)으로 분류하는 식 입니다.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잘 정리해서 재미있게 잘 쓴 책입니다. 다만 이미 영국본토방공전에 대한 훌륭한 책이 많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명한 오스프리 출판사의 책이라는 점 때문에 완전히 묻히지는 않겠지만요. 



2018년 2월 22일 목요일

Robert M. Citino著, The Wehrmacht's Last Stand: The German Campaigns of 1944~1945


Robert M. Citino著, The Wehrmacht Retreats : Fighting a Lost War, 1943


2017년에 출간된 로버트 시티노의 The Wehrmacht's Last Stand는 프로이센-독일의 전쟁방식의 탄생과 몰락을 추적하는 연작 The German Way of War : From the Thirty Years’ War to the Third ReichDeath of the Wehrmacht : The German Campaigns of 1942, 그리고 The Wehrmacht Retreats : Fighting a Lost War, 1943의 마지막 권입니다. 첫 번째 책 The German Way of War에서는 중부유럽을 지리적 배경으로 단기 결전에 초점을 맞춘 독일식 전쟁수행방식이 등장하고 1940년 프랑스 전역에서 그 정점을 찍는 과정을 서술했습니다. 두 번째 책인 Death of the Wehrmacht는 독일군이 소련과 북아프리카로 전장을 확대해 나가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공간의 확대와 단기전으로 격퇴할 수 없는 막대한 물량을 갖춘 적 앞에서 예봉이 꺾이는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권인 The Wehrmacht Retreats에서는 동서 양면으로 조여오는 연합군의 압박에 전통적인 기동전으로 대응한 독일군의 전쟁 수행 방식이 무너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권인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핵심적인 이야기를 기존의 저작에서 모두 풀어놓았기 때문에 신선함은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티노는 독일군의 전쟁 수행방식의 핵심은 '가난한 국가의 가난한 군대'인 독일군이 승리하기 위해서 단기결전을 추구하는데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장의 공간적인 규모가 확대되고 군대의 규모가 커지면서 독일의 전쟁 수행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고 그 결과는 1942년 이후 계속되는 패배로 이어졌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Death of the Wehrmacht와 The Wehrmacht Retreats에서 이것을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마지막권인 The Wehrmacht's Last Stand는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서 완전히 소모된 독일군이 철저하게 붕괴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독일군은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전술-작전 단위에서 강력한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이것은 전략적인 실책을 만회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가 1944년 여름 동부전선의 전황을 설명하면서 "독일군이 국지적인 승리를 거두면 전선의 다른 곳에서 더 큰 구멍이 뚫리고 있었다"고 평가한 구절은 이 책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1943년 이후 전략적인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한 독일군은 "수술대 위의 환자처럼" 무기력하게 동서 양면으로 큰 타격을 받으며 붕괴됩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독일식 전쟁 방식은 어떠한 해법도 제시하지 못 합니다. 저자는 1944년 초 만슈타인과 히틀러의 논쟁을 그 예로 듭니다. 만슈타인은 군사적(작전적)으로 타당한 대안을 제시하지만 그 대안에는 정치적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히틀러는 정치적으로 타당한 주장을 펼치지만 군사적으로는 재앙을 불러오는 주장만을 펼쳤을 뿐 입니다. 1940년 이후 전략적인 초점을 상실한 채 작전적인 승리를 맹신하며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 결과 독일군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된 것 입니다.

저자는 1944년 여름 동서 양면으로 연합군의 대공세에 직면해 독일군 수뇌부가 내린 전략적 판단을 비판하면서 그 비합리성을 지적합니다. 1944년 여름 서부전선 방어를 다룬 부분에서는 히틀러 체제하에서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지휘체계의 파탄을 보여줍니다. 국방군 총사령부로 만들어진 OKW는 3군 통합작전 지휘 보다는 비대한 육군을 견제하기 위한 관료기구의 성격이 강했고, 예하의 3군은 이 체제하에서 통합작전 보다는 타군을 정치적으로 견제해 왔으며 이 모순이 결국 1944년 프랑스 방어의 실패로 나타난다는 것 입니다. 서부전구 사령관 룬트슈테트는 명목상 서부전선의 3군을 통합 지휘해야 하지만 실제로 공군과 해군은 서부전구 사령부 보다는 자군 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았으며, 육군을 지휘하는 롬멜도 룬트슈테트를 무시하고 히틀러에 직보하는 등의 난맥상을 보였다고 지적합니다. 지휘체계의 난맥은 기갑사단의 분산 배치라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르는 원인이 됩니다. 전략적인 파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히틀러를 정점으로 한 최고수뇌부의 오판을 거듭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1944년 여름 소련군의 하계대공세 직전 히틀러가 내린 여러가지 잘못된 결정들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시티노는 히틀러를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하계 공세 직전 철수를 주장하다가 히틀러의 압박에 물러선 뒤 히틀러의 전선 사수 명령만을 수동적으로 전달하는데 그친 무기력한 지휘관 부슈, 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없이 낙관적인 예측만으로 허황된 작전을 수립하는 요들, 연합군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며 이탈리아에서 무의미한 소모전을 전개한 케셀링 등 고위 장성들의 실책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1944년 1월 만슈타인이 거둔 우마니 지구의 승리, 1944년 8월 모델이 바르샤바에서 거둔 승리 등 독일군의 작전적인 탁월함을 보여준 사례도 빠트리지 않고 언급합니다. 저자는 전쟁 말기 까지도 독일군은 기동과 화력을 조합한 작전에서 우수한 수준을 유지했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독일군의 모든 지휘관들이 군수보급과 정보라는 측면에서 형편없었음을 빠트리지 않고 지적합니다. 또한 이들은 정치, 대전략, 경제에 완전히 무지했다고 평가합니다. 즉 독일 장교단은 현대의 총력전을 수행하기에 부족한 집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장교단이 전쟁 말기로 갈수록 히틀러에 충성하며 정치화된 점도 빠트리지 않고 비판합니다. 결론 부분에서는 패전이 임박하자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친 쇠르너의 초라한 말로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처럼 독일 장교단의 몰락을 보여주기에 알맞은 사례도 없을 것 입니다.

부대 명칭 오류 같은 소소한 문제가 있지만 상당히 재미있고 균형잡힌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맥락상 앞선 책들에 논리적으로 부속되어 있다 보니 뭔가 좀 애매한 느낌이 있습니다.


2014년 5월 25일 일요일

Robert M. Citino著, The Wehrmacht Retreats : Fighting a Lost War, 1943



로버트 시티노Robert M. Citino는 17세기 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독일 군사사를 다루는 흥미로운 저작들을 잇따라 발표해 왔습니다. 시티노의 대표작인 The German Way of War : From the Thirty Years’ War to the Third ReichDeath of the Wehrmacht : The German Campaigns of 1942는 기동을 통한 단기 결전을 추구하는 프로이센-독일의 군사사상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떠한 도전을 받고 한계에 부딛히게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Death of the Wehrmacht에서는 작전 단위의 기동전을 통해 전략적인 열세를 상쇄하려 한 독일군의 시도가 처절하게 실패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시티노의 저작에서는 독일의 군사사상이 상대적으로 면적이 좁고, 잘 발달된 도시가 많은 서유럽과 중부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합니다. 유럽의 한가운데에 있어 수많은 적국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신속히 승리를 거두어야 하고 이때문에 단기간에 승부를 보기 위한 작전적 기동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군사사상은 산업화의 시대를 맞아 본격적으로 도전을 받게 되었고 1차대전에서 독일은 패배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 군부는 1차대전의 경험을 통해 기동전에 대한 신념을 더 굳히게 됩니다. 소모전을 피하기 위해서 더욱 더 기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독일의 전쟁 방식은 1940년 서부전역의 대승리를 통해 옳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1941년 소련을 침공하게 되면서 문제는 달라집니다. 소련의 광대한 국토와 막대한 인적자원, 산업동원력은 독일이 1941년 부터 1942년 까지 가한 일련의 전략적 공세를 분쇄해 버립니다. 북아프리카에서의 패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티노는 이 모든 것이 독일의 전쟁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 이었다고 지적합니다.


The Wehrmacht Retreats : Fighting a Lost War, 1943Death of the Wehrmacht의 후속편으로 1942년 전역에서 그 한계를 드러낸 독일군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시티노는 이 시기의 독일군이 한계에 봉착한 전통적인 작전적 기동전으로 연합군의 반격에 맞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는 튀니지, 1943년 초의 동부전선, 시칠리아, 쿠르스크 전투, 1943년의 이탈리아 전선, 1943년 하반기의 동부전선의 작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각각의 전역을 분석하면서 독일의 전통적인 기동전 사상이 어떠한 한계를 드러냈는가를 지적합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프로이센-독일 장교단의 몰락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백년에 걸쳐 발전해온 독일의 군사 사상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군사사상과 함께 유지된 프로이센-독일 장교단이라는 사회 계층도 함께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틀에서 만슈타인, 클루게, 케셀링, 롬멜과 같은 독일 고급 장교단에 대해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1943년의 지중해 전역에 대한 서술에서는 막강한 보급 역량, 압도적인 항공력과 해군전력을 보유한 미영연합군 앞에서 독일군이 감행한 일련의 반격이 잇따라 분쇄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독일군은 우수한 군대였고 뛰어난 작전 수행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수많은 작전-전술 단위의 반격에서 그것을 입증했습니다. 또한 저자는 1942년~1943년에 걸친 롬멜의 퇴각 과정과 1943년 이탈리아군의 무장해제와 같은 군사적인 업적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독일군은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그리고 살레르노에서 항상 신속하게 기동 전력을 집중하여 연합군의 취약한 지점을 타격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작전-전술적인 역량은 초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영 연합군의 막강한 항공력과 해군력, 그리고 방대한 보급에 의해 분쇄됩니다. 시티노는 연합군, 특히 미군이 독일군 보다 덜 공격적이고 작전 수행능력이 떨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방대한 보급에 의해 뒷받침 되는 화력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것 이었다고 지적합니다. 확실히,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압도적인 포병화력과 항공력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보병의 희생을 무릅쓸 필요는 없는 것 입니다. 시티노는 독일군 장성들이 회고록 같은 사료를 활용해 시칠리아와 살레르노의 해안에서 독일군의 기갑전력이 연합군의 함포사격과 포병화력에 소모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독일군은 뛰어난 전투력으로 연합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강요할 수 있었지만 결국 소모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1943년의 동부전선에 대한 평가도 유사합니다. 소련은 방대한 전장이었고 소련군은 막대한 규모였습니다. 1943년 하계 전역에서 나타난 것 처럼 독일군이 한 지역에서 공세를 위해 역량을 집중할 때 소련군은 독일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여러 축선에 걸쳐 공세를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일 장교단은 우수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지만 1943년 시점에서는 소련 장교단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소련군은 1943년에 와서도 일련의 전술적 패배를 겪으며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있었지만 동시에 독일군을 소모시키며 서서히 붕괴시켜갔습니다. 그리고 쿠르스크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을 시작했을 때 독일군은 더 이상 이것을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오룔 돌출부 방어전 처럼 독일군 특유의 기동을 통해 소련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힐 수 있었지만 독일군 또한 함께 소모되었고 독일의 전통적인 전쟁 수행방식은 기울어진 추를 돌리는데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독일의 전통적인 전쟁 수행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독일 장교단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군 지휘관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만슈타인 조차도 단기전, 기동전의 전통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인물이었으며 산업화된 시대의 전쟁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고 지적하는 것 입니다. 만슈타인이 거둔 최대의 승리인 1943년 초 우크라이나 전역 또한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건이었다고 평합니다. 소련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전선을 안정시켰지만 결코 전략적인 균형을 되돌린 것은 아니었다고 그 한계를 지적합니다. 다른 독일 장군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합니다. 특히 범 지구적 단위의 전략적인 견해를 갖춘 인물이 거의 전무했다는 점을 혹독하게 비판합니다. 만슈타인 조차도 작전 이상의 범주를 바라보는 통찰력은 없었다고 보는 것 입니다. 저자가 독일 장성중에서 가장 크게 비판하는 것은 알베르트 케셀링입니다. 시티노는 알베르트 케셀링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는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것이라고 봅니다. 케셀링의 이탈리아 방어전은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형에서 점진적으로 철수하면서 소모전을 전개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만약 케셀링이 이탈리아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어전을 소련과 같은 환경에서 전개했다면 어떤 결과가 왔겠느냐며 반문합니다. 오히려 롬멜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 입니다. 시티노는 롬멜이 엘알라메인 전투 이후 전개한 퇴각전에서 보여준 역량과 이탈리아 방어전략에서 보여준 통찰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독일군 지휘관들이 산업화된 시대의 전쟁에서 보여준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헤르만 발크의 회고록에서 인용한 다음의 구절은 20세기의 산업화된 총력전에서 독일의 전쟁 수행방식이 직면한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dem wir nichts entgegensetzen konn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