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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7일 목요일

2차대전 초기 항공전 양상에 대한 당시의 분석

항공기와 조종사의 소모율이 생산량과 보충되는 규모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독일군이 네덜란드와 벨기에 침공한 이후 벌어진 규모의 공중전이 계속된다면 양군의 공군력은 수개월 이내에 항공 관계자들이 예상한 한계점 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나치 공군은 개전 첫 날에만 100대의 항공기를 격추당했다. 신뢰도 있는 손실 집계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항공기 손실율(ship mortality rate)은 위에서 주장한 수치가 거의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100대와 함께 조종사 150명도 손실된 것으로 보인다. 이 손실율은 독일의 일일 최대 항공기 및 엔진 생산량을 상회하는 것인데 독일의 항공기 생산량은 한달 평균 2,500대 또는 일일 평균 80~85대로 추정되며 조종사 보충율도 손실보다는 낮을 것이다. 전투기를 생산하는 데는 수일이면 충분하고 폭격기는 몇 주면 충분하다. 하지만 독일이 조종사 교육기간을 아무리 단축한다 하더라도 최소 5개월 미만으로 단축하기는 불가능하다.
영국군의 손실은 아직 알려지 있지 않으나 영국의 일일 항공기 생산량은 45대 미만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영국공군의 손실이 높지 않더라도 이것은 영국공군이 독일공군 보다 우수하다는 증거는 될 수 없으며 영국공군은 아직 가용 가능한 항공기를 총 동원한 것이 아니다. 영국 정부는 독일이 벨기에를 완전히 점령하고 이곳을 기지로 영국을 공격할 경우에 대비해 예비 기체를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리 말하면 오늘날의 항공전은 기술 한계의 측면에서 얼마나 항공기를 빨리 만드느냐 그리고 인적 한계의 측면에서는 얼마나 빨리 조종사를 교육시킬 수 있느냐의 양상으로 기울고 있다.
조종사의 교육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조종사 보충이 좀 더 심한 제약을 받는다. 독일에 있어서는 연료 문제가 전격전에 제동을 거는 요인이다.
현재 연합군은 조종사가 15,000명에 불과하다. 만약 하루 평균 50대의 항공기를 잃는다면 연합군은 하루 평균 75명의 조종사를 잃는 것이며 한 달이면 2200명에 달하게 된다. 이것은 현재 교육시켜 배출하는 조종사의 숫자를 초과하는 것이다. 영국의 항공 교육 체계는 충분한 항공인력(조종사, 방어기총사수, 관측사 등)을 배출할 수 없으며 조종사의 경우만 따로 보면 교육이 최고로 이뤄지더라도 다음 해에는 조종사가 부족할 것이다. 또한 독일도 하루 최대 75명 이상의 조종사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각각 다른 공군의 감소율은 항공기 손실과 생산량의 차이에 달려있다. 현재 독일공군의 전력은 11,000대에서 20,000대 사이로 추정된다. 비록 독일의 항공기 생산량이 많더라도 하루 평균 100대의 손실이 계속 누적된다면 몇 달 안에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될 것이며 조종사의 손실은 그보다 더 빠를 것이다. 연합군도 비슷한 비율로 손실을 입는다면 한달 이내에 전력이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현재 연합군의 공군력은 영국 공군이 8,000~11,000대 정도이며 프랑스 공군은 3,500~6,000대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중 많은 수는 중동과 기타 식민지에 배치되어 있다.
현재의 손실율은 전문가들이 1939년 9월 3일 이전에 예측하던 것 보다 더 높다. 미국 육군항공대는 월 손실율을 25%로 잡고 있었고 영국공군은 30%, 독일공군과 이탈리아 공군은 각각 50%와 80%로 잡고 있었다. 이 손실율은 공군의 총 전력에 대한 비율이었다. 간단히 말해 손실율이 100%라면 한 달에 필요한 보충용 항공기는 공군 전체 보유량과 같다는 뜻이며 이것은 현재의 공군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이다. 독일이 현재 하루 평균 100대의 항공기 손실을 감당하기 벅차다는 것은 즉 독일이 월 평균 30%의 손실율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종사와 항공기의 손실은 얼마 안 있어 공군을 대규모로 운용하는 것을 사치로 만들 것이다. 공군력은 보충이 손실을 메꿀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현재 각 국이 보유한 공군력 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 될 것이며 교전국들은 많아야 수천대 정도의 항공기를 일선 전력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항공기 생산공장에 대한 폭격은 분석요소에서 제외했음을 밝힌다. 그 이유는 현재 항공기 공장에 대한 폭격이 항공기 생산에 어느 정도 지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폭격이 항공기 생산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것 말고는 확실한 것이 없다. 항공기 공장에 대한 폭격은 유지할 수 있는 공군력의 규모를 더 줄이겠지만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Science News Letter 1940년 5월 25일

결론은 맞는데 그 결론을 이끌어 내는데 근거로 든 사실들은 황당한 수준입니다. 특히 독일공군에 대한 과대평가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참고로 서부 전역 개시 당시 독일 공군의 총 보유 기체는 5500대 가량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개전 당시 3천대 정도의 항공기를 보유했으니 이 글에서 추정한 최저치를 적용할 경우 얼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영국의 경우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과장이 좀 심한 편 입니다. 손실율의 경우도 황당할 정도로 높게 잡고 있지요.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도 그럭 저럭 말이 되는 결론이 도출되니 참으로 신기한 일 입니다.

2007년 3월 15일 목요일

독일의 점령지역 산업시설 활용 1939-1945 - 항공산업의 사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시 동원과 관련해 자주 논의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1940년 독일이 장악한 서유럽의 공업기반이 독일의 전쟁 수행능력에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줬는가 하는 점 입니다.

가장 먼저…

전후 연합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차 대전 기간 중 독일에 점령된 국가들이 독일 공군에 공급하기 위해 생산한 항공기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국 가1941194219431944총 계
프랑스626681,2855022,517
체코슬로바키아8195688051,9554,147
네덜란드1675414442947
헝가리0073344417
이탈리아003279111
Richard Overy, The Luftwaffe and the European Economy 1939-1945, Militärgeschichtliche Mitteilungen, 1979/2


통계에도 나타나 있듯 독일이 가장 재미를 본 국가는 체코였습니다. 일단 오스트리아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독일의 수중에 들어온 산업화된 국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국항공성(RLM) 내에는 체코의 기업들에게는 항공기 완제품 생산대신 부품과 반조립 정도만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데트(Ernst Udet)가 체코의 공업시설 활용을 적극적으로 밀어 붙였기 때문에 이미 1939년 말에 체코의 항공기 제조업체들은 독일공군으로부터 총 1,797대의 항공기 생산을 수주 받습니다. AVIA가 이때의 경험으로 전후에도 Bf 109의 짝퉁(?)을 생산한 것은 유명하지요.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체코의 군수 산업체들은 독일 점령지역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고 기여도가 컸다는 점 입니다. 체코의 기술 좋은 노동자들은 비교적 말도 잘 듣고 사보타지에 취미가 없었다지요.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경호를 위해 무장 병력을 붙여줘야 했던 유고슬라비아에 비하면 체코는 독일 기업들이 털어먹기 좋은 낙원이었다고 합니다.

슬로바키아는 명색은 독립국이었지만 실제 사정은 옆 동네인 체코와 같아서 거의 일방적으로 독일에 털립니다. 독일의 공군사절단(Luftwaffenmission)은 슬로바키아 정부로부터 국영 항공기 공장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권리를 얻어내는데 사실 이건 반 강제적인 것이었지요. 독일은 슬로바키아 정부에게 슬로바키아의 국영 공장이 생산한 항공기의 75%는 독일 공군이 인수하고 25%만 슬로바키아 공군에 공급한다는 조항을 강요해서 아주 재미를 봅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꽤 흥미로운 경우입니다.
먼저 독일 점령지역의 공장과 비시 정부 관할 지역의 공장을 다루는 주체가 달랐습니다. 비시 정부 관할 지역은 1943년 점령 이전까지는 스위스, 스웨덴과 함께 중립국으로 분류돼 독일항공산업위원회(DELIKO, Deutsche Luftfahrtindustriekommision)의 담당이었습니다. 반면 독일 점령지역은 제국항공성의 관할하에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특히 항공기 완성품 뿐 아니라 중간 부품의 공급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는 독일 다음으로 항공 산업이 발달한 나라였기 때문에 많은 독일 기업들이 침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국항공성이 나서기 전에 기업들이 먼저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지요. 많은 수의 항공 기업(특히 융커스)들은 아직 프랑스와의 휴전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즉 이론적인 교전상태)에서 프랑스 기업들과 사업계약을 체결하러 인력을 파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는 전체적인 항공기 생산에서는 슬로바키아에 뒤지긴 하지만 독일 공군의 중요한 해외 파트너(?) 였습니다. 1942년 까지 독일 공군과 납품 계약을 체결한 프랑스 기업은 192개사였다고 합니다.(같은 기간 독일 육군은 60개사, 해군은 9개사)
프랑스는 휴전 이후에도 자국 정부를 위해서 항공기 생산을 계속했는데 가끔은 독일이 제 3국에 공여할 목적으로 프랑스제 항공기를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1943년에 불가리아 정부는 독일측에게 Dewoitine D.520(도데체 왜 이걸 독일에?) 96대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타전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이건 취소되고 Bf 109 16대가 공여 됩니다.

폴란드의 경우는 말 그대로 안습 입니다. 국가사회주의 강도단의 두목인 괴링 부터가 폴란드는 산업적으로 가치가 없으며 약탈할 건덕지가 없다고 공언할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켈은 크라쿠프에, 융커스는 포즈난에 부품 생산 공장을 확보합니다. 물론 폴란드의 경우 서유럽과 달리 항공기 완성품을 조립할 수 있는 공장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폴란드와 유사한 국가로는 유고슬라비아도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항공 기업들은 독일 점령과 동시에 독일 항공기업들의 자회사로 강제 흡수됩니다. 전쟁 이전 유고슬라비아의 대표적인 항공기업이었던 Aeroput은 루프트한자의 정비공장으로 바뀌고 Rakovica는 융커스의 엔진 부품 공장으로 전환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일이 가장 재미를 보지 못한 곳은 이탈리아였습니다.
독일은 이탈리아를 점령한 뒤 이탈리아의 항공기업들을 독일의 항공기 생산에 활용하려 했으나 성과가 매우 시원치 않았다고 하지요. 항공기 생산이 1943년에 32대, 1944년에 79대로 독일의 한달 치 생산도 안 되는 규모였습니다.

독일이 해외의 산업 기반을 활용한 것은 이렇게 외형적으로나마 합법의 탈을 쓴 것도 많았지만 아예 노골적인 약탈로 나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많았습니다.
먼저 체코슬로바키아가 점령된 다음 접수된 장비와 시설은 불가리아로 매각됐고 폴란드 점령 후 압수된 항공기와 기자재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웨덴 등지로 매각, 또는 공여 됐습니다.
독일 공군은 점령지로부터 산업 시설을 인수하는데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소련 침공을 앞두고는 제국항공성 내에 산업시설 노획을 위한 조직(Beute-Sonderkommando)를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은 1941년 한 해 동안 소련의 점령 지역내에서 8,400여대의 대형 공작기계를 약탈해서 독일로 보냈다고 합니다.
뭐, 어쨌건 소련도 전쟁이 끝난 뒤 실레지엔과 동프로이센의 기계들을 잔뜩 뜯어 갔으니 피장 파장이려나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항공산업 부문만 놓고 보면 독일인들은 2차 대전기간 동안 충분히 재미를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으로 거덜직전까지 가긴 했지만 그것 조차 미국의 경제원조로 피해가니 말 다했지요.

2007년 1월 29일 월요일

프랑스의 대미 군사원조 : 1917~1918

1917년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할 당시 미국의 전쟁 준비는 해군을 빼면 전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국가 전체가 고립주의에 빠져 19세기 후반기 내내 전쟁에 대한 특별한 생각 없이 살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E. Glaser는 1차 대전 당시 미국의 전시 동원체제에 대한 짧은 논문에서 미국의 군수공업위원회가 1918년 초까지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E. Glaser의 논문 제목도 아예 Better late than Never입니다. ‘아예 안하느니 늦는게 낫다’ 정도…)

1917년, 퍼싱이 유럽 원정군을 1918년 6월까지 1백만 수준으로 증강시키고 최종적으로 2백만으로 증강시킨다는 계획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에 제출했을 때 미국 유럽 전선에 보낸 장비 중 현대적인 야포는 120문의 M1903 3인치 유탄포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미국에 제대로 된 군수공장이 드물다 보니 새로 개발하는 M1916 3인치 유탄포는 프랑스군의 75mm 포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 도중에 설계를 변경해야 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공장들은 프랑스로부터 75mm 유탄포의 생산면허를 도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M1916을 양산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리다간 전쟁이 끝날 판이었으니…

1차 대전이 끝난 뒤 미 육군 포병감 스노우(William J. Snow)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쟁 기간에 우리는 우리 군대에 대포를 보급할 능력도 없었고 보급하지도 못했다고 말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 이겠지만, 프랑스 정부가 미국의 딱한 사정을 보고 나서게 됩니다. 1917년 5월 22일, 조프레는 미국 전쟁성에 미육군의 병력 동원을 앞당기기 위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자동화기와 야포를 모두 프랑스 정부가 원조한다는 안을 제안했습니다.
또 같은 달 25일에 프랑스 정부는 미국 측에 1백만발의 75mm 포탄과 10만발의 155mm 포탄을 먼저 원조하고 그 다음으로 매일 3만발의 75mm 포탄과 6천발의 155mm 포탄을 원조하겠다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미국 정부는 1917년 6월 9일에 프랑스 측에 미국제 3인치, 6인치 유탄포 생산을 취소하고 그 대신 프랑스로부터 75mm, 155mm 유탄포를 원조 받겠다고 통보합니다. 당장 포탄부터 얻어 써야 할 판이니 대안이 없었던 것이죠.

결국 이 덕분에 오늘날 수많은 제 3세계 국가가 155mm를 주력 야포로 쓰고 있지요. 만약 미국이 원래 계획대로 3인치와 6인치 유탄포를 양산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야포의 표준 구경은 6인치가 됐을 텐데 말입니다.

부족한 것은 대포 말고도 많았습니다.

1차 대전의 필수품, 기관총도 매우 적었던 것 입니다. 퍼싱은 기관총 부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 처음 도착한 사단들은 미국 본토에서 기관총 사용을 충분히 훈련 받지 못했고 많은 사단들은 프랑스에 도착하기 전 까지 기관총을 지급받지 못한 상태였다. 전쟁에 참전할 당시 각 사단은 기관총 92정만 보유했는데 실제 편제상으로는 기관총 260정과 자동소총 768정이 필요했다. 기관총이 부족해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퍼싱은 1917년 6월 21일, 프랑스에 기관총도 원조해 줄 것을 요청하도록 전쟁부에 문서를 보냈고 프랑스 정부는 즉시 미국에 기관총과 탄약 일체를 원조하겠다는 답신을 보냅니다.

항공기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J. H. Morrow. Jr의 The Great War in the Air에는 전쟁 발발당시 말 그대로 안습이었던 미 육군항공대의 비참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은 1909년 이후 군사 항공에서 독일과 프랑스에 큰 차이로 뒤진데다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유럽의 항공기술이 급속히 발전해 미국으로서는 이 격차를 쉽게 줄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미국 육군항공대는 프랑스가 만든 비행기로 도배를 하고 맙니다.

그러나 미국은 프랑스에 철강, 화약 등을 지원했기 때문에 프랑스에 대해 저자세를 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미국은 1917년에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무연화약을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1918년에는 더 벌어지지요. 프랑스 역시 자원이 부족한데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자본이 거덜날 지경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측에 파격적인 선심공세를 퍼붓게 됩니다.

1차 대전기간 중 미육군이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원조받은 장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 / 영국)

야포 : 3,532 / 160
열차포 : 140 / 0
탄약차(Caisson) : 2,658 / 0
박격포 : 237 / 1,427
자동화기 : 40,884 / 0
전차 : 227 / 26
항공기 : 4,874 / 258

R. Bruce, A Fraternity of Arms : America & France in the Great War, p.105

거의 대부분의 군 장비를 원조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차량은 생산기반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중화기 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었다지요.

저런 일들이 불과 90년 전 일 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 때로부터 불과 30년 만에 경쟁자가 없는 절대 강국으로 떠오른 것을 보면 미국은 좋건 나쁘건 간에 역사상 유례가 없는 괴물 국가임에 틀림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