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7일 일요일

용서는 없다

시간을 내서 '용서는 없다'를 봤습니다. 그동안 에반게리온만 보느라 다른 영화는 거의 보질 못했는데 '용서는 없다'가 2010년 들어 처음 본 한국영화가 되었군요.

사실 용서가 안되는 영화라는 가혹한 혹평이 있길래 호기심이 동하더군요. 그래서 주말 오후에 롯데시네마에 가서 거금 9000원을 들여 봤습니다. 제 생각에는 용서가 안될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으나 어쨌든 좋은 영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줄거리가 퍼질 대로 퍼져있어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아시겠지만 영화는 매우 비극적으로 마무리 되고 이야기의 진행도 다소 엉성합니다. 스릴러가 되기에는 좀 모자란 영화라고 해야 할까요? 논리적으로 허술한 장면이 한 두군데가 아닌데다 등장인물들의 행동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멍청합니다. 비극적인 결론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 진행과정들을 지나치게 억지로 끌어맞췄다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영화는 독창적이지도 않습니다. 한국영화에서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범죄자와 거래한다는 방식은 이미 세븐데이즈에서 한 번 봤고 영화가 준비한 반전이라는 것은 올드보이에서도 본 것 같은 구조입니다. 게다가 결말부분은 데이빗 핀처의 세븐의 결말을 보는 것 같더군요. 물론 천지개벽이래 세상에 독창적인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지만 이건 너무 심했습니다. 짬뽕도 잘 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네요.

게다가 한혜진이 연기한 여형사는 너무 뻔해빠진 등장인물이라 없는게 나을 뻔 했습니다. 물론 한혜진이 나쁘진 않습니다. 아주 아주 예쁘잖아요. 하지만 남자들로 가득찬 조직에서 꼴마초에게 시달림 받는 유능한 여자라니, 이건 너무 흔해빠진 캐릭터 아닙니까. 물론 묘사가 좋았다면 나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한혜진의 연기가 너무 어색합니다. 대사도 문어투인데 한혜진의 연기는 그걸 그대로 받아 읽는 수준이라. 차라리 한혜진이 영화 중간 중간 나오는 나가요 언니라던가 아니면 부검대 위의 시체를 연기하는 쪽이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약 한혜진이 부검대 위의 시체였다면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었을지도;;;; 오오. 예쁜 시체다!) 게다가 한혜진이 연기한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인지는 몰라도 극중에서 한혜진을 괴롭히는 선배 형사(성지루)가 아주 무능하고 멍청한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성지루 같이 괜찮은 배우를 이런 멍청한 역할로 소모하다니. 이건 좀 심하지 않나요.

설경구는 좀 불쌍했습니다. 비극적인 영화에 아주 잘 맞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영화의 시나리오가 꽝이었고 연출도 별로였다는 겁니다. 어쨌든 설경구는 괜찮았습니다.

살인범 역할을 맡은 류승범도 괜찮았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류승범이 맡은 등장인물이 더럽게 재미없는 인물이라는 점 입니다. 좋은 배우가 아깝게 소비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스릴러라기에는 너무 맥빠지는 영화였습니다. 차라리 잔인한 장면을 더 많이 늘렸다면 개인적으로 좋은 점수를 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8개:

  1.   한혜진이 시체였다면 용서를 할 수 있는 영화였단 말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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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가 좀 변태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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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조조+통신사할인(1일1회)+카드사할인(1일1회)을 조합하면 교통비만으로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던 시절이 2002년 경이었죠. 영화에 대한 아무 사전정보없이 그냥 안봤으면 보면 되는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 심지어 영화제를 제외한 국내상영작 올킬도 하던 시절이었죠.

    그러다가 통신사할인이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가더니 결국 작년에 카드사할인이 대폭 축소되고(연12회. 장난하냐?) 표값 자체가 인상되기에 이르러 이제는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취향에 들어맞는 작품만 선별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용서는 없다'의 경우도 작년초에만 개봉했었어도 주연배우들의 이름값 만으로도 그냥 봤을텐데 정보수집결과 조금 머뭇거리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 들어보니 그냥 패스해야 되겠군요 - 소위 '어둠의 경로'가 아니더라도 VOD도 요즘 꽤 괜찮은 수준이라서 조금만 기다리면...

    제가 관람작들을 기록해두기 시작한게 2003년 부터인데 재작년까지 매년 상영관에서 관람한 편수가 100킬을 넘다가(최대기록은 2005년 156킬. 동일작품 중복관람은 모두 1킬로 계산) 작년에 드디어 100킬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표값 좀 올랐다고 대폭 줄여버리는 것을 보면 역시 모든 일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저답게 영화 역시 광신도는 아니었던 듯 싶은데 팬... 은 되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그래도 7~8년 정도 신작관람을 위해 상영관에 나름 열심히 드나들다보니 결국은 VOD 등등을 통해 고전명작에 눈길이 가더군요. 관람비용 문제도 있고(이게 사실 가장 크지만) 현재의 흐름과는 좀 다른 무언가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게 모든 취미의 흐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아직도 영화에 관하여 다른 이들에게 자신있게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심미안은 열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낮았을지도 모르므로 결국 영화에 쏟은 지난 시간도 그저 일개 소비자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게 하는 먼 길일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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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 별로 좋은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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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영화의 세계에 2시간 몰입한 값으로 치르는 거래로 7달러는 나쁘지 않다." by Steven Pink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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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흑흑흑. 이건 재미가 없어 몰입도 안되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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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한혜진이 시체였다면...에서 정리 완료.

    이건 재건방법이 없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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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찌질하다는 단어가 아주 잘 어울리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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