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전에 쓴 "1930년대 미 육군 항공대의 폭격기 우월론에 대한 궁금증"이란 글에 배군님이 "전투기 무용론"이란 답글을 써 주셨습니다. 배군님의 글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1936년 8월 14일에서 8월 17일에 걸쳐 벌어진 일본군과 중국군의 항공전인데 여기에 대해서 조금 써 보려 했으나 제가 요 며칠동안 약간 정신이 없다 보니 제때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조금 늦긴 했습니다만 이 공중전에 대한 중국측 시각에 대해 간단하게 써 보겠습니다.
먼저 중일전쟁 초기의 공중전이니 만큼 중일전쟁 직전 중화민국 공군의 편성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중일전쟁 직전 중화민국 공군은 급속히 증강되었습니다. 1936년 까지 중화민국 공군은 총 14개 비행중대(飛行中隊)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6년 8월에 광동공군의 9개 비행중대가 중앙군 예하로 들어와 다음과 같이 개편되었습니다.1)
광동공군 제1비행중대 → 중앙군 제16비행중대
광동공군 제2비행중대 → 중앙군 제17비행중대
광동공군 제3비행중대 → 중앙군 제18비행중대
광동공군 제4비행중대 → 중앙군 제19비행중대
광동공군 제5비행중대 → 중앙군 제20비행중대
광동공군 제6비행중대 → 중앙군 제28비행중대
광동공군 제7비행중대 → 중앙군 제29비행중대
광동공군 제8비행중대 → 중앙군 제30비행중대
광동공군 제9비행중대 → 중앙군 제31비행중대
그리고 10월에는 중앙군 예하에 7개 비행중대가 새로 편성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37년 7월에 중화민국 공군은 총 10개 비행대대(飛行大隊)와 6개 독립 비행중대로 편성되었고 구체적인 편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2)
항공위원회
│
└공군전적총지휘부(空軍前敵總指揮部)
│
└공군굉작기사령(空軍轟炸機司令)*
│ └제1비행대대
│ └제1비행중대(노스롭 감마 2E)
│ └제2비행중대(노스롭 감마 2E)
│ └제2비행대대
│ └제9비행중대(노스롭 감마 2E)
│ └제11비행중대(노스롭 감마 2E)
│ └제14비행중대(노스롭 감마 2E)
│ └제8비행대대
│ └제10비행중대(사보이아 S.72)
│ └제19비행중대(He111A-0)
│ └제30비행중대(마틴 138WC)
│
└공군구축기사령(空軍驅逐機司令)**
│ └제3비행대대
│ └제7비행중대(커티스 호크 III)
│ └제8비행중대(브레다 Ba.27, 피아트 CR.32)
│ └제17비행중대(P-26A)
│ └제4비행대대
│ └제21비행중대(커티스 호크 III)
│ └제22비행중대(커티스 호크 III)
│ └제23비행중대(커티스 호크 III, Fw44)
│ └ 제5비행대대
│ └제24비행중대(커티스 호크 III)
│ └제25비행중대(커티스 호크 III)
│ └제28비행중대(커티스 호크 II, Fw44)
│ └독립제29비행중대(커티스 호크 III)
│
└공군정찰기사령(空軍偵察機司令)
│ └제6비행대대
│ └제3비행중대(더글라스 O-2MC)
│ └제4비행중대(더글라스 O-2MC)
│ └제5비행중대(더글라스 O-2MC)
│ └제15비행중대(피아트 CR.32)
│ └제7비행대대
│ └제6비행중대(Vought V-92C)
│ └제12비행중대(Vought V-92C)
│ └제16비행중대(Vought V-92C)
│ └독립제31비행중대(정찰기)
│
└제9비행대대(공격기)
│ └제26비행중대(커티스 A-12 슈라이크)
│ └제27비행중대(커티스 A-12 슈라이크)
│
└항주견교항교잠편대대(杭州筧橋航校暫編大隊)
│ └제32비행중대
│ └제34비행중대(커티스 호크 II)
│ └제35비행중대(Vought V-92C)
│
└제13독립비행중대
└제18독립비행중대
└제20독립비행중대
└제33독립비행중대
*굉작기(轟炸機) 폭격기죠
**다들 잘 아시겠지만 구축기(驅逐機)는 전투기죠.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상하이에 대한 상륙작전을 개시합니다. 중국 항공위원회는 8월 14일 오전 2시, 공군작전명령 제2호를 발령해 상해에 상륙하고 있는 일본군을 폭격하도록 했습니다. 이 작전에는 폭격기 부대인 제2비행대대와 전투기 부대인 제4, 제5비행대대, 그리고 공군전적총지휘부(空軍前敵總指揮部) 직할대인 항주견교항교잠편대대(杭州筧橋航校暫編大隊, 이하 잠편대대)가 투입됐습니다.
8월 14일 부터 8월 17일까지 전개된 항공전의 추이는 唐学锋저, 中国空军抗战史, 90~100쪽의 내용에 따라 서술하겠습니다.
8월 14일 오전 7시, 잠편대대 제35비행중대 소속의 보우트 V-92C 5대로 편성된 중국공군의 제1차 공격대가 젠차오(筧橋)비행장을 출격했습니다. 제1차 공격대는 손실 없이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제2차 공격대는 제2비행대대 소속의 노스롭 감마 2E 21대로 편성되었으며 오전 8시 40분 제2비행대대 부대대장 쑨통강(孫桐崗)의 지휘하에 250kg 폭탄 14발과 50kg 폭탄 70발을 탑재하고 광더(廣德)비행장에서 출격했습니다. 2차 공격대는 두 제대로 나뉘어 첫 번째 제대는 휘산(匯山) 부두를 폭격하고 두 번째 제대는 우송(吳淞) 하구에 상륙하는 일본군 함선을 공격했습니다. 2차 공격대 또한 손실 없이 귀환했습니다. 3차 공격대는 제5비행대대의 호크III 8대로 편성되었으며 5대대장 딩지쉬(丁紀徐)가 직접 지휘하는 가운데 250kg 폭탄 1발씩을 탑재하고 오전 9시 20분 출격해 상해 인근의 일본 해군 함정을 공격했습니다.
중국공군은 오후부터 폭격을 재개했습니다. 제4차 공격대는 제5대대 제24중대의 호크III 3대로 편성되었으며 3차 공격대와 마찬가지로 각각 250kg 폭탄 1발을 탑재하고 오후 2시20분 출격했습니다. 4차 공격대는 일본군의 본격적인 반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4차 공격대가 목표 상공에 도달했을 때 일본군 전투기가 기습해와 부중대장이 격추되어 전사하는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제5차공격대는 제2대대의 폭격기로 편성되어 오후 2시 40분 출격했으며 상해의 일본해군 육전대사령부를 폭격했습니다. 제6차 공격대는 제35중대장의 지휘하에 오후 2시 40분에 출격해 궁다(公大) 방직공장을 폭격했습니다. 제7차 공격대는 제25중대의 호크III 3대로 편성되었으며 25중대장의 지휘하에 오후 2시 45분 출격해 일본군 사령부 등을 폭격했습니다. 오후 3시 40분에는 제2대대의 폭격기로 구성된 제8차 공격대가 출격했으며 오후 3시 50분에는 잠편대대 소속 제34중대의 호크 II와 호크III로 편성된 제9차 공격대가 출격해 50kg 폭탄 2발과 18kg 폭탄 11발을 투하하고 귀환했습니다.
한편, 이날 제공전투는 제4비행대대 소속의 전투기들이 담당했습니다. 오후 2시 50분, 제4비행대대는 공격해 오는 일본군 폭격기들을 습격해 21, 22, 23중대가 각각 1대씩, 총3대를 격추시켰습니다.
중국공군은 8월 15일에도 공격을 계속했습니다. 이날 중국공군은 모두 8차에 걸쳐 공격을 감행했는데 각 공격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1차 공격대 : 제6대대 5중대, 3대
2차 공격대 : 제6대대 5중대, 5대
3차 공격대 : 제6대대, 대대장 단독출격
4차 공격대 : 제5대대, 14대
5차 공격대 : 제2대대 11중대, 17대
6차 공격대 : 제5대대, 6대
7차 공격대 : 제7대대 16중대, 6대
8차 공격대 : 제4대대, 8대
한편, 8월 15일 전투는 배군님의 글에 잘 서술되어 있듯 일본군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중국쪽 기록은 이날 전투에서 러이친(樂以琴)이 4대, 탄원(潭文)이 3대를 격추하는 등 총 30대의 일본 항공기를 격추시켰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측의 주장은 실제보다 다소 과장되었지만 어쨌든 이 전투는 일본측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이 사실입니다. 8월 16일에도 대규모 공중전이 계속되었는데 중국측은 이날에는 11대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17일에는 제 2, 4, 5, 7대대의 호크 17대와 노스롭 감마 2E 12대, 보우트 V-92C 15대 등 총 44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6차 걸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날 전투에서는 소규모 공중전이 있었으며 일본군 항공기 1대를 격추시켰다고 합니다.
중국공군은 8월 내내 상하이와 우송 일대에 출격하여 지상군의 작전을 지원했습니다만 이 글을 쓴 이유가 일본군이 큰 피해를 입은 8월 14일~17일의 항공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이었으니 8월 하순의 작전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 전투가 흥미로운 점은 그 당시 미국에서 퇴물로 취급하던 호크II, III와 같은 기종으로도 공격해 오는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구식 항공기들이 동원된 이 전투의 결과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일본군은 이 전투의 교훈을 살려 전투기들을 개선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이상하게도 미국은 전간기의 여러 전쟁에서 교훈을 얻는데 신통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주
1) 刘凤翰, 国民党軍事制度史 上(北京, 中国大百科全书出版社, 2009), p.469
2) 曹剑浪, 国民党军简史 下(北京, 解放军出版社, 2004), pp.1557~1558
잡담하나, 이 글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참고한 唐学锋의 中国空军抗战史는 한가지 문제가 있는데 각주가 제대로 달려 있지 않다는 겁니다;;;;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2007년 6월 15일 금요일
중국공군항전사 - 唐學鋒
혜화동 로터리 근처에 있는 화문서적에 갔다가 중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의도로 구매한 책 입니다. 가격은 22위안인데 4,500원에 샀습니다. 이 책은 중일전쟁 발발부터 2차대전 종전까지 국민당 공군의 작전과 편제 변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 입니다. 관심은 있으되 아는게 없는 분야고 가격도 5,000원이 안되는지라 바로 질렀는데 조금 훑어보니 심각한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가장 먼저... 각주와 참고문헌 목록이 없습니다! 맙소사. 명색이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책인데 이럴수가! 경악했습니다. 사회주의권의 책들이 이런 경향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동독의 군사사가인 그뢸러(Olaf Groehler)도 자신의 저작에 각주를 달지 않았지요. 물론 이 사람은 참고문헌 목록까지 빼 먹진 않았습니다만.... 이 당학봉이란 양반은 더 대인배로군요.
다음으로는 제본 상태가 불안합니다. 이거 몇년이나 더 갈런지... 물론 중국책이 러시아 책 보다는 더 잘만들긴 하는데 아직 평균적으로는 한국 만큼 잘 만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책에 쓰는 종이도 질이 약간 낮은 것 같고...
이것을 제외하면 개설서로서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중국공군(국민당공군)의 주요 작전을 잘 다루고 있으며 일본측 자료도 많이 참고한 듯 일본측에 대한 서술도 충실해 보입니다. 여기에 중국 전선에서 작전한 미육군항공대에 대해서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서 대략 훑어본 느낌으로는 개설서로서 상당히 충실해 보입니다. 여기에 중국의 초기 공군발전과정에 대해서도 앞 부분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도 좋은 점 입니다. 전체적인 인상은 von Hardesty의 Red Phoenix에 비교할 만한 저작 같습니다. 각주와 참고문헌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만 뺀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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