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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5일 일요일

[海東高僧傳] 卷一 日海居士 全斗換

海東高僧傳 卷一 日海居士 全斗換

해동고승전 권1 일해거사 전두환

일해거사 전두환은 본시 한국의 국왕이었다. 왕위에서 물러난 뒤 출가하여 2년 만에 득도하였다.

전두환은 합천 사람으로 후버3년 1월 18일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한가지를 가르치면 몰라도 될 것 까지 깨치니 모두가 범상한 아이가 아니라고 하였다. 전두환은 아이젠하워 3년에 군관이 되었는데 이때 이미 흉중에 큰 뜻을 품고 있었으나 그 뜻을 펼칠 도리가 없었다.

케네디 원년 5월 16일 장군 박정희가 반정을 일으켜 전횡을 일삼던 문하시중 장면을 잡아들이고 사직을 반석에 세웠다. 전두환이 이 소식을 듣고 무과에 합격한 장사들을 모아 박정희를 찾았다.

“소장 비록 무반의 말석에 불과하나 장군께서 이렇게 의로운 군사를 일으키셨으니 어찌 가만히 앉아 보고 있겠사옵니까?”

박정희가 감격하여 전두환을 비장으로 삼았다. 케네디 황제가 박정희를 한국 국왕에 봉한 뒤 전두환은 박정희의 총애를 받아 여러 요직을 거치다가 마침내 닉슨 5년에는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카터3년 10월 26일, 상장군 김재규가 자객을 이끌고 국왕 박정희를 시해하였다. 이때 견룡대정 차지철은 삼십육계를 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황제가 문하시중 최규하를 한국 국왕에 봉했으나 최규하는 글만 아는 선비인지라 용맹과 위엄이 없어 백성들이 심히 불안하게 생각하였다. 이때 북쪽의 홍건적들이 준동할 기미를 보이니 민심이 더욱 더 흉흉하였다. 국왕 최규하가 도원수 정승화에게 군율로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으라 하였으나 정승화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두환이 나라의 형세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여기고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국왕 최규하를 알현하였다. 최규하는 평소 스스로 국왕 될 재목이 아님을 알고 양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두환을 만나 그의 뜻을 들으니 크게 기뻐하며 양위 할 뜻을 비추었다. 전두환이 황공해 하며 거듭 사양하였으나 수천명의 선비들이 모여 왕위에 오를 것을 간청하니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전두환은 본시 덕이 많아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국왕이 된 뒤 옛 일을 잊지 않고 따르던 무리들에게 관직과 재물을 후하게 내리니 많은 이들이 과연 전두환은 신의를 지킨다며 감탄하였다.
전두환이 국왕에 오르자 북괴의 김일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자객을 보냈으나 실패하였다. 김일성은 혹여 전두환이 군사를 일으킬까 두려워 조공으로 쌀과 시멘트를 바쳤다. 한국의 여러 국왕 중 북괴로부터 조공을 받은 것은 전두환이 처음이었다. 이로서 전두환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니 레이건 황제도 크게 기뻐하며 전두환에게 “平北傀保國大將軍韓國國王”의 작위를 내렸다.

레이건 8년,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양위를 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전두환은 본시 불심이 깊어 항상 출가할 뜻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내 왕위에서 물러 난 뒤 출가할 마음을 굳혔다. 전두환이 출가할 것을 결심하니 그의 처 이씨가 따르기를 간청하였다. 전두환이 대비 이씨와 함께 출가하여 백담사로 가니 많은 이들이 놀랐다. 전두환이 출가하니 본시 머리 숱이 거의 없어 따로 삭발할 필요가 없었다.

조지 부시 2년 12월, 마침내 전두환이 도를 얻었다. 사람들은 석가모니도 득도하는데 7년이 걸렸는데 전두환은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여 크게 놀랐다. 이때부터 전두환은 여러 신이(神異)한 일을 행하였다.

노태우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김영삼은 야소교도로 불도를 탄압하였다. 마침내 상황 전두환과 노태우도 불교를 숭상한다 하여 잡아들였다. 이때 전두환은 감옥에서 일절 음식을 먹지 않고 참선하였는데 그 기운이 범상치 않으니 옥리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 하였다.

클린턴 5년, 한국에 큰 환란이 닥치니 많은 이들이 이것은 김영삼이 불도를 탄압한 때문이라 하였다. 클린턴 황제가 김대중을 국왕에 봉했다.

김대중은 국왕이 되어 다시 전두환과 노태우를 상왕으로 복위시켰다.

이때 전두환은 김영삼이 모든 재물을 빼앗아 전 재산이라고는 29만원 밖에 없었다. 전두환은 덕망이 높아 왕위에서 물러난 뒤에도 많은 이들이 흠모하여 찿아왔다. 하루는 대비 이씨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하였다.

“찿아오는 객은 많은데 지금 있는 돈이라고는 29만원 뿐이라 세뱃돈이 부족하니 이를 어찌 하면 좋겠사옵니까?”

전두환이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객이 오는대로 세뱃돈을 듬뿍 주어 보내도록 하오.”

대비 이씨가 반신 반의하며 손님이 오는 대로 출금하여 세뱃돈을 주었는데 통장에는 여전히 29만원이 남아 있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니 더욱 더 전두환의 이름이 높아졌다.

[海東高僧傳] 卷一 日海居士 全斗換

海東高僧傳 卷一 日海居士 全斗換

해동고승전 권1 일해거사 전두환

일해거사 전두환은 본시 한국의 국왕이었다. 왕위에서 물러난 뒤 출가하여 2년 만에 득도하였다.

전두환은 합천 사람으로 후버3년 1월 18일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한가지를 가르치면 몰라도 될 것 까지 깨치니 모두가 범상한 아이가 아니라고 하였다. 전두환은 아이젠하워 3년에 군관이 되었는데 이때 이미 흉중에 큰 뜻을 품고 있었으나 그 뜻을 펼칠 도리가 없었다.

케네디 원년 5월 16일 장군 박정희가 반정을 일으켜 전횡을 일삼던 문하시중 장면을 잡아들이고 사직을 반석에 세웠다. 전두환이 이 소식을 듣고 무과에 합격한 장사들을 모아 박정희를 찾았다.

“소장 비록 무반의 말석에 불과하나 장군께서 이렇게 의로운 군사를 일으키셨으니 어찌 가만히 앉아 보고 있겠사옵니까?”

박정희가 감격하여 전두환을 비장으로 삼았다. 케네디 황제가 박정희를 한국 국왕에 봉한 뒤 전두환은 박정희의 총애를 받아 여러 요직을 거치다가 마침내 닉슨 5년에는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카터3년 10월 26일, 상장군 김재규가 자객을 이끌고 국왕 박정희를 시해하였다. 이때 견룡대정 차지철은 삼십육계를 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황제가 문하시중 최규하를 한국 국왕에 봉했으나 최규하는 글만 아는 선비인지라 용맹과 위엄이 없어 백성들이 심히 불안하게 생각하였다. 이때 북쪽의 홍건적들이 준동할 기미를 보이니 민심이 더욱 더 흉흉하였다. 국왕 최규하가 도원수 정승화에게 군율로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으라 하였으나 정승화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두환이 나라의 형세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여기고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국왕 최규하를 알현하였다. 최규하는 평소 스스로 국왕 될 재목이 아님을 알고 양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두환을 만나 그의 뜻을 들으니 크게 기뻐하며 양위 할 뜻을 비추었다. 전두환이 황공해 하며 거듭 사양하였으나 수천명의 선비들이 모여 왕위에 오를 것을 간청하니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전두환은 본시 덕이 많아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국왕이 된 뒤 옛 일을 잊지 않고 따르던 무리들에게 관직과 재물을 후하게 내리니 많은 이들이 과연 전두환은 신의를 지킨다며 감탄하였다.
전두환이 국왕에 오르자 북괴의 김일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자객을 보냈으나 실패하였다. 김일성은 혹여 전두환이 군사를 일으킬까 두려워 조공으로 쌀과 시멘트를 바쳤다. 한국의 여러 국왕 중 북괴로부터 조공을 받은 것은 전두환이 처음이었다. 이로서 전두환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니 레이건 황제도 크게 기뻐하며 전두환에게 “平北傀保國大將軍韓國國王”의 작위를 내렸다.

레이건 8년,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양위를 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전두환은 본시 불심이 깊어 항상 출가할 뜻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내 왕위에서 물러 난 뒤 출가할 마음을 굳혔다. 전두환이 출가할 것을 결심하니 그의 처 이씨가 따르기를 간청하였다. 전두환이 대비 이씨와 함께 출가하여 백담사로 가니 많은 이들이 놀랐다. 전두환이 출가하니 본시 머리 숱이 거의 없어 따로 삭발할 필요가 없었다.

조지 부시 2년 12월, 마침내 전두환이 도를 얻었다. 사람들은 석가모니도 득도하는데 7년이 걸렸는데 전두환은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여 크게 놀랐다. 이때부터 전두환은 여러 신이(神異)한 일을 행하였다.

노태우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김영삼은 야소교도로 불도를 탄압하였다. 마침내 상황 전두환과 노태우도 불교를 숭상한다 하여 잡아들였다. 이때 전두환은 감옥에서 일절 음식을 먹지 않고 참선하였는데 그 기운이 범상치 않으니 옥리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 하였다.

클린턴 5년, 한국에 큰 환란이 닥치니 많은 이들이 이것은 김영삼이 불도를 탄압한 때문이라 하였다. 클린턴 황제가 김대중을 국왕에 봉했다.

김대중은 국왕이 되어 다시 전두환과 노태우를 상왕으로 복위시켰다.

이때 전두환은 김영삼이 모든 재물을 빼앗아 전 재산이라고는 29만원 밖에 없었다. 전두환은 덕망이 높아 왕위에서 물러난 뒤에도 많은 이들이 흠모하여 찿아왔다. 하루는 대비 이씨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하였다.

“찿아오는 객은 많은데 지금 있는 돈이라고는 29만원 뿐이라 세뱃돈이 부족하니 이를 어찌 하면 좋겠사옵니까?”

전두환이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객이 오는대로 세뱃돈을 듬뿍 주어 보내도록 하오.”

대비 이씨가 반신 반의하며 손님이 오는 대로 출금하여 세뱃돈을 주었는데 통장에는 여전히 29만원이 남아 있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니 더욱 더 전두환의 이름이 높아졌다.

2007년 3월 8일 목요일

[美利堅史] - 테네시공 엘 고어 世家

테네시공 엘 고어는 황도(皇都) 화성돈 사람으로 트루먼 4년에 태어났다.

고어의 부친 앨버트 시니어는 덕망이 높아 루즈벨트 황제가 테네시 후에 봉하였다.

아이젠하워 원년, 테네시주 백성들이 앨버트 시니어를 거듭 칭송하니 황제가 이를 듣고 앨버트 시니어의 작위를 높여 테네시 공으로 봉하였다.

고어는 장성하여 하버드 서원에서 수학하였다. 고어는 이때 토미 리 존스라는 선비를 만났는데 존스는 뒤에 서부로 가서 광대가 되었다고 전한다.

닉슨 원년, 고어는 군졸이 되었다. 처음 고어가 군졸이 되겠다 하니 많은 이들이 이를 만류하였다.

“어찌 제후 집안의 자제로서 일개 군졸이 되려 하는가?”

고어는 만류하는 벗들에게 이렇게 답하였다.

“군역이야 말로 신하의 도리 중 으뜸이거늘 어찌 천하다 하는가?”

닉슨 2년, 고어가 애치슨(Aitcheson)씨를 정실로 맞았다.

지미카터 원년, 황제가 고어를 테네시 후에 봉하였다.

레이건 5년, 황제가 고어의 작위를 높여 테네시 공으로 봉하였다.

조지 부시 4년, 여러 제후들이 아칸소 공 클린턴의 인품이 훌륭하다 하여 황제에게 클린턴에게 양위할 것을 상주하였다. 마침내 황제가 클린턴에게 양위하였다.

클린턴 원년, 황제가 고어를 승상으로 삼았다.

고어는 승상이 되자 상주하여 관리와 군졸의 수를 줄이자고 하였다. 이에 황제가 이를 옳게 여겨 관리와 군졸들을 줄이니 많은 관리와 군졸들이 고어를 원망하였다.

클린턴 원년, 묵서가 국왕이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묵서가는 땅은 넓으나 그 백성들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때문에 묵서가는 항상 더 많은 하사품을 원하였다.

고어가 묵서가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황제에게 묵서가가 조공하는 것을 제한하지 말 것을 간하였다. 이때 로스 페로라는 부호가 상주하여 묵서가가 조공하는 것을 계속 옛 법도에 따르자 하였다.

“천조의 물산은 풍부하여 부족함이 없으니 묵서가 같은 오랑캐의 조공을 더 받을 이유가 없사옵니다.”

그러나 황제가 고어의 말을 옳게 여겨 묵서가가 마음껏 조공하게 하였다.

고어는 본시 아비를 닮아 덕이 있고 지혜로웠으나 승상이 되어 황제의 총애를 받으니 마침내 본래의 덕을 잃고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클린턴 8년, 황제가 승상 고어에게 양위 하고자 여러 제후들에게 뜻을 물었다. 그러나 많은 제후들이 고어가 교만하고 덕이 없다 하여 고어에게 양위하지 말 것을 간하였다. 여러 제후들이 선황제 부시 시니어의 장자 부시 주니어를 추대하니 마침내 황제도 부시 주니어에게 양위 하였다.

고어는 평소 자신이 부시 주니어보다 덕망있고 학식도 높다고 자부하였으나 황제가 부시에게 양위하자 크게 상심하여 마침내 실성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고어는 실성한 채 천하를 방랑하며 천하의 얼음이 모두 녹아 재액이 닥친다며 외치고 다녔다. 평소 고어의 학식을 사모하던 많은 선비들 중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2006년 5월 12일 금요일

[美利堅史] 권43 광종 조지 W 부시 本紀

광종(狂宗) 조지 W 부시 주니어 황제는 41대 황제 조지 H. W. 부시 황제의 장남이다.
본시 미리견은 백성들이 덕있는 사람을 천자로 추대하는데 부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천자를 하니 이로서 조지 부시 주니어의 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부시 주니어 황제는 트루먼 2년 코네티컷에서 출생했다.

장성하니 가문의 전통을 이어 예일 학당에서 학업을 쌓았다.

존슨 6년, 남만을 토벌하는 싸움이 수년간 계속되고 홍건적의 준동이 심하니 정예로운 군사는 모두 외방에 나가 미리견을 지킬 군사가 부족했다.

부시 황제는 나라를 지킬 군사가 모자람을 염려하여 스스로 민병(National Guard)이 되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남만으로 나가니 내가 아니면 누가 나라를 지키리오?”

군역을 마치고 다시 하버드 학당에서 학업을 쌓아 MBA를 취득하니 이것은 미리견 황제 중에서 최초이다.

부시 황제는 일찍이 도(道)를 갈구하여 얻지 못하니 크게 실망하여 음주가무에 빠지게 되었다.

레이건 5년, 조지 부시 주니어가 곡주에 취해 비몽사몽간을 헤메다가 마침내 취기에 상제를 영접하니 비로서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 모든 도(道)가 자유(Freedom) 앞에서는 덧없는 것 이로다!”

그리고 다시 말하였다.

“이제 도를 깨우쳤으니 더 이상 술은 필요 없다.”

소인배들이 말하길 부시 황제가 득도한 것이 빌리 그래엄(Billy Graham) 이라는 도인을 만난 때문이라 하는데 모두가 허황된 낭설이라 할 것이다.

클린턴 2년, 텍사스 백성들이 부시 주니어 황제의 덕을 흠모하여 텍사스 공으로 추대했다. 부시 주니어 황제가 4년간 텍사스를 자유로서 다스리니 모든 백성들이 자유의 감화를 받았다.
부시 주니어 황제가 텍사스 공을 그만두려 하매 백성들이 다시금 텍사스 공으로 추대했다.

“공께서 지금 우리를 버리시면 누가 자유로서 텍사스를 교화하겠습니까?”

부시가 다시금 자유로서 텍사스를 교화하니 그의 덕이 미리견 전체에 퍼졌다.

이때 클린턴 황제는 성품이 음탕하고 난잡하여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는데 뜻있는 신료들은 이를 심히 우려했다.

마침내 모든 백성들이 부시 주니어를 황제로 추대하니 자유의 덕화가 천지사방에 퍼지게 되었다.

부시 주니어 황제는 등극한 뒤 백성의 삶을 돌보는데 힘을 쏟았다.

하루는 황제가 시장에 나가니 한 대장장이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노인장은 누구신데 이렇게 한숨을 쉬시오?”

“소인은 휴즈(Hughes)라는 대장장이인데 손도끼(Tomahawk) 만드는 일을 합니다. 레이건 황제 때만 해도 장사가 잘 됐는데 클린턴 황제 이후 이렇게 어려워 졌습니다”

부시 주니어 황제가 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게 다 짐의 부덕함이다. 천하에 어찌 손도끼 쓸 곳이 없으리오?”

부시 주니어 황제가 노인에게서 손도끼(Tomahawk)를 모두 사 들인 뒤 오랑캐들이 난동을 부릴 때 마다 손도끼를 하사했다.
이렇게 해서 손도끼를 하사 받는 모든 오랑캐들이 감화되었다.

다만 김정일과 아마디네자드 등은 손도끼를 하사받기를 원했으나 부시 황제가 노인에게서 사들인 손도끼가 떨어져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부유한 장사치들에게 세금을 내지 말도록 했다.

“장사치들은 돈 버는 것이 낙이거늘 어찌 백성의 어버이가 되어 백성의 낙을 빼앗겠는가?”

이에 빌 게이츠 등 여러 장사치들이 감동하여 외쳤다.

“천자께서 이리도 백성들을 위하시니 어찌 백성된 도리를 게을리 하겠나이까?”

빌 게이츠 등 여러 장사치들이 감격하여 더 많은 세금을 냈다.

부시 주니어 3년, 태위 럼즈펠드가 상소를 올려 후세인 치는 군사를 일으킬 것을 간하였다.

“삼가 신이 아뢰건데 태조 황제께서 나라의 기틀을 쌓으실 때 자유(Freedom)을 모든 도의 근본으로 삼으라 하시니 이후 선황제들께서 자유로서 모든 오랑캐를 교화 시키셨나이다.
지금 의랍극 국왕 후세인이 난폭하여 그 백성을 핍박하니 백성들은 마음껏 포를 쏠 자유조차 없사옵니다.”

부시 황제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의랍극 백성들이 포를 쏘고 싶어도 쏠 자유(Freedom)가 없으니 짐이 천자된 몸으로서 어찌 아니 슬프리오?”

이에 럼스펠드의 상소를 받아들이고 후세인을 치는 군사를 일으켰다.

천병이 한번 싸움에 후세인을 잡아 포박하고 그 백성들에게 포를 쏠 자유를 주니 의랍극 사람 모두가 천자의 은혜를 찬양하며 외쳤다.

“천자께서 우리에게 포를 쏠 자유를 주셨으니 어찌 아까운 탄환을 허공에만 낭비하리오?”

이리하여 의랍극인들은 천병을 보면 반가이 총포를 쏘고 천병들도 이를 받아 쏘니 서로간에 포화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풍속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