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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2일 수요일

Obama’s Not Carter, He’s Eisenhower

러시아의 크림 반도 침공으로 국제정세가 뒤숭숭합니다. 뭐, 제가 이쪽에 대해 아는건 별로 없지만 워낙 중요한 사태다 보니 시간이 나는대로 외신 보도들을 챙겨보고 있습니다. 물론 정보량이 방대하고 현안에 대해 아는게 적다 보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현재 미국의 태도에 다소 불안감을 느끼는 편인데 제 시각과는 방향이 다른 글을 한편 읽게 되어서 번역을 해 봅니다. 포린 폴리시에 제임스 트라웁James Traub이 기고한 Obama’s Not Carter, He’s Eisenhower라는 글인데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이기는 게 뭐 대수냐!”는 담대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뭐, 시각에 따라서는 정신승리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입장에서 느긋하게 대응하자는 이야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하게 읽히긴 합니다만 이런 시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오바마는 카터가 아니다, 그는 아이젠하워다.

그리고 오바마는 서방이 전쟁에 승리할 것을 알기 때문에 푸틴이 전투는 승리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제임스 트라웁

헝가리 정부가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직후인 1956년 11월 4일, 소련군의 전차들이 부다페스트로 진격했다. 헝가리의 봉기 군중이 마지막으로 보낸 절망적인 내용의 전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져 있었다. “그들이 지금 막 미군이 한두시간 내에 부다페스트로 올 것이라는 소문을 전해왔다. … 우리의 상황은 나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중이다.” 미군은 부다페스트로 가지 않았다. 아이젠하워는 소련을 동유럽에서 몰아내겠다고 호언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헝가리의 봉기는 분쇄되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도부는 아이젠하워가 소련에게 굴종한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애들레이 스티븐슨Adlai Stevenson은 아이젠하워가 “자유국가들의 동맹이 존립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몰고 가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까지 했다.

러시아가 또 다시  인접국가를 침공하자 미국 대통령도 또 다시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는 아이젠하워와 같은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오바마는 쉽게 재선된 아이젠하워가 받았던 비난 보다 더 심한 강도의 비난을 받고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침공한데 대해 오바마가 신중한 태도를 취하자 그가 나약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며, 전 세계의 악당들은 오바마의 불안정한 리더쉽을 보면서  미국의 보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평이 더욱 더 퍼지고 있다. 공화당의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은 얼마전 트위터에 2012년 미국 외교관 크리스 스티븐스Chris Stevens가 리비아에서 살해됐을때 리비아를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공격적인 행동”이 초래됐다고 썼다. 그레이엄은 당파적인 입장에서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오바마를 비판하는데 동참하고 있다. 수많은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나의 동료 데이빗 로트코프David Rothkopf는 오바마와 지미 카터를 비교하는 글을 쓰면서 허약한 대통령의 기준으로 “카터를 꼽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여기에 인간 관계와 유사한 점이 있다. 악당들이 말을 알아듣게 하려면 위협을 가하는 수 밖에 없다. 악당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보복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면 행동을 멈출 것이다. 내 동생을 때리면 나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국제관계의 영역에서 럼즈펠드의 그 유명한 “나약함이 도발을 불러온다.(Weakness is provocative.)”는 격언의 바탕이 되었다. 럼즈펠드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 중동의 다른 모든 악당들에게 경고가 될 것이며 이런 악당들이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을 재고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럼즈펠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라크 침공의 경험을 통해 호전적인 태도가 나약함 보다도 더 도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개인의 생활이나 국제 관계를 막론하고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충동은 참기가 힘들다. 악당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은 멋지게 보이며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악당은 거들먹 거리며 걸어다니고 약한 사람들은 움추려든다. 우리는 잔인한 짓만 빼고 악당들 처럼 자유롭기를 갈망한다. 월터 미티Walter Mitty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미국처럼 놀이터에서 가장 잘나가는 골목대장이라면 악당들의 이런 행동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빅 브라더에 짜릿함을 느낀다. 미국인들이 “고르바초프! 베를린 장벽을 없애버려요!”라고 절규하도록 만든 로날드 레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을 평화적으로 해체하게 만든 그의 후임자 조지 부시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세계는 부시에게 더 많이 감사해야 한다.

아이젠하워는 악당들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파멸을 불러올 수 도 있을 정도의 위협을 가해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적국이 우리가 신경쓰는 것 이상으로 희생양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경우가 그러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헝가리를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푸틴이 친서방적인 우크라이나 정부에게 크림 반도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믿는것과 같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크림 반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영역이었으며 로시아 흑해함대의 기지였으며, 오랫동안 부동항을 갈망해온 러시아를 만족시키는 지역이다. 푸틴 같은 깡패(thug)는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위협을 받는다면 그가 할 줄 아는 유일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야만적인 폭력말이다. 오바마가 보다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면 푸틴이 손을 뗄 것이라는 생각은 공상에 불과하다. 이건 마치 “누구 때문에 중국에서 패배한 것이냐?”와 같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나약해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줬다는 비난과 같은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식이다. “누구 때문에 벵가지에서 패배한 것이냐?” 아니면 시리아 라던가.

아이젠하워는 결국에는 소련이 서방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오바마 또한 푸틴에 대해서 아이젠하워가 소련에 대해 가졌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오바마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푸틴이 탁월한 전략가라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포린 폴리시의 편집위원인 윌 인보든Will Inboden은 오바마의 행동은 어린아이들이 보드게임을 하는 수준인데 푸틴은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푸틴은 러시아를 핵무기를 가지지 못한 사우디 아라비아로 만들었을 뿐이다. 러시아는 땅에서 캐내는 것 말고는 수출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산유국에 불과하다. 푸틴이 잭나이프를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수준이라면, 나머지 세계는 레이저를 사용하는 법을 익히고 있는 수준이다.

오바마의 대외정책 수행을 카터와 같다고 이야기 하지만 아이젠하워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오바마처럼 전임자로 부터 물려받은 방대한 국방 예산이 국가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준다고 생각했다. 항상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아이젠하워는 적은 수단으로 더 많은, 혹은 사용하는 수단 만큼의 결과를 얻어내려고 노력했다.(스티븐 세스타노비치Stephen Sestanovich는 맥시멀리스트Maximalist에서 아이젠하워와 오바마를 “긴축” 대통령으로 묘사했다.)  내가 지난주에 기고한 글에서 쓴 것 처럼, 오바마가 대외 정책에서 추구하고 있는 가장 큰 목표는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테러와의 전쟁을 포함한 지난 정권에서 이어진 분쟁들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다.

오바마가 대외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계속되는 문제는 오바마의 정책에 결단성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갈수록 외골수로, 상상력이 결여된 축소지향적인 방향을 추구하는데 있다. 오바마는 임기를 시작할 때 핵무기 비확산과 기후 변화와 같은 국제적인 문제에 관한 국제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원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바마는 전임 대통령때 부터 시작된 통제할 수 없는 분쟁을 중단할 수 없으며, 미국 국민들은 그의 개혁안에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알게됐다. 결국 오바마의 열정은 사그러들었고 그의 (사고:역자) 지평은 줄어들었다. 그대신 오바마는 미국이 세계 각지의 분쟁에서 확실하게 거리를 두는 것을 선택했다. 무엇보다도 시리아가 그런 경우였다. 오바마는 시리아에서 자행되는 최악의 만행에 대해 단호해 보이는 제스쳐를 취하는 정도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행동은 나쁜 일이다. 한때 오바마가 제창했던 희망과 그가 안주하기로 선택한 편안한 장소와의 거리는 아이젠하워의 말뿐인 반공주의와 그의 실용적인 타협안 사이의 거리보다 더 멀다. 백악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브라이언 카툴리스Brian Katulis는 최근 오바마가 더이상 미국 국민들에게 국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마도 오바마는 국제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듯 싶다.

나는 오바마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오바마가 하는 일이 훌륭하다는 것을 모른다고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바마의 실패는 그의 불안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가 초기 부터 러시아에 대해 보다 대결적인 정책을 취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오바마가 그렇게 했다면 그는 군비통제나 아프가니스탄, 이란 문제에서 그랬던 것 처럼 동맹국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푸틴이 꿈꾸는 것 처럼 미국과 러시아가 동등한 입장에서 대결하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이 초래되었다면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통합되는 것 같은 용납할 수 없는 위협에 직면하여  러시아에서 민족주의적인 여론이 거세지도록 선동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오바마가 2년 전에 시리아의 반군을 훈련시키고, 군자금을 지원하며, 장비를 제공하는 것을 승인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오바마가 시리아 문제에 개입하지 못한 것이 그의 임기 내내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오바마가 푸틴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리아인들을 압제로 부터 구출하기 위해 개입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오바마는 몇가지 제제조치와 올 6월에 소치에서 개최될 예정인 G-8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취소하는 등의 조치를 결합하여 러시아를 고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계속해서 푸틴 개인에 대한 숭배에 붙들려 있는 이상 오바마가 취하게 될 조치들은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고립된다면 푸틴의 입지만 강화될 것이다. 동구와 서구가 대립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듯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가 동맹국이나 적절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대결은 한쪽에 일방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냉전 당시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하더라도 서구는 꾸준한 인내심을 가지고, 미래는 자유민주주의의 편에 있다는 신념을 확고히 하여 대결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저는 이런 시각을 썩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미국이 유리할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단기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될 국가가 우크라이나 하나로 끝난다는 보장은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벌어진 전쟁에서 무너진 작은 국가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올 여름쯤에 나올 국제관계나 군사전략 관련 저널들이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룰테니 그때쯤 잘 정리된 재미있어 보이는 글들을 더 번역해 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Journal of Strategic Studies나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에서 특집을 내줬으면 좋겠네요.

2012년 5월 30일 수요일

어떤 호언장담.....

덩샤오핑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있었던 매우 유명한 일화지요.(이곳에 들러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무슨 일인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덩샤오핑의 미국 방문은 그는 물론 카터에게도 큰 성과였다. 그런데 덩샤오핑은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에게 큰 골치거리를 안겨주었다. 내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덩샤오핑은 카터 대통령과의 개별적인 회견을 요청했으며 이 회견은 화요일 오후 5시에 열렸다. 우리측에서는 부통령(Walter Mondale)밴스(Cyrus R. Vance), 그리고 내가 참석했으며 덩샤오핑은 부총리(方毅), 외교부장(黃華)과 외교부 부부장(章文晉)을 동반하였다. 회견의 주제는 내가 예상한대로 베트남 문제였다.

우리는 지난 회담을 통해 중국은 소련이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할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사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때문에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을 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음을 알았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 지도층과 여러차례의 대화를 통해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은 중국의 안보에 전략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동남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이 전복한 캄보디아의 잔혹한 폴포트 정권은 중국의 가까운 동맹이었으므로 중국은 베트남에 대해 보복을 가하기로 했다.

참석자들이 오벌 오피스에 모였을 때,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며 다른 미국측 참석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덩샤오핑이 중국의 입장을 차분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강경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는 심각하고 매우 특별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덩샤오핑은 중국이 소련의 전략적인 계획을 방해하고 “베트남의 야욕을 저지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교훈을 주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이때 어떤 식으로 교훈을 줄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그 범위와 시기가 제한적일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덩샤오핑은 예상되는 소련의 대응과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하여 차분하게 설명했다. 덩샤오핑은 소련의 대응 방식에는 “최악의 경우”도 포함될 것이라고 했으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더라도 중국은 그에 맞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덩샤오핑은 국제무대에서 미국이 “정신적인 지원”을 해주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약간의 사전논의를 하긴 했으나 나는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나는 덩샤오핑이 미국에 오기전에 대통령에게 중국이 갈수록 캄보디아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중국이 취할 것으로 예상되는 행동에 대해 미국이 과도한 경고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나는 대통령이 밴스의 조언에 따라 중국에게 무력을 사용하지 말도록 강한 권고를 할 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할 경우 중국은 미국이 “종이호랑이”라는 생각을 더 확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이 사무적인 태도로 이 문제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답을 하기 전에 참모들과 협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대답해서 크게 안도했다.

덩샤오핑은 만약 베트남이 자제하지 않을 경우 중국은 행동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중국이 제한적인 행동을 한 뒤 병력을 신속히 철수하겠다는 것 이었다. 덩샤오핑은 1962년에 있었던 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을 예로 들면서 베트남도 같은 방식으로 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덩샤오핑은 미국의 지지를 기대하지는 않았으며 때로는 어느 한쪽이 어떤 행동을 취할때 다른 한쪽은 그렇게 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중국측이 여러가지 대안을 고려한 뒤 설사 소련과의 대결을 초래하더라도 행동을 취하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덩샤오핑의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어조에 감명을 받았다.

Zbigniew Brzenzinski, Power and Principle : Memoirs of the National Security Adviser 1977~1981, (Farrar Straus & Giroux, 1983),  pp.409~410

그리고 베트남이 중국에게 교훈을 줬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죠.....

2012년 1월 10일 화요일

Why Panetta's Pentagon Cuts Are Easier Than You Think

지난 1월 4일, 포린 어페어즈 인터넷 판에 재미있는 글이 한편 실렸습니다. 「어째서 파네타의 국방부가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가?(Why Panetta's Pentagon Cuts Are Easier Than You Think)」라는 글인데 미국의 국방예산 삭감이 군사력 약화를 초래하기 보다는 비효율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작년 9월에 블로그에 소개했던 「다가오는 미국의 긴축(America's Coming Retrenchment )」과 같이 미국의 국방예산 감축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견해가 많다는 점에서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어보고 바로 블로그에 올려볼까 했는데 주말에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경상도에 다녀온데다 MJ님이 출연하시는 원더풀라디오를 보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좀 늦어졌습니다. 좀 날림번역인데 봐주십시오^^;;;;;


어째서 파네타의 국방부가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가?
로렌스 콥(Lawrence J. Korb)

이번주에 레온 파네타Leon Panetta국 방부장관이 국방예산을 수천억 달러 감축하는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부문과 군부의 지도자들은 이와같은 예산 감축이 재앙과도 같은 충격을 줄 것이라고 비난하는 등 예언같은 경고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적절한 재원이 없다면 미국이 세계 각처에 가지고 있는 이익을 보호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재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국방부의 입장을 가장 강력히 지원하는 사람들 조차도 국방부의 문제는 관리에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군장교협회Military Officers Association의 회장인 노버트 라이언Norbert Ryan은 최근 워싱턴타임즈에 기고한 논평에서 이 문제를 잘 정리했다.: “거의 매주 많은 비용이 투입된 계획들이 총체적인 관리 부실과 예산 초과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는데 이 중에서 현재 우리 군대가 싸우고 있는 전쟁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라이언은 이렇게 적었다. “관리부실이 매우 심각해서 국방부의 회계장부는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보일 지경이며 국방부의 고위층은 2017년 이전에는 시험을 통과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해군 장교로 장기간 복무한 전쟁영웅 출신의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의원(공화당, 애리조나)은 이보다 더하다. 2011년 12월 15일 상원 의석에서 매케인 의원은 사실상 현재 개발 중인 거의 모든 무기체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매케인 의원은 F-35 계획이 수습 불능의 상태이며, 해병대의 신형상륙장갑차Expeditionary Fighting Vehicle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탄식했고, 육군의 미래 전투 체계는 “요란하고, 부끄러운 실패작” 이상이라고 비판했으며, F-22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잡아먹은 채로 격납고에서 좀만 슬어가는 여왕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항상 이렇게 엉망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행정부가 강력한 부장관을 두어 운영을 총괄해서 담당하게 했을 때는 관리 문제가 미미했다.(국방부장관은 국방부의 운영을 신경쓰기에는 너무나 바쁘다.) 예를 들자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제너럴 모터스에서 찰스 윌슨Charles Wilson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휴렛 패커드에서 데이빗 패커드David Packard를, 지미 카터 대통령은 코카콜라에서 찰스 던칸Charles Duncan을,  그리고 조지H.W. 부시 대통령은 제너럴 모터스의 도날드 앳우드Donald Atwood를 데려다 썼다.

이들 행정부에서 국방 예산은 크게 감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는 부장관의 관리상의 결정에 힘입어 개선되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공군은 소련의 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 값비싼 폭격기를 사용하는 대신 훨씬 저렴한 지상 발사 미사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닉슨 행정부에서 국방부는 일부 기능을 예비군으로 이관하면서 현역 병력의 규모를 감축할 수 있었다. 게다가 국방부는 전투기를 조달할 때 고성능기와 저성능기를 함께 사용하도록 하여 값싼 F-16과 F/A-18로 값비싼 소수의 F-14와 F-15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크게 감축할 수 있었다. 카터 행정부에서 국방부는 공군의 B-1 폭격기를 취소하여 그보다 저렴한 B-2 스텔스 폭격기를 도입하도록 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는 (F-22에 대한 해군의 대응인) A-12가 개발사에서 예산 한도를 지키지 못하게 되자 이를 취소시켜버렸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국방부 부장관들은 대부분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관리 기술이나 명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의 부장관 폴 월포위츠Paul Wolfowitz,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의 부장관 빌 린Bill Lynn, 그리고 파네타의 부장관 애쉬튼 카터Ashton Carter는 큰 조직을 운영해 본 일이 없으며 심지어 군복무 경험조차 없다. 요지는 국방부가 핵심적인 국방 예산을 실질적으로 1998년 회계연도에서 2011년 회계연도까지 13년 연속으로 증액하는 유례없는 일을 했다는데 있다. 레이건 시대의 방대한 군사력 건설조차 1981년에서 1985년까지 불과 4년간 계속되었을 뿐이며 이 다음에는 13년간 실질적인 감축이 이루어졌다. 현 재 파네타 장관이 다음 10년 동안 연간 1천억 달러의 핵심 국방 예산을 감축한다고 발표하더라도 2013년도의 예산은 4,720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이것은 2007회계연도의 예산과 같은 규모이다. 이 액수는 미국이 냉전 기간 중 사용한 연간 평균 예산을 상회하는 것이며 미국 다음의 하위 17개국의 국방예산을 모두 합한 것 보다도 더 많은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국방부의 고위층은 지출 기준치를 감추었다. 지난 10년간 국방부의 수뇌부는 추가 전쟁 비용으로 부터 진행중인 전투와는 전혀 관계없는 F-22 랩터와 미사일 방어 체계와 같은 핵심 품목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해왔다. 국방부는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 무기 체계의 비용 상승을 감춰왔으며 국방예산에서 투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은 것 처름 보이도록 해왔다. 강력한 부장관이 있었다면 F-22와 같은 고성능 무기체계를 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F-35와 교환하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국방부의 수뇌부는 방위산업체들이 비용을 초과한 것에 대해 댓가를 치르도록 하는데 거듭해서 실패해왔다. 국방부는 그렇게 할 수단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의회는 행정부가 국가 안보의 기준에서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기 개발계획이 예상 비용을 15~50% 초과하게 될 경우 무효화 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97년 이래 거의 절반 이상의 무기 체계 개발계획이 이 법안을 위반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양산에 돌입하도록 허가받았다.

그 다음에는, 2000년만 하더라도  개발 중이거나 생산에 들어간 계획에 소요된 비용이 4,300억 달러로 증가했다. F-35의 개발을 예로 들어보자. 원래는 2,866대에 2,33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금은 겨우 2,400대에 최소한 3,8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대당 가격은 이 기종이 대체할 예정인 F-16의 다섯배에 이르고 있다. 강력한 부장관이 있었다면 계획을 취소해 버리거나 회사가 초과비용을 책임지도록 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미국의 무기 체계가 노후화 되어 가고 있으며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 국방부가 이렇게 전례 없는 비용 지출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 스팀슨 센터Stimson Center의 러셀 럼바우는 각 군의 조달 비용이 21세기의 첫 10년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01 회계연도에 630억 달러에서 2010회계연도에는 1,360억 달러로 늘어났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낡은 장비를 교체한 것이 아니라 500억 달러를 신형 무기체계 획득에 사용했으며 여기에는 유례없이 신속하고 유연한 전장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유인차량과 무인차량으로 편성된 여단으로 편성되는 3,400억 달러짜리 미래전투체계Future Combat Systems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 체계에 200억 달러를 지출하고 난 뒤 정부는 이것을 취소해 버렸다

국방부의 관리 부실은 작전 및 유지 분야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이것은 2012년 회계연도에 2,000억 달러 이상에 달할 것이다. 방산업체의 경영진들은 비록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들이 전선에 배치된 기존의 것들에 비해 비싸기는 하지만 작전 비용은 감소할 것이라고 거듭해서 주장해 왔다. 그렇지 않다. F-35의 작전비용은 최소한 F-16 C/D형 보다 15퍼센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기획되어 있다. 그리고 해병대의 V-22 오스프리의 작전 및 유지비용은 지난 3년간 460억 달러, 62%나 증가했다. 매케인 의원에 따르면 F-22는 대체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구형기종(F-15와 F-16)과 비교했을 때 운용하기에 너무나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실제로 국방부는 갈수록 비효율적이 되어가고 있다. 2010년에 게이츠 국방장관은 국방 예산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각 군에 낭비적인 요소를 파악하도록 했다. 몇 주만에 2,000억 달러 규모의 과잉 지출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면 장군과 제독의 숫자는 군대가 오늘날 보다 두배나 더 컸던 1971년 당시 보다 훨씬 많으며 사령부들, 예를 들어 통합전력사령부Joint Forces Command와 같은 곳들은 다른 사령부와 업무가 중복되고 있다. 그러나 게이츠 장관은 획득한 비용으로 초과된 부분을 메우는 대신 국방부가 획득한 비용의 대부분을 신규 무기 계획에 쏟아넣도록 방치했다.

국방부가 현재와 같이 운영된다면 어려운 결정들을 계속해서 회피하려 할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또한 의회도 각 지역구에 지속적으로 경제적 활력을 넣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국방부는 군부-산업체-의회 복합체를 다루는데 충분한 경험을 가진 강력하고 단호한 성격의 부장관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를 마쳐갈 무렵 국방예산은 오늘날의 액수로 환산했을 때 3,800억 달러에 달했다. 닉슨 대통령은 같은 시기에 3,980억달러였다. 그리고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같은 시기에 4,350억 달러였다. 조지 W. 부시 에 와서는 4,780억 달러가 되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말에는 기준예산이 최소한 4,750억 달러 이상으로 아마도 5,250억 달러에 근접해 있을 것이다. 만약 오바마의 군부 및 민간 관료들이 소련과 같은 실질적인 위협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만큼의 비용으로도 국가를 지켜낼 수 없다면 오바마는 다른 사람들을 알아봐야 할 것이며 특히 새로운 국방부 부장관이 필요할 것이다. 패커드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68년 위스콘신의 공화당 하원의원 멜빈 레어드Melvin Laird가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었을  때 그는 유능한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레어드가 자신의 참모들에게 미국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이들은 패커드를 추천했다. 레어드는 즉시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패커드가 국방부 부장관 직을 맡아달라고 설득했다. 파네타나 그의 뒤를 잇게 될 사람들이라면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을 책임지는 조직과 제도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본문에서 레이건 행정부 시기의 방만한 예산 운영과 그 뒤를 이은 조지 부시 시기의 조정을 언급한 점이 필자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2007년에 간단하게 소개했던 것 처럼 레이건 행정부 시기는 오늘날 국방예산이 무절제하고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단순히 신무기만 잔뜩 들여놓는다고 국방력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국방 정책은 명확한 목표가 먼저 설정되어야 하며 신무기 도입은 그에 따르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합니다. 필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 처럼 ‘소련과 같은 적’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무기를 잔뜩 들여놓고 이 때문에 당장 필요한 분야에 사용할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이 글은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예산 감축을 바라보는 시각 중 긍정적인 편에 속합니다. 비효율을 제거하게 된다면 적은 예산으로 미국의 국방력이 개선될 여지가 있을테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끌리는 설명이기도 합니다.

2009년 7월 31일 금요일

육군은 배가 고프다!!!

아랫 글에서 듀푸이 장군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나서…

카터 행정부는 엉망이 된 경제 때문에 국방비 감축에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카터는 국방부가 ‘뻥을 쳐서’ 예산을 뜯어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통령에 취임하자 마자 당장 국방비를 70억 달러 삭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1) 카터의 국방비 삭감계획에 각 군은 바짝 긴장했고 특히나 육군은 카터가 해외 주둔 미군의 감축을 통해 육군의 예산을 삭감하려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카터가 주한미군 전투부대를 철수하라는 행정명령 13호에 서명하는 등 육군을 열받게 하고 있던 1977년 5월, 듀푸이 장군은 미육군전력사령부(FORSCOM)와 미육군교육사령부(TRADOC)의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하던 도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먼저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육군전력사령부와 유럽주둔미군은 모두 내가 ‘집중성’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희생양이 되려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집중성’ 때문에 우리는 비용의 상승과 동시에 에너지의 고갈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중략)

두 번째로 닥치고 있는 것이 비용(문제)입니다.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들어봅시다. 우리가 종종 이용하는 랭글리(Langley) 공군기지에는 72대의 F-15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즉 1개 비행단 입니다. F-15 한 대는 1800만 달러나 합니다. 한 대당 1백만 달러인 XM-1 18대를 살 수 있는 돈 입니다. (XM-1) 18대에 72를 곱하면 우리 육군이 유럽에 배치한 전차를 비용으로 환산한 것의 80%가 됩니다. 또한 기계화보병전투차량은 M113 장갑차 보다 여덟 배 비쌉니다. 기계화보병전투차량은 마더 만큼 비싸지 않으며 영국군의 보병수송장갑차 만큼 비싸지 않지만 M113 보다는 여덟 배가 비쌉니다. 이것은 보병의 편성과 훈련, 전투에 혁명을 가져올 것 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은 그것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비용 문제는 우리를 육군에서 이상한 위치에 처하게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육군의 예산으로 모든 부대를 이렇게 값이 비싼 무기로 현대화 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의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으시다면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신무기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획득할 것인지에 대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 입니다.


I want to make two points. One is that all of you in FORSCOM and in USAREUR are about to be the victims of what I would call convergence. Now, by that I mean we are faced with a problem similar to running out of energy with the price going up at the same time.



The second thing coming at you is cost. Here is a rather interesting example. Parked over at Langley Air Force Base, from which we depart from time to time, are 72 F-15 fighter aircraft. That's a wing. Each F-15 costs 18 million dollars - that is equivalent to 18 XM-1 tanks, at a million dollars a copy. If you multiply 72 times 18 you have the value of 80% of all the tanks the Army has in Europe. Also the MICV is 8 times more expensive than the M113 Armored Personnel Carrier. It is not as expensive as the Marder, nor is it as expensive as the new British infantry carrier, but it does cost 8 times more than the M113. It is going to revolutionize infantry organization, training and fighting. If you don't believe that, you haven't seen it.

Cost is putting us into a very peculiar position in the United States Army. It is not at all clear to me that the Army's budget is going to permit us to modernize the whole force with such increasingly expensive equipment. The fact of the matter is that if you asked me my candid opinion, I would say it will not, so we have to make some very tough decisions about where you are going to put that new equipment and how fast you are going to buy it.

Speech of General William Dupuy(1977. 5. 24), Richard M. Swain(1995), Selected Papers of General William E. Dupuy, pp.228-229


한줄요약 : 육군은 공군새퀴들 처럼 돈 처먹는 하마도 아닌데 절라 억울해염.


1) Dale R. Herspring(2005), The Pentagon and the Presidency : Civil Military Relation from FDR to George W. Bush, University Press of Kansas, p.244

잡담 하나. 원래 M60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자료를 읽다보니 이게 더 재미있어서 말입니다.^^

잡담 둘. 듀푸이 장군이 상원에 XM-1 개발 비용을 늘려보려고 보낸 편지도 있는데 그것도 좀 재미있습니다.

잡담 셋. 레이건 시절에는 국방예산이 크게 증액되는데 그것도 마냥 좋은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더군요.

2007년 3월 8일 목요일

[美利堅史] - 테네시공 엘 고어 世家

테네시공 엘 고어는 황도(皇都) 화성돈 사람으로 트루먼 4년에 태어났다.

고어의 부친 앨버트 시니어는 덕망이 높아 루즈벨트 황제가 테네시 후에 봉하였다.

아이젠하워 원년, 테네시주 백성들이 앨버트 시니어를 거듭 칭송하니 황제가 이를 듣고 앨버트 시니어의 작위를 높여 테네시 공으로 봉하였다.

고어는 장성하여 하버드 서원에서 수학하였다. 고어는 이때 토미 리 존스라는 선비를 만났는데 존스는 뒤에 서부로 가서 광대가 되었다고 전한다.

닉슨 원년, 고어는 군졸이 되었다. 처음 고어가 군졸이 되겠다 하니 많은 이들이 이를 만류하였다.

“어찌 제후 집안의 자제로서 일개 군졸이 되려 하는가?”

고어는 만류하는 벗들에게 이렇게 답하였다.

“군역이야 말로 신하의 도리 중 으뜸이거늘 어찌 천하다 하는가?”

닉슨 2년, 고어가 애치슨(Aitcheson)씨를 정실로 맞았다.

지미카터 원년, 황제가 고어를 테네시 후에 봉하였다.

레이건 5년, 황제가 고어의 작위를 높여 테네시 공으로 봉하였다.

조지 부시 4년, 여러 제후들이 아칸소 공 클린턴의 인품이 훌륭하다 하여 황제에게 클린턴에게 양위할 것을 상주하였다. 마침내 황제가 클린턴에게 양위하였다.

클린턴 원년, 황제가 고어를 승상으로 삼았다.

고어는 승상이 되자 상주하여 관리와 군졸의 수를 줄이자고 하였다. 이에 황제가 이를 옳게 여겨 관리와 군졸들을 줄이니 많은 관리와 군졸들이 고어를 원망하였다.

클린턴 원년, 묵서가 국왕이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묵서가는 땅은 넓으나 그 백성들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때문에 묵서가는 항상 더 많은 하사품을 원하였다.

고어가 묵서가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황제에게 묵서가가 조공하는 것을 제한하지 말 것을 간하였다. 이때 로스 페로라는 부호가 상주하여 묵서가가 조공하는 것을 계속 옛 법도에 따르자 하였다.

“천조의 물산은 풍부하여 부족함이 없으니 묵서가 같은 오랑캐의 조공을 더 받을 이유가 없사옵니다.”

그러나 황제가 고어의 말을 옳게 여겨 묵서가가 마음껏 조공하게 하였다.

고어는 본시 아비를 닮아 덕이 있고 지혜로웠으나 승상이 되어 황제의 총애를 받으니 마침내 본래의 덕을 잃고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클린턴 8년, 황제가 승상 고어에게 양위 하고자 여러 제후들에게 뜻을 물었다. 그러나 많은 제후들이 고어가 교만하고 덕이 없다 하여 고어에게 양위하지 말 것을 간하였다. 여러 제후들이 선황제 부시 시니어의 장자 부시 주니어를 추대하니 마침내 황제도 부시 주니어에게 양위 하였다.

고어는 평소 자신이 부시 주니어보다 덕망있고 학식도 높다고 자부하였으나 황제가 부시에게 양위하자 크게 상심하여 마침내 실성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고어는 실성한 채 천하를 방랑하며 천하의 얼음이 모두 녹아 재액이 닥친다며 외치고 다녔다. 평소 고어의 학식을 사모하던 많은 선비들 중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2006년 12월 7일 목요일

[海東名將傳] 卷一 牽龍隊正 車智澈

美利堅史는 천조의 인물들에 대해 다루는지라 한국의 이름난(?) 장수들을 같이 다루기는 뭐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美利堅史의 외전으로 海東名將傳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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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東名將傳 卷一 牽龍隊正 車智澈(견룡대정 차지철)

차지철은 서울 사람으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2년에 출생했다. 전하기를 차지철의 아비는 매우 호색한이어 여색을 심히 밝혔다 하는데 훗날 사람들이 “역시 개가 범을 낳지는 않는 법이다.”라며 감탄하였다.

아이젠하워 원년, 차지철은 무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차지철은 군관이 되고자 화통도감에 들어가 마침내 군관이 되었다. 아이젠하워 5년, 차지철이 미리견의 화통도감에서 화포 쓰는 법을 배워 돌아왔다. 아이젠하워 6년, 차지철은 산원(散員)이 되어 좌우위(左右衛)로 옮겼다.

존 F. 케네디 원년, 차지철이 사보이 객잔에서 박정희를 처음 만났다. 박정희는 차지철의 사람됨을 좋게 여겨 마음 속에 있는 걱정을 털어 놓았다.

“요사이 붉은 도적의 준동이 심해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는데 조정에는 사특한 마음을 품은 간신배가 넘치니 잠을 이룰 수 없소이다”

차지철은 박정희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 크게 감격해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소장은 장군께 견마의 노를 다하겠사옵니다.”

존 F. 케네디 원년 5월 16일, 평소 박정희의 인품을 사모하던 여러 장수들이 군사를 일으켜 문하시중(門下侍中) 장면을 몰아냈다.

이 때 차지철의 공이 매우 컸는데 그 전말은 이러하다.

장수들이 박정희를 옹립하여 의로운 군사를 일으키자 상장군(上將軍) 장도영(張都映)은 이를 알고 중랑장 서종철을 보내 좌우위의 군사들이 움직이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이때 차지철은 중랑장 박치옥의 휘하에 있었다. 서종철이 군사를 이끌고 박치옥의 영으로 들이닥치자 박치옥은 크게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에 차지철이 도끼로 병기고를 부수고 군사들을 이끌고 나섰다.

박정희를 따르는 장수들이 군사를 이끌고 궁으로 난입하자 문하시중 장면은 크게 낭패하여 사찰로 숨어들어 비구니들에게 목숨을 의탁하였다.

박정희와 여러 장수들은 국가재건최고회의(國家再建最高會議)를 두고 상장군 장도영을 수장으로 옹립했다.

케네디 2년, 차지철은 학문을 닦기 위해 군관을 그만 두었다.

케네디 3년, 여러 장수들이 박정희를 추대하여 국왕으로 삼았다. 처음에 박정희는 왕위에 오르기를 한사코 사양했으나 여러 장수들의 권유와 백성들의 간청에 못이겨 왕위에 올랐다.

천자가 박정희에게 “토북괴 반공대장군 한국국왕(討北傀 反共大將軍 韓國國王)”의 작위를 내렸다.

박정희는 국왕이 되자 차지철을 아껴 그에게 관직을 주었다. 이때 처음 전국구(全國區)라는 제도가 생겨났는데 시정의 잡배들은 전국구가 국왕이 차지철을 총애한 까닭에 생긴 것이라 하였다.

차지철은 관직에 있으면서 서원에서 학업을 닦아 박사가 되었다. 차지철이 학업을 닦을 때 여러 사람들은 차지철이 서원에 나가지 않으니 매우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뒤에 차지철이 박사가 되니 모두가 탄복하였다.

“서원에 제대로 나가지도 않고 박사가 되었으니 공의 지혜가 어느 정도인지 측량할 수 없구려!”

제럴드 포드 원년 8월 15일, 중전 육(陸)씨가 북괴의 자객 문세광의 육혈포에 맞아 승하하였다. 이로 인해 박정희의 상심이 매우 컸다. 견룡대정 박종규(朴種圭)에게 자객을 들인 죄를 물어 파직했다.

박종규가 파직되자 차지철이 새로이 견룡대정이 되었다.

차지철은 견룡군을 이끌게 되자 먼저 국왕의 위엄을 세우는데 노력했다. 차지철이 매주 견룡군을 이끌고 시위를 하며 위엄을 과시하니 이를 보는 이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이때 차지철의 위세가 당당하니 문하시중 마저도 차지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이때 사특아랍백(沙特阿拉白), 의랍극(依拉克) 등 서토의 여러 추장들이 흑유의 가격을 올려 백성들의 삶이 심히 곤궁했다. 어리석은 백성들 중에 간혹 삶이 어렵다 하여 국왕을 능멸하고 사특한 무리들의 요설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 심히 많아 뜻 있는 신료들이 이를 심히 불안하게 여겼다.

이때 많은 신료들은 민심을 두려워 했으나 유독 차지철 만은 그러지 아니하였다.

“간포채(柬埔寨)에서는 3백만을 죽였다한다. 백성들이 난동을 부리면 병거로 밀어 버리면 되지 아니하겠는가.”

이 말을 들은 모두가 차지철의 기백에 감탄하였다.

지미 카터 3년 10월 26일, 상장군 김재규가 자객들을 이끌고 국왕 박정희를 시해하였다. 이때 차지철도 같이 죽임을 당하였다. 김재규는 국왕 박정희가 반정을 일으킬 때 이미 장군의 반열에 오른 무인으로 평소 차지철이 자신을 하대함에 분개하였다.

“내가 장군일 때 견룡대정 차지철은 일개 산원이었다. 저자의 오만함이 이러하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국왕이 차지철을 총애하니 김재규가 마침내 역심을 품고 자객들을 모아들였다.

김재규가 자객들을 이끌고 들이닥쳐 박정희에게 육혈포를 난사하자 차지철은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병가의 상책은 삼십육계라 하였으니 지금이 그때로다.”

그러나 자객들이 객잔을 에워싸고 총포를 난사하며 밀려드니 드디어 차지철이 견룡군의 여러 군관들과 함께 최후를 맞았다.

차지철은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견룡대정까지 올랐으며 민주 국가에서 백성을 두려워 하지 않을 정도로 용맹하였다. 차지철은 종종 “간포채에서 3백만을 죽였다 하니 우리도 그쯤 죽이면 되지 아니하겠는가?”라고 했으니 이로 미루어 그의 용맹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재규가 자객들을 이끌고 국왕을 시해할 때 형세가 외로움을 깨닫고 삼십육계를 하려 했으니 병법에 능한 것이 이 정도였다. 아깝게도 자객들의 흉탄을 피하지 못해 비명횡사했으니 어찌 아니 슬프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