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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9일 일요일

아르마딜로(2010)

얼마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덴마크군 병사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르마딜로”가 개봉했습니다. 생소한 “덴마크” 영화인데다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니 흥행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아트선재센터의 지하에 있는 시네코드선재에서 단관개봉을 했습니다. 이미 외국에서는 블루레이까지 출시된 마당에 너무 늦은 개봉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극장에서 볼 기회가 생긴것은 다행입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2009년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의 전진작전기지 아르마딜로에 파견된 병사들입니다. 영화포스터에는 충격받은 병사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와 있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실제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덴마크 병사들의 활동을 무미건조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반복되는 정찰, 가끔씩 벌어지는 교전, 그리고 덴마크 병사들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뭔가 알수없고 불쾌한 현지인들. 전쟁영화의 절정부에서 보여주는 요란한 교전은 없습니다. 영화가 밋밋해서인지 제 옆자리에서 관람하던 부부는 상영되는 내내 지루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물론 저는 그들의 잡담 때문에 더 화가났습니다만.

그런데 이런 무미건조한 시각이 매력입니다. 제작과정에 대해 알지 못하니 어느 정도 감독의 의도가 내포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반복되는 지루한 작전과 일상에 시달리던 병사들이 마침내 전투에서 탈레반을 무찌르고 환희를 느끼는 부분은 깊은 인상을 줍니다. 수류탄으로 탈레반 네명을 죽인 병사는 마치 축구에서 첫 골을 넣은 것 처럼 흥분과 자부심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파병직전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던 젊은 병사들은 적응해 가면서 전투의 흥분을 갈구하게 됩니다. 영화에는 수류탄에 치명상을 입은 탈레반을 사살하고 시체를 정리하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이 장면은 영화가 개봉됐을 당시 덴마크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인간이 전쟁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덤덤하게 묘사하는 것은 관객에게 압도적인 인상을 줍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인공들 중 한명을 제외하고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자원하거나 파견을 갈망하게 되었다고 알려줍니다.

시네코드선재에서 제공하는 안내전단지의 설명은 반전평화운동가가 썼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소개해주기에는 부족한 글 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고 이 영화의 감독  Janus Mets Pedersen은 그 중 하나의 얼굴을 보여주고자 노력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 영화에 대한 반응들은 감독의 시도가 상당히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침략전쟁(???)은 나빠요!" 같은 식의 비판은 이 영화를 제대로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영화 포스터는 상당히 잘만들었습니다. 굉장히 깊은 인상을 줍니다.


단관개봉인데다 상영도 하루걸러서 1회씩이라는게 좀 아쉽습니다. 어둠의 루트로 쉽게 구해볼수 있는 영화입니다만 극장에서 보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니 말입니다.

2012년 1월 10일 화요일

Why Panetta's Pentagon Cuts Are Easier Than You Think

지난 1월 4일, 포린 어페어즈 인터넷 판에 재미있는 글이 한편 실렸습니다. 「어째서 파네타의 국방부가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가?(Why Panetta's Pentagon Cuts Are Easier Than You Think)」라는 글인데 미국의 국방예산 삭감이 군사력 약화를 초래하기 보다는 비효율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작년 9월에 블로그에 소개했던 「다가오는 미국의 긴축(America's Coming Retrenchment )」과 같이 미국의 국방예산 감축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견해가 많다는 점에서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어보고 바로 블로그에 올려볼까 했는데 주말에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경상도에 다녀온데다 MJ님이 출연하시는 원더풀라디오를 보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좀 늦어졌습니다. 좀 날림번역인데 봐주십시오^^;;;;;


어째서 파네타의 국방부가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가?
로렌스 콥(Lawrence J. Korb)

이번주에 레온 파네타Leon Panetta국 방부장관이 국방예산을 수천억 달러 감축하는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부문과 군부의 지도자들은 이와같은 예산 감축이 재앙과도 같은 충격을 줄 것이라고 비난하는 등 예언같은 경고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적절한 재원이 없다면 미국이 세계 각처에 가지고 있는 이익을 보호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재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국방부의 입장을 가장 강력히 지원하는 사람들 조차도 국방부의 문제는 관리에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군장교협회Military Officers Association의 회장인 노버트 라이언Norbert Ryan은 최근 워싱턴타임즈에 기고한 논평에서 이 문제를 잘 정리했다.: “거의 매주 많은 비용이 투입된 계획들이 총체적인 관리 부실과 예산 초과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는데 이 중에서 현재 우리 군대가 싸우고 있는 전쟁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라이언은 이렇게 적었다. “관리부실이 매우 심각해서 국방부의 회계장부는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보일 지경이며 국방부의 고위층은 2017년 이전에는 시험을 통과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해군 장교로 장기간 복무한 전쟁영웅 출신의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의원(공화당, 애리조나)은 이보다 더하다. 2011년 12월 15일 상원 의석에서 매케인 의원은 사실상 현재 개발 중인 거의 모든 무기체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매케인 의원은 F-35 계획이 수습 불능의 상태이며, 해병대의 신형상륙장갑차Expeditionary Fighting Vehicle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탄식했고, 육군의 미래 전투 체계는 “요란하고, 부끄러운 실패작” 이상이라고 비판했으며, F-22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잡아먹은 채로 격납고에서 좀만 슬어가는 여왕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항상 이렇게 엉망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행정부가 강력한 부장관을 두어 운영을 총괄해서 담당하게 했을 때는 관리 문제가 미미했다.(국방부장관은 국방부의 운영을 신경쓰기에는 너무나 바쁘다.) 예를 들자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제너럴 모터스에서 찰스 윌슨Charles Wilson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휴렛 패커드에서 데이빗 패커드David Packard를, 지미 카터 대통령은 코카콜라에서 찰스 던칸Charles Duncan을,  그리고 조지H.W. 부시 대통령은 제너럴 모터스의 도날드 앳우드Donald Atwood를 데려다 썼다.

이들 행정부에서 국방 예산은 크게 감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는 부장관의 관리상의 결정에 힘입어 개선되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공군은 소련의 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 값비싼 폭격기를 사용하는 대신 훨씬 저렴한 지상 발사 미사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닉슨 행정부에서 국방부는 일부 기능을 예비군으로 이관하면서 현역 병력의 규모를 감축할 수 있었다. 게다가 국방부는 전투기를 조달할 때 고성능기와 저성능기를 함께 사용하도록 하여 값싼 F-16과 F/A-18로 값비싼 소수의 F-14와 F-15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크게 감축할 수 있었다. 카터 행정부에서 국방부는 공군의 B-1 폭격기를 취소하여 그보다 저렴한 B-2 스텔스 폭격기를 도입하도록 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는 (F-22에 대한 해군의 대응인) A-12가 개발사에서 예산 한도를 지키지 못하게 되자 이를 취소시켜버렸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국방부 부장관들은 대부분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관리 기술이나 명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의 부장관 폴 월포위츠Paul Wolfowitz,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의 부장관 빌 린Bill Lynn, 그리고 파네타의 부장관 애쉬튼 카터Ashton Carter는 큰 조직을 운영해 본 일이 없으며 심지어 군복무 경험조차 없다. 요지는 국방부가 핵심적인 국방 예산을 실질적으로 1998년 회계연도에서 2011년 회계연도까지 13년 연속으로 증액하는 유례없는 일을 했다는데 있다. 레이건 시대의 방대한 군사력 건설조차 1981년에서 1985년까지 불과 4년간 계속되었을 뿐이며 이 다음에는 13년간 실질적인 감축이 이루어졌다. 현 재 파네타 장관이 다음 10년 동안 연간 1천억 달러의 핵심 국방 예산을 감축한다고 발표하더라도 2013년도의 예산은 4,720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이것은 2007회계연도의 예산과 같은 규모이다. 이 액수는 미국이 냉전 기간 중 사용한 연간 평균 예산을 상회하는 것이며 미국 다음의 하위 17개국의 국방예산을 모두 합한 것 보다도 더 많은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국방부의 고위층은 지출 기준치를 감추었다. 지난 10년간 국방부의 수뇌부는 추가 전쟁 비용으로 부터 진행중인 전투와는 전혀 관계없는 F-22 랩터와 미사일 방어 체계와 같은 핵심 품목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해왔다. 국방부는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 무기 체계의 비용 상승을 감춰왔으며 국방예산에서 투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은 것 처름 보이도록 해왔다. 강력한 부장관이 있었다면 F-22와 같은 고성능 무기체계를 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F-35와 교환하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국방부의 수뇌부는 방위산업체들이 비용을 초과한 것에 대해 댓가를 치르도록 하는데 거듭해서 실패해왔다. 국방부는 그렇게 할 수단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의회는 행정부가 국가 안보의 기준에서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기 개발계획이 예상 비용을 15~50% 초과하게 될 경우 무효화 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97년 이래 거의 절반 이상의 무기 체계 개발계획이 이 법안을 위반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양산에 돌입하도록 허가받았다.

그 다음에는, 2000년만 하더라도  개발 중이거나 생산에 들어간 계획에 소요된 비용이 4,300억 달러로 증가했다. F-35의 개발을 예로 들어보자. 원래는 2,866대에 2,33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금은 겨우 2,400대에 최소한 3,8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대당 가격은 이 기종이 대체할 예정인 F-16의 다섯배에 이르고 있다. 강력한 부장관이 있었다면 계획을 취소해 버리거나 회사가 초과비용을 책임지도록 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미국의 무기 체계가 노후화 되어 가고 있으며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 국방부가 이렇게 전례 없는 비용 지출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 스팀슨 센터Stimson Center의 러셀 럼바우는 각 군의 조달 비용이 21세기의 첫 10년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01 회계연도에 630억 달러에서 2010회계연도에는 1,360억 달러로 늘어났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낡은 장비를 교체한 것이 아니라 500억 달러를 신형 무기체계 획득에 사용했으며 여기에는 유례없이 신속하고 유연한 전장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유인차량과 무인차량으로 편성된 여단으로 편성되는 3,400억 달러짜리 미래전투체계Future Combat Systems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 체계에 200억 달러를 지출하고 난 뒤 정부는 이것을 취소해 버렸다

국방부의 관리 부실은 작전 및 유지 분야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이것은 2012년 회계연도에 2,000억 달러 이상에 달할 것이다. 방산업체의 경영진들은 비록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들이 전선에 배치된 기존의 것들에 비해 비싸기는 하지만 작전 비용은 감소할 것이라고 거듭해서 주장해 왔다. 그렇지 않다. F-35의 작전비용은 최소한 F-16 C/D형 보다 15퍼센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기획되어 있다. 그리고 해병대의 V-22 오스프리의 작전 및 유지비용은 지난 3년간 460억 달러, 62%나 증가했다. 매케인 의원에 따르면 F-22는 대체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구형기종(F-15와 F-16)과 비교했을 때 운용하기에 너무나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실제로 국방부는 갈수록 비효율적이 되어가고 있다. 2010년에 게이츠 국방장관은 국방 예산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각 군에 낭비적인 요소를 파악하도록 했다. 몇 주만에 2,000억 달러 규모의 과잉 지출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면 장군과 제독의 숫자는 군대가 오늘날 보다 두배나 더 컸던 1971년 당시 보다 훨씬 많으며 사령부들, 예를 들어 통합전력사령부Joint Forces Command와 같은 곳들은 다른 사령부와 업무가 중복되고 있다. 그러나 게이츠 장관은 획득한 비용으로 초과된 부분을 메우는 대신 국방부가 획득한 비용의 대부분을 신규 무기 계획에 쏟아넣도록 방치했다.

국방부가 현재와 같이 운영된다면 어려운 결정들을 계속해서 회피하려 할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또한 의회도 각 지역구에 지속적으로 경제적 활력을 넣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국방부는 군부-산업체-의회 복합체를 다루는데 충분한 경험을 가진 강력하고 단호한 성격의 부장관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를 마쳐갈 무렵 국방예산은 오늘날의 액수로 환산했을 때 3,800억 달러에 달했다. 닉슨 대통령은 같은 시기에 3,980억달러였다. 그리고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같은 시기에 4,350억 달러였다. 조지 W. 부시 에 와서는 4,780억 달러가 되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말에는 기준예산이 최소한 4,750억 달러 이상으로 아마도 5,250억 달러에 근접해 있을 것이다. 만약 오바마의 군부 및 민간 관료들이 소련과 같은 실질적인 위협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만큼의 비용으로도 국가를 지켜낼 수 없다면 오바마는 다른 사람들을 알아봐야 할 것이며 특히 새로운 국방부 부장관이 필요할 것이다. 패커드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68년 위스콘신의 공화당 하원의원 멜빈 레어드Melvin Laird가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었을  때 그는 유능한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레어드가 자신의 참모들에게 미국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이들은 패커드를 추천했다. 레어드는 즉시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패커드가 국방부 부장관 직을 맡아달라고 설득했다. 파네타나 그의 뒤를 잇게 될 사람들이라면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을 책임지는 조직과 제도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본문에서 레이건 행정부 시기의 방만한 예산 운영과 그 뒤를 이은 조지 부시 시기의 조정을 언급한 점이 필자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2007년에 간단하게 소개했던 것 처럼 레이건 행정부 시기는 오늘날 국방예산이 무절제하고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단순히 신무기만 잔뜩 들여놓는다고 국방력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국방 정책은 명확한 목표가 먼저 설정되어야 하며 신무기 도입은 그에 따르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합니다. 필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 처럼 ‘소련과 같은 적’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무기를 잔뜩 들여놓고 이 때문에 당장 필요한 분야에 사용할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이 글은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예산 감축을 바라보는 시각 중 긍정적인 편에 속합니다. 비효율을 제거하게 된다면 적은 예산으로 미국의 국방력이 개선될 여지가 있을테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끌리는 설명이기도 합니다.

2009년 9월 30일 수요일

난감한 민간인 사망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약간 황당한 민간인 사망사고가 일어났습니다.

Box of leaflets dropped from RAF plane kills Afghan girl

영국공군 소속 비행기가 전단지를 살포하던 중 전단지 상자 하나가 그대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소녀 한명이 그 상자에 맞았는데 결국 그 부상으로 사망했다고 하는군요.

2009년 6월 8일 월요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군 교육 문제

뉴욕타임즈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정규군 증강 문제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Erratic Afghan Security Units Pose Challenge to U.S. Goals

사실 이 기사는 미국이 1945년 이래로 꾸준히 겪어왔던 이야기들의 재탕입니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에서 군대를 조직하고 교육시켜왔습니다. 한국과 같이 성공적이었던 경우도 있었던 반면 베트남과 같은 끔찍한 실패도 있었지요. 이라크의 경우는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보이지만 아프가니스탄은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미국 고문관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여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낮은 교육수준, 유능한 현지인 장교의 부족 문제 등등. 아프가니스탄군에 대한 교육은 같은 이슬람권이었던 이라크의 경험이 반영되고 있지만 사정은 더 나빠 보입니다.

이라크는 중동국가 치고는 양호한 교육수준을 가지고 있었고 후세인 체제하에서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국가와 군대체제를 가지고 있었지요. 미국이 이라크 전쟁 초기에 저지른 삽질만 아니었다면 보다 이른 시기에 안정화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이라크보다 사정이 더 열악한 곳 입니다. 소련의 침공 이후 계속된 전쟁으로 국가가 제대로 돌아간 일이 없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미국의 역대 군사고문단 활동 중 아프가니스탄이야 말로 최대의 도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 그러나 저러나 뉴욕타임즈가 인터넷 기사를 유료화 해 버린다면 정말 재앙일 것 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더 이상 공짜로 읽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2008년 12월 4일 목요일

소련군과 신발

sonnet님께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소련군의 의무지원 문제를 다룬 글을 써 주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sonnet님이 인용하신 책들을 읽다가 소련의 부실한 전투지원 능력에 대해 경악했는데 특히 병사들의 개인 군장류의 문제점이 심각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신발 문제였습니다.

특히 군화가 문제였다. 합성소재로 만든 군화는 암석이 많은 거친 지형에서 1개월 정도만 신어도 닳아 떨어졌다. 군화의 바닥 부분은 너무 미끄러웠고 군화의 끈을 묶는 부분은 모래나 작은 돌이 신발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지 못 했다. 더욱이 소련제 군화는 너무 무거운데다 발목 부상이나 삐는 것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병사들은 체코제 등산화(아프가니스탄 군에 지급되는)나 육상용 신발(track shoes), 스니커즈, 운동화(gym shoes) 같은 것을 선호했다.

The Russian General Staff(translated & edited by Lester W. Grau & Michael A. Gress), The Soviet-Afghan War : How superpower fought and lost,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2, p.289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초강대국이 제대로 된 신발 하나 보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신발 외에도 부족한 피복과 개인 장구류의 문제가 자주 언급되고 있었는데 러시아인들 스스로가 문제를 이 정도로 인정하고 있었으니 전선의 실상은 더 고약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아니더라도 소련군이 신발과 피복 보급에서 문제가 많았다는 것은 여기 저기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 들은 것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의 이야기 인데 1960년대에는 문제가 조금 더 좋지 않았던 것 같더군요. 서방으로 망명한 뒤 1980년대에 소련군에 대한 이런 저런 찌라시(???)를 유포했던 빅토르 수보로프는 자신이 초급 장교로 있던 1960년대의 소련군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 군인에게는 가죽군화가 지급된다.

소련군에서는 ‘신병(Ersatz)’이 들어오면 보급품을 지급 한다. 이후 소련 병사가 가죽군화를 신는 것은 짧은 기간 뿐이며 천으로 만든 군화 같은 것을 지급받는다. 오직 주요 도시에 주둔하는 근위연대나 근위사단(Hof-Regimentern und Divisionen) 정도만 싸구려 가죽군화를 지급받았을 뿐이다. 외국인들은 소련군인이 멋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동독, 폴란드, 헝가리 등에 주둔하는 소련 점령군은 가죽 군화를 지급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련은 ‘초강대국’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초강대국’은 모든 병사들에게 가죽군화를 보급할 능력이 없었으며 소련에 주둔한 소련 병사들은 천으로 만든 군화를 신고 행군해야 했다.

Viktor Suworow, Der Tag M, Klett-Cotta, 1995, s.11

이보다 20년 전인 대조국전쟁 시기에는 소련군의 신발 사정이 더욱 좋지 않아서 자본주의자들로부터 신발을 받아가며 싸웠다지요.;;;;;

이런걸 보면 냉전기에 수백만의 군대를 유지하면서 다른 나라는 꿈도 못 꿀 보급과 전투지원을 할 수 있었던 미국이 정말 무서운 나라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