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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일 토요일

한국 해병대의 크롬웰 전차에 대한 최영섭 대령의 회고담

한국전쟁 당시 한국 해병대가 영국제 크롬웰 전차 1대를 운용한 사실은 꽤 유명합니다. 한국 해군과 해병대는 1951년의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서 북한군이 해안포로 운용하던 크롬웰 전차를 노획해서 수리한 뒤 운용을 했습니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역시 백두산함(701함)에서 항해사, 포술사로 참전하신 최영섭 대령의 회고록(2013)에 크롬웰 전차의 일화가 상세히 기록된 덕분일 겁니다. 한국 해병대의 크롬웰 전차 이야기는 한국전쟁기의 독특한 일화 중 하나입니다. 최영섭 대령 회고록의 해당 부분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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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 10일) 1500시경, 미 순양함과 해군상륙부대 간의 통신연락을 위해 미 해군장교 1명과 통신병 2명이 701함에 왔다. 최 소위는 이들을 데리고 302정에 탔다. 1630시, 함정편성 상륙부대는 302정과 발동선 2척에 분승하여 701함, 301정 및 306정 호송 하에 팔미도 해역을 출발했다. 1700시 2척의 순양함과 한척의 구축함 함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상륙부대를 실은 302정과 발동선은 영종도 남쪽해안을 돌아 1800시경에 만석동 기계제작소 해안으로 상륙했다. 미 해군장교는 미 순양함에 보고하고 302정장도 701함장에게 보고했다.
곧이어 1900시경 310정편으로 도착한 덕적도부대가 상륙했다. 이때 월미도와 인천역 쪽에 있던 적이 소총사격을 가해왔다. 상륙부대의 상륙성공을 확인한 최 소위는 미 해군을 인솔하여 302정편으로 701함에 돌아왔다. 김종기 부대장은 작년 9.15 인천상륙작전 때에도 해병대 제2대대를 지휘하여 이곳 레드비치 만석동으로 상륙했었다. 따라서 김 부대장은 이곳 지형지물을 손바닥 보듯이 훤했다. 김 부대장은 덕적도부대 3개 소대를 선두에 세우고 함정부대를 그 좌편에 배치하여 기상대고지를 향해 공격했다. 덕적도부대 3개 소대는 고지 서측으로 부터 공격하고 함정 2개 소대는 고지 북측으로 전개했다. 적은 소총, 따발총 그리고 경기관총으로 대항했다. 고지 정상 약 200m 거리에 접근하여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다. 이때 각 소대장은 자기 '소대'를 큰소리로 '중대' 또는 '대대'로 부르며 지휘했다. 적은 대부대에 의해 포위된 줄 알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2100시경 기상대고지를 점령했다. 이곳에는 상륙부대의 공격과 함포사격으로 죽은 시체가 널려있었다. 야간이라 교통호에서 죽은 시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김종기 부대장은 통신병을 불렀다.

"해군, 해병대 합동특공대는 2100시 기상대 고지를 점령함. 확인된 적군 사살 11명, 아군 피해 없음."

701함장은 즉시 미 순양함 헬레나 함장에게 보고했다. 상륙군을 떠나보낸 후, 상륙부대에 대한 안위와 작전의 성공여부에 대한 불안으로 701함 장교들의 분위기는 적막 속에 잠겨 있었다. 적정에 대해 아는 것은 김 하사관의 정찰보고와 월미도, 기상대고지에 대한 맹렬한 포격으로 적의 방어 전력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을 것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2100시, 김종기 부대장의 '기상대고지점령' 보고는 적막 속의 함정 분위기를 단번에 바꾸었다. 모든 함정에서 '만세'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김종기 부대는 적의 산발적인 저항을 물리치고 적군 지휘본부가 있는 시청으로 진격했다.
2300시, 시청을 점령하고 부대본부를 설치했다. 사무실에 걸려 있는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을 뜯어내 짓밟아버렸다. 깃대에 올려 있는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올렸다.

11일 0600시, 부대는 월미도로 진격했다. 월미도를 수비하고 있던 적군은 상륙부대가 기상대 고지를 점령할 무렵 모두 도주했다. 월미도 남쪽능선 아래에는 엄폐된 참호에 야포 8문이 있었다. 섬 동남쪽 비탈에는 참호 속에 나뭇가지를 덮어씌워 위장한 탱크 한 대가 있었다. 김 부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0700시, 월미도 완전 점령함. 적 탱크 1대, 적 야포 8문 노획함"

701함에서는 또다시 새벽하늘을 가르는 '만세' 소리가 터졌다. 미 순양함 헬레나 함장에게 즉각 알렸다. 상륙부대는 적 야포와 탱크, 기타 무기가 더 있나 섬 주위를 수색했다. 또한 노획한 야포를 사용할 수 있나를 점검했다. 적군은 도망칠 때 야포의 사격장치를 뜯어내 땅속에 묻거나 숲속에 버렸다. 수색과정에서 적이 매설해 놓은 지뢰가 터져 부상자 3명이 발생했다. 부상자는 어선에 태워 701함으로 후송하여 치료했다. 군의관은 경상이라며 곧 회복한다고 했다.

노명호 함장은 기관장과 포술장에게 월미도에서 노획한 탱크와 야포를 수리해 우리가 쓸 수 있으면 어떻겠느냐 물었다. 기관사 강명혁 중위가 전기장 김생룡 병조장, 내연사 이종문, 이길선 및 조종래를 선발하고 포술부에서는 갑판사관 최 소위가 포술요원 3명을 선출하여 월미도에 상륙했다. 이때 미 순양함에서 파견한 5명의 미 해병이 동행했다.
최 소위는 김 부대장에게 "특공대에 참가한 3인치 포요원 홍양식과 이유택 그리고 정인화를 불러주십시오. 야포 수리에 필요합니다."건의 드렸더니 곧 시청에 주둔하고 있던 세 사람을 월미도로 불렀다. 강명혁 중위는 우선 위장해 놓은 나뭇가지를 제거하고 참호 조위의 흙을 파헤쳤다. 기관부 요원들은 탱크 엔진과 전기회로를 점검하고 고장난 곳을 수리했다. 강 중위가 운전석에 들어가 시동 스위치를 돌렸다. 엔진이 '부릉, 부릉' 소리를 내며 멋지게 시동이 걸렸다. 처음 타보는 탱크지만 기어를 넣으니 움직였다. 기어를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시운전을 했다. 기관부 요원과 구경하고 있던 부대원들이 손뼉을 치며 "적 탱크 잡았다!" 소리 높이 외쳤다.

최소위는 배에서 인솔해온 포 요원과 상륙특공대에 지원하여 용감히 싸운 3인치포 사수 홍양식, 선희수 이유택 그리고 척도수 정인화 하사관들에게 "적은 이곳 월미도에 야포 8문을 참호 속에 은폐해 놓았다. 적은 도망치면서 야포 사격장치를 뜯어내 땅속에 묻거나 숲속에 감추었다. 적이 숨긴 포 부품을 찾아내 조립해 보자. 잘 되면 이것을 가지고 적을 추격해 쏘자. 이곳 월미도에는 사방이 지뢰가 깔려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모두 야포 부품 찾기에 나섰다. 약 한시간 동안 수색 끝에 '브리지브록'등 부품을 찾아 모았다. 포 요원들은 야포 한 문, 한 문씩 조립했다. 야포 4문을 복구했다. 홍양식 2조가 "갑판사관님, 4문은 완전히 복구했는데 나머지 4문은 부품이 없어 안 되겠습니다. 조립한 4문은 격발이 잘됩니다. 시험사격 해 볼까요?" 물었다. 숲속에 숨겨놓은 탄약을 찾아냈다. 야포 1문에 탄약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꽝' 소리와 함께 탄알이 날아갔다. 모두 손뼉을 치며 "야포 잡았다"고 외쳤다.

정오경 최 소위는 속히 귀함하라는 함장지시를 받고 배에 돌아오자 미 순양함에서 LCVP(상륙정) 한척이 701함에 와 계류했다. 제95기동함대사령관 스미스 소장이 참모 일행과 통역을 맡은 해군 법무장교 최병해 대위를 대동하여 701함에 올랐다. 스미스 소장은 노명호 함장에게 한국해군과 해병대가 감행한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UN지상군 작전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그 공로를 치하했다. 노명호 함장과 최 소위는 스미스 소장 일행과 같이 LCVP를 타고 월미도로 향했다. 스미스 소장은 참모에게 어젯밤 한국해군과 해병대가 상륙한 만석동에 접안하라고 지시했다. 기계제작소 안벽에 이르자 김종기 부대장이 영접했다. 스미스 소장은 김 부대장의 손을 잡고 크나큰 전과를 올렸다고 치하했다. 김 부대장은 최병해 대위의 통역으로 작전상황을 보고했다. 스미스 소장은 인천역 쪽으로 걸어가 월미도와 인천 시내를 한참동안 관찰하고 동행한 일행과 사진촬영을 했다. 스미스 소장은 참모에게 인천항 부두시설 상태를 속히 조사하라고 지시한 후 김 부대장에게 노획한 탱크와 야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물었다. 김 부대장이 월미도 남쪽에 있으며 지금 수리 중이라고 대답하니 참모에게 그곳으로 가자고 지시했다.

일행은 LCVP를 타고 월미도 남쪽으로 이동하여 해안에 닿았다. 탱크와 야포가 보였다. 강명혁 중위와 기관부 요원들이 탱크를 수리 중 이었다. 김 부대장이 이곳 해안에는 적이 매설한 지뢰가 있어 위험하니 상륙하지 마시라고 권고했다. 이때 오전에 와 있던 미 해병대 대원이 내려와서 미 해군 참모와 통역장교 최병해 대위를 안내하여 탱크와 야포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탱크와 야포를 유심히 살펴본 후 사진을 찍고 내려갔다.

스미스 소장 일행은 미 순양함으로 돌아갔다. 강명혁 중위는 기관부 요원을 탱크에 태우고 상륙부대 본부가 있는 시청으로 향했다. 최 소위는 야포 4문을 이끌고 탱크 뒤를 따랐다. 해군, 해병대특공대 상륙군이 인천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피난민들이 시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해군 만세!', '해병대 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김생용 병조장이 시민들이 든 태극기를 받아 탱크 위에 높이 올렸다. 탱크와 야포가 시청에 이르자 상륙군들이 뛰어나와 어쩔 줄을 모르고 기뻐했다. 오후에 강명혁 중위와 최 소위는 대원들과 같이 탱크에 야포 1문을 끌고 숭의동 쪽으로 갔다. 강 중위는 신나게 탱크를 몰았다. 길모퉁이를 돌 때 회전반경이 길어 부딪치기도 하며 애먹었지만 전진하는 것은 트럭 운전하듯이 잘 몰았다.

인천시 동쪽 46번 도로와 남쪽의 42번 도로가 마주치는 지점에 탱크를 세우고 야포에 탄약을 장전하여 적군이 이동한 부평 쪽을 향해 쐈다. 이때 남쪽 42번 길에서 지프차 한대가 달려왔다. 가까이 오더니 지프차를 세우고 미군 장교가 내려 "Hello, I am US Army."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중위 계급장을 단 미군 장교는 수색대원으로 한국 해군,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인천시를 점령했다는 정보를 받고 상황을 확인하고자 왔노라고 했다. 강 중위와 최 소위는 그에게 상륙작전 전투와 인천시 현황을 설명했다. 그는 설명을 다 들은 후 '파인!' 하면서 곧 본대로 돌아가 보고하겠다고 했다. 미군 장교는 탱크에 가까이 가서 살펴보더니 "아니, 이 탱크 어디서 갖고 왔느냐?"고 물었다. "적군이 인천 방어를 위해 월미도에 구축한 방어진지에 있던 탱크를 노획해 이곳으로 몰고 왔다"하니 "이 탱크는 영국군 탱크인데"하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미군 장교는 "내일 본대와 같이 인천으로 올 때 다시 만나자" 하며 지프차를 타고 되돌아갔다. 시청으로 돌아올 때는 최 소위가 탱크를 몰았다.

(중략)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서 우리 해군, 해병대 상륙부대가 노획한 전차에 얽힌 스토리는 이렇다. 영국군 제27여단은 UN군으로 1950년 8월 28일 6.25전쟁 초기에 참전했으며 제29여단은 증원군으로 1950년 11월 18일 부산으로 들어와 곧 개성지구 전투에 참전했다. UN군은 중공군의 신정공세 때 한강 이남으로 철수명령을 내렸다. 서울지역의 7만 5000명 병력과 장비 그리고 수많은 서울시민과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은 또 다시 서울을 떠나 임시로 부설한 부교를 통해 긴급히 한강을 넘어야 했다.
영국군 제29여단은 1월 3일, 임진강 남쪽 고양시 지역에서 밀려드는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펼치며 UN군과 피난민이 철수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이때 제29여단과 제170박격포대대는 중공군 제115, 116, 117 3개 사단과 중공군 제45포병연대에 맞서 처절한 혈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300여명의 인명과 탱크 10여대를 잃었다. 1999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여왕은 이곳 실마리 전적지를 찾아 추도 행사를 거행했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한 통신병은 귀국 후 임종을 맞이하면서 실마리 전투에서 같이 싸운 전우들에게 "나 죽은 후 내 뼈를 한국 실마리 전투에서 전사한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곳에 묻어 달라." 유언했다. 그 유언을 들은 전우는 그의 유골함을 안고 김포공항에 내려 실마리 영국군 제29여단 글로스터셔대대 전적비 옆에 묻었다.
6.25전쟁에 영국은 항공모함 1척을 포함하여 17척의 함정과 지상군 연병력 약 4만 4천명을 파병했다. 이들 영국군은 우리 대한민국을 지키고 한국국민의 자유를 위해 공산 침략군과 격렬히 싸워 1,079명이 전사하고 2,674명이 저상을 입었다. 2차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해군, 해병대 상륙부대가 월미도에서 노획한 탱크는 영국군 제29여단이 1951년 1월 3일 임진강 남쪽 고양시 지역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빠앗긴 탱크 10대 중의 한대로 추정된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 발전된 데는 6.25전쟁에서 UN군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영섭, 『6ㆍ25 바다의 전우들: 바다에서 함께 싸웠던 전우에 대한 노병의 회상록』, 세창미디어, 2018(수정보완판), 186~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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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바로 월미도에서 스미스 제독의 참모진이 촬영한 크롬웰입니다. 북한군이 사용하고 있었지만 영국군의 전술기호와 승무원들이 포탑측면에서 쓴 Hydra라는 별명이 그대로 남아있는게 확인 됩니다.



최영섭 대령의 추론은 정확합니다. 실마리 전투 당시 후위를 맡아 분전했으나 큰 손실을 입은 8th Royal Irish Hussars는 센추리온 전차를 주력으로 장비했지만 1개 중대는 크롬웰 전차를 장비하고 있었습니다. 크롬웰 전차를 장비한 중대는 Royal Ulster Rifles를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었고 후퇴 과정에서 보유한 크롬웰 전차 다수를 중국군에게 상실했습니다.

※ 곰늑대님의 코멘트를 보고 추가합니다. 해군본부에서 2010년에 간행한 『6ㆍ25전쟁과 한국해군작전』 390쪽에서는 이후 영국군에서 크롬웰 전차 'Hydra'를 회수해 갔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전차는 제2차 인천상륙작전 종료 직후 다른 전리품과 함께 부두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영국해병대에서 밤사이 가져가 버렸다. 당시 노명호 함장과 김종기 부대장이 영국사령부에 항의했으나 돌려받지 못했다.(당시 701함 기관사였던 박찬 병조장의 증언, 1966년 4월 7일)"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이글루스의 대양해군 떡밥

이글루스를 가보니 간만에 밀↗덕↘ 글이 여러건 올라왔습니다. 음. 그런데 그 주제가 대양해군 같은 쉬다 못해 상한 떡밥이라니 정말 유감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대양해군 같은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떡밥이 잊을만 하면 다시 튀어나오는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좀 싱싱하고 유쾌한 떡밥으로 이야기 꽃을 피울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2012년 9월 8일 토요일

[번역글] "마스터 플랜" : 중국의 신형 유도미사일 구축함

9월 4일 The Diplomat 인터넷 판에 재미있는 글이 한 편 실렸습니다. 제목은 “‘마스터 플랜’ : 중국의 신형 유도미사일 구축함(The Master ‘PLAN’: China’s New Guided Missile Destroyer)”인데 영어로 계획을 뜻하는 Plan과 인민해방군 해군(PLAN, People’s Liberation Army Navy)의 영문약자가 같은 점을 이용해서 재미있는 글장난을 하고 있네요. 제목부터 재미있습니다. PLAN이라는 글자가 중의적이라서 ‘기본계획’ 대신 ‘마스터 플랜’이라고 옮겼습니다.

이 글의 필자인 미해군전쟁대학U.S. Naval War College교수 요시하라 도시吉原俊井와 제임스 홈즈James R. Holmes는 중국해군의 건함 양상이 구축함 중심의 대형함정 위주로 나가고 있으며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국 인근 해역에서의 작전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중국의 구축함 건조가 해군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방향으로 서술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이 어떤 양상으로 나갈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불균형을 메꿔줄 나라가 어디인지는 뻔한 것인데 한국에는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서 이 글을 불편하게 받아들일 사람도 많을 듯 싶습니다.

날림번역이긴 합니다만 한번 읽어보시죠.


“마스터 플랜(The Master PLAN)’ : 중국의 신형 유도미사일 구축함”

우리는 야구장의 철학자 요기 베라Lawrence Peter "Yogi" Berra의 열렬한 추종자이다. 요기 베라는 “예측을 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미래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위대한 요기 베라가 그랬던 것 처럼 우리도 예언에 운을 걸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2010년 말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에 중국 정부가 해군 증강을 늦추거나 중단할 것이라고 예측한 서방 전문가들의 견해가 틀릴 것이라는 예측을 한 바 있다.
중국이 해군 증강을 늦추거나 중단할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들은 그 증거로서 중국이 유도미사일구축함, 즉 DDG의 건조를 중단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만약 그대로 되었더라면 중국은 의도적으로 자국 해군의 타격력을 감소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해군은  여러 종류의 유도미사일 구축함을 시험하면서 이중에서 가장 뛰어난 요소만을 종합한 함정을 완성하려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공개된 052D 뤼양(旅洋)2급 유도미사일 구축함의 사진을 놓고 봤을때 구축함의 건조를 본격적으로 재개할 것이라고 보았다.
최근까지 서방의 중국인민해방군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조선소에서는 유도미사일 프리킷이나 고속정 처럼 방어에 특화된 항속거리가 짧은 소형함정을 건조하기 위해서 유도미사일 구축함 같은 주력함정의 건조를 늦추거나 중단하고 있다는 주장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은 2005년 이래로 구축함의 건조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들은 이를 통해 중국의 해군력 건설이 위협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아무리 잘 봐줘야 직관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몇년간 중국과 서방의 군사 웹사이트에는 이런 낙관적인 전망을 뒤흔들 사진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이러한 사진들은 우리가 중국의 건함 경향에 대한 예측을 내놓았던 2010년에 이미 중국은 유도미사일 구축함의 건조를 재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최근의 정보들은 상하이에 있는 장난(江南) 조선소에서 여섯번째의 052C 유도미사일 구축함을 진수했으며 연평균 두척을 기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옆에서 건조중인 새로운 함정은 052C의 후속함인 052D로 추정된다. 그리고 잘 알려진 중국 전문가 한명은 지난주 신형 함정(052D) 한척이 진수되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이 배가 당장 항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조선소의 일반적인 공정을 감안할 때, 더 많은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배를 진수한 것은 대양으로 신형 군함을 내보내는 중요한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중국해군은 가장 적합한 수상전투함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타이페이 타임즈에 따르면 비밀에 둘러쌓인 새 군함은 052C의 개량형으로 중국의 해군 지지자들에게 “중국판 이지스”로 불리고 있으며 미국의 이지스함과 기술적으로 대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필자들은 이런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052D는 스텔스 설계가 적용된 6,000톤급 함정으로 가스터빈 엔진을 갖췄으며 64개의 수직발사기(VLS)를 갖추고 있다. 수직발사기는 함체에 내장된 수납통이라 할 수 있다. 각 수직발사기는 미사일 적재량에 따라 한 발에서 네 발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수직발사기는 함내의 무기고에서 발사대까지 미사일을 옮기면서 일어나는 불편함, 시간 지연, 기술적 문제 없이 함대공, 함대함, 함대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게 해준다.
최소한 서류상으로 052D는 미해군의 알레이버크Arleigh Burke급 유도미사일구축함이나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 유도미사일순양함의 축소판에 가깝다. 중국해군의 유도미사일 구축함은 미국 해군의 해당 함종보다 배수량이 작은데 미국 해군의 알레이버크급은 11,000톤, 타이콘데로가급은 9,600톤이다. 배수량이 작다는 것은 연료탑재량이 더 적고 그만큼 항속거리도 짧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정도의 능력은 이 군함이 활동하게 될 중국의 “근해”와 인도양에서의 국지적 임무에는 적합한 것이다. 052D급의 무장 또한 알레이버크급이나 타이콘데로가급 보다 적은데 전자는 수직발사기 96개를, 후자는 수직발사기 122개를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구축함들은 아시아 해역에서의 국지분쟁에는 충분한 타격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중국 구축함들은 대부분 연안에 배치된 전력의 화력지원을 받으며 작전을 펼칠 것이므로 화력의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중국정부는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해군 증강을 시작하면서 함대 건설에 매우 합리적인 접근방식을 취했다. 중국을 둘러싼 전략환경이 유리하고 미국이 공해와 하늘에 대해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하는 동안 중국해군은 여유롭게 “함대에 대한 실험”을 시도했다. 조선소에서는 여러 종류의 소형함정을 건조하면서 장점만을 골라서 취했으며 나머지는 버렸다. 이러한 ‘위험회피risk-averse’ 방식을 통해 기술적인 감각을 획득하면서 조선공학 측면에서 질적인 도약을 이룩했다.
각각 두척 내외가 건조된 다섯 종류의 함급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수상함대는 이러한 느린 접근방식의 증거이다. 이 함정들은 모항 근처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중국해군은 승무원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교리를 개발하며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험적으로 건조된 함정들을 원양에 투입했으며 이를 통해 실질적인 가치를 얻어냈다. 인도양에서의 해적 퇴치 작전에서도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국해군은 한 종류의 함정을 대량 건조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해군에 대한 실험을 마무리 짓기에는 적절한 시기로 보인다. 소련이 건조한 항공모함 바략을 개장한 중국해군의 첫번째 항공모함은 시험 운항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중국은 바략의 갑판에서 운용이 가능한 러시아의 Su-33 전투기를 역설계한 파생형인 J-15의 시험비행을 실시했다고 한다. 중국해군의 첫 항공모함 기동전단에서 아직 미비한 것은 항공기와 미사일로 부터 주력함을 보호할 수 있는 다목적의 감시용 함선이다. 052D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신형 유도미사일 구축함이 순전히 항공모함을 보유하려는 중국의 야망을 실현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항공모함 전투단을 편성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중국은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항공단, 수상함정, 그리고 전위를 맡을 원자력추진 공격잠수함으로 빈틈없이 상호 연계가 가능한 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구축함의 유용성은 단지 중국의 항공모함 도입 계획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구축함은 주력이 되는 함선이다. 다목적의 유도미사일 구축함은 중국해군이 체계적으로 항공모함 운용 방식을 습득하는 동안에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052D급은 수상함전투전대SAG, Surface Action Group나 상륙기동부대의 지원에 배속하거나 항공모함이 아닌 다른 중요 함선을 보호할 수 있다. 또한 052D급은 임무에 따라서는 부대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052D은 광대한 해역에서 이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지난 5년간 11척에 달하는 수상함전투전대들이 류큐 열도를 가로지르는 공해상의 해협을 통과해 서태평양으로 진출했다. 2012년의 첫 6개월 동안에만 4개의 수상함전투전대가 이곳을 통과해 대양으로 나갔다. 이러한 해상 활동 경향은 수상함전투전대가 운용하게 될 수상함에 관한 조직원칙을 이해하는 핵심일 수 있음을 보여주며 그 중에서도 052D급은 핵심적인 위치에 있을 것이다.
중국해군은 무엇을 할 것인가? 특히 개량된 뤼양급은 대함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중국이 보유한 러시아제 소브레메늬급 구축함에 대한 공격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052D급은 중국이 연안지역에 힘을 투사하기 위해서 건조하고 있는, 아직은 얼마 안되지만 꾸준히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 상륙강습함들을 호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원정타격부대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해군을 간단히 압도할 수 있을것이다. 특히 이런 종류의 부대는 남중국해의 섬을 점령하는데 적합하다. 또한 052D급은 기동성과 스텔스성을 갖춘 022 허베이급 쌍동선에 대한 대공방어를 제공할 수 있다. 허베이급은 작은 선체로 감지를 회피하며 우세한 적 함대를 상대로 제해권을 확보하거나 거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거리 대함 순항미사일을 운용한다.
게다가 타이완에서 돌발사태가 발생할 경우, 최신예 유도미사일 구축함은 방어하는 대만공군의 생존능력을 위협할 수 있는 함대 기반의 방공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 한척의 052D급은 장거리 탐지능력과 교전 거리를 가졌기 때문에 중국본토에 배치된 지대공 미사일의 유효사정거리를 훨씬 넘어서 타이완 인근, 혹은 타이완 전역에 걸친 범위를 담당할 수 있다. 타이완 동쪽에 배치된 052D급은 타이완을 완전히 포위해서 타이완 조종사들이 이륙하면 모든 방향에서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해군은 이토록 인상적인 일선의 함선들을 해외로 파견해서 중국의 군사적 강력함을 외국인들에게 과시하고 해군외교를 증진할 수 있을것이다. 핵심은 중국이 더 많은, 그리고 더 우수한 대형 구축함을 가지게 될수록 다양한 임무를 위해서 중국해군의 다양한 자산을 조합할 수 있게 될것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중국해군이 유도미사일 구축함을 증강하는 것이 이 지역의 해군력 균형을 뒤바꿀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답은 간단하다. 그렇다. IISS의 밀리터리 밸런스Military Balance에 근거해 간략하게 추산해 보는 것 만으로도 실상이 잘 드러난다. 타이페이 타임즈가 예측한 것 처럼 중국이 10척의 052D급을 배치한다면 중국해군은 이지스함에 견줄수 있는 함정을 16척 보유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해군이 10척만 건조하고 멈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인 일본과 한국의 경우 각각 6척과 3척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최소한 서류상으로는, 이 경우 중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국이 되는 것이다. 일단 052D급이 함대에 배치되기만 하면 중국해군은 미해군을 제외하면 다른 어떤 나라의 해군을 상대로 하더라도 우위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해군은 일본해상자위대에 대해서 16:6의 우세를 보일 것이며, 한국해군에 대해서는 16:3의 우세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연합함대에 대해서는 16:9의 우세를 보일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That’s significant.)
중국에게 유리한 쪽으로 균형이 기울게 되면 수년내로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건함 경쟁이 일어날 것인가? 미국이 아시아에서 유지할 수 있는 힘과 아시아 국가들이 군비경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이로 인한 비용을 부담하려는 의지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이제 중국해군이 해군력 건설을 멈추었느냐는 논의는 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이 골치아픈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할 때이다.

2010년 11월 14일 일요일

한국전쟁 직전 한국군 및 경찰의 장비현황

원래 주말에는 슐리펜계획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요 며칠간 다른일이 있어서 쓰지 못했습니다. 이럴때는 역시 땜빵용으로 뭔가 내용이 있는 표를 하나 올리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재미삼아 한국전쟁 직전 한국군의 장비현황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번 것은 한국군 및 경찰의 전반적인 장비현황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아래의 표는 주한미군사고문단이 1950년 6월 15일 작성한 두번째 반기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는 한국전쟁 직전 한국군의 현황을 잘보여주는 자료인데 특히 전쟁 직전 병력과 장비현황을 파악하는데 있어 유용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부대별로 분류된 것이 아니지만 전체적인 현황은 알 수 있습니다.

표를 누르면 커집니다

아무래도 연말이 다가오다 보니 당분간은 이런 땜빵용 포스팅이 주를 이룰 것 같습니다.

2010년 4월 1일 목요일

울화통이 터진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소식은 어지간 하면 신경을 끄고 싶은 심정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들릴 때 마다 억장이 무너지니 말입니다. 그래서 블로그에서도 천안함 이야기는 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구글리더를 확인하던중 정말 울화통이 터지는 기사를 하나 읽게 됐습니다.




기사 전체가 울화통 터지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미 부실한 장비와 현장의 가혹한 환경 때문에 사망자가 한명 발생한 마당에 계속해서 초인적인 의지만 발휘해야 하다니 도데체 이게 대한민국 군대인지 황군인지 알 수 가 없군요. 이 빌어먹을 황군의 전통은 정말 끈질기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저도 사람인 만큼 이런 엿같은 상황에서 진짜로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하는 UDT 분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이번 사태가 정리될 때 까지 작업에 투입된 모든 분들이 무사하시기만을 빕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을 미담으로 선전하는 국방부의 태도는 정말 울화통이 치밉니다. 제발 사람 좀 소중하게 생각합시다. 특히나 UDT 대원이라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우수한 인재들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