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25일 토요일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대한 뒷북 감상

제 취향이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정치적으로 진지한 영화를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본지 한달이 넘어가지만 감상을 어떻게 쓸지 고민한 것도 사실은 너무나 오랫만에 진지한 영화를 봤는지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입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은 몇 가지 점에서 랜드 앤 프리덤(Land and Freedom)을 생각나게 합니다. 혁명가 집단 내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전작보다는 이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약소민족의 독립투쟁이라는 가슴 뭉클한(?) 소재에다가 무엇보다 저는 아일랜드 가수들을 좋아하거든요. 사실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정치 사상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다보니 쓸데없이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 죽어나가는 랜드 앤드 프리덤의 주인공들은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가장 큰 갈등의 축은 형과 동생인 것 같습니다. 좀 단순하게 분리하면 동생인 데이미언이 좀 더 급진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지요. 영화 초반만 하더라도 데이미언은 런던에 가서 의사가 되는 것을 아일랜드 독립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년이지만 갑자기 열렬한 투쟁가로 돌변합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게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영화 후반부에서 영국과의 협정에 따라 영연방 내의 자치국으로 남는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두 형제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마치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1920년대에 정치사상에 따라 분열돼 갔던 것 과 유사합니다. 이런 독립 운동의 방법론에 따른 분열은 우리에게는 결코 남의 이야기 같이 들리지 않지요.

이렇게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민족국가 형성을 시작해야 했던 후발 국가들은 준비 단계에서 부터 골치아픈 내부 투쟁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쳐 분단되고 결국에는 두 국가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게 됐지요. 이런 비극은 많은 후발 민족 국가들이 겪는 비극인 것 같습니다.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갈등 없이 추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요. 이 때문에 우리나라와 중국은 두 체제간의 전쟁을 거쳐 두 국가가 됐고 베트남은 30년에 걸친 긴 내전을 겪어야 했습니다.

심각한 남의 나라 이야기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껴 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고상한 평을 해 보고는 싶은데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힘들군요.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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