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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4일 수요일

환빠소설 사바카

이준님이 사바카라는 구제불능의 쓰레기 소설에 대한 글을 쓰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무슨 정신으로 이런 쓰레기를 썼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물건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도데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이기에 이런 쓰레기 소설을 쓴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사바카의 표지 날개에 있는 저자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장환은 신문 잡지등에 사회현상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으며, 우리 고대사에 관심이 있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기도 했다.

여기서 핵심은 "고대사"에 있습니다. 눈치가 있는 분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고대사"가 정상적인 "고대사"가 아니란 것을 아셨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사바카의 저자 주장환은 "환빠"입니다. 사바카에는 중간 중간 주인공의 입을 빌려 우리 고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데 그 내용이 하나 같이 환단고기에 대한 것 들 입니다.;;;;;
환단고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자칭 "재야사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재야사학의 걸물인 박창암(朴蒼巖, 예비역 육군 준장)을 모델로 삼은 듯한 인물도 나오지요. 아주 웃깁니다.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990년 5월

서울에서 처음 '단재연구회'에 들어갔을 때 나는 어느날 비교적 온건한 이론의 소유자로 알려진 목태중이라는 선배의 소개로 밝선비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조금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였다. 젊었을 때 경찰에 몸을 담고 있다가 뜻한 바 있어 군에 자원입대, 말단 하사로 시작하여 6.25때는 일선 소대장으로 문자 그대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후 잉어가 물살을 헤쳐 오르듯 승승장구, 일선 부대 연대장을 지냈으며 70년대 중반, 소장으로 제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북한의 통일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통일론을 연구하다가 고대사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민족의 뿌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통일론을 올바르게 전개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돌아다니며 고대사 연구에 몰두해 왔다. 그의 이름은 원래 밀양 박씨성에 진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대사에 심취하고 부터는 '밝선비'로 불려지길 고집했다. 밝이란 밝음, 즉 광명을 뜻하는데 그 어원은 박달나무(檀木)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으나 그때까지 정확한 정설은 없는 형편이었다.

주장환, 『사바카』, 자유문학사, 1994, 217~218쪽

과연,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쓰레기는 쓰레기 끼리 통하는군요. 크하핳.

2007년 12월 21일 금요일

연개소문=뭇솔리니???

조광(朝光) 창간호를 보다 보니 아주 재미있는 구절이 하나 있더군요.

나당(羅唐)이 백제를 멸하고나서는 다시 마수(馬首)를 고구려에게 돌리어 해마다 평양성을 진공(進攻)했으나 번번이 실패하드니 고구려의 大‘뭇소리니’인 개소문이 죽고 그 제자(諸子) 사이에 권력 사움이 일어나매 기회를 타서 나당이 또다시 출병하야 평양성을 에우니 고구려는 이에 그 칠백년의 빛나는 역사가 막을 마치고 말었다.

문일평(文一平) 掌篇新羅史, 朝光, 창간호, 1935년 11월, 275쪽.

푸하하. 이때는 연개소문=독재자=뭇솔리니 였던 모양입니다. 연개소문을 뭇솔리니에 비교하다니 이 양반은 미래의 국수주의적인 후손들이 두렵지 않았나 봅니다. 조광 창간호에는 이탈리아의 에디오피아 침공에 대한 분석기사도 실려 있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이탈리아가 그렇게 한심한 나라일 것이라고는 대부분 상상도 못하고 있었으니 연개소문의 강인한 인상을 뭇솔리니와 비교할 법도 하군요.

2007년 12월 15일 토요일

조선일보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서평

허헛. 간만에 컴퓨터 앞에 진득허니 앉아서 블로그 질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이 취소되긴 했지만 좋은 점이 있긴 있군요.

오늘 자 조선일보를 읽고서 Adrian Goldsworthy의 Caesar : Life of a Colossus가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번역본이 864쪽이나 되는군요. 제가 가진 하드커버 영어판은 각주와 색인을 합쳐 583쪽인데 확실히 알파벳으로 된 언어를 우리 말로 옮기면 분량이 확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평을 쓴 기자가 책을 읽지 않았거나 대충 읽고 쓴 모양입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제대로 언급하고 있지 않거든요.

조선일보 서평 - 아내에게 불성실했던 ‘유혹의 달인’

Goldworthy의 이 책은 카이사르의 전기이긴 하지만 그의 군사적 행적에 초점을 둔 책이거든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Goldworthy는 로마군을 연구하는 군사사가 입니다. 이 책의 내용 상당수는 갈리아전쟁과 내전 등 카이사르가 치른 군사작전에 관한 것인데 서평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군요. 책의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니 굉장히 유감입니다.

한마디로 아주 형편없는 서평입니다. 변죽만 울리는군요.

2007년 9월 12일 수요일

로마군의 중장기병은 어느 정도 규모였을까?

번동아제님이 쓰신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 기병 부대의 편성에 대한 글을 읽고 나니 로마의 경우는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로마군과 관련된 책을 몇 권 뒤져서 계산을 대략 한 번 해 봤습니다.

몇몇 연구자들의 2차 문헌을 가지고 대략 추정한, 정확성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글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고 그냥 재미삼아 한번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로마군에 중기병이라는 병과가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는 제법 이른 시기입니다. 이르면 1세기 중엽(68년, 유대전쟁 당시)에서 늦어도 2세기 초 사이에는 로마군에도 중기병창(kontos)를 장비한 기병부대가 확인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후 로마군에는 지속적으로 중기병이 증가합니다. 그리고 숫자만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종류도 제법 다양해졌던 모양입니다. 로마군을 연구하는 군사사가들은 문헌상에 남아있는 로마군의 기병 병과가 보병 보다 다양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3~4세기 경에 이르면 로마군의 중기병 부대는 scutarii, promoti, stablesiani, 그리고 clibanarii와 cataphracti 등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장기병, 즉 말갑옷 까지 완벽하게 갖춘 기병은 clibanarii와 cataphracti 두 종류 입니다.

그렇다면 전체 기병에서 중장기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됐을까요? Hugh Elton의 Warfare in Roman Europe AD 350~425에서는 clibanarii와 cataphracti, 이 두 병과의 기병이 로마군의 전체 기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중앙군이라고 할 수 있는 comtatenses에서는 대략 15%, 지방군에 해당되는 limitanei에서는 2%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pp.106~107)

그 다음으로는 로마군의 총 병력 중 기병은 얼마나 됐는가가 되겠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로마군의 전체 기병 숫자에다가 위에서 언급한 Elton의 추정치를 곱해서 중장기병의 숫자를 산출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기병은 대충 어느 정도였을까요?

4~5세기경 동로마와 서로마의 중앙군 및 지방군의 병력 규모는 당연히 학자들 마다 추정치가 차이가 납니다. (로마사 전공자가 아니긴 하지만)Edward N Luttwak의 The Grand Strategy of the Roman Empire에는 후기 로마군의 규모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추정치를 정리해서 실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서로마군은 최저(J. Szilagyi의 추정) 226,000(중앙군 94,000/지방군 122,000) 최대(A. H. M. Jones의 추정) 311,000(중앙군 111,000/지방군 200,000)이고 동로마군은 최저(Varady의 추정) 262,000(중앙군 96,300/지방군 165,700) 최대(E. Nischer의 추정) 426,500(중앙군 94,500/지방군 332,000)입니다.

문제는 총 병력에서 기병이 어느 정도냐 인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Luttwak의 책에는 보병대 기병의 비중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서적에 실린 통계를 이용해 봤습니다.
Warren Tredagold의 Byzantium and Its Army 284~1081에는 Notitia Dignitatum에서 인용한 395년경의 동로마군 편제가 실려 있습니다. 다행히도 여기에는 전체 병력 중 기병의 비중이 나와 있군요. 여기에 따르면 중앙군에서 기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20.7%(104,000명 중 21,500명)이고 지방군에서 기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동부군이 49.9%(병력 195,500명 중 97,500명), 서일리리쿰군이 44.4%(병력 63,000명 중 28,000명)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여기다가 위에서 언급한 중장기병의 비중을 넣어서 계산을 해 보겠습니다.

중앙군 : 21,500 ⅹ 0.15 = 3225
지방군 동부군 : 97,500 ⅹ 0.02 = 1950
지방군 서일리리쿰군 : 28,000 ⅹ 0.02 = 560

395년경 동로마군의 중장기병은 대략 5,735명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위에서 언급한 Luttwak의 저서에 실린 수치를 가지고 Notitia Dignitatum의 기병 비율과 Elton이 추정한 기병 중 중장기병의 비중을 가지고 계산하면 대략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동로마군의 중장기병(4~5세기경)
총 병력 426,500 기준 : 중앙군 2,977 지방군 3,320
총 병력 262,000 기준 : 중앙군 3,033 지방군 1,657

서로마군의 중장기병(4~5세기경)
총 병력 311,000 기준 : 중앙군 3,497 지방군 2,000
총 병력 226,000 기준 : 중앙군 2,961 지방군 1,220

신뢰도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심심풀이 수준의 계산이지만 나름대로 꽤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2007년 3월 18일 일요일

300

비수기의 절대강자(?) “300”을 보고 왔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다 필요 없고 그저 마초를 위한 마초 영화더군요.

민주주의, 자유 같은 식상한 이야기를 꺼내긴 하지만 이건 그저 양념에 불과합니다. 페르시아 사자가 와서 복종을 요구하자 우리의 주인공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고는 바로 사자를 우물에 멋지게 처넣지요. 그리고 바로 싸우러 나갑니다. 별 이야기 없습니다. 싸움을 거는데 우리의 대(大)마초 스파르타인들이 그냥 있을 수는 없지요.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안 되겠는지 중간 중간 스파르타 내의 부패한 정치인과 왕비의 이야기를 넣긴 하는데 이건 정말 불필요한 사족이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헐벗은 근육맨들이 말 그대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적들의 살과 뼈를 분해해 준다는 것입니다. 어찌나 일방적인 싸움인지 페르시아군이 더 불쌍하더군요. 끝없이 밀려드는 엑스트라들은 거의 대부분 스파르타 마초들에게 단 한칼에 사지가 절단됩니다. 그나마 정예부대라는 “임모탈”들도 거의 일방적으로 도륙당하기는 마찬가지지요. 페르시아군은 코뿔소, 코끼리 등 인간 이외의 것들도 끌고 옵니다만 이 짐승들 역시 대마초들의 망토 자락 하나 건드려 보기도 전에 도륙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쓸데없는 사족이었던 여왕과 스파르타 의회 이야기만 뺀다면 제법 볼만한 영화였습니다.

약간 의외였던 것은 반지의 제왕에서 온화하고 사려깊은 성격으로 나왔던 David Wenham도 스파르타 대마초 일당의 일원으로 나온다는 점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파르타 마초들 중 가장 미남이 아니었나 싶군요.

2007년 3월 12일 월요일

고조선 역사 부활 국민대축제라는 행사

고조선 역사부활 국민대축제

언제 이런 행사를 준비한 건지 놀랍군요. 세상에는 참 쓸데없이 낭비되는 돈이 많다는걸 실감하게 됐습니다. 국사교과서에 삼국유사에 기록된 고조선의 건국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한다는 발표가 나온 뒤 이를 축하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하는데 굉장히 난감합니다.

이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국학연구원이라는 괴이한 단체의 경우 예전 부터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국사교과서 개정과 함께 내놓은 성명을 보니 역시 굉장히 위험한 곳 이더군요.

국학연구원이 지난 7일 내놓은 성명을 보면 도데체 이 양반들이 뭘 하자는 건지 알수가 없습니다.

이 양반들의 성명 중 일부를 발췌하자면..

국학연구원은 "식민사관에 젖어 자국의 역사 축소에 앞장서온 국내 학계는 그동안 한국의 역사문화에 대한 양심과 책임을 저버렸음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며 "교육인적자원부의 용단을 계기로 국내 상고사연구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이번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자국의 역사 축소에 앞장서온 국내 학계에 반성을 촉구한다고 하는 군요...

그리고 그 다음이 더더욱 가관입니다.

이날 국학연구원은 ▲단군 조선의 건국 전후사에 관한 문헌고증 연구를 존중하고 국사교육에 수용하는 방안 적극 검토 ▲단군 이전의 신시와 환국의 역사 연구 심화 ▲한국사의 외연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말고 고구려, 발해, 금, 요, 원, 청, 일본 열도로 뻗어나간 역사를 밝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한국사 왜곡에 맞서야 함 ▲민족 고유의 선도문화 연구 강화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사관과 사회주의 유물사관에서 벗어나야 함 등 5개 연구 제언도 함께 제시할 예정이다.

역시 이들은 충성스런 환국의 신민이었습니다. 환국의 역사 연구 심화? 도데체 뭘 가지고? 황당고기 같은걸 들고 역사 연구를 할 바에는 차라리 반지의 제왕을 가지고 유럽 고대사를 하는게 나을 듯 싶습니다. 반지의 제왕은 재미라도 있지...

그리고 발해까지는 그렇다 치고 금, 요, 원, 청은 도데체 뭐 하자는 수작인지.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싶은지 아무 말이나 마구 늘어 놓는군요... 이렇게 도처에서 환빠가 암약하고 있다는게 끔찍합니다.

아. 참고로 11일 행사에서는 고조선 전통무예 "천부신공" 이라는 것도 시연했다고 합니다.

이런게 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으니 이 어린양이 얼마나 민족정신이 부족한지 알겠습니다.

2007년 2월 12일 월요일

이덕일, 텍스트 계의 김성모인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갔다가 또 이덕일씨의 “신작”, 그 위대한 전쟁이라는 물건을 봤습니다. 이건 뭐 김성모 화백도 아니고…. 대중적인 역사서를 표방하면서 책을 붕어빵 찍듯 찍어내는걸 보면 정말 이 양반도 궁극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학자들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습니다. 글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글을 몇 명 안되는 전문연구자들만 읽는 것 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소통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랄 것 입니다. 하지만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해서 농담 따먹기 수준으로 놀면 안되겠지요.

이덕일씨는 종종 언론을 빌려 폐쇄적인 학계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몇 명이나 믿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덕일과 비슷한 문제를 하소연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특히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분야의 글을 쓸 경우 그 방면의 전문가들로부터 사이비 취급을 받게 되지요. 국내에도 번역된 “블랙 아테나”의 저자인 마틴 버날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전략) 이집트학 전공자들은 잡다한 지식을 통해 어설프게 공부한 비전문가들이 이집트 연구에 뛰어드는 것을 매우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매우 많은 수의 이집트학 전공자들은 나를 이런 어설픈 돌팔이로 분류하고 있다. 내가 미국 이집트학 연구센터(ARCE, American Research Center in Egypt)의 연례 세미나에 내 저작에 대한 토론을 위해 갈 때마다 누군가의 빈정거림을 듣게된다. “이야. 황당한 만화 같은 소리로군!”
Black Athena Revisited에 글을 기고한 학자들은 그나마 나의 연구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하고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 연구가 어설픈 돌팔이들, 특히 아프리카 중심주의자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Martin Bernal, Black Athena writes back : Martin Bernal responds to his cr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01), p23

이덕일과 버날은 주류학계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버날은 주류학계에서 진지하게 대응하는 연구를 하는 반면 이덕일은 완전히 무시당하는 잡글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최소한 버날은 블랙아테나를 집필하기 위해서 해당 언어를 공부하는 열의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덕일은 그야말로 무책임하게 환단고기 따위나 들먹이고 있지요.

서점에서 아마존 파괴의 직접적인 원흉을 대하고 나니 약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덕일 같은 돌팔이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관심을 끊어 버리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 뿐 입니다.

2007년 1월 31일 수요일

민족인가, 국가인가? - 이종욱

오늘 이종욱의 "민족인가, 국가인가? 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에 답이있다"를 샀습니다. 아직은 대략 훑어본 상태인데 이거 생각보다 흥미로운 물건이더군요. 신라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역사학이 정통론 세우기에 집중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발언 수위가 약간 센 편입니다. 앞으로 상당히 욕을 많이 먹을 것 같군요. 뭐, 다른 건 둘째 치고 민족주의가 국교가 된 대한민국에서 이런 책을 낸다는 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 고대사쪽은 아는게 거의 없긴 하지만 근현대사 서적이 아니라 고대사 서적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은 별로 못 봤던 같습니다. 몇몇 구절에서는 지나치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광고하고 있어서 찝찝하긴 하지만 들어볼 만 한 부분도 있습니다.

읽으면서 흥미 있었던 구절을 몇 개 발췌해 봅니다.

첫째, 그때나 지금이나 손진태가 말한 내용 가운데 국민이 곧 민족이라는 주장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어 각기 서로 다른 국가가 들어선 상황에서 국민이 민족이라고 주장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1945년 하나의 민족이 38도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고, 1948년 남한과 북한에 각기 독립된 정부가 들어서며 한국인이 두 국가의 국민으로 나뉜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의 국민이 되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서는 한민족 두 국가의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민족이라는 용어에 마비되어 국민과 민족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민족끼리” “우리끼리”라는 북한의 말에 놀아나고 있다. 그 결과 한 민족 두 국가의 현실에 있으면서도 민족과 민족공조라는 말에 꼼짝 못하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146쪽

그런데 이러한 민족이 한국인의 신앙이 되기에 이르렀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1945년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한국은 38도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한 침공으로 벌어진 6.25전쟁 뒤 지금까지 휴전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위를 북한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택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다른 이념(사상)과 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2002년 서해에서 북한 함정의 공격을 받아 한국 해군의 함정이 침몰하고 해군들이 전사한 전투가 있었다. 이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에서 전쟁 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어떤 면에서 때로는 국가보다 민족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153쪽

그러나 남한과 북한이 택한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는 민족과는 다른 문제다.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위를 북한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국가의 이념과 체제로 택했다. 그런데 남한과 북한이 택한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는 하나로 합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주체사상을 택하여 자주라는 이름으로 세계화를 거부하며 북한 인민들의 자유를 빼앗고 굶주리게 만들고 있다. 현재 이 세상에서 그처럼 인민의 자유를 빼앗고 굶주리게 만드는 폐쇄적인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들이 각별히 경계해야 할 사실은 그러한 주체사상으로 인민의 자유를 빼앗고 굶주리게 하는 체제의 전파다.

지난 60여년 동안 한국사학은 위와 같은 사실은 생각하지 않고 민족을 발명해 서로 다른 두 이념과 체제위에 놓고서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어야 하는 이유로 삼았다. 현대 한국사학이 만든 민족사는 민족이 우선이고 국가(국민)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 현대 한국사학이 국가와 국민보다 민족이 먼저라는 역사 지식과 역사의식을 한국인들에게 주입한 것이다.

(중 략)

가상의 공동체로서 민족을 만든 현대 한국사학은 그러한 민족이 걸어가야 할 길까지 정해 놓고서 실제 역사는 그 길을 벗어났다고 비판하며 꾸중해 왔다.

(중 략)

대륙을 지배하던 고구려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를 반민족적 왕국으로 보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이러한 민족사는 과거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더 큰 문제가 있다. 현재의 정치, 군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기준이 되는 것을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
6.25전쟁 이래 남한과 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북한의 남침 기도를 막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학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켰다며 신라를 반민족적 행위를 한 나라로 판정하는 역사 공식을 만들었다. 그러한 역사 공식은 6.25전쟁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군의 도움으로 북한의 남침을 막은 대한민국을 반민족적 행위를 하는 나라로 보도록 만든 것이다.

316~319쪽


이 양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국민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이 책에 대해 실린 기사에는 악플이 엄청 달렸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