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6일 금요일
아마존에서 젤리코 제독 회고록 킨들판을 단돈 1달러에 팔고 있습니다!
아마존에 책 구경을 하러 들어가니 추천도서 리스트에 젤리코 제독 회고록이 떴습니다. 그런데 킨들버전이 단돈 1달러 아니겠습니까! 당장 질렀습니다. 1차세계대전과 유틀란트 전투에 관심있는 분들은 지르십시오!
2017년 5월 23일 화요일
잡담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로 도통 번역할 시간이 안생기니 잡담이나 풀어봅니다.
1990년대 이후로 영어권에서 소련의 시각을 반영한 군사사 서적들이 폭발적으로 출간됐습니다. 2차대전의 다른 측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약간의 부작용도 있었는데 소련이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생산한 주장들이 여과없이 '진실'로 받아들여진 것 입니다. 물론 2차대전사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한 보완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면에서 데이빗 글랜츠의 When Titans Clashed와 독소전쟁 항공전에 대한 개설서인 본 하데스티의 Red Phoenix Rising 증보개정판은 꽤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두 서적 모두 1990년대에 소련의 시각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공헌했지만 동시에 소련 중심의 시각에서 오는 문제점도 고스란히 안고 있었습니다. 증보개정판으로 이런 문제점은 다수 해결됐으나 여전히 미진한 점이 몇가지 보입니다. 글랜츠는 여전히 독일 기록과 상충되는 일부 기록에서 소련쪽 주장을 옹호하고 있으며(체르카시 전투 등), 본 하데스티의 책도 쿠반 전투 같이 소련 기록이 완전히 엉터리인 경우 '양쪽 모두 전과를 과장했다' 같은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에 정확한 전과 산정이 어려워 과장이 발생하는건 만국공통이지만 사실 소련처럼 역사서술의 방향을 뒤틀 정도로 심각한 과장을 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할 점 입니다. 쿠반 항공전을 예로 들면, '독일 공군이 천여대의 항공기를 상실하고 제공권을 빼앗겼다'와 '독일 공군이 쿠르스크 공세를 위해 쿠반 지구의 공군력을 대거 북부로 이동시켜 소련 공군이 우세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지요.
개인적으로 독소전쟁사는 앞으로도 수십년간 새로운 사실이 발굴되면서 기존의 서술도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를 뒤흔든 연구자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세번째 개정판은 무리겠지만 그들의 업적을 이어받을 후속 연구자들이 등장하겠지요.
2017년 5월 7일 일요일
렌드리스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 한편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최신호(40-2)에 렌드리스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이 한 편 실렸습니다. 저자는 빈대학의 데니스 하블라트(Denis Havlat)이고 논문 제목은 Western Aid for the Soviet Union During World War II: Part I입니다. 논문의 분량이 많아 나뉘어 실렸는데 완결되면 번역해서 이 블로그에 올려보려 합니다.
하블라트의 핵심 주장은 소련과 러시아가 렌드리스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했으며 실제로는 렌드리스가 독소전쟁의 주요 국면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의 공식 통계인 크리보셰프의 보고서가 소련군의 손실을 축소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소련과 러시아가 렌드리스의 기여도를 깎아내리기 위해 통계를 조작하는 등 여러가지 날조를 했다는 것 입니다.
꽤 재미있는 논문입니다. 아마 올해안에는 완결이 날 듯 싶은데 시간이 되는대로 번역하도록 하겠습니다.
2017년 5월 4일 목요일
한국에 남아있는 일본 육해군 항공대 비행장의 흔적들
일본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한반도에 슬금슬금 군사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2차대전 말기로 가면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현재 한국 방방곳곳에는 아직도 일본군이 건설한 군사시설의 잔해들이 남아있습니다. 밀양의 육군항공대 격납고처럼 문화재 지정이 되어 보호받는 경우도 있고 무안 처럼 아직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철거되는 경우도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특히 일본이 본토결전에 대비해 규슈방면 지원을 위한 후방기지로 건설한 한반도 남부의 비행장 유적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비행장 유적들은 주로 1944~45년 시기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것이 특징입니다.
제가 답사했던 곳의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1.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일본해군항공대)
현재 남아있는 일본군 비행장 유적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알뜨르비행장일 것입니다. 제주도는 일본군의 결7호작전에 따라 45년에 필사적으로 방어준비가 이루어졌던 지역입니다. 하지만 알뜨르비행장은 이미 중일전쟁 이전인 1931년에 건설되어 중일전쟁 당시 오무라(大村)해군항공부대의 기지로 사용될 정도로 오래된 곳 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격화되면서 제주도 방어의 주력이 육군으로 넘어가면서 육군 레이더기지가 근처에 설치되는 등 육해군공용기지로 바뀌게 되지요.1)
일본해군은 1943년 말 알뜨르비행장 확장공사를 하면서 20개의 콘크리트 격납고를 건설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격납고의 외형은 비교적 양호한 편 입니다.
2. 밀양시 상남면 기산리ㆍ연금리 (일본육군항공대)
밀양시 상남면에는 전쟁 말기 일본육군항공대가 건설한 콘크리트 격납고 두 개가 남아있습니다. 밀양과 아래에서 이야기할 무안군의 비행장은 일본육군항공대 관할이었습니다. 1944년까지 한반도 남부(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육군항공대 비행장은 대구에 위치한 제45항공지구사령부의 관할이었습니다.
朝鮮軍残務整理部, 『朝鮮軍関係史料 2/2』, p.0280-2. |
그러다가 1944년 말 부터 본토결전준비로 인해 일본육군항공대가 대대적으로 증강됩니다. 이것은 화북에 있던 일본 제5항공군이 본토결전 준비를 위해 1945년 5월 20일 경성에 사령부를 설치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합니다. 이무렵 밀양에 주둔한 것이 확실한 항공부대는 제176야전비행장설정대, 제10비행장중대, 제1활공비행대 등입니다.2) 조선군잔무정리부가 남긴 기록에는 항복당시 제5항공군 예하부대 목록과 병력 현황만 있을뿐 주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네요.
朝鮮軍残務整理部, 『朝鮮軍関係史料 2/2』, p.0281. |
현재 밀양시 상남면에는 기산리에 1개, 연금리에 1개 등 총 2개의 격납고가 남아있습니다.
기산리의 격납고는 사유지 한가운데에 있어서 사진 촬영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연금리의 격납고는 민가로 개조되어 사용되다가 방치됐습니다. 기산리에 있는 격납고 보다는 촬영이 편합니다.
3. 무안군 현경면ㆍ망운면 (일본육군항공대)
무안은 현재 일본군의 비행장 관련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없어서 계속해서 남아있는 유적들이 철거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확인한 바로는 무안군 현경면과 망운면 일대에 콘크리트 벙커 1개와 콘크리트 격납고 6개가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도 어렵고 지역 주민들의 인식도 좋지 않아 언제 남아있는 것도 철거될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격납고의 위치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현경면에 5개(A, B, C, E, F), 망운면에 1개(E)를 확인했습니다. 전부 확인하지 못해서 추가 조사를 할 예정입니다.
먼저 평산 3리(통정)과 평산 4리(유수정)에 있는 격납고의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편의상 평산 3리 통정에 있는 것을 A, 평산4리 유수정에 있는 것이 B와 C로 칭하겠습니다.
A 격납고입니다.
70년이상 방치되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B 격납고 입니다.
C격납고는 현재 창고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지 신문의 설명에 따르면 고구마 저장고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A, B, C 격납고의 구체적인 위치는 아래와 같습니다. 가까운 곳에 몰려있어 찾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음은 D, E, F 격납고입니다. 재미있게도 D격납고는 현경면과의 경계인 망운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딱 경계면에 붙어있어서 저는 처음에 D격납고도 현경면에 있다고 착각했을 정도입니다.
망운면 목동리의 D격납고 사진입니다. 밭 한가운데에 있어서 사진을 찍기 어려웠습니다. 농한기에 다시 가서 조사할 생각입니다.
다음은 현경면 송정리의 E격납고 입니다. 현재 쓰레기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4.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 신평마을 (일본해군항공대)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 즉 김해공항 옆에도 일본해군항공대가 사용하던 격납고 세 곳이 남아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곳들은 아직까지도 민가로 사용되고 있어서 외형 자체는 꽤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곳이 대한민국 공군 소유의 국유지이기 때문에 건축물 신설이나 철거가 어려운게 그 원인인 듯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조사해서 관련정보를 업데이트 할 계획입니다.
주
1) 츠카사키 마사유키(塚崎昌之), 「제주도에서의 일본군의 '본토결전' 준비: 제주도와 거대 군사 지하시설」, 조성윤 엮음 『일제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 (보고사, 2008) 64~72쪽.
2) 양영조 편, 『일제 조선주둔군과 625전쟁 일본소해대』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16),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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