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NARA에서 독일 노획문서 마이크로필름 사본을 복사하는 이야기를 꺼냈었죠. 필름 한 롤을 복사하는데 125달러나 들어가서 잠깐 멍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가서 4층에 있는 그곳 직원인 빨간머리 흑누님(;;;)한테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만 그냥 카메라로 찍으면 되지 뭘 고민이냐며 웃더군요;;;; 아아. 해답을 주시는 흑누님.
그래서 가지고 간 카메라 중 한대인 캐논 SH40HS로 찍어봤는데 생각보다 쓸만합니다. 물론 문서가 좀 클 경우에 마이크로필름 리더의 화면에 있는 격자표시까지 찍히는게 좀 걸리긴 합니다만 제가 좀 가난하니 이정도 문제는 감수해야죠.
시험삼아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 독일 제2기갑집단의 작전처 문서를 찍어봤습니다. 원본 그대로 올리기 때문에 클릭하시면 제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는 돈 걱정이 아니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많은 독일자료를 확보하는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토요일에도 문서보관소가 개관을 하니 시간 배분을 잘 해야겠습니다.
2012년 9월 28일 금요일
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유니온역의 반즈 앤 노블
오전에 워싱턴DC에 가서 등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유니온역에 들렀습니다. 주말에 갈 곳에 있어서 기차시간표를 알아보러 갔는데 이 역에는 제법 큰 반즈 앤 노블이 있더군요. 마침 필요한게 있어서 한번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잠깐 살펴보니 독일을 여행할 때 들렀던 기차역 구내서점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중적인 군사서적을 제법 찾아볼 수 있는게 마음에 들더군요. 서적시장이 세분화 되어 있다는 것은 상당한 장점 같습니다.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NARA에서 마이크로 필름 한 롤을 복사하는 비용을 알아봤는데
쉬면서 앞으로 할 일을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곁다리로 잉여력 향상을 위한 준비도 하고 있는데 이게 좀 만만치 않군요. 여유가 생기면 독일 노획문서의 마이크로필름 사본을 사가려 하는데 제가 필요로 하는 시기의 기록이 NARA에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들어 켐프 분견군은 작전참모부 문서가 한장도 없고 제5기갑사단은 1943년 가을 이후의 작전처 문서가 없습니다. 특히 동부전선에서 작전한 사단들의 경우 1943년 이후의 문서가 없는 경우가 제법 있어서 당혹스럽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에 대한 글을 써보려 했는데 좀 그렇군요. 다행인 점은 야전군과 기갑군 단위의 문서는 상대적으로 잘 남아 있다는 점 입니다.
결정적으로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NARA에서 공개하는 가이드를 읽어보니 1960년대에는 필름 한 롤을 복사해 주는데 7~8달러 정도 했던 것 같은데 현재는 한 롤을 복사하는데 120달러가 들어가는군요. 시험삼하 카트에 몇 롤 넣어봤는데 가격이 장난이 아닙니다. 일단은 일 끝나고 귀국하기 직전에 남은 돈에 맞춰서 복사를 해야 겠습니다.
역시 잉여력 향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 입니다.
그리고 곁다리로 잉여력 향상을 위한 준비도 하고 있는데 이게 좀 만만치 않군요. 여유가 생기면 독일 노획문서의 마이크로필름 사본을 사가려 하는데 제가 필요로 하는 시기의 기록이 NARA에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들어 켐프 분견군은 작전참모부 문서가 한장도 없고 제5기갑사단은 1943년 가을 이후의 작전처 문서가 없습니다. 특히 동부전선에서 작전한 사단들의 경우 1943년 이후의 문서가 없는 경우가 제법 있어서 당혹스럽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에 대한 글을 써보려 했는데 좀 그렇군요. 다행인 점은 야전군과 기갑군 단위의 문서는 상대적으로 잘 남아 있다는 점 입니다.
결정적으로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NARA에서 공개하는 가이드를 읽어보니 1960년대에는 필름 한 롤을 복사해 주는데 7~8달러 정도 했던 것 같은데 현재는 한 롤을 복사하는데 120달러가 들어가는군요. 시험삼하 카트에 몇 롤 넣어봤는데 가격이 장난이 아닙니다. 일단은 일 끝나고 귀국하기 직전에 남은 돈에 맞춰서 복사를 해야 겠습니다.
역시 잉여력 향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 입니다.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잉여력을 업그레이드 하고 오겠습니다
일이 있어서 오늘부터 한 5~6개월 정도 미국에 가 있으려 합니다.
잉여력을 업그레이드할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중입니다.
생각해 보면 2003년에 독일에서 몇달 뒹굴거린 것이 잉여력 향상에 꽤 도움이 되었는데 이번 미국 체류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건져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 그러나 짧은 기간이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게 아쉽군요.
어쨌든 앞으로도 헤롱한 상태로 즐겁게 서로 낄낄거릴 수 있는 온라인 생활이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북한 주재 소련대사 슈티코프의 1950년 6월 26일 전문
출국준비로 어수선해서 블로그질이 좀 뜸하군요;;;; 가끔씩 들러주시는 분들께 민망하니 한국전쟁과 관련된 날림번역글 하나 올려 봅니다.
이 전문은 1950년 6월 26일 평양주재 소련대사 슈티코프가 소련군 총참모부 정보부국장 자하로프Матве́й Васи́льевич Заха́ров에게 보낸 것으로 1994년 BBC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문서입니다. 한국에서 번역출간된 라주바예프 보고서와 중복되는 내용이 많긴하지만 개전 초기 북한군의 문제를 잘 요약해서 보여주는 글 같습니다. 라주바예프 보고서는 한참 뒤에 작성되어 정리가 잘 되어있긴 합니다만 슈티코프가 작성한 이 문서는 개전 직후에 작성되어 당시의 분위기를 좀 더 잘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개전 초반의 유리한 상황에서도 북한군 수뇌부의 지휘능력 부족을 질타하는 부분이 주목할 만 합니다.
이 전문은 1950년 6월 26일 평양주재 소련대사 슈티코프가 소련군 총참모부 정보부국장 자하로프Матве́й Васи́льевич Заха́ров에게 보낸 것으로 1994년 BBC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문서입니다. 한국에서 번역출간된 라주바예프 보고서와 중복되는 내용이 많긴하지만 개전 초기 북한군의 문제를 잘 요약해서 보여주는 글 같습니다. 라주바예프 보고서는 한참 뒤에 작성되어 정리가 잘 되어있긴 합니다만 슈티코프가 작성한 이 문서는 개전 직후에 작성되어 당시의 분위기를 좀 더 잘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개전 초반의 유리한 상황에서도 북한군 수뇌부의 지휘능력 부족을 질타하는 부분이 주목할 만 합니다.
1급기밀
자하로프 동지 앞.
직접 전달할 것.
조선인민군의 군사작전 준비와 실행 과정에 대해 보고합니다.
조선인민군은 총참모부의 계획에 따라 6월 12일 부터 38도 접경지대에 병력집결을 시작해 6월 23일에 집결을 완료했습니다. 부대 재배치는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으며 사고는 없었습니다.
적의 정보부서가 군부대의 재배치를 감지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계획을 그대로 실행했으며 작전 실행 시기는 비밀로 했습니다.
사단급 작전계획과 지형정찰은 소련 고문관의 참여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작전에 필요한 모든 준비과정은 6월 24일까지 완료되었습니다. 6월 24일 각 사단장은 작전 일시와 시간에 대한 명령을 받았습니다.
각 부대에서는 남조선 군대가 38선을 침공하여 군사적 공격을 도발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조선인민군에 반격을 명령했다는 민족보위성의 명령서가 낭독되었습니다.
조선인민군의 장교와 사병들은 반격명령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각 부대는 6월 24일 24시 공격개시선으로 이동했습니다. 군사작전은 조선 시간으로 오전 4시 40분 개시되었습니다. 포병의 공격 준비사격은 20~40분의 직접 포격과 10분간의 탄막포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보병은 왕성한 사기를 가지고 공격에 나섰습니다. 공격 시작 후 첫 세시간 동안 공격부대는 3~5km를 진격했습니다.
조선인민군의 공격은 적에게 완전한 기습이었습니다.
적은 옹진, 개성과 서울 축선에서만 강력한 저항을 했습니다. 적은 공격 첫날 12시가 지나서야 보다 조직적인 저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첫날 전투에서 점령한 도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옹진, 개성, 신읍리(新邑里, Sinyuri, しん ゆうり) .(1943년 총참모부가 간행한 1:1,000,000 지도)
인민군은 춘천방면에서 12km를 진격했습니다.
동해안에서는 8km를 진격했습니다.
공격 첫날 조선인민군 해군은 동해안에서 두 개의 상륙작전을 실시했습니다. 첫번째 상륙집단은 강릉(Korio, こうりょう) 지구에 상륙했으며 해군육전대 2개대대와 1천여명의 빨치산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상륙집단은 울진에 상륙했으며 600여명의 빨치산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상륙작전은 5시 25분에 시작되었으며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습니다.
빨치산 부대가 울진과 그 주변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상륙과정에서 인민군의 함선과 남조선군의 함선 간에 교전이 있었습니다. 교전 결과 남조선군의 트롤함 한척이 격침되었고 다른 한척이 파손되었습니다. 북조선 함대는 피해가 없었습니다.
6월 26일 인민군은 공격을 계속하여 전투를 치르면서 남조선 영내 깊숙히 전진해 들어갔습니다.
6월 26일에는 옹진반도와 개성반도가 완전히 소탕되었으며 (인민군) 6사단은 (강화)만을 강행 도하하여 김포 비행장 방면의 인구밀집지대를 점령했습니다.
서울 방면에서는 (인민군) 제1사단과 제4사단이 문산과 동두천을 점령했으며 제2사단은 (강원도의) 중심인 춘천(Siunsen, しゅんせん)을 점령했습니다.
동해안에서도 진격이 계속됐습니다. 주문리(注文里, Tubuiri, ちゅうぶんり, 주문진)를 점령했습니다.
6월 26일에는 고성 방면으로 진격하는 제12사단, 신읍리를 지나 의정부(Geisif, ぎせいふ) 방면으로 진격하는 제3사단 및 기계화여단과 하루종일 연락이 두절되었읍니다.
북(조선군)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민군의 작전 수행에 있어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1. 군사작전이 시작되면서 각 부대가 전방으로 진격하는 동시에 상급부대에서 하급부대에 이르기까지 지휘부 간의 교신이 두절됐습니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개전 첫날 부터 전투를 지휘하지 못 했으며 단 하나의 사단과도 제대로 된 통신을 유지하지 못 했습니다.
각 부대의 지휘관들은 상급 제대의 참모부와 교신을 하려 하지 않았으며, 야전 부대와 그 상급 부대의 지휘에서는 참모진을 허가를 받지도 않고 교체했으며, 총참모부는 동해안에서 작전하고 있는 여단 및 제12사단과 교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2. 조선인민군의 참모진은 전투 경험이 없었습니다. 소련 군사고문단이 동반하지 않은 경우에는 전투 지휘가 졸렬했으며 포병 및 전차의 운용도 형편없었고 통신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3. 그러나 우리의 군사고문관들은 조선인민군 부대 내에서 매우 헌신적으로 활동했으며 이들이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었습니다.
4. 군사작전이 개시될 무렵 북조선 인민들의 정치적인 분위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대한 신뢰와 조선인민군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전반적으로 열성적이었습니다.
6월 26일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이름으로 조선 인민들에게 연설을 했으며 이 연설에서 조국의 정세에 대하여 설명했으며, 적을 섬멸하고 조선을 통일하는 과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5. 조선인민군 지휘부는 부대간의 통신을 정상화하고 전투 지휘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조치가 마무리되고 인민군 사령부는 철원(Tepuges, てつげん) 지구로 이동했습니다. 민족보위상(최용건), 인민군 총참모장(강건), 그리고 군사고문단장과 여러명의 장교들이 사령부로 갈 것 입니다.
남(조선군)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이틀간의 군사작전으로 다음과 같은 점이 드러났습니다.
1. 적군은 저항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싸우면서 남조선 내륙 깊숙히 퇴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남조선군의 포로를 많이 잡지 못했습니다.
2. 남조선 괴뢰정부는 후방에 있던 부대를 투입하고 있으며 인민군의 진격을 저지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3. 첫날 조선인민군의 공세로 남조선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남조선 당국과 주한미국대사는 라디오 방송에서 담화를 발표하여 남조선 인민들이 침착하게 있을 것을 당부했습니다. 남조선군의 사령부는 남조선 군대가 승리하고 있다는 거짓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슈티코프
No. 358/sh
1950년 6월 26일
2012년 9월 9일 일요일
타미야의 1/48 AFV 신제품!
1/48 AFV 시리즈로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타미야에서 1/48 신제품을 예고했습니다!!!
이번 제품은 4호전차 파생형인 대공전차 뫼벨바겐이로군요. 대공전차는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4호전차 파생형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으흐흐흐.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기존의 4호전차 J형에서 쓰던 다이캐스트 차체를 쓰지 않는 듯 합니다. 차체 하부를 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같은데 이걸 보면 새로운 4호전차 파생형들이 출시될 것 같습니다. 으흐흐흐.
4호전차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4호전차 D형이나 단포신 F형을 발매해 줬으면 합니다. 아. 하필이면 외국에 나가야해서 수입되는 대로 집어들 수 없는게 안타깝군요. 돌아오는 대로 지르겠습니다.
2012년 9월 8일 토요일
[번역글] "마스터 플랜" : 중국의 신형 유도미사일 구축함
9월 4일 The Diplomat 인터넷 판에 재미있는 글이 한 편 실렸습니다. 제목은 “‘마스터 플랜’ : 중국의 신형 유도미사일 구축함(The Master ‘PLAN’: China’s New Guided Missile Destroyer)”인데 영어로 계획을 뜻하는 Plan과 인민해방군 해군(PLAN, People’s Liberation Army Navy)의 영문약자가 같은 점을 이용해서 재미있는 글장난을 하고 있네요. 제목부터 재미있습니다. PLAN이라는 글자가 중의적이라서 ‘기본계획’ 대신 ‘마스터 플랜’이라고 옮겼습니다.
이 글의 필자인 미해군전쟁대학U.S. Naval War College교수 요시하라 도시吉原俊井와 제임스 홈즈James R. Holmes는 중국해군의 건함 양상이 구축함 중심의 대형함정 위주로 나가고 있으며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국 인근 해역에서의 작전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중국의 구축함 건조가 해군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방향으로 서술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이 어떤 양상으로 나갈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불균형을 메꿔줄 나라가 어디인지는 뻔한 것인데 한국에는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서 이 글을 불편하게 받아들일 사람도 많을 듯 싶습니다.
날림번역이긴 합니다만 한번 읽어보시죠.
이 글의 필자인 미해군전쟁대학U.S. Naval War College교수 요시하라 도시吉原俊井와 제임스 홈즈James R. Holmes는 중국해군의 건함 양상이 구축함 중심의 대형함정 위주로 나가고 있으며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국 인근 해역에서의 작전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중국의 구축함 건조가 해군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방향으로 서술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이 어떤 양상으로 나갈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불균형을 메꿔줄 나라가 어디인지는 뻔한 것인데 한국에는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서 이 글을 불편하게 받아들일 사람도 많을 듯 싶습니다.
날림번역이긴 합니다만 한번 읽어보시죠.
“마스터 플랜(The Master PLAN)’ : 중국의 신형 유도미사일 구축함”
우리는 야구장의 철학자 요기 베라Lawrence Peter "Yogi" Berra의 열렬한 추종자이다. 요기 베라는 “예측을 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미래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위대한 요기 베라가 그랬던 것 처럼 우리도 예언에 운을 걸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2010년 말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에 중국 정부가 해군 증강을 늦추거나 중단할 것이라고 예측한 서방 전문가들의 견해가 틀릴 것이라는 예측을 한 바 있다.
중국이 해군 증강을 늦추거나 중단할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들은 그 증거로서 중국이 유도미사일구축함, 즉 DDG의 건조를 중단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만약 그대로 되었더라면 중국은 의도적으로 자국 해군의 타격력을 감소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해군은 여러 종류의 유도미사일 구축함을 시험하면서 이중에서 가장 뛰어난 요소만을 종합한 함정을 완성하려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공개된 052D 뤼양(旅洋)2급 유도미사일 구축함의 사진을 놓고 봤을때 구축함의 건조를 본격적으로 재개할 것이라고 보았다.
최근까지 서방의 중국인민해방군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조선소에서는 유도미사일 프리킷이나 고속정 처럼 방어에 특화된 항속거리가 짧은 소형함정을 건조하기 위해서 유도미사일 구축함 같은 주력함정의 건조를 늦추거나 중단하고 있다는 주장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은 2005년 이래로 구축함의 건조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들은 이를 통해 중국의 해군력 건설이 위협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아무리 잘 봐줘야 직관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몇년간 중국과 서방의 군사 웹사이트에는 이런 낙관적인 전망을 뒤흔들 사진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이러한 사진들은 우리가 중국의 건함 경향에 대한 예측을 내놓았던 2010년에 이미 중국은 유도미사일 구축함의 건조를 재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최근의 정보들은 상하이에 있는 장난(江南) 조선소에서 여섯번째의 052C 유도미사일 구축함을 진수했으며 연평균 두척을 기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옆에서 건조중인 새로운 함정은 052C의 후속함인 052D로 추정된다. 그리고 잘 알려진 중국 전문가 한명은 지난주 신형 함정(052D) 한척이 진수되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이 배가 당장 항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조선소의 일반적인 공정을 감안할 때, 더 많은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배를 진수한 것은 대양으로 신형 군함을 내보내는 중요한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중국해군은 가장 적합한 수상전투함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타이페이 타임즈에 따르면 비밀에 둘러쌓인 새 군함은 052C의 개량형으로 중국의 해군 지지자들에게 “중국판 이지스”로 불리고 있으며 미국의 이지스함과 기술적으로 대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필자들은 이런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052D는 스텔스 설계가 적용된 6,000톤급 함정으로 가스터빈 엔진을 갖췄으며 64개의 수직발사기(VLS)를 갖추고 있다. 수직발사기는 함체에 내장된 수납통이라 할 수 있다. 각 수직발사기는 미사일 적재량에 따라 한 발에서 네 발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수직발사기는 함내의 무기고에서 발사대까지 미사일을 옮기면서 일어나는 불편함, 시간 지연, 기술적 문제 없이 함대공, 함대함, 함대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게 해준다.
최소한 서류상으로 052D는 미해군의 알레이버크Arleigh Burke급 유도미사일구축함이나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 유도미사일순양함의 축소판에 가깝다. 중국해군의 유도미사일 구축함은 미국 해군의 해당 함종보다 배수량이 작은데 미국 해군의 알레이버크급은 11,000톤, 타이콘데로가급은 9,600톤이다. 배수량이 작다는 것은 연료탑재량이 더 적고 그만큼 항속거리도 짧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정도의 능력은 이 군함이 활동하게 될 중국의 “근해”와 인도양에서의 국지적 임무에는 적합한 것이다. 052D급의 무장 또한 알레이버크급이나 타이콘데로가급 보다 적은데 전자는 수직발사기 96개를, 후자는 수직발사기 122개를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구축함들은 아시아 해역에서의 국지분쟁에는 충분한 타격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중국 구축함들은 대부분 연안에 배치된 전력의 화력지원을 받으며 작전을 펼칠 것이므로 화력의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중국정부는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해군 증강을 시작하면서 함대 건설에 매우 합리적인 접근방식을 취했다. 중국을 둘러싼 전략환경이 유리하고 미국이 공해와 하늘에 대해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하는 동안 중국해군은 여유롭게 “함대에 대한 실험”을 시도했다. 조선소에서는 여러 종류의 소형함정을 건조하면서 장점만을 골라서 취했으며 나머지는 버렸다. 이러한 ‘위험회피risk-averse’ 방식을 통해 기술적인 감각을 획득하면서 조선공학 측면에서 질적인 도약을 이룩했다.
각각 두척 내외가 건조된 다섯 종류의 함급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수상함대는 이러한 느린 접근방식의 증거이다. 이 함정들은 모항 근처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중국해군은 승무원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교리를 개발하며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험적으로 건조된 함정들을 원양에 투입했으며 이를 통해 실질적인 가치를 얻어냈다. 인도양에서의 해적 퇴치 작전에서도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국해군은 한 종류의 함정을 대량 건조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해군에 대한 실험을 마무리 짓기에는 적절한 시기로 보인다. 소련이 건조한 항공모함 바략을 개장한 중국해군의 첫번째 항공모함은 시험 운항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중국은 바략의 갑판에서 운용이 가능한 러시아의 Su-33 전투기를 역설계한 파생형인 J-15의 시험비행을 실시했다고 한다. 중국해군의 첫 항공모함 기동전단에서 아직 미비한 것은 항공기와 미사일로 부터 주력함을 보호할 수 있는 다목적의 감시용 함선이다. 052D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신형 유도미사일 구축함이 순전히 항공모함을 보유하려는 중국의 야망을 실현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항공모함 전투단을 편성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중국은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항공단, 수상함정, 그리고 전위를 맡을 원자력추진 공격잠수함으로 빈틈없이 상호 연계가 가능한 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구축함의 유용성은 단지 중국의 항공모함 도입 계획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구축함은 주력이 되는 함선이다. 다목적의 유도미사일 구축함은 중국해군이 체계적으로 항공모함 운용 방식을 습득하는 동안에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052D급은 수상함전투전대SAG, Surface Action Group나 상륙기동부대의 지원에 배속하거나 항공모함이 아닌 다른 중요 함선을 보호할 수 있다. 또한 052D급은 임무에 따라서는 부대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052D은 광대한 해역에서 이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지난 5년간 11척에 달하는 수상함전투전대들이 류큐 열도를 가로지르는 공해상의 해협을 통과해 서태평양으로 진출했다. 2012년의 첫 6개월 동안에만 4개의 수상함전투전대가 이곳을 통과해 대양으로 나갔다. 이러한 해상 활동 경향은 수상함전투전대가 운용하게 될 수상함에 관한 조직원칙을 이해하는 핵심일 수 있음을 보여주며 그 중에서도 052D급은 핵심적인 위치에 있을 것이다.
중국해군은 무엇을 할 것인가? 특히 개량된 뤼양급은 대함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중국이 보유한 러시아제 소브레메늬급 구축함에 대한 공격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052D급은 중국이 연안지역에 힘을 투사하기 위해서 건조하고 있는, 아직은 얼마 안되지만 꾸준히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 상륙강습함들을 호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원정타격부대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해군을 간단히 압도할 수 있을것이다. 특히 이런 종류의 부대는 남중국해의 섬을 점령하는데 적합하다. 또한 052D급은 기동성과 스텔스성을 갖춘 022 허베이급 쌍동선에 대한 대공방어를 제공할 수 있다. 허베이급은 작은 선체로 감지를 회피하며 우세한 적 함대를 상대로 제해권을 확보하거나 거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거리 대함 순항미사일을 운용한다.
게다가 타이완에서 돌발사태가 발생할 경우, 최신예 유도미사일 구축함은 방어하는 대만공군의 생존능력을 위협할 수 있는 함대 기반의 방공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 한척의 052D급은 장거리 탐지능력과 교전 거리를 가졌기 때문에 중국본토에 배치된 지대공 미사일의 유효사정거리를 훨씬 넘어서 타이완 인근, 혹은 타이완 전역에 걸친 범위를 담당할 수 있다. 타이완 동쪽에 배치된 052D급은 타이완을 완전히 포위해서 타이완 조종사들이 이륙하면 모든 방향에서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해군은 이토록 인상적인 일선의 함선들을 해외로 파견해서 중국의 군사적 강력함을 외국인들에게 과시하고 해군외교를 증진할 수 있을것이다. 핵심은 중국이 더 많은, 그리고 더 우수한 대형 구축함을 가지게 될수록 다양한 임무를 위해서 중국해군의 다양한 자산을 조합할 수 있게 될것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중국해군이 유도미사일 구축함을 증강하는 것이 이 지역의 해군력 균형을 뒤바꿀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답은 간단하다. 그렇다. IISS의 밀리터리 밸런스Military Balance에 근거해 간략하게 추산해 보는 것 만으로도 실상이 잘 드러난다. 타이페이 타임즈가 예측한 것 처럼 중국이 10척의 052D급을 배치한다면 중국해군은 이지스함에 견줄수 있는 함정을 16척 보유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해군이 10척만 건조하고 멈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인 일본과 한국의 경우 각각 6척과 3척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최소한 서류상으로는, 이 경우 중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국이 되는 것이다. 일단 052D급이 함대에 배치되기만 하면 중국해군은 미해군을 제외하면 다른 어떤 나라의 해군을 상대로 하더라도 우위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해군은 일본해상자위대에 대해서 16:6의 우세를 보일 것이며, 한국해군에 대해서는 16:3의 우세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연합함대에 대해서는 16:9의 우세를 보일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That’s significant.)
중국에게 유리한 쪽으로 균형이 기울게 되면 수년내로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건함 경쟁이 일어날 것인가? 미국이 아시아에서 유지할 수 있는 힘과 아시아 국가들이 군비경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이로 인한 비용을 부담하려는 의지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이제 중국해군이 해군력 건설을 멈추었느냐는 논의는 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이 골치아픈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할 때이다.
2012년 9월 4일 화요일
항공모함의 효용에 대한 최근 미국의 논의
얼마전 포린 폴리시 인터넷판에 올라온 로버트 해딕Robert Haddick의 글, “Shipping Out : Are aircraft carriers becoming obsolete?”을 읽고나서 몇가지 잡생각을 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감축에 따라 국방비도 크게 감축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예산을 잡아먹는 항공모함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가 있는 모양입니다. 막대한 유지비가 소요되는데다가 고속의 장거리 대함미사일의 발전 때문에 갈수록 작전에 제약을 받게될테니 “값싼”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 하는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 입니다. 특히 최대의 가상적인 중국은 접근거부전략을 취하면서 대함미사일을 중시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데 이 경우 항공모함 항공단의 주 용도인 지상타격은 꽤 곤란해 질 수 있습니다. 항공모함이 항공기들의 작전범위 내에서 미사일 때문에 활동의 제약을 받게된다면 그야말로 돈낭비가 되겠지요. 특히 항공모함은 미국의 강력함을 상징하는 정치적 자산이기도 한데 싸구려 미사일 몇발 때문에 써먹을 수 없다면 미국의 정치적 위신이 실추될 수도 있습니다.(이건 꽤 심각한 타격이 되겠지요.)
재미있게도 이런 상황에서 항공모함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공군의 B-1이나 B-52 같은 장거리폭격기들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비춰지는 모양입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드러난 것 처럼 긴 항속거리와 많은 탑재량을 가진 장거리폭격기는 새로운 전장 환경에 잘 맞는 유용한 무기였습니다. 신속대응이 가능하면서도 항공모함에 비하면 ‘저렴한’ 무기체계라는 점에서 예산에 신경을 쓰는 정치인들의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이 상황은 마치 트루먼 행정부에서 ‘제독의 반란’이 일어날 당시의 상황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트루먼 행정부도 국방예산 삭감을 추진하면서 비용이 많이드는 항공모함 중심의 해군 보다는 B-36으로 대표되는 장거리폭격기와 핵무기를 중심으로 한 국방정책을 취하려 했지요. 똑같은 상황은 아닙니다만 예산감축이 필요한 상황에서 장거리폭격기가 항공모함의 대안으로 비춰지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감축에 따라 국방비도 크게 감축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예산을 잡아먹는 항공모함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가 있는 모양입니다. 막대한 유지비가 소요되는데다가 고속의 장거리 대함미사일의 발전 때문에 갈수록 작전에 제약을 받게될테니 “값싼”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 하는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 입니다. 특히 최대의 가상적인 중국은 접근거부전략을 취하면서 대함미사일을 중시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데 이 경우 항공모함 항공단의 주 용도인 지상타격은 꽤 곤란해 질 수 있습니다. 항공모함이 항공기들의 작전범위 내에서 미사일 때문에 활동의 제약을 받게된다면 그야말로 돈낭비가 되겠지요. 특히 항공모함은 미국의 강력함을 상징하는 정치적 자산이기도 한데 싸구려 미사일 몇발 때문에 써먹을 수 없다면 미국의 정치적 위신이 실추될 수도 있습니다.(이건 꽤 심각한 타격이 되겠지요.)
재미있게도 이런 상황에서 항공모함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공군의 B-1이나 B-52 같은 장거리폭격기들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비춰지는 모양입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드러난 것 처럼 긴 항속거리와 많은 탑재량을 가진 장거리폭격기는 새로운 전장 환경에 잘 맞는 유용한 무기였습니다. 신속대응이 가능하면서도 항공모함에 비하면 ‘저렴한’ 무기체계라는 점에서 예산에 신경을 쓰는 정치인들의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이 상황은 마치 트루먼 행정부에서 ‘제독의 반란’이 일어날 당시의 상황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트루먼 행정부도 국방예산 삭감을 추진하면서 비용이 많이드는 항공모함 중심의 해군 보다는 B-36으로 대표되는 장거리폭격기와 핵무기를 중심으로 한 국방정책을 취하려 했지요. 똑같은 상황은 아닙니다만 예산감축이 필요한 상황에서 장거리폭격기가 항공모함의 대안으로 비춰지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2012년 9월 1일 토요일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질(?) 걱정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저우언라이와 나눈 대화랍니다.
사실 강대국 입장이 아니더라도 크게 건질 것도 없는 곳에서 일을 벌여 손해보는 것은 피하려는 것이 정상입니다. 특히 저 당시 미국과 중국처럼 소련(!!!) 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는 마당에서는 더욱 더 그랬겠지요. 어쨌든 이 당시 양국의 기조는 쭈욱 이어져 내려왔고 현상유지가 되는 상태에서는 우리도 비교적 팔자가 나쁘지 않은 편 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기존의 판이 흔들릴 기미가 보이고 있지요. 찝찝한 일 입니다.
저우언라이 : 우리는 조선 문제에 관한 미국의 견해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도 우리의 견해를 알고 있을 것 입니다. 먼저 닉슨 대통령의 공식적인 정책은 미래에 조선에서 군대를 궁극적으로 철수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 자위대가 남조선에 들어오는 것도 막을 것인데 이것은 극동의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북조선과 남조선의 교류를 촉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재통일을 촉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는 오랜 시일이 필요할 것 입니다.
닉슨 : 중요한 문제는 우리 양국이 동맹국들이 억제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 입니다. 총리에게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나 알려드리지요. 나는 1953년 부통령이 된 뒤 처음으로 세계 각국을 순방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내게 이승만에 대한 매우 긴 구두 훈령을 주었습니다. 이승만은 북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이승만에게 북진을 해서는 안되며 그렇게 한다면 미국이 그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줘야 했는데 이것은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이승만이 울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나는 이승만이 북진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부통령으로서 그의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 하는 것 입니다.
저우언라이 : 네. 방금 대통령께서 이야기한 이승만의 성격은 우리가 그에 대해서 듣던 것과 같군요.
닉슨 : 무엇이 비슷하다는 것 입니까?
키신저 : 이승만에 대해서 들었던 것입니다.
저우언라이 : 이승만이 정계에서 은퇴하고 몇년 뒤에 말입니다.
닉슨 : 한국인들은 남북을 가리지 않고 정서적으로 충동적인 사람들입니다. 한국인들이 충동성과 호전성 때문에 우리 두 나라를 곤란하게 만들수도 있는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반도가 우리 두 나라의 투쟁의 장이 된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고 말도 안될 일입니다. 이미 과거에 그런 선례가 있었으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될 것 입니다. 나는 총리와 내가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Memorandum of Conversation(1972. 2. 23)”,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9–1976, VOLUME XVII, CHINA, 1969–1972, (USGPO, 2006), pp.732~733
사실 강대국 입장이 아니더라도 크게 건질 것도 없는 곳에서 일을 벌여 손해보는 것은 피하려는 것이 정상입니다. 특히 저 당시 미국과 중국처럼 소련(!!!) 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는 마당에서는 더욱 더 그랬겠지요. 어쨌든 이 당시 양국의 기조는 쭈욱 이어져 내려왔고 현상유지가 되는 상태에서는 우리도 비교적 팔자가 나쁘지 않은 편 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기존의 판이 흔들릴 기미가 보이고 있지요. 찝찝한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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