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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보리스 소콜로프의 바그라티온 작전 연구

 러시아의 역사연구자 보리스 소콜로프가 2022년에 발표한 Операция "Багратион"이 최근 Operation Bagration : An Incimplete Truth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책은 꽤 흥미롭습니다만 저자인 소콜로프가 극단적으로 소련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주의를 해야 합니다. 소콜로프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사망자를 굉장히 높게 추산해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 책에서도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전사한 소련군을 무려 515,700명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전사한 소련군이 178,507명입니다. 소련의 통계가 전반적으로 엉망이긴 하지만 소콜로프가 주장한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은 소련군의 완승이다 보니 지금까지 간행된 관련 연구들은 소련군의 작전적-전술적 문제점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소콜로프는 독일군이 초반의 참패 이후 기갑예비대를 투입하면서 소련군이 고전한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스크 축선에서 소련 제5근위전차군이 독일 제5기갑사단과의 교전에서 고전한 사례, 바르샤바 인근의 반격으로 소련군이 큰 타격을 입은 사례들을 들고있습니다. 주요 교전에서 발생한 양측의 장비 손실과 인명 손실을 잘 정리했는데, 독일군과 소련군 양측의 장비 손실은 비교적 정확하게 정리를 잘 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기간 중 소련 공군의 문제점도 지적을 하고 있는데, 이 비판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중 소련 공군의 숫적 우위를 감안하면 소련 공군의 성과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1944년 여름의 작전은 소련군이 작전술 면에서는 큰 발전을 이루었으나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문제점이 많았다는걸 보여줍니다.

 재미는 있는데 추천하기는 좀 애매합니다. 독소전쟁에 진짜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번 읽어보실 필요는 있을 듯 합니다. 전반적으로 같은 러시아의 역사연구자인 알렉세이 이사예프가 쓴 같은 제목의 책 Операция "Багратион" 쪽이 소콜로프의 연구 보다는 균형이 잘 잡혀있는 듯 합니다. 마침 내년에는 유명한 독소전쟁 연구자인 프리트 부타(Prit Buttar)도 바그라티온 작전에 대한 책을 낸다고 합니다. 부타의 연구도 평균 이상은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미국 공정사단 병사들의 엘리트의식과 폭력성에 대한 연구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87에 실린 윌리엄스(R. F. M. Williams)의 논문 "Our Problem Children": Masculinity and its Discontents in American Parachute Unites in World War II를 읽었습니다. 이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공정사단 장병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엘리트의식과 남성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정서가 과도한 폭력성으로 나타난 사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정예 부대가 엘리트의식을 가지게 되는건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소속된 부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건 높은 사기와 전투 의지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이에 따른 부작용이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거죠.

 윌리엄스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제101공정사단과 제82공정사단과 같은 '엘리트 부대'에서 나타난 과도한 폭력성에 주목합니다. 이러한 폭력성은 포로 학살, 민간인에 대한 범죄는 물론 아군에 대한 폭력과 같은 군기문란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에서 포로 학살 문제는 이미 많은 문헌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적 후방에서 작전하는 경우가 많은 공정부대는 작전 특성상 포로를 관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작전상의 이유로 포로를 학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쟁 초기 독일 공정사단의 전쟁 범죄 중 많은 사례가 이런 이유에서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공정사단 대원들의 엘리트의식이 가져온 군기문란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낙하산 강하를 하는 공정연대 대원들이 다른 아군 부대들을 멸시하는 정도를 넘어 같은 사단에 속한 글라이더를 타는 공수연대 대원들까지 무시하는 사례입니다. 마켓가든 작전이 실패한 뒤 제82공정사단과 제101공정사단이 재편성을 하기 위해 후방으로 이동했을 때 두 사단의 병사들이 종종 패싸움을 벌이는 사건도 있었는데, 이런 사건 또한 과도한 엘리트의식이 가져온 군기문란 행위입니다.

 필자가 가장 심각하게 비판하는 부분은 민간인에 대한 범죄입니다. 제101공정사단은 적국인 독일은 물론 연합국인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많은 대민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논문에서 제시한 몇몇 사례는 끔찍합니다. 제101공정사단 대원들이 미성년자를 납치해 성폭행 하거나 저항하는 프랑스 여성의 머리를 돌로 내리쳐 중상을 입힌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많은 성범죄는 수사 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서유럽에서 미군이 일으킨 성범죄 사건 중 실제로 보고되는 것은 5% 남짓으로 추정되며, 보고된 사건 중에서 실제 수사에 들어가 기소까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주 '극단적인' 사건이 아닌 경우 범죄를 저지른 군인이 처벌을 받을 확률은 낮았습니다. 1945년 4월 30일 제101공정사단 506공정연대의 제임스 맥다니엘(James C. McDaniel) 일병은 프란치스카 벨츠(Francisca Welz)라는 여성을 사살하고 시간하는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었는데 공식적인 사건 보고서에는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맥다니엘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렇게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이 연구는 제101공정사단과 같은 부대의 대원이 저지른 범죄는 '적당히' 무마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하면서 미군의 태도를 비판합니다. 제101공정사단은 프랑스에 주둔하는 동안 대민 범죄를 너무 많이 저지른데다 지휘부에서도 이를 통제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 민간인들에게 악명을 떨쳤다고 합니다. 반면 제82공정사단은 그나마 사단 지휘부에서 대원들을 통제하려고 노력은 한 편이라고 하는군요.

 윌리엄스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파시즘으로 부터 세계를 구원한 미국의 시민군'의 서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전쟁의 어두운 면이 은폐되는 점을 지적합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 처럼 실제 역사의 복잡한 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4년 8월 31일 토요일

Aces at Kursk : The battle for aerial supremacy on the Eastern Front 1943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 또 한권 나왔습니다. 통계에 기반한 군사작전 연구로 유명한 드퓨이 연구소(The Dupuy Institute) 소장 크리스토퍼 로렌스(Christopher A. Lawrence)가 집필한 Aces at Kursk 입니다. 이 책은 원래 더 일찍 나올 수 있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발간이 미뤄지게 됐습니다. 로렌스가 The Battle for Kyiv : The Fight for Ukraine's Capital를 집필하느라 이 책 보다 늦게 간행이 됐습니다.


 이 책은 제2차세계대전의 항공전, 특히 러시아전선의 항공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필수적인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로렌스는 1990년대에 러시아에서 수집한 러시아의 1차사료와 기존에 공개되어 있던 독일측 1차 사료를 면밀하게 교차검증해서 쿠르스크 전투 항공전을 상세하게 재구성했습니다. 이 연구의 강점은 독일군이 공세를 가하던 기간의 항공 작전 통계를 구체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과거 소련에서 나온 연구와 여기에 기반했던 서방의 연구(Von Hardesty의 Red Poenix 같은 저작)는 소련측의 엉터리 통계를 인용해서 신뢰성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로렌스는 보다 정확한 통계에 바탕을 두고 작전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쿠르스크 항공전 연구 중에서는 통계가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일 단위로 상세한 통계를 제공하고 있다 보니 방대한 데이터에 압도된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방대한 통계자료를 쏟아내고 있지만 책이 딱딱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쿠르스크 전투 항공작전의 전체적인 양상을 분석하면서 중간 중간 자잘한(?) 주제들을 짚고 넘어가면서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소련 에이스들의 격추 전과는 얼마나 정확한가, 항공기의 전차 공격은 얼마나 효율적이었는가 하는 것 들입니다. 로렌스는 소련 공군은 항상 아군 손실 보다 독일군 손실이 더 크다고 보고했기 때문에 정확성이 매우 떨어졌고, 이 점은 소련 공군 에이스들의 전과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합니다. 로렌스는 쿠르스크 전투 기간 중 소련 공군 에이스들이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72대 중 32대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건 니콜라이 굴라예프인데, 이 사람은 쿠르스크 전투 중 12대를 격추했다고 공인 받았으나 실제 격추는 2대 정도로 평가합니다. 소련 공군이 쿠르스크 전투 공중전에서 거둔 공식 전과는 실제 보다 7.4배 이상 과장되어있으니 소련 공군의 에이스 조종사들의 전과 기록은 그나마 양호한 편 입니다. 반면 훈련 수준이 높고 경험이 풍부한 독일 공군의 전과 기록은 매우 정확하다고 평가합니다. 로렌스는 독일 공군 에이스들이 격추했다고 공인받은 99대 중 실제 격추한 것은 95대로 정확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에리히 하르트만의 경우 쿠르스크 전투 중 20대를 격추했는데 이건 모두 사실일 거라고 봅니다.


 


2024년 7월 22일 월요일

만슈타인의 개인 문서가 자료집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쿠르스크 전투 연구로 유명한 독일 군사사가 로만 퇴펠(Roman Töppel)이 편찬한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개인 문서 자료집이 내년에 출간된다고 합니다. 자료집에 수록된 자료들은 1939년 부터 1941년까지, 즉 만슈타인이 명성을 떨친 서부전역 작전 계획 수립과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 북부전선의 작전을 다루는 자료들이 수록되는 겁니다. 이 자료집은 반드시 구매해야 겠습니다.


Erich von Manstein: Kriegstagebücher und Briefe 1939–1941 | Brill




2024년 7월 20일 토요일

쿠니 쿠니아키가 회고하는 이노우에 시게요시 제독의 교육 철학

 히로히토의 조카인 쿠니 쿠니아키(久邇邦昭)의 회고록이 올해 한국어로 번역됐습니다. 먼저 일본어판을 읽어보신 분들이 제게도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셔서 한국어판을 구입했습니다. 읽어보니 과연 일본의 황족 답게 흥미로운 일화들을 많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에 재학 중 패전을 맞았습니다. 이 회고록에서는 해군병학교장이었던 이노우에 시게요시(井上成美) 제독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해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노우에 제독이 해군병학교장으로서 보여준 교육 철학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노우에 제독이 해군병학교 교장 재직 중 일본 육군사관학교의 영어교육 폐지를 비판하고 해군병학교의 영어교육은 유지했다는 일화는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쿠니 쿠니아키는 회고록에서 이노우에 제독이 황국사관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전쟁 당시 일본이 천황을 신성시 하며 미쳐돌아갔던 걸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 중 히로히토 다음으로 흥미롭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이노우에 교장은 쇼와 19년(1944년) 8월 5일에 해군 차관으로 전임되었기 때문에 2월 7일에 에다지마(江田島)에 도착한 나와는 정확하게 6개월 겹쳤다. 그 교육 정책은 적어도 나의 준비교육기간중의 마무리 반년 동안, 변함없이 계속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노우에 교장은 사관학교 생활의 추억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에다지마 생활을 전체적인 그림으로 보면, 왠지 귀족적인 향기가 있었다. 사관학교 생활에는 리듬과 조화, 그리고 시와 꿈도 있는 삶이었다."

우리 집에도 왠지 자유의 향기가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지만, 해군의 전통으로서 영국 해군의 영향도 있고, 신사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존중이라는 것이 저류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노우에 교장은 스위스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각 대사관에 있는 동안 유럽 사람들의 기질 등에 대해 연구하고, 제1차 세계대전때, 영국 상류계급의 사람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를 듣게 되어 공감하고, 이런 정신을 사관학교 교육정책에 명확하게 반영하였다.

교장은 "사관이라는 것은 무엇을 어느 정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사관에게 자유재량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황이 어려울 무렵에 일부 영어 폐지론이나 군사학 우선 강경론이 있는 가운데, 가능한 철저한 보통학(일반교양) 교육을 주장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관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좌우로 편광(偏光)하지 않는 전통적인 학문을 먼저 학생들에게 주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시 극구 칭찬을 받고 있었던 황국사관(皇國史觀)의 중심인물이었던 도쿄 대학 히라이즈미 키요시(平泉澄) 교수를 해군성 교육국이 학생교육을 위해서라고 칭하여, 종종 보내오는 것에 대하여, 막무가내로 강연을 학생들에게는 들려주지 않고, 교관에게만 듣게 했다. 편향된 부분은 학생들에게 전달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또한 육군사관학교가 입학시험에서 영어를 배제시켰으나, 그는 사관학교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계속 영영사전으로 영어만을 사용하는 수업을 진행시킨 것 등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모든 것을 정품(正品)으로 하는 것이 교육에서는 중요하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군사학을 우선으로 한시라도 빨리 가르쳐서, 실전에 도움이 되는 졸업생을 내보내는 것을 주장한 해군 요로(要路)의 사람들과 충돌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세계정세의 판단이 정화갛고, 종전공작에 머리가 아프고, 일본의 패전이 가가운 것을 감안하고 패전 후에 일본의 부흥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투철한 판단력과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이러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쿠니 쿠니아키 지음, 박선술ㆍ세야마 미도리 번역, 이동건 엮음, 정구종 감수, 『소년 황족이 본 전쟁』, 고요아침, 2024, 131~133쪽.

2024년 7월 3일 수요일

Tank Gun Systems : The First Thirty Years, 1916-1945, A Technical Examination

 캐나다군 사관학교(잘 아시겠지만 캐나다는 3군 통합사관학교입니다.) 명예교수인 윌리엄 앤드류스(William Andrews)가 제1차 세계대전 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기 전차포 체계를 정리한 Tank Gun Systems : The First Thirty Years, 1916-1945,  A Technical Examination를 출간했습니다. 한번 읽어보니 기갑차량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전차의 화력체계를 개괄적으로 해설하는 부분으로 2장 부터 5장까지 입니다. 2장에서는 전차의 화력체계를 구성하는 주포, 포가, 조준장치, 주퇴복좌기 등의 요소를 간략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3장은 전차포가 사용하는 각종 탄약과 장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4장은 전차포의 탄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5장은 전차포의 반동 제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차포 체계에 대해 개괄적으로 다룬 다음에는 시기별 주요 전차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전차포를 종류별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전부 세개 장 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전차를 '대량으로' 생산한 국가가 영국과 프랑스 뿐이다 보니 영국(7장)과 프랑스(8장)의 전차포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고작 20대의 전차를 생산하는데 그쳤기 때문에 생략을 했습니다.


세 번째 부분은 1919년 부터 1939년 까지 '전간기'의 전차포를 다루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이 좋은 점은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군소국가의 전차포도 다루고 있다는 겁니다. 독일(10장), 프랑스(11장), 영국(12장), 소련(13장), 일본(14장), 이탈리아(15장), 체코슬로바키아(16장) 등 7개국의 전차포 발전에 대해 설명합니다.


마지막 네번째 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 전차포의 발전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독일(18장), 체코슬로바키아(19장), 이탈리아(20장), 일본(21장), 소련(22장), 미국(23장), 영국(24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한 상태였지만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개발한 37mm 전차포가 독일군에 의해 대규모로 사용됐기 때문에 별도의 장으로 분리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전차포라는 무기 체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배경을 정리한 뒤, 국가별로 '실전에 사용한' 전차포를 정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반면 실전에 투입되지 못한 실험 단계의 전차포들을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종합적으로 봤을때 정리가 아주 잘되어 있어서 기갑차량의 발전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추천합니다.


2024년 4월 16일 화요일

The Defeat of the Damned

 무장친위대의 딜레방어 여단은 전쟁범죄로 유명한 부대입니다. 많은 무장친위대 부대가 전쟁범죄에 연루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딜레방어 여단의 악명에 견줄 수 있는 부대는 없습니다. 워낙 악명이 자자하다 보니 형편없는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이 부대의 부대사가 몇권 나와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나온 딜레방어 여단 부대사들에 관심이 없어서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이런 군사적으로 무가치한 부대는 관심이 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미국의 저명한 군사사학자 내쉬(Douglas E. Nash sr.)가 딜레방어 여단 부대사를 쓴다는 소식을 접하자 조금 놀랐습니다. 어째서 이런 저명한 군사사학자가 딜레방어 여단 같이 형편없는 범죄조직의 부대사를 쓰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쉬가 집필한 The Defeat of the Damned : The Destruction of the Dirlewanger Brigade at the Battle of Ipolysag, December 1944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1944년 말 헝가리의 이포이샤그(Ipolyság)에서 벌어진 전투에 초점을 맞춘 연구입니다.(Ipolyság 현재 슬로바키아의 도시 Šahy가 되어 있습니다.) 내쉬는 무장친위대 제4기갑군단의 역사를 다룬 3부작 From the Realm of a Dying Sun을 집필하던 중 이포이샤그 전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결과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딜레방어 여단의 부대사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이포이샤그 전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체 15개 장 중에서 11개 장이 이포이샤 전투의 배경, 전개과정, 결과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결론을 제외한 3개 장이 딜레방어 여단의 창설, 성장과정, 종전에 이르기 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포이샤그는 이펠(Ipeľ, 헝가리어로는 이포이Ipoly)강을 접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부다페스트에서 빈으로 가는 주요 도로 중 하나가 이 곳을 지나갑니다. 이런 지리적 입지 때문에 신성로마제국과 오스만투르크의 전쟁에서 요충지로 인식됐습니다. 이때문에 1944년에도 이 도시는 격전지가 됩니다.

 이포이샤그 전투는 1944년 12월 14일 소련군 제9근위기계화군단이 이포이샤그를 점령하자 이를 탈환하기 위해 12월 15일 부터 독일군이 감행한 역습입니다. 12월 15일 전투에는 딜레방어 여단이 포함된 린텔렌(Rintelen) 사단집단이 주공을 맡았으나 소련군에게 패배했습니다.  린텔렌 사단집단은 제357보병사단의 잔존병력에 딜레방어 여단, 헝가리군 등 다양한 부대를 배속시킨 임시부대였습니다. 이 임시 부대는 제357보병사단장 요제프 린텔렌(Josef Rintelen) 장군의 이름을 따와서 린텔렌 사단집단으로 불렸습니다. 린텔렌 사단집단의 패배로 소련군의 전력이 상당히 강하다는걸 파악한 독일군은 제8기갑사단을 이포이샤그 지구로 이동시켜 반격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제8기갑사단의 반격도 실패하면서 독일군은 이포이샤그 지구에서 수세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포이샤그 전투 당시 딜레방어 여단의 형편없는 작전 수행을 매우 세밀하게 재구성 했습니다. 이 부대의 전투력이 엉망이었던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범죄자와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정치범들로 구성되어 병사들의 전투 의지가 낮았고, 지휘관들은 후방에서 치안유지와 학살을 하던 인물들이었으며 보유한 장비도 그에 맞게 잡다한 구식 무기 위주였습니다. 린텔렌 사단집단에 배속된 뒤에는 다른 부대들의 중화기 지원을 받을 수 있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형편없는 전투력을 단기간에 개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포이샤그 전투에서 딜레방어 여단의 많은 병사들이 제대로 된 전투도 하지 않고 도주하거나 소련군에 투항했습니다.

 1944년 12월 헝가리 전역을 다루는 연구는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 많은 수가 독일 기갑사단의 작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내쉬의 연구는 독일군 내에서도 전투력이 가장 뒤떨어지는 보병 부대가 중요한 작전에 투입되어 와해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포이샤그 전투에 관해서는 다른 책에서 짤막하게 언급된 내용만 읽었는데, 이렇게 상세하게 작전 경과를 분석한 연구가 나와서 반갑습니다. 

 

※유튜브의 WW2TV 채널에 내쉬가 Ipolysag 전투에 대해 설명한 동영상도 올라와 있습니다.

(258) Dirlewanger Brigade and the Battle of Ipolysag - YouTube


2023년 7월 15일 토요일

Ben Wheatley 저, The Panzers of Prokhorovka : The Myth of Hitler's Greatest Armoured Defeat

 결론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벤 휘틀리(Ben Wheatley)의 The Panzers of Prokhorovka : The Myth of Hitler's Greatest Armoured Defeat는 제가 2023년에 읽은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서적 중 가장 흥미롭고 유익한 책입니다. 1990년대에 칼 하인츠 프리저의 선구적인 연구가 발표된 이후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됐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 서술도 상당 부분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쿠르스크 전투와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해서는 충분히 많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틀리의 이 연구는 새로운 사료를 활용해 몇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밝혀냈습니다. 

 이 책을 구성하는 내용들은 많은 부분이 기존에 발표한 연구들을 보완한 것 입니다. 예를들어 프로호롭카 일대의 항공사진을 분석한 연구는 "A visual examination of the battle of Prokhorovka"라는 제목으로 2019년 JOURNAL OF INTELLIGENCE HISTORY 18-2에 실렸습니다.

 이 연구에서 가장 훌륭한 점은 새로운 사료 발굴입니다. 쿠르스크 전투, 그중에서도 프로호롭카 전투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게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휘틀리는 꼼꼼한 사료 분석을 통해 이런 선입견이 틀렸다는걸 입증했습니다. 휘틀리의 업적 중 특히 중요한 건 그동안 사료의 공백 이었던 1943년 7월 20일 부터 1943년 8월 1일 까지 독일측의 기갑차량 통계를 입증한 겁니다. 러시아에서는 프로호롭카 전투의 실상이 드러난 뒤 이 시기의 사료가 공백상태라는 점을 들어 독일측이 실제 손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물론 이건 러시아쪽에서 불리한 사실이 드러날 때 마다 내놓는 상투적인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휘틀리의 연구로 프로호롭카 전투에서 러시아측의 주장은 또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저자는 '현재 남아있는 사료'를 분석했을 때 1943년 7월 11일 부터 7월 20일까지 무장친위대 제2기갑군단의 기갑차량 손실은 '최대 16대'이며 치타델레 작전 전 기간을 포함한 손실은 '41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독일측 1차 사료의 성격을 분석한 1장이 매우 중요하니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독일군 각 사단의 차량 '차대번호' 까지 확인하는 철저한 분석으로 연구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개별 차량의 차대번호까지 확인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 러시아쪽이 반론을 제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러시아쪽에서는 휘틀리의 연구에 대해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죠.

 통계 분석 뿐만 아니라 항공사진을 활용한 전투 분석도 매우 훌륭합니다. 저자는 프로호롭카 전투의 전술적 양상을 분석한 제4장에서 항공사진을 구술자료 및 문헌자료와 교차 검증해 전투를 미시적으로 재구성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휘틀리는 소련군이 큰 피해를 입은 핵심적인 요인은 독일군의 진격에 당황한 소련군이 충분한 정찰 및 정보수집 없이 역습을 감행한 데 있다고 봅니다. 이때문에 소련 제5근위전차군은 소련군이 구축한 대전차호의 존재도 파악하지 못하고 돌격하다가 공황상태에 빠져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겁니다.

 물론 휘틀리는 소련군이 프로호롭카 전투에서 '승리'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소련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투가 끝난 뒤에도 숫적으로는 여전히 독일군을 압도하고 있었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소련군이 많은 수의 대전차포와 야포로 방어를 하고 있어 독일군의 진격이 매우 어려웠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이 연구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하리코프(하르키우) 함락 이후 시작된 독일군의 전략적인 후퇴와 이에 따른 기갑전력의 소모 문제입니다. 휘틀리는 1943년 8월 까지는 독일군이 전투에서 손상을 입은 전차를 회수해 작전가능 상태로 되돌리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기갑전력의 손실이 크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하리코프를 상실한 뒤 계속해서 철수를 하게 되면서 손상을 입은 전차를 회수해 수리하는게 어려워졌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독일 본토로 후송한 전차를 수리해서 복귀시키는 것 또한 독일 국내의 인프라 부족(대형 크레인 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지적합니다. 이 점은 이 책의 제6장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휘틀리는 무장친위대 제2기갑군단의 기갑차량들은 쿠르스크 전투가 끝난 뒤에도 많은 수가 남아있지만 9월 부터 12월에 걸쳐 거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합니다. 제6장은 1943년 하반기의 작전에서 독일군의 기갑전력이 소모를 통해 붕괴되는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석의 밀도가 높고 1차 사료의 활용도 매우 탁월한 우수한 저작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심을 가진 분들은 꼭 읽어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6월 6일 화요일

『진흙속의 호랑이』 완역판, 길찾기, 2023, 진중근ㆍ김진호 역

 군사사 서적을 꾸준히 간행하는 길찾기 출판사에서 독일 국방군의 유명한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 『진흙속의 호랑이』 완역판을 냈습니다. 몇 년 전 영어 중역판이 오역을 비롯한 몇가지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상업성을 고려해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 처음 부터 새로 번역을 하는 일은 힘들었을 텐데 대단합니다. 『전격전의 전설』, 『독일 국방군의 신화와 진실』 등 다수의 군사서적을 번역한 육군대학의 진중근 중령님이 번역을 담당하셨습니다. 오토 카리우스는 매우 유명한 '전차 에이스'여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이름을 들어 봤을 겁니다. 카리우스의 회고록은 일찌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한국어판이 간행되기 전에도 카리우스의 회고록을 원서나 다른 언어의 번역판으로 접한 분이 많았지요.

 카리우스의 회고록은 서독 사회가 패전의 상처를 어느 정도 수습하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던 시점에 집필되었습니다. 이 점은 카리우스가 회고록의 서문에서 독일 국방군을 비판하는 서독 사회 일각의 기류를 불편해 하면서 비난하는 내용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참전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은 물론 전우들의 '명예'를 옹호하기 위해서 회고록을 집필했습니다. 카리우스가 독일 국방군을 옹호하는 태도는 현재 시점에서 제3국의 입장으로 볼 때 다소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회고록은 자신에 대한 방어를 위해 쓰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점을 차치하고 보면 이 회고록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료입니다.

 카리우스의 회고록은 대부분의 내용이 1943~1944년 제502중전차대대에서 활동하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카리우스가 군인으로서 정점에 있었던 시기입니다. 아마 저자에게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때 일 겁니다. 카리우스는 유능한 전술 지휘관 답게 자신이 전장에서 겪은 여러 경험을 설명하면서 여기서 전술적 교훈을 도출하려 합니다. 저자는 회고록의 곳곳에서 '당시'의 독일연방군 장병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교훈을 주려고 합니다. 특히 1944년 7월 소련군의 전략적 대공세를 맞아 혼란에 빠져 있을 당시 제227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대표적입니다. 저자는 제227보병사단의 어떤 연대장과 함께 사단장 빌헬름 베를린 장군을 설득해서 문제가 있는 작전을 철회시킨 일화를 소개합니다. 카리우스는 이 일화를 통해 '독일 국방군'의 임무형 전술이 실전에서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이런 장점을 '독일 연방군'의 '후배'들이 계승하기를 희망합니다. 이 회고록은 독일 국방군을 옹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집필되었지만 적군이었던 소련군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전후에 간행된 독일 국방군 고급장교 출신자들의 회고록이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소련군을 폄하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것과 비교하면 제법 '공정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당시 전쟁영웅으로 주목을 받던 인물이다 보니 전투 이외에도 흥미로운 일화가 많습니다.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휴양을 하던 중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를 만나 대화를 나눈 일화가 대표적입니다. 카리우스가 힘러를 만났을 당시 힘러는 친위대 외에도 정규군의 보충군 사령관을 겸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1944년 7월 20일 쿠데타 이후 친위대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정규군에 대해 정치적으로 우위에 선 시점입니다. 카리우스와 힘러의 대화는 정규군이 정치 싸움에서 친위대에 밀리는 상황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입니다. 이 외에도 나르바 전투 당시 유명한 기갑부대 지휘관인 슈트라흐비츠 '백작'이 지휘하는 전투단에 배속되었을 당시의 일화도 흥미롭습니다. 슈트라흐비츠 '백작'은 쿠르스크 전투 당시 지휘로 많은 비판을 받은바 있는데 카리우스는 나르바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슈트라흐비츠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독일어 원판을 번역한 만큼 번역은 전체적으로 좋다고 생각됩니다. 역자가 독일어 원판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독일 국방군'식의 군사용어 표기를 잘 살린 부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독일이 전후 나토에 가입하면서 많은 군사용어가 미국-나토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예를들어 미터법을 사용하더라도 독일 국방군에서는 화포의 구경을 cm로 표기하지만 독일 연방군에서는 mm로 표기합니다. 카리우스는 독일 국방군 경험만 있고 전후에는 연방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회고록은 전쟁 당시의 용례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역자는 이 점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영어 번역판은 원서에서 화포 구경을 cm로 표기한 것을 mm로 바꾸고 있고 영어 중역판은 이걸 그대로 따라갔지요. 또한 역자는 불가피한 예가 아니라면 최대한 많은 용어를 현대 한국군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맞춰 한국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카리우스가 잘못 회고한 내용에 대해서는 역자주를 통해 내용을 보강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서적을 번역할 때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역자가 필요한 이유를 잘 보여주는 번역입니다. 인공지능 번역의 품질이 급속히 향상되고 있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것 처럼 아직은 전문적인 번역가가 필요합니다.

 

2023년 4월 9일 일요일

1945년 6월 노르웨이 주둔 독일 전차부대의 항복 및 무장해제 장면


유튜브에서 1945년 6월 노르웨이 주둔 독일군이 항복하고 무장을 해제하는 장면을 기록한 영상을 봤습니다. 이 영상에 나오는 부대는 노르베겐 기갑여단(Panzer-Brigade Norwegen) 예하 부대입니다. 여러 회사에서 나온 3호전차 모형을 만들어 보고 있던 차에 전쟁 말기에 사용된 3호전차가 여러대 나오는 영상을 보니 재미가 있네요. 그런데 1945년인데도 이 영상에 나온 3호전차들은 모두 궤도의 가이드혼에 구멍이 뚫린 형식의 궤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궤도는 소모품인데 전쟁 중반기에 생산된 궤도가 이때까지도 사용되는걸 보면 재미있습니다. 제가 높게 평가하는 아카데미 3호전차에 들어있는 궤도는 전쟁 말기의 3호전차에도 쓰는게 곤란하겠군요.물론 저는 고증을 무시하고 그냥 조립합니다만.^^


 

2023년 1월 19일 목요일

『스탈린의 전쟁』이 간행되었군요.

 열린책들에서 제프리 로버츠의 Stalin's War의 한국어판을 낸 걸 알게 됐습니다. 한국어판은 무려 744쪽에 달하는군요. 영문판의 2배 정도 되는 분량입니다.


스탈린의 전쟁




 이 연구는 스탈린의 전략가적 자질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1941~1942년에 스탈린이 저지른 군사적 실책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43~1944년에 스탈린이 보여준 전략적 식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1950년대 스탈린 격하운동의 영향으로 스탈린의 군사적 업적은 과도하게 폄하당한 경향이 있는데 로버츠는 이런 비판에 대해서 선을 긋고 있습니다. 로버츠는 1943년 이후 소련군의 반격 과정에서 스탈린이 전략적인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때로는 작전술 차원에서도 탁월한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스탈린의 전략가적 면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1944~1945년 소련군의 동유럽 진출 과정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로버츠는 스탈린이 전후 처리 과정에서도 소련의 군사적 성과를 충실하게 활용해 소련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했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이 연구는 독일 문제 처리 과정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냉전 초기 단계에서 스탈린의 전략적 결정에 대해 재미있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에서 스탈린의 의도가 무엇이었는냐는 해석이 주목할 만 합니다. 로버츠는 스탈린이 미국이 유럽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아시아에서 제한적인 군사적 충돌을 구상했고 그 결과물이 한국전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전략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군사작전에 대한 설명은 매우 간략하게 개요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군사작전에 대한 내용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독소전쟁사』를 함께 보시면 보완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 간행된 저작임에도 군사작전에 대한 몇몇 서술은 모호하거나 다소 부정확해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서술입니다. 저자는 이 전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갔으나 다소 2000년대의 최신 연구경향을 반영하지는 못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연구이기 때문에 저도 번역본으로 한 번 읽어볼 생각이 있습니다. 이제는 간행된지 16년이 넘은 책 이지만 여전히 일독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1월 12일 목요일

우팔리즈 전투 직후에 촬영된 흥미로운 사진 한 장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을 봤습니다. 미국 시사잡지 라이프의 사진 기자가 1945년 1월 하순 벨기에의 우팔리즈(Houffalize)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우팔리즈 시가지의 폐허 속에 3호전차 한대가 있는게 보입니다. 

ⓒLife Magazine Archives

재미있는 점은 우팔리즈 전투에 투입된 독일군 제116기갑사단은 기록상 3호전차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 입니다. Kamen Nevenkin의 Fire Brigades : The Panzer Divisions 1943-1945의 제116기갑사단 항목(594쪽)을 보면 이 사단은 아르덴느 공세 직전인 1944년 12월 10일에 4호전차 26대, 판터 45대, 3호돌격포 25대를 보유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944년 12월 17일 부터 12월 29일까지 추가로 4호전차 5대, 판터 23대, 4호 구축전차 5대, 3호돌격포 14대를 보충받았다고 합니다.

Thomas L. Jentz의 Panzer Truppen 2권 198쪽을 보면 제116기갑사단이 1944년 12월 16일 기준으로 4호전차 21대, 판터 41대, 4호대공전차 3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추가로 4호전차 5대, 판터 23대, 돌격포 14대가 사단에 배치되기 위해 이송중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제116사단에 배치됐다는 기록이 없는 3호전차가 우팔리즈에 있는게 재미있습니다.

제116기갑사단 부대사는 다른 곳에 두고 있어서 지금 없는데 나중에 한번 아르덴느 공세 당시 3호전차에 관련된 내용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원래 부대가 보유하지 않았던 장비가 나오는 사례는 간혹 있습니다. 나중에 한번 이야기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군 제5기갑사단도 작전 투입 당시에는 3호전차를 보유했다는 기록이 없으나 작전 도중 제5기갑사단 소속의 3호전차에 대한 보고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우팔리즈의 3호전차도 그 이력이 궁금해지는군요.

2022년 11월 6일 일요일

『바르바로싸 : 중앙집단군 1941.1-12』 , 허진 저, 수문출판사, 2022

  『무장친위대 전사록』의 저자 허진이 올해 상반기에 바르바로사 작전을 다룬 책을 한권 출간했습니다. 수문출판사에서 나온 『바르바로싸 : 중앙집단군 1941.1-12』은 본문만 800쪽이 넘어가는 대작입니다. 책의 판형도 크고 편집도 빡빡하게 되어 있어 정보량이 매우 많습니다. 책을 처음 보면 분량 때문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이 방대한 양에 기반한 정보의 량 입니다. 저자는 독일의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작전 단위의 서술을 하면서 소부대의 전투들은 기존에 간행된 2차 문헌들을 인용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각 단계별로 독일 중부집단군 예하 부대들이 수행한 전투들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을 다룬 한국어로 된 문헌은 매우 부족합니다. 오래전에 나왔던 타임라이프 2차세계대전사의 해당 권 등 개설서 수준의 단행본이 몇권 있던 정도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은 그 자체로 장점이 됩니다. 

 하지만  『바르바로싸 : 중앙집단군 1941.1-12』도 『무장친위대 전사록』의 한계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책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저자 허진은 책의 서두에서 바르바로사 작전을 연구한 데이비드 글랜츠(David Glantz), 데이비드 스태헐(David Stahel) 등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스태헐에 대해서는 "러시아 민족주의와 공산당 기관지의 서술에 경도되어 있다"고 까지 비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전작 『무장친위대 전사록』에서도 글랜츠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바 있는데 이 책에서도 이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허진은 글랜츠를 필두로 한 소련 시각을 반영하는 연구들의 위상을 깎아내리고 있는데 무의미해 보입니다. 영어권에서 글랜츠가 확보한 학문적 위치는 너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스톨피(R.H.S. Stolfi)의 고전적인 연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스톨피가 바르바로사 작전이 독일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있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허진의 시각이 전통적인 1980년대의 시각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책  『바르바로싸 : 중앙집단군 1941.1-12』이 글랜츠나 스태헐 등의 연구의 대척점이 되는 충분한 해답을 주는가? 제 생각엔 아닙니다. 이 책의 결론을 읽으면 저자 허진도 마땅한 답을 도출하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소련군이 양의 질로의 전화라는 거의 초자연적인 총체적 능력을 발휘한 끝에 벼랑 끝의 조국을 구했다는 사실 하나만은 (중략) 인정치 않을 수 없는 요인임에는 분명하다."(818쪽)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런 설명은 기존의 연구들에서도 하던 이야기 입니다. 저자는 서두에서 기존의 연구들을 자신만만한 어조로 폄하하고 있으나 정작 이 책은 새로운 연구라고 하기에는 분석의 수준이 그리 치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수많은 전술 차원의 전투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전투들을 장황하게 일일이 나열하는건 기존 연구를 비판하는 것과 별 관련이 없습니다. 기존 연구들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기존 연구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을 집어서 그 부분을 비판하는 분석을 하면 되고 이건 작전 차원의 서술로 가능합니다. 굳이 소대-분대 단위의 소규모 전투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초점을 흐트릴 필요가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책 전체의 초점이 모호하며 분석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저자의 문체입니다. 좋게 평가하면 아주 자유로운 서술을 하고 있는데 이런 문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매우 불편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소련군의 앙증맞은 무승부는 실제적인 군사적 효과 이상으로 격상시키는 (...)" (16쪽)

"1차 대전 때와 같은 참호전도 없으며 겨울이 오기 전에 모스크바를 딸 수 있다는(...)."(486쪽)

"종횡무진, 신출귀몰, 동분서주하는 이 월드클래스 장군은 (...)" (521쪽)

"브라우히취 육군 총사령관은 (....) 사실상 공익요원 정도의 식물인간이었으며 (...)" (660쪽)

"물론 PPSh도 잔고장이 많은 신뢰성이 딸리는 화기였으나 (...)" (676쪽)

 이런 가벼운 문체 뿐만 아니라 비문 문제도 있습니다. 이 책에는 꽤 많은 비문이 있습니다. 이런건 편집 단계에서 잡아내야 하는데 그게 잘 된 거 같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많습니다. 내용이 방대해서 교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게 원인이 아닐까 짐작이 됩니다. 주석이 있어야 할 곳에 붙어있지 않거나 저자의 개인적 견해를 설명하는 부분에 별 관련없는 주석이 붙어있곤 합니다. 이런 문제는 편집자가 보고 바로잡아줬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자는 앞으로도 독소전쟁에 관련된 단행본을 계속 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저자의 성향을 봐서는 앞으로 나올 책들도 지금까지 나온 책들과 같은 기조를 유지할 듯 하군요. 

2022년 8월 7일 일요일

미하엘 프뢰리히의 신간

 독일의 기갑차량 연구자 미하엘 프뢰리히(Michael Fröhlich)의 신간이 올해 하반기에 나온다고 합니다. 


THE PORSCHE TIGER AND FERDINAND TANK DESTROYER


처음 책 소개를 얼핏 봤을땐 프뢰리히가 독일 모토부흐 출판사(Motorbuch Verlag)에서 낸  Der Panzerjäger Ferdinand : Panzerjäger Tiger(P), Porsche Typ 131의 영어 번역판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지 정보를 보니 아닙니다. The Porsche Tiger and Ferdinand Tank Destroyer는 무려 500쪽을 넘어가는 대작입니다. Der Panzerjäger Ferdinand : Panzerjäger Tiger(P), Porsche Typ 131는 참고문헌 항목까지 포함해도 207쪽에 불과합니다. 아마 프뢰리히가 썼던 Der andere Tiger: Der Panzerkampfwagen Porsche Typ 101의 내용도 포함된 걸로 추정됩니다. 샘플 페이지를 보니 상당수의 도판은 Der Panzerjäger Ferdinand와 Der andere Tiger에 있는 것 들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중복되겠지만 혹시라도 새로운 내용은 없을지 궁금합니다.

이 책이 출간되고 서평이 올라온 다음에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게 좋겠습니다.

2022년 7월 30일 토요일

라스푸티차는 독일군의 타이푼 작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Jack Radey와 Charles Sharp의 공동연구인 "Was It the Mud?"를 읽었습니다.  이 논문은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28-4(2015)에 실린 연구입니다. 최근 연구 답게 독일 참전자들의 회고록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독일군의 타이푼 작전이 초기에 어려움을 겪은 주된 요인은 '라스푸티차'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라스푸티차는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했으며, 다른 요인들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겁니다.

저자들은 독일군 사단급 이상 부대들의 일지(Kriegstagebuch)에 기록된 기상 데이터를 종합해 분석했습니다. 분석 대상은 중부집단군, 제3기갑집단, 제4기갑집단, 제40차량화군단, 제41차량화군단, 제46군단, 제57군단, 제1, 6 , 10기갑사단과 제36차량화보병사단의 일지입니다. 독일군의 부대 일지들은 표준화된 양식으로 작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상 데이터를 정리하는데 곤란했다고 지적합니다. 

이 연구는 분석 대상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중부집단군 전선 북쪽의 제9군과 제3기갑집단, 두 번째 그룹은 중부집단군 전선 중앙의 제4군과 제4기갑집단, 세 번째 그룹은 중부집단군 전선 남쪽의 제2군과 제2기갑군입니다. 이 분석에 따르면 1941년 10월 1일 부터 11월 15일까지 도로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진탕이 심했던 지역은 제2군과 제2기갑군 작전구역으로 총 6일은 차량 이동이 불가능했고 나머지 21일도 도로 상태가 불량했습니다. 도로가 양호했던 날은 10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대들의 작전 지역은 제2군과 제2기갑군 작전 지역보다 도로 상태가 양호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제4군과 제4기갑집단 작전구역은 도로 상태가 좋은 날이 14일이었고 도로 사용이 불가능한 날은 없었습니다. 북쪽의 제9군과 제3기갑집단 작전 구역은 도로 상태가 좋은 날이 28일이었고 도로 사용이 불가능한 날이 없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라스푸티차의 영향 보다는 소련의 도로망이 서유럽 보다 부족했다는 점에 더 주목을 합니다. 기상 상태가 양호했던 10월 7일 이전에도 도로 부족으로 도로 정체가 심각했음을 지적합니다. 예를들어 타이푼 작전 당시 독일군 제3기갑집단은 제9군과 주보급로를 공유했습니다. 이때문에 보병과 마차는 18시 부터 05시까지 도로를 이용하고 기갑 및 차량화 부대는 05시 부터 18시까지 도로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교통 체증을 완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조치로는 도로 정체를 해소할 수 없어 제3기갑집단이 제9군에 다른 도로를 이용하라는 요구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얼마 되지 않는 도로에 대량의 차량이 몰리다 보니 도로의 상태가 금방 악화됐습니다. 소련에서 상태가 가장 좋은 도로였던 바르샤바-모스크바 대로의 경우 제4기갑집단, 제4군, 제9군이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금방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퇴각하는 소련군이 조직적으로 도로와 교량을 파괴한 점도 마찬가지로 악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들은 여기다가 보급 문제도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합니다. 타이푼 작전이 시작되기 전 부터 이미 중부집단군은 보급 부족으로 연료 및 탄약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겁니다. 타이푼 작전이 시작되면서 보급 문제는 더 악화됩니다. 제3기갑집단은 10월 4일에 연료가 다 떨어져 10월 5일 오후 까지 연료 추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제3기갑집단 예하의 제6기갑사단과 제14차량화사단은 칼리닌 방면으로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연료가 부족해서 10월 12일 부터 10월 24일까지 사단 예하의 오토바이 대대만을 공격에 투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구데리안이 지휘한 제2기갑집단도 마찬가지로 연료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비행장을 확보할 경우 독일 공군이 연료와 탄약을 공수할 수 있었지만 항공 수송만으로는 기갑부대의 연료 소모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마지막으로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도 독일군의 진격을 늦추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합니다. 저자들은 독일군 참전자들의 회고록에서 라스푸티차의 영향을 서술한 내용은 크게 과장되어 있다고 봅니다. 타이푼 작전 초기 단계의 작전에 라스푸티차의 영향은 부차적이었으며 도로망 부족, 보급 부족,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합니다.

2022년 7월 21일 목요일

크리스토퍼 로렌스의 쿠르스크 항공전 연구가 나옵니다!

The Battle of Prokhorovka, 그리고 War by Numbers의 저자 크리스토퍼 로렌스가 오래전에 예고했던 쿠르스크 항공전을 다룬 연구가 드디어 나온다고 합니다. 2022년 10월에 간행된다고 하니 나오는 대로 꼭 구매해야 겠습니다.


Aces at Kursk


로렌스는 이미 쿠르스크 전투 항공전에 관해서 The Battle of Prokhorovka에서 핵심적인 내용만 정리해서 다룬 바가 있습니다. 거기서 다룬 내용으로도 쿠르스크 항공전의 핵심을 이해하는데는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쿠르스크 전투는 항공전의 측면에서도 충분히 중요한 전투입니다. 이런 군사사적 중요성에 비해 쿠르스크 전투 항공전만을 단독으로 다루는 연구가 부족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 입니다. 크리스토퍼 로렌스의 연구는 이런 아쉬운 공백을 메꿔줄 중요한 저작이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방대한 통계자료에 근거한 과학적인 분석은 로렌스의 연구가 가진 큰 장점이었습니다.  Aces at Kursk의 목차를 보니 60쪽에 달하는 통계를 집계한 부록이 포함되어 있어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2022년 6월 27일 월요일

"죽 쒀서 개 준다"

한국에는  『나치의 병사들』로 잘 알려진 독일 역사학자 죈케 나이첼(Sönke Neitzel)이 해제를 달아 간행한 사료집 Abgehört- Deutsche Generäle in britischer Kriegsgefangenschaft 1942-1945을 읽다보니 씁슬한 웃음이 나오는 내용이 간혹 있습니다. 이 사료집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 포로가 된 독일 고급 장교들의 사적인 대화를 감청한 녹취록들을 정리한 것으로 영어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웃겼던 부분은 1944년 서부전역에서 서부기갑집단, 제7군 사령관을 역임한 에버바흐(Heinrich Eberbach) 기갑대장이 제12SS기갑사단장 쿠르트 마이어(Kurt Meyer)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발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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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바흐 : 잘 보면 러시아군은 바르샤바 부터는 아주 훌륭한 자동차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걸 알 수 있지. 우리가 만든 도로말이야. 바르샤바-포젠-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설사 해빙기가 닥치더라도 보급이 예전 처럼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 이 동부 도로는 우리가 러시아를 침공할때에도 이미 상태가 좋았어. 차선도 여러개였지. 그리고 나중에는 (폴란드) 총독부에서 매우 큰 노력을 기울여서 도로를 개선했어. 이제 러시아군은 보급을 하는데 더이상 어려움이 없을 거야. 소련군을 오데르강에서 오래 저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군.

Wenn man sich anguckt, von Warschau hat der Russe diese wunderbare Autostrasse, die wir gebaut haben : Warschau-Posen-Berlin. Der Nachschub wird also für die nicht mehr die gross Schwierigkeit spielen, wie früher, selbst dann nicht, wenn Tauwetter eintritt. Denn diese Aufmarchstrassen im Osten hatten wir seinerzeit für den Angriff auf Russland schon ausgezeichnet ausgebaut, mehrgleisig - sind späterhin noch weiterhin ausgebaut worden, im General Gouvernement, wo ja sehr viel für Strassen getan worden ist. Ich bin nicht einmal sicher, dass es gelingen wird, ihn an der Oder Iange aufzuhalten.

 Sönke Neitzel, Abgehört- Deutsche Generäle in britischer Kriegsgefangenschaft 1942-1945, (Berlin: List, 2007), p.408.


에버바흐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가 독일의 멸망을 재촉하는 수단이 된 역설적인 상황을 씁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러니함이 제3자의 입장에서는 꽤 웃깁니다.

2022년 6월 5일 일요일

연합국 정보기구의 독일 기갑부대에 대한 평가

 제2차세계대전 중 독일의 정보기관들은 전략적으로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정보전을 다루는 많은 저작들은 독일의 수많은 실패사례와 연합국의 성공사례들을 비교하고 있지요. 전략적인 면에서 제2차대전 시기 독일의 정보기관들이 실패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 입니다. 그런데 전략적인 성공사례들만 놓고 보면 연합국 정보기관들의 한계를 놓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전차원의 정보전에서는 어땠을까요? 

스웨덴의 군사사가 세테를링(Niklas Zetterling)은 Normandy 1944 : German Military Organization, Combat Power and Organizational Effectiveness에서 이 문제를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제2차대전 중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은 무장친위대와 국방군 기갑사단의 전차연대 편제에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고 전쟁이 끝날 때 까지도 이런 잘못된 평가를 유지했습니다. 예를들어 1945년 3월 15일 간행된 TM-E 30-451 Handbook on German Military Forces에서는 국방군 소속 기갑사단은 4호전차 52대와 판터 51대를 보유하고 있으나 무장친위대 기갑사단은 4호전차 64대와 판터 62대를 보유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1) 물론 이건 잘못된 평가입니다. 


미군이 추정한 독일 국방군 기갑사단 편제표
TM-E 30-451 Handbook on German Military Forces, p.II-26

미군이 추정한 독일 무장친위대 기갑사단 편제표
TM-E 30-451 Handbook on German Military Forces, p.II-28

세테를링은 독일 사료를 근거로 미군이 추정한 이런 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2)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 기갑사단의 전차연대는 편제상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고 편제상 전차 보유대수는 동일합니다. 물론 1944년 후반기 이후 정치적으로 친위대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무장친위대의 기갑사단 편제를 정규군과 차별화 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3) '최소한' 장비 보급 측면에서는 국방군과 무장친위대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점은 독일군에 관한 여러 연구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적군의 편제와 병력 규모를 파악하는건 매우 어려운 일 입니다. 정보기구들이 자주 실패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 서부전선의 독일군 기갑사단 배치와 전력을 파악하려던 연합국의 시도가 실패한 사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미영 연합군은 상륙작전 직전까지도 노르망디에 배치된 독일 제21기갑사단의 전차 전력이 총 240대에 달하고 이중 상당수가 판터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무장친위대 제12기갑사단을 합치면 독일군이 총 54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4) 실제로는 독일 기갑사단 중 가장 전력이 약했던 제21기갑사단을 무장친위대 기갑사단 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제21기갑사단이 노르망디 상륙 직전인 1944년 6월 1일 보유한 전차를 보면 3호전차 6대, 4호전차 장포신형 98대, 4호전차 단포신형 6대, 프랑스제 S-35 40대, 호치키스 H-35 2대로 총 152대입니다.5) 이중 48대는 구식화된 독일제와 프랑스제 전차이니 연합군 전차를 상대로 유효한 전력이라곤 할 수 없습니다. 장포신 4호전차 98대가 실질적인 전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전쟁에서 확보해야 하는 정보는 굉장히 방대합니다. 연합국의 정보기관은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못했습니다. 독일 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소련도 전쟁 말기 까지 독일군의 규모와 편제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평가하는데는 형편없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러시아 군사사가 발레리 자물린은 소련군이 쿠르스크 전투 당시 독일군 기갑사단의 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지요.6) 연합국 정보기관이 작전 차원의 정보를 파악하는데 보여준 한계점은 사실 전쟁의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종종 간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점을 알아야 제2차세계대전 중 정보전의 양상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를 할 수 있겠지요.


주석

1) TM-E 30-451 Handbook on German Military Forces, War Department, 1945, pp.II-26~II-28.

2) Niklas Zetterling, Normandy 1944 : German Military Organization, Combat Power and Organizational Effectiveness, casemate, 2019, pp.18~19

3) "SS Panz. u. SS Panz. Gren. Div"  SS Führungshauptamt Amt II Org.Abt.Ia/II, Tgb.Nr. 948/45 g.Kdos. (1945. 2. 14), H16/120 Zustandberichte Band 501(Gen Insp d Pz Tr/Org Abt.), RG242 T78 R617.

4) Marc Milner, Stopping the Panzers : The Untold Story of D-Day,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14, pp.90~91

5)  Zetterling, p.330.

6) Valeriy Zamulin, 'Prokhorovka: The Origins and Evolution of a Myth',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25-4

2022년 5월 5일 목요일

로만 퇴펠의 논문 "The Battle of Prokhorovka: Facts against Fables"

 작년인 2021년에 독일 군사사학자 로만 퇴펠(Roman Töppel)이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34-2호에 기고한 논문 "The Battle of Prokhorovka: Facts against Fables"를 읽었습니다.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연구는 여러편이 발표됐지만 여전히 새로운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로만 퇴펠의 이 연구도 꽤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네요. 이 논문에서 눈에 띄는 주장 중 몇개를 골라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프로호롭카 전투의 시간과 공간적 범위 문제

퇴펠은 소련 시기의 프로호롭카 전투 서술 뿐만 아니라 최근 러시아 학계에서 제기된 연구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유명한 발레리 자물린의 연구가 대표적입니다. 퇴펠은 냉전이 종식된 뒤 서방 학계와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프로호롭카 전투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자 러시아 학계에서는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기존의 서술, 즉 소련 시절에 정립된 '프로호롭카 대전차전' 이야기를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독일 군사사가 칼 하인츠 프리저(Karl-Heinz Frieser)가 독일 문헌을 근거로 독일측 손실을 명확하게 제시하면서 러시아 학계에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가 일어났습니다. 러시아 학계의 대응 중 하나는 프로호롭카 전투의 기간과 전투 장소의 범위를 넓히는 것 이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발레리 자물린은 프로호롭카 전투를 1943년 7월 10일 부터 16일까지 전개된 전투로 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했습니다. 이 주장은 독일 남부집단군이 주공 축선을 프로호롭카 방면으로 변경하면서 7월 10일 부터 16일까지 프로호롭카를 장악하기 위한 전투가 이어졌으므로 이 7일간을 프로호롭카 전투로 봐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퇴펠은 이런 서술 자체가 냉전 시기부터 이어진 소련측 역사서술의 잔재라고 비판합니다. 실제 제4기갑군과 제2SS기갑군단의 문서를 분석해 보면 독일군은 작전 수립 단계 부터 프로호롭카 방면에 주공을 지향했다는 것 입니다.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서술은 독일군의 원래 주공 축선은 오보얀이라고 보는데 오보얀 남부의 평야지대는 습지로 기갑부대의 기동에 불리하기 때문에 이곳을 주공 축선으로 선정했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비판합니다. 퇴펠은 최근 러시아 연구자들이 프로호롭카 전투의 시간과 공간적 범위를 확대하는 이유는 더 이상 7월 12일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자 전투의 범위를 넓게 잡아 소련군의 승리로 해석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합니다.


2. 독일군은 소련군의 역습을 예측했는가?

두 번째로는 독일군이 소련 제5근위전차군의 역습을 예측하고 사전에 방어 준비를 갖췄기 때문에 소련군의 피해가 컸다는 주장을 반박합니다. 하지만 퇴펠은 독일측 사료를 검토해 보면 독일군은 소련 제5근위전차군의 배치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소련군이 7월 12일 역습에 투입한 제29전차군단(25, 31, 32전차여단)과 제18전차군단(110, 170, 181전차여단) 중 독일군이 7월 12일까지 파악하는데 성공한 것은 제32, 110, 170, 181여단 뿐이고 제25, 31여단 등 2개 여단은 7월 13일에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남부집단군 사령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도 7월 11일 밤 까지도 소련군 제18전차군단과 제29전차군단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지적합니다. 제4기갑군과 제2SS기갑군단도 소련군 작전 예비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퇴펠은 독일군이 소련군의 역습을 예측하고 대비했다는 주장은 소련군의 전술적 졸전을 변명하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합니다.


3. 7월 12일 프로호롭카 전투에서 발생한 양측의 전차 손실

개인적으로 이 연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퇴펠의 분석에 따르면 제2SS기갑군단이 7월 12일 전투에서 입은 전차 손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LAH : 3호전차 2대, 4호전차 2대 대파, 4호전차 4대 완파

다스 라이히 : 4호전차 5대 대파

토텐코프 : 4호 전차 1대, 티거 1대 대파


즉 7월 12일 전투에서 독일군의 총 손실은 완파 4대를 포함해 15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소련 제5근위전차군의 전차 완전손실은 227대이니 이걸 독일군과 비교하면 4:227, 대략 1:56의 교환비가 나옵니다. 퇴펠은 발레리 자물린이 7월 12일 독일군의 손실을 정확히 집계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을 비판합니다. 예를들어 발레리 자물린은 2015년 루돌프 폰 리벤트롭(Rudolf von Ribbentrop)을 만나서 7월 12일 전투 당시 LAH 사단의 전차 보유대수를 문의했는데 자세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퇴펠에 따르면 리벤트롭은 이미 1989년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글을 쓰면서 LAH 사단의 전차 손실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즉 발레리 자물린은 독일측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 입니다. 또한 리벤트롭은 2015년 러시아를 방문해 자물린과 면담을 했을때 러시아측을 고려해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소련군의 패전을 자세히 언급하는게 결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꽤 재미있는 연구이지만 로만 퇴펠이 독일측에 편향된 서술을 한다는 비판도 있으니 주의해서 읽을 필요는 있습니다.


2021년 8월 21일 토요일

제2차세계대전 시기 항공모함의 전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

 


밀리터리 오타쿠의 관점에서 읽은 연구논문 중 지난 1년간 가장 재미있었던 걸 꼽으라면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84에 실린 미국 해군대학 교수 피츠시몬즈(James R. FitzSimonds)의 "Aircraft Carriers versus Battleships in War and Myth: Demythologizing Carrier Air Dominance at Sea"를 들겠습니다. 과연 제2차세계대전 당시 항공모함이 전함에 대해 압도적인 우세를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밀리터리 오타쿠 입장에서 환장할만한 주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피츠시몬즈는 레이테만 해전의 예를 들면서 항공모함의 위력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레이테만 해전에서 미국 해군은 에섹스급 7척을 포함한 35척의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항공대 소속의 항공기 1,500여대를 동원해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작전상 미끼로 던진 항공모함을 제외한 일본군 주력을 상대로는 전함 1척과 중순양함 1척만이 미군 항공모함 탑재기에 격침되거나 대파되었습니다. 저자는 이상적인 조건에서 미국 항공모함 항공부대가 전투력을 최대한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함 중심의 일본군 주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지 못한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기간 중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항공기가 기동중인 주력함을 격침한 것은 야마토와 무사시 외에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히에이는 미국 수상함대와의 전투로 전투불능이 된 상태에서 항공기 공격을 받았으므로 제외합니다.) 진주만 공습 같이 정박해 있는 주력함을 공격한 경우에도 완전히 전열에 복귀하지 못하게 타격을 입힌 사례는 4척 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프랑스 해군의 덩케르크, 이탈리아 해군의 로마, 미해군의 애리조나와 오클라호마) 전함보다 작고 약한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경우도 항공모함 탑재기 보다는 수상함이나 잠수함과의 교전에서 더 많은 숫자가 격침되었습니다. 

저자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항공모함 탑재기들은 전함과 같이 빠르고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군함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능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합니다. 해군 항공기용의 폭탄은 1,000파운드 정도로 전함의 갑판에 유효한 타격을 주기 어려웠고, 어뢰는 위력이 충분했으나 명중율이 부족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뇌격기들은 대부분 저고도에서 느린 속도로 움직여 전함의 대공화력에 대해 생존성이 떨어졌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저자는 제2차세계대전 시기 수상함의 대공화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대전 초기인 1942년 초의 산호해 해전에서도 미국 함대는 대공화력 만으로 일본군 항공대를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미군 보다 뒤떨어지는 일본 해군 함정의 대공화력도 미국항공모함 탑재기들을 상대로 충분히 유효했다고 지적합니다. 레이테만 전투 당시 일본해군의 이세가 100대 가까운 미군 함재기의 공격을 대공화력 만으로 격퇴한 점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또한 제2차세계대전 시기의 항공모함들의 작전 지속능력이 떨어졌던 점도 지적합니다. 항공모함은 육상기지에 비해 비축할 수 있는 물자에 한도가 있어 장기간 작전을 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여기에 항공모함 탑재기의 소모율이 높았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이때문에 미 해군이 항공모함 전력에서 일본군을 완전히 압도한 1944년이 되어서도 미해군의 항공모함 항공부대는 충분한 전과를 거둘 수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들어 필리핀해 해전에서는 미해군 항공부대가 전력 우세에도 불구하고 항공모함 한척과 유조선 2척을 격침시키는데 그쳤고 그 댓가로 출격시킨 항공기 200대 중 80대를 여러가지 이유로 상실했습니다. 게다가 장거리 출격 때문에 미군 함재기의 무장 탑재에도 지장이 있어 타격력이 더 감소했다고 지적합니다.(뇌격기들도 항속거리 문제로 폭탄을 탑재했음) 미국 항공모함의 지상 타격도 예상외로 결정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피츠시몬즈는 레이더도 부실하고 대공화력도 약하며 조종사의 수준도 뒤떨어지는 일본군을 상대로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미국 항공모함 기동부대가 유럽으로 가서 독일 공군 기지를 타격했다면 어떤 성과가 나왔겠냐고 반문합니다.

반면 전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평가를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피츠시몬즈는 대평양 전쟁의 분기점은 미드웨이 해전이 아니라 미국의 고속전함부대가 전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1942년 말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함 전력없이는 태평양에서 전략적인 공세가 가능하지 않았다고 보는 겁니다. 저자는 과달카날의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주 요인이 미해군의 신형고속전함들의 활약이라고 평가합니다. 또한 1943년 이후 미해군의 반격작전에서도 전함의 역할을 더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자는 제2차세계대전 직후 전함 전력이 급속하게 감축된 주된 요인은 항공모함의 우위 보다는 미해군에 대항할 수상함 전력을 가진 가상적이 소멸하고 대함미사일이 등장한데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 해군항공대가 해군 내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항공모함 항공대의 위력을 강조하는 여론을 조성한 점도 항공모함의 '신화'를 부풀리는데 일조했다고 주장합니다.

꽤 재미있는 주장을 하는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