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prey 출판사에서 올해 하반기에 출간할 책을 몇권 발표했던데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보입니다. Foreign Panthers라는 책으로 영국군, 프랑스군, 소련군 등이 노획한 판터를 어떻게 운용했는지 다루는 내용이네요. 물론 이 주제는 잘 알려져 있고 관련자료들도 많이 공개되어 있긴 합니다만 정리된 단행본으로 나오는건 또 다른 문제죠. 아주 흥미로운 주제라서 사봐야 겠습니다.
2022년 5월 6일 금요일
2022년 5월 5일 목요일
로만 퇴펠의 논문 "The Battle of Prokhorovka: Facts against Fables"
작년인 2021년에 독일 군사사학자 로만 퇴펠(Roman Töppel)이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34-2호에 기고한 논문 "The Battle of Prokhorovka: Facts against Fables"를 읽었습니다.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연구는 여러편이 발표됐지만 여전히 새로운 연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로만 퇴펠의 이 연구도 꽤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네요. 이 논문에서 눈에 띄는 주장 중 몇개를 골라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프로호롭카 전투의 시간과 공간적 범위 문제
퇴펠은 소련 시기의 프로호롭카 전투 서술 뿐만 아니라 최근 러시아 학계에서 제기된 연구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유명한 발레리 자물린의 연구가 대표적입니다. 퇴펠은 냉전이 종식된 뒤 서방 학계와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프로호롭카 전투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자 러시아 학계에서는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기존의 서술, 즉 소련 시절에 정립된 '프로호롭카 대전차전' 이야기를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독일 군사사가 칼 하인츠 프리저(Karl-Heinz Frieser)가 독일 문헌을 근거로 독일측 손실을 명확하게 제시하면서 러시아 학계에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가 일어났습니다. 러시아 학계의 대응 중 하나는 프로호롭카 전투의 기간과 전투 장소의 범위를 넓히는 것 이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발레리 자물린은 프로호롭카 전투를 1943년 7월 10일 부터 16일까지 전개된 전투로 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했습니다. 이 주장은 독일 남부집단군이 주공 축선을 프로호롭카 방면으로 변경하면서 7월 10일 부터 16일까지 프로호롭카를 장악하기 위한 전투가 이어졌으므로 이 7일간을 프로호롭카 전투로 봐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퇴펠은 이런 서술 자체가 냉전 시기부터 이어진 소련측 역사서술의 잔재라고 비판합니다. 실제 제4기갑군과 제2SS기갑군단의 문서를 분석해 보면 독일군은 작전 수립 단계 부터 프로호롭카 방면에 주공을 지향했다는 것 입니다.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서술은 독일군의 원래 주공 축선은 오보얀이라고 보는데 오보얀 남부의 평야지대는 습지로 기갑부대의 기동에 불리하기 때문에 이곳을 주공 축선으로 선정했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비판합니다. 퇴펠은 최근 러시아 연구자들이 프로호롭카 전투의 시간과 공간적 범위를 확대하는 이유는 더 이상 7월 12일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자 전투의 범위를 넓게 잡아 소련군의 승리로 해석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합니다.
2. 독일군은 소련군의 역습을 예측했는가?
두 번째로는 독일군이 소련 제5근위전차군의 역습을 예측하고 사전에 방어 준비를 갖췄기 때문에 소련군의 피해가 컸다는 주장을 반박합니다. 하지만 퇴펠은 독일측 사료를 검토해 보면 독일군은 소련 제5근위전차군의 배치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소련군이 7월 12일 역습에 투입한 제29전차군단(25, 31, 32전차여단)과 제18전차군단(110, 170, 181전차여단) 중 독일군이 7월 12일까지 파악하는데 성공한 것은 제32, 110, 170, 181여단 뿐이고 제25, 31여단 등 2개 여단은 7월 13일에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남부집단군 사령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도 7월 11일 밤 까지도 소련군 제18전차군단과 제29전차군단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지적합니다. 제4기갑군과 제2SS기갑군단도 소련군 작전 예비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퇴펠은 독일군이 소련군의 역습을 예측하고 대비했다는 주장은 소련군의 전술적 졸전을 변명하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합니다.
3. 7월 12일 프로호롭카 전투에서 발생한 양측의 전차 손실
개인적으로 이 연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퇴펠의 분석에 따르면 제2SS기갑군단이 7월 12일 전투에서 입은 전차 손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LAH : 3호전차 2대, 4호전차 2대 대파, 4호전차 4대 완파
다스 라이히 : 4호전차 5대 대파
토텐코프 : 4호 전차 1대, 티거 1대 대파
즉 7월 12일 전투에서 독일군의 총 손실은 완파 4대를 포함해 15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소련 제5근위전차군의 전차 완전손실은 227대이니 이걸 독일군과 비교하면 4:227, 대략 1:56의 교환비가 나옵니다. 퇴펠은 발레리 자물린이 7월 12일 독일군의 손실을 정확히 집계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을 비판합니다. 예를들어 발레리 자물린은 2015년 루돌프 폰 리벤트롭(Rudolf von Ribbentrop)을 만나서 7월 12일 전투 당시 LAH 사단의 전차 보유대수를 문의했는데 자세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퇴펠에 따르면 리벤트롭은 이미 1989년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글을 쓰면서 LAH 사단의 전차 손실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즉 발레리 자물린은 독일측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 입니다. 또한 리벤트롭은 2015년 러시아를 방문해 자물린과 면담을 했을때 러시아측을 고려해 프로호롭카 전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소련군의 패전을 자세히 언급하는게 결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꽤 재미있는 연구이지만 로만 퇴펠이 독일측에 편향된 서술을 한다는 비판도 있으니 주의해서 읽을 필요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