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0일 목요일

어떤 논평

내무인민위원회가 만들어지자 이즈베스티야에는 이런 논평이 실렸다고 합니다.


연방정부는 소비에트연방 내무인민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에 OGPU(합동국가정치부)를 통합하는 한편 사법권한은 분리하도록 하였다. 내무인민위원회의 창설은 국내의 적들을 대부분 박멸하고 물리쳤음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은 계속하되 주로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혁명의 합법적인 역할, 즉 법에 기반한 올바른 원칙의 역할이 커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합법적인 절차의 기준에 따라 사건을 담당하는 사법기구의 역할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무인민위원회 창설에 대한 이즈베스티야의 1934년 7월 11일자 논평. 당시 편집장은 “부하린” 이었다. 
Oleg V. Khlevniuk, Master of the House : Stalin and His Inner Circle, (Yale University Press, 2009), p.93


소련에서는 내무인민위원회(NKVD)를 만들 당시 이것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선전했다고 합니다. 아 물론 이후 숙청과정에서 내무인민위원회가 초법적인 권한을 휘둘러 댄 것은 많은 분들이 아실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실은 이즈베스티야의 편집장이 “부하린”이라는게 비극입니다.

2013년 6월 16일 일요일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4 : Steven F. Udvar-Hazy Center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1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2
Me 262에 대한 미군 시험조종사들의 평가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 3 : Steven F. Udvar-Hazy Center


스미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 분관 두 번째 사진 입니다.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기체의 사진을 올리려 합니다.



1. B-29 Enola Gay

아마 여기서 가장 유명한 전시물이라면 바로 Enola Gay라는 별명을 가진 이 B-29가 아닐까 합니다. 역사상 최초로 핵무기를 사용한 그 기체지요. 제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B-29라는 비행기는 악명높은 학살자 답지 않게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반짝이는 거대한 동체를 보면 먼저 감탄사가 나옵니다.(이러면 안되는데 말이죠.)











2. Ar 234

저는 이 박물관의 또 하나의 명물로 세계 최초의 제트폭격기 Ar 234를 꼽겠습니다. 칙칙한 독일 공군 위장색으로 덮여 있긴 합니다만 아주 멋지게 잘 빠진 항공기죠. 그런데 옆에 전시된 Do 335가 한 덩치 하다 보니 왜소해 보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작은 기체라서 조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3. F4U Corsair

재미있게도 2차대전 후반기 미해군의 주력전투기인 F4U Corsair와 F6F Hellcat은 천장에 매달아 전시를 해 놓았습니다.







4. F6F Hellcat






5. Do 335

독일 공군의 중(重) 전투기 Do 335입니다. 전투기 치고는 꽤 커서 놀랐습니다. 바로 옆에 전시된 Ar 234가 종이비행기 처럼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대형 기체인데도 불구하고 그 형상때문인지 둔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6. Fa 330A

Ar 234와 Do 335 사이에는 Fa 330A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기종은 2차대전 중 U보트에서 정찰용으로 사용한 오토자이로입니다. 커다란 두 대의 비행기 사이에 전시되어 있으니 마치 잠자리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단촐한 물건이라 사진을 한장만 찍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약간 아쉽군요.




7. Fw 190F

이 박물관에는 지상공격기형인 Fw 190F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8. He 219

독일 공군의 야간전투기였던 He 219는 동체와 미익만 남아있습니다. 예산이 마련되면 복원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동체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 사냥해서 깃털을 뽑아놓은 오리 같습니다...




9. Me 163

독일공군이 실전에 투입한 괴작 로켓 전투기입니다. 개성만점이긴 하지만 정말 못생겼네요.






10. Ju 52

독일공군의 주력 수송기였던 Ju 52입니다. 이 박물관에는 루프트한자에서 여객기로 사용한 형식으로 복원해 놓았습니다.





2013년 6월 8일 토요일

어떤 소신(???)

정치인들의 소신 발언(???)을 시간이 지난 뒤 읽어보는 것은 호사가들의 소소한 재미입니다.


나는 자유당에 소속하여 일하고 있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고 있다. 왜 그러냐하면 오늘날 우리 나라의 현 실정으로 보아 양단된 국토와 파괴 혼란된 강토우에 국리만복을 증진할 길은 오직 하나 있으니, 이것은 협력-건설일 것이다. 정치의 혼란은 행정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싸움과 혼란속에서 국민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무엇이 국가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하게 할 것인가 말이다. 난경(難境)을 극복하고 궁지를 벗어나는 유일의 비결은 언제나 있는 힘을 다 합치는 협력이다. 남북이 통일되고 국토가 평화될 때 까지는 무엇보다도 협력건설이다. 싸움은 그 후의 이야기다. 정치는 인기 노름인데, 인기없는 자유당에 소속하여 묵묵히 일하는 것이 하나의 애국운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럼으로 해서 나는 자유당에 소속하여 일하는 것을 영예로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하로바삐 성실의 정치, 노력의 정치의 정도로 올라가기를 염원하고 나 역시 과거에 걸어온 성실과 노력의 신조를 장래에도 꾿꾿히 가지고 나가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한희석(韓熙錫, 1909~1983)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걸어갈 길 : 나의 政治白書』(월간 新太陽별책, 신태양사, 1957),   312쪽


한희석은 자유당 소속으로 천안의 국회의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당의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으로 3ㆍ15부정선거의 주모자 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묵묵히 일하는게 너무 지나친 듯 싶습니다. 당연히 한희석은  4월 혁명이 터지고 부정선거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구속 됩니다. 이듬해에 일어난 군사쿠데타는 한희석에게 일생 일대의 위기가 되는데 바로 혁명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게 된 것 입니다.


그러나 한희석은 감형되어 출소할 수 있었고 그 뒤로는 무탈하게 살다가 천수를 누리고 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