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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8일 토요일

미국 공정사단 병사들의 엘리트의식과 폭력성에 대한 연구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87에 실린 윌리엄스(R. F. M. Williams)의 논문 "Our Problem Children": Masculinity and its Discontents in American Parachute Unites in World War II를 읽었습니다. 이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공정사단 장병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엘리트의식과 남성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정서가 과도한 폭력성으로 나타난 사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정예 부대가 엘리트의식을 가지게 되는건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소속된 부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건 높은 사기와 전투 의지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이에 따른 부작용이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거죠.

 윌리엄스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제101공정사단과 제82공정사단과 같은 '엘리트 부대'에서 나타난 과도한 폭력성에 주목합니다. 이러한 폭력성은 포로 학살, 민간인에 대한 범죄는 물론 아군에 대한 폭력과 같은 군기문란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에서 포로 학살 문제는 이미 많은 문헌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적 후방에서 작전하는 경우가 많은 공정부대는 작전 특성상 포로를 관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작전상의 이유로 포로를 학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쟁 초기 독일 공정사단의 전쟁 범죄 중 많은 사례가 이런 이유에서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공정사단 대원들의 엘리트의식이 가져온 군기문란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낙하산 강하를 하는 공정연대 대원들이 다른 아군 부대들을 멸시하는 정도를 넘어 같은 사단에 속한 글라이더를 타는 공수연대 대원들까지 무시하는 사례입니다. 마켓가든 작전이 실패한 뒤 제82공정사단과 제101공정사단이 재편성을 하기 위해 후방으로 이동했을 때 두 사단의 병사들이 종종 패싸움을 벌이는 사건도 있었는데, 이런 사건 또한 과도한 엘리트의식이 가져온 군기문란 행위입니다.

 필자가 가장 심각하게 비판하는 부분은 민간인에 대한 범죄입니다. 제101공정사단은 적국인 독일은 물론 연합국인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많은 대민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논문에서 제시한 몇몇 사례는 끔찍합니다. 제101공정사단 대원들이 미성년자를 납치해 성폭행 하거나 저항하는 프랑스 여성의 머리를 돌로 내리쳐 중상을 입힌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많은 성범죄는 수사 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서유럽에서 미군이 일으킨 성범죄 사건 중 실제로 보고되는 것은 5% 남짓으로 추정되며, 보고된 사건 중에서 실제 수사에 들어가 기소까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주 '극단적인' 사건이 아닌 경우 범죄를 저지른 군인이 처벌을 받을 확률은 낮았습니다. 1945년 4월 30일 제101공정사단 506공정연대의 제임스 맥다니엘(James C. McDaniel) 일병은 프란치스카 벨츠(Francisca Welz)라는 여성을 사살하고 시간하는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었는데 공식적인 사건 보고서에는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맥다니엘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렇게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이 연구는 제101공정사단과 같은 부대의 대원이 저지른 범죄는 '적당히' 무마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하면서 미군의 태도를 비판합니다. 제101공정사단은 프랑스에 주둔하는 동안 대민 범죄를 너무 많이 저지른데다 지휘부에서도 이를 통제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 민간인들에게 악명을 떨쳤다고 합니다. 반면 제82공정사단은 그나마 사단 지휘부에서 대원들을 통제하려고 노력은 한 편이라고 하는군요.

 윌리엄스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파시즘으로 부터 세계를 구원한 미국의 시민군'의 서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전쟁의 어두운 면이 은폐되는 점을 지적합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 처럼 실제 역사의 복잡한 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8년 11월 2일 일요일

2차대전 중 독일 국방군의 성범죄 문제 - Birgit Beck의 연구

살인적인 유로의 환율 때문에 요 몇 달간 독일책은 전혀 구입하지를 못했습니다. 구입하려고 찜해놓은 책이 몇 권 있긴 한데 1유로당 1800원에 육박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그저 침만 흘릴 뿐 이죠. 이렇게 살 생각만 굴뚝같고 경제적 문제로 못 사는 책 중 한권이 비르기트 벡(Birgit Beck)의 Wehrmacht und sexuelle Gewalt : Sexualverbrechen vor deutschen Militärgerichten 1939-1945입니다. 제목부터 흥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요즘 읽고 있는 A World at Total War라는 책에 비르기트 벡이 자신의 저작 중 일부를 요약해 놓은 에세이, Sexual Violence and Its Prosecution by Courts Martial of the Wehrmacht가 실려 있더군요. 비록 경제적으로 궁해서 비르기트 벡의 책은 못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축약해 놓은 에세이라도 읽을 수 있으니 나쁘진 않더군요.

이 에세이에서는 독일 국방군이 자행한 성범죄가 독일 군법회의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자인 벡은 1차대전 초기 독일군에 의해 자행된 벨기에와 프랑스에서의 강간이나 일본군이 중일전쟁 기간 중에 저지른 강간, 또는 남북전쟁 기간 중 양측에서 대량으로 자행된 성폭력 등은 비교적 연구가 많이 이뤄졌는데 2차대전 중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가 자행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벡의 연구에 따르면 2차대전 기간 중 독일군의 민간인 강간 사례 중 실제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것은 5,300여건에 불과하며 실제 강간에 의해 처벌받는 비중도 적었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양상을 보면 독일군에 의한 강간은 프랑스의 패전 이후 급증했다가 1943년 이후 줄어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1943년 이후는 독일군이 패배하면서 도망치기 바쁜 시기이니 강간할 정신이 없어서 그랬나 봅니다.;;;;
프랑스의 패전 이후 일어난 강간사례에 대한 분석은 흥미로운데 독일군 또한 강간대상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독일군의 기록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106보병사단과 211보병사단에 의해 자행된 강간 피해자의 연령대는 6세의 아동부터 67세의 노인(;;;;)까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나마 프랑스는 다행이었던 것이 독일군 고위 지휘관들이 프랑스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군율로 통제가 가능했다는 점 입니다. 1940년 7월 5일에는 육군총사령관 브라우히취(Walther von Brauchitsch)가 각 야전군사령관들에게 강간범에 대한 처벌 문제에 대한 명령을 하달합니다. 프랑스에서 강간으로 기소되는 경우 유죄가 인정되면 10년의 징역을 선고 받는 사례도 나타납니다. 독일군 지휘부는 프랑스에서 대민관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선전 목적에서도 성범죄자에게 중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군요. 프랑스에서는 1944년까지 독일군이 주둔하면서 성범죄 예방을 위해 국방군이 관할하는 위안소를 대량으로 설치했는데 이것도 나름대로 문제가 되긴 합니다.

서부전선과 달리 동부전선은 인종전쟁이라는 막장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범죄에 있어서도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저자인 벡은 독일군 지휘관들도 동부전선에서는 군율을 무너뜨릴 정도가 아닌 강간은 묵인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통계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서부전선에서 강간으로 기소된 병사는 유죄가 10년 형을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동부전선의 경우는 기소받는 경우도 드물었고 유죄로 판결 받더라도 1년에서 2년 형이 최고형이었다고 합니다. 나치의 인종적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슬라브인 여성에 대해서는 독일인 여성과 같은 정조(Geschlechtehre)의 기준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강간도 강간이 아니게 되는 황당한 결정이 자주 내려졌다고 합니다. 서부전선, 특히 프랑스의 경우 성범죄는 피해자가 직접 해당 경찰서에 신고하면 프랑스 경찰이 독일 헌병과 협조해서 처리하는 등 상식적으로 처리되었으나 동부전선에서는 그나마 양심적인 독일군인들이 성범죄를 신고해야 기소가 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가혹한 점령통치 때문에 피해를 입은 소련 여성들이 독일 점령군을 상대로 직접 강간피해를 신고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하는 군요. 벡은 소련에 대한 전쟁은 정복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강간은 그 정복 행위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범죄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